22.02.10 13:52최종 업데이트 22.02.11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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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비평연재 <좋은데, 싫었습니다>(좋싫)는 주류의 담론에 대항하는 저항의 언어조차 어쩌면 '당위'라는 함정에 빠진 것은 아닌지 질문합니다. 그저 이것'만'이 옳고, 이것은 '반드시' 좋아해야 하고, 그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대해야 한다는 절대적이고 당위적인 언어들이 정말로 대안과 저항의 언어가 될 수 있는지 묻습니다.[편집자말]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다소 생뚱맞은 질문. 당신이 살고 있는 한국은 어떤 세상인가. 넷플릭스 드라마로 대답을 대신하자면, 일찍이 조선 시대에는 세도가의 모략으로 좀비가 창궐해 큰 난이 일었으며(킹덤), 전 세계 거부들이 재밋거리로 경제적으로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을 외딴 무인도에 몰아 거액을 건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기도 한다(오징어 게임).


또 언젠가부터 난데없이 거대한 얼굴의 천사로부터 죽을 날을 고지받기도 하는데, 그때는 단죄라는 구실로 정작 죽기 전에 죽음보다 끔찍한 사이버 렉카들의 괴롭힘을 경험하게 된다(지옥). 아 정말 이건 지옥이라는 말조차 초라할 지경이다.

지옥 위에 또 하나의 지옥이 포개지듯 다시 좀비가 창궐했다. 지난 1월 28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은 앞서 나열한 호러 드라마들과 마찬가지로 공개 직후 큰 화제를 모으며 압도적으로 전 세계 시청시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농담처럼 말하자면 전 세계 넷플릭스 이용자들은 드라마를 통해서 한국이라는 지옥을 열광적으로 탐닉하는 중이다. 이 열기는 과연 현상이라고 할 만하다. 또한 이 현상은 이미 많은 리뷰들이 지적하듯 허술한 드라마의 만듦새와는 별로 상관없는 듯 보인다. 그렇다면 세계는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가. 무엇에 열광하고 있는가.

집단 트라우마로 회귀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 스틸컷 ⓒ 넷플릭스

 
우리가 (영화 등을 통해) 겪은 대부분의 좀비 사태들이 그렇듯 <지금 우리 학교는> 역시 좀비의 원인은 모종의 바이러스다. 그런데 이 좀비 바이러스가 세상에 도래하게 된 이유가 흥미롭다. 바이러스의 기원은 다름 아닌 학교 폭력이다.

드라마의 주요 배경이 되는 효산고의 과학 교사 이병찬은 자신의 아들이 끊임없이 학교 폭력을 당하고 자살까지 결심하자 '괴물이라도 되어서' 살아남으라는 심정으로 인위적으로 분노와 공격성을 부여하는 바이러스를 만들어 자신의 아들에게 주입하는데, 이 바이러스가 예상치 못하게 모든 인간성을 지우고 숙주를 좀비로 만들어 버린다. 예상치 못하게 발현한 좀비 바이러스에 별다른 치료법이 있을 리가 없다.

<지금 우리 학교는>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우연찮은 계기로 효산고 학생 현주가 이병찬이 만든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현주를 통해 좀비 바이러스가 효산고와 효산시 전역에  퍼지게 되면서 시작된다.

그런데 감염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효산고는 단 수십 분 만에 통제가 불가능한 좀비 소요 상태에 빠지게 되고 효산시 역시 수 시간 만에 좀비로 뒤덮인다. 좀비 바이러스가 효산고와 효산시에 거의 동시에 수습이 불가능한 지경으로 확산하면서 효산시에는 비상계엄이 발효된다. 

비상계엄으로 고립된 효산시와 효산시가 고립됨으로써 아무리 버티고 기다려도 구조대가 올 수 없는 효산고. <지금 우리 학교는>의 재난은 앞서 말한 것처럼 사회 문제로서 학교 폭력에서 출발하고 교육 시스템에 의해서 악화하지만, 도무지 이 문제들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고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다뤄지는 설정이 관조와 사유 없이 선정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도 이 무성의한 지점이다.

