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2.03 18:06최종 업데이트 22.02.03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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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광산을 대표하는 아이카와 금은산에서 메이지시대 이후 건설된 갱도. 구불구불하고 좁은 에도시대 갱도와 달리 비교적 넓게 매끈하게 뚫려 있다. 사도광산에는 2천 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조선인이 태평양전쟁 기간 일제에 의해 동원돼 가혹한 환경에서 강제노역했다. ⓒ 연합뉴스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을 미루려던 기시다 후미오 내각이 설날인 1일 오전에 등재 신청을 결정했다. 한국인 강제징용(강제동원) 현장인 니가타현 사도섬 사도광산과 관련해 기시다 내각이 방침을 바꾼 것은 아베 신조를 비롯한 극우 세력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로 해석되고 있다.

지난달 20일 일본 정부가 '한국의 반발로 인해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쉽지 않다'는 판단 하에 등재 신청을 보류할 것으로 보인다는 <요미우리신문> 보도가 있었다. 그러자 아베 신조 전 총리와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정조회장(정무조사회장) 등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베 신조는 20일 호소다파(아베파) 계파 회의에서 '한국과의 논전을 피하는 형태로 등재를 신청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다', '미룬다고 등재 가능성이 커지지 않는다'며 재고를 촉구했고, 다카이치 정조회장은 '일본의 명예와 관련된 문제'라며 등재 신청을 요구했다. 이런 압박들이 나온 뒤인 지난달 28일 '일본 정부가 등재를 추진하는 쪽으로 최종 조율에 들어갔다'라는 <교도통신> 보도가 있었고, 설날인 1일 오전에 내각의 공식 결정이 나왔다.

사실, 사도광산이 유네스코에 등재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높지 않다. 미룬다고 가능성이 커지지 않는다는 아베 신조의 말에도 그런 전망이 묻어 있다.

위안부 자료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막고자 '가맹국이 이의신청을 하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등재 절차가 정지되는 제도'를 일본이 만들어놓았고, 이 제도가 세계문화유산 등재에도 적용된다. 그래서 한국이 이의를 제기하면 유네스코 등재 절차가 원활히 진행될 수 없다. 위안부 자료의 등재를 막고자 일본이 만들어둔 장치가 사도광산의 앞길을 막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일본은 한국의 반발을 특히 의식하고 있다. 이 점은 기시다 총리의 28일 기자회견 때도 나타났다. 총리관저 홈페이지에 게시된 회견문에 따르면, "(사도광산이 가진) 그 같은 높은 가치에도 불구하고, 본건의 등록에 관해 다양한 논의와 의견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라고 기시다는 발언했다.

물론, 일본이 볼 때 가망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금력을 바탕으로 하는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로비, 인도태평양 전략을 위해 일본과 협조할 수밖에 없는 바이든 행정부의 암묵적 지지, 북한·중국 위협론이 고조되면 한·미·일 삼각공조가 부각되면서 한·일 갈등이 수그러드는 메커니즘이 향후의 등재 과정에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2가지 접근법

지금 일본 정부는 한국의 문제제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이보다 훨씬 큰 바위가 일본 정부의 앞길에 놓여 있다. 사도광산에서 한국인 강제징용이 벌어진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기 힘들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전범기업인 미쓰비시그룹에 의해 한국인들이 사도광산으로 강제징용됐다는 사실은 22년 전인 2000년에 히로세 데이조 니가타국제정보대학 교수가 <니가타국제정보대학 정보문화학부 기요(紀要)> 제3권에 기고한 '사도광산과 조선인 노동자 1939~1945(佐渡鉱山と朝鮮人労働者 1939~1945)'에도 소개됐다.

그런 사실을 부인하기 힘들다는 인식은 일본 정계에도 존재한다. 1월 29일에 일본공산당 기관지 <신분아카하타(しんぶん赤旗)>에 실린 '사도광산 세계유산 추천으로(佐渡金山 世界遺産推薦へ)'라는 해설 기사는 "전시 중의 조선인 강제노동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라고 한 뒤 니가타현이 편찬한 <니가타현사>를 인용해 "아시아·태평양 전쟁 말기에 사도광산에서 한국인 강제노동이 행해진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라고 시인했다.

사도광산에서 그 같은 범죄행위가 벌어진 사실을 부인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최근 일본 내에서는 이를 비껴가기 위한 2가지 접근법이 주목을 받고 있다. 하나는, 신청 사유를 강제징용 이전 시기로 국한하는 것이다. 한국인 강제징용이 있기 이전 시대에 사도광산이 세계문화유산의 가치를 갖고 있었다고 홍보하는 방식이다.

28일 기자회견에서 기시다 총리는 "에도시대에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적 수공업을 활용했으며, 대규모이면서도 장기간에 걸쳐 계속된 희귀한 산업유산이라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라고 발언했다. 무신정권인 도쿠가와막부가 에도(도쿄)를 근거지로 일본을 통치했던 에도시대(1603~1867)에 전개된 상황만을 놓고 등재 신청을 하겠다는 것이다.

