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1.21 16:42최종 업데이트 22.01.21 16:42
  • 본문듣기

반려동물 관련 공약들 외에 다른 동물들에 대한 공약은 왜 없을까. ⓒ 픽사베이

 
최근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의 진료를 위해 동물병원에 다녀왔다. 수의사의 세심한 진료와 자세한 설명 덕분에 안도하며 돌아왔지만 영수증에 찍힌 금액을 보고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사람과는 달리 의료보험 적용이 안 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동물병원별로 진료비가 다르다는 점은 방문자 입장에서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진료비가 미리 명시되지 않기 때문에 동물병원에 다녀오면 묘하게 찜찜한 마음이 든다. 과연 나만 그런 걸까? 


독심술을 쓴 걸까. 20대 대선을 앞두고 '반려동물 진료비 표준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는 후보들이 보인다. 더불어 '개식용 금지', '동물복지' 등 다양한 키워드의 공약이 발표되고 있다.

동물 공약이 양적으로 많아진다는 것은 분명히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 동물 공약을 면면히 뜯어보면 반가움은 금세 아쉬움으로 변한다. 우선 후보들이 내놓은 공약들을 살펴본 뒤 '아쉬움'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한다. 

[이재명] '개식용 금지', '채식 선택권 보장과 비건 문화 확산' 등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주요 공약은 ▲개식용 금지 ▲반려동물 표준수가제 도입 ▲채식 선택권 보장과 비건 문화 확산'(2021년 8월 20일 발표한 '동물복지 정책공약 발표문')이다.

모두 납득이 가는 정책이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 개식용 금지 공약은 더욱 실효성 있는 정책이 되려면 법안 마련과 함께 강력한 감시 체계와 관리가 필요하다. 또한 반려동물 표준수가제, 채식 선택권 공약이 '동물권' 공약이라고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물론 표준수가제로 인해 유기동물 감소, 채식 선택권으로 인한 육류 소비 감소가 동물복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반려동물 표준수가제는 진료비 부담을 줄인다는 점에서, 채식 선택권은 식사 권리를 보장한다는 점에서 동물 복지보다는 투표권을 지닌 사람의 복지에 무게를 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채식 선택권 보장을 위해 '임기 내 모든 공공기관 급식에서 채식 선택권을 보장하겠다'는 내용과 과도한 육식이 기후 위기에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비건 문화를 확산시키겠다는 공약은 고무적이다. 기존 채식 지향인뿐만 아니라 그간 채식을 시도하려고 했지만 인프라 부족으로 좌절했던 이들에게는 굉장한 기쁜 소식일 것이기 때문이다. 

채식 수요가 적기 때문에 실효성이 낮다는 반론도 있지만 꼭 수요로만 운영을 판단할 필요는 없다. 실제로 포르투갈은 채식 인구가 1%였지만 2017년 '공공기관 식당 채식 선택권 보장법'을 제정한 바 있다. 서비스 기업 CEUTA Group의 유럽 국가 소비자 트렌드 조사(2014-2019)에 따르면, 포르투갈은 2014년 대비 2018년 채식에 대한 관심도가 552% 증가했다. 인프라가 형성되면 채식 관심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는 자료다.

[윤석열] 토리 아빠, 진료비 표준화 약속했지만... 식용견은 따로 있다?
 

20대 대선 후보별 주요 동물 공약 ⓒ 이현우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동물 공약 주요 키워드는 '반려동물'이다. 윤 후보는 '토리 아빠'로도 잘 알려져 있다. 반려견 토리의 의중은 알 수 없으나 토리를 앞세워 반려동물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2021년에는 '케이-펫페어(K-PET FAIR)'를 찾아 반려동물의 '진료비 표준화'를 약속했고 지난 8일에는 공공부지에 반려동물 쉼터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천만 반려 인구를 뒤흔들 만한 회심의 카드를 꺼낸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지난 2021년 10월 31일 국민의힘 본경선 TV토론회에서 개식용에 대해 "개인적으로 반대하지만 식용견은 따로 있다"라는 답변을 내놓은 적이 있다. 이건 토리가 화들짝 놀랄만한 발언 아니겠는가? 