오히려 <지금 우리 학교는>은 문제의 원인에는 관심이 없고 황당하게도 한국의 사회적 집단 트라우마들로 회귀하고 싶어 한다. 즉 계엄(원작 웹툰에서는 효산시를 봉쇄하기는 하지만 계엄이 발효되지는 않는다)이라는 예외 상태와 학교라는 매체(medium)의 동일성 하나만으로 노골적으로 그리고 섣부르게 효산시를 1980년 5월의 광주에 그리고 효산고를 2014년 4월 맹골수도에 가라앉은 세월호에 엉성하게 엮어 묶으려 한다.

그러니까 생존자들이 효산시 밖으로 탈출해야만 하는 <지금 우리 학교는>은 어떤 면에서 좀비로 가득찬 유령 도시 광주 위에서, 역시 좀비로 가득찬 유령선이 되어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탈출하려는 강박적 악몽이기도 하다.

기괴하게 뒤틀린 시·공간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 스틸컷 ⓒ 넷플릭스

 
악몽은 기괴한 것이니 만큼 <지금 우리 학교는>의 시·공간도 기괴하게 뒤틀려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학교 안에 좀비들에게 둘러싸여 고립되어 있는 학생들의 시간과 학교 밖 어른들의 시간의 속도가 전혀 다르게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효산고와 학교의 외부인 계엄사령부와 격리 수용소의 시간이 실제로 다르게 흐르는 것은 아니지만, 보는 이들로 하여금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도록 편집되었다. 

12부작으로 장황하게 만들어진 <지금 우리 학교는>은 실은 단 4일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효산고등학교에서 갑자기 좀비가 창궐해 온조와 청산 일행, 하리와 미진 일행 등 학교에 고립된 생존자 학생들이 계엄군의 구조 없이 자력으로 학교를 탈출해 강당을 가로질러 뒷산까지 도착하는 3일, 그리고 효산시를 벗어나기 위해 이동하다 계엄군에게 구조되는 강도 높은 하루의 분투가 지루할 정도로(이 말은 비아냥이 아니다. 긴 고립은 설령 죽음에 직면해 있더라도 필연적으로 지루함을 수반한다) 길게 나열된다.

학교의 상황이 이처럼 느리게 흐르는 반면에 같은 시간 동안 학교 밖에서는 좀비가 창궐한 지 고작 하루 만에 청와대의 결정으로 효산시에 비상계엄이 선포되어 버린다. 그리고 불과 그 하루 동안 계엄사령부는 좀비와 면역이 있는 감염자 은지를 생포해 실험∙관찰하는 한편, 바이러스를 만든 과학교사 이병찬의 노트북을 입수해 밤새 자료를 분석해 국가정보원 및 질병관리청과 논의하고는 그다음 날 바이러스의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린 뒤 생존자 구조 없이 좀비 및 감염자가 된 시민들을 폭격으로 폭사시켜 버린다.

그리고 계엄을 지휘한 계엄사령관은 스스로 내린 결정에 죄책감을 느끼고 권총으로 자살해 버린다. 놀랍게도 이 수많은 일이 학교 밖에서는 단 이틀 사이에 벌어진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 학교는>은 재난에 대한 해결과 오염에 대한 정화, 트라우마로부터의 도피에 대한 조급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스스로는 이것들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사회 문제들과 역사적 트라우마에 대한 강박으로 거의 질식하기 일보 직전의 드라마이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결말에서 가까스로 효산시의 좀비 창궐 사태가 해소되기는 하지만, 결국 드라마 내내 기억 상실에 걸린 듯 또는 그저 기분 나쁜 꿈을 꾸듯 희미한 채로 부유하는 역사의 트라우마들을 직시하지도, 감당하지 못하고 강박 증상이 폭주해 결국 자폭으로 귀결되어 버리는 개연성 없는 악몽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12부작의 긴 악몽에서 무엇을 보고 또 열광하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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