대학 졸업 뒤 기업체를 운영하면서 노동자들을 착취한 경력이 있는 공직자 후보가 청문회장에 나와 "저의 대학 시절에 대해서만 질문해주세요"라고 요청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시다 총리는 "희귀한 산업유산(稀有な産業遺産)"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일본어 케우(稀有)는 '희귀하다'로도 번역되고 '희한하다'로도 번역된다. 전쟁범죄는 빼놓고 그 이전 시기만 갖고 등재 신청을 하겠다는 기시다 내각의 태도는 '희한한 접근법'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에도시대에도 강제징용은 있었다. 노숙자나 죄수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제노역이 사도광산에서 자행됐다. 그중 28명을 기리는 묘비가 사도섬에 남아 있는 '무숙인의 묘(無宿人の墓)'다. 제국주의 침략 전쟁을 배경으로 하느냐 아니냐의 차이만 있을 뿐, 국가권력이 힘없는 민중들에게 노예노동을 시켰다는 점에서는 에도시대나 제국주의 침략전쟁 시대나 다를 바 없다고 할 수 있다.

신청 사유를 에도시대로 국한하는 것과 더불어, '한국인 강제징용은 합법적 전시동원이었다'는 접근법도 부각되고 있다.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 레이타쿠대학 객원교수가 지난 1월 17일 국가기본문제연구소 홈페이지(https://jinf.jp)에 기고한 '사도광산을 헐뜯는 한국을 상대로 사실에 기초한 반론을 하라(佐渡金山をけなす韓国に事実に基づく反論をせよ)'는 글에도 그 접근법이 등장한다.

일본인 납치문제를 통해 대북 압박에도 간여하는 니시오카 교수는 "전쟁 전에 일본도 가입했던 강제노동에 관한 조약(Forced Labour Convention)에서는 전시 노동 동원은 국제법에 위반되는 강제노동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규정했다"며 한국인 징용은 자국민에 대한 합법적 전시동원이었다고 주장했다.

에도시대에 국한해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하겠지만, 에도시대 이후 시기가 문제가 되면 '합법적 전시동원' 논리를 구사하겠다는 일본의 의도를 반영하는 글이다. 식민지배의 합법을 전제로 강제징용을 정당화하겠다는 일본 극우세력의 전략을 보여주는 글이다.

극우에 기대는 자민당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4일 오후 일본 미에(三重)현 이세(伊勢)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듣고 있다. 2022.1.4 ⓒ 연합뉴스

 
1910년 한국 강점이 국제법적으로 합법이었는지 여부를 떠나, 식민지배가 합법이었다는 주장은 오늘날 세계시민들의 상식을 거스르는 것이다. 신청 사유를 에도시대에만 국한하겠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보편적으로 부정되는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겠다고 시도하는 것 역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정부가 논란을 낳을 수밖에 없는 이런 일을 무리수를 써가며 추진하는 것은 사도광산에 대한 애정에 입각했다기보다는 자민당과 극우세력의 정치적 필요에 입각했다고 할 수 있다. 작년 10월 31일 중의원선거에서 극우정당인 일본유신회가 41석을 획득하며 제3당으로 떠오른 데서도 나타나듯이 일본 국민들이 점점 더 극우로 기울고 있다. 이런 흐름에 편승하면서 7월 참의원선거에 대비하려면, 무리수가 수반되더라도 극우적 노선을 견지해야 한다는 게 자민당 정권의 인식이라고 볼 수 있다.

기시다 총리가 방침을 번복하면서까지 그런 흐름에 동조한 데는 오미크론 확산으로 인한 지지율 하락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한동안 좋았던 지지율이 오미크론으로 인해 떨어지기 시작하자, 극우라는 의지처에 몸을 맡겼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신청 결정에 담긴 기시다 내각의 진정한 목적이 극우세력 결집에 있다는 점은 이 일을 맡을 범정부 태스크포스(TF) 책임자 자리에 다키자키 시게키 내각관방 부장관보가 임명된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다키자키는 외무성에서 강제징용 문제 등을 놓고 한국과 협상해온 인물이다. 이는 이 TF의 궁극적 목적이 한국에 대한 대응에 있으며 이를 통해 극우세력 결집을 꾀한다는 인상을 갖게 할 만하다.

기시다 내각을 등재 신청 쪽으로 밀어붙이고자 아베 신조는 '한국과의 논전을 피하는 형태로 등재를 신청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고, 다카이치 정조회장은 '일본의 명예와 관련된 문제'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민당 정권은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보다는 한국과의 역사전쟁에 더욱더 공을 들이고 있다. 한국과 제대로 된 역사전쟁을 벌여 극우세력을 결집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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