[심상정] 반려동물 전생애복지 보장... '살처분' 없는 동물복지도 키워드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의 주요 키워드도 윤 후보와 마찬가지로 '반려동물'이지만, 결이 다소 다르다. 지난 9일 심 후보는 '반려동물 전생애복지' 공약을 발표했다. 

심 후보의 동물 공약은 디테일이 살아있다. ▲반려동물 건강보험제 신설 ▲의료비 소득공제 ▲공공 장례시설 확충 ▲전문 번식업자 시스템 도입 및 대규모 번식장 단계적 폐쇄 ▲반려동물 이력제 도입 ▲행동교정 지원 ▲반려인 의무 교육화 ▲길고양이 급식소 확대 ▲반려동물 놀이터 추진 등이다. 여타 후보들과 비교했을 때 반려동물의 전 생애를 관통하고 있다 할 수 있을 정도로 디테일하고 세심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또 후보들 중 유일하게 살처분 없는 동물복지를 실현하겠다는 공약과 동물보호법을 동물복지법으로 개정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한 점은 이목을 끈다.

[안철수] 아직 구체적인 공약은 없지만 봉사활동부터?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지난 7일 남양주시 동물구호단체 '위액트'를 방문해 봉사활동을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20대 대선 동물 공약을 발표하지 않은 상태다. 추후 동물과 반려동물 양육 가구를 위한 정책을 발표하겠다고만 밝혔다. 

그는 <한겨레>가 보낸 정책공약 질의서에 대한 답변에서 "채식인의 비율이 증가하는 추세지만 결국 식습관은 국민 개개인의 선택권의 문제다"라며 채식에 관한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1월 3일 보도). 

[김재연] 동물권 헌법에 명시, '탈육식' 포함

김재연 진보당 대선 후보의 동물 공약의 주요 키워드는 '동물권'과 '채식권'이다. 김 후보는 이재명 후보가 공약한 '진료수가 표준화'를 포함하여 동물을 돈을 주고 구매할 수 있는 '펫숍'에 대한 폐지 공약을 내걸었다. 강아지-고양이 공장과 펫숍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공장에는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는 개와 고양이가 있고, 펫숍에서 선택받지 못한 동물이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다. 

김 후보가 내놓은 건 반려동물 공약만이 아니다. 그는 현재 공장식 축산업의 모라토리엄(폐기)을 선언하고 동물복지형 축산업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동물실험은 폐지하고 동물원은 생추어리(보호구역)로 전환할 것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언론을 비롯하여 대선 후보들이 '채식'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김재연 후보는 공약 내에 '탈육식'이라는 단어를 포함시켰다. 채식이 인간의 식생활 권리를 주장하는 데 방점이 찍힌 단어라면 탈육식은 동물 입장에서 말하는 것에 가깝다. 마지막으로 '동물권'을 헌법에 명시하고 반려동물, 야생동물, 유기동물 등 포괄적인 동물 정책을 수립할 것을 공약으로 발표했다. 

동물권, 넥스트 레벨로 진입할 수 있을까
 

도살장에 온 트럭에 돼지가 빽빽이 실려 있다. ⓒ 이현우

 
지금까지 치러진 역대 대선에서 '동물'을 향한 구애가 이 정도였던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다양한 공약들이 쏟아져 나왔다. 물론 이전 대선 때도 관련 공약이 없었던 건 아니다. 18대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는 대한민국 '정통' 진돗개를, 문재인 후보는 '유기동물'이라는 깃발을 들었다. 19대 대선 때는 여러 후보들이 반려동물 진료비, 유기동물, 동물복지, 동물원 등 다양한 주제의 동물 관련 공약들을 발표했다. 

그런데 20대 대선 후보들이 발표한 것들이나 과거 대선에서 발표된 공약들을 보고 있자면,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나와 함께 살았던 개와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에 관한 공약은 가득하다. 하지만 내가 만났고 알고 있는 '또 다른 동물'들의 이야기는 없다. 실험실 비글과 재개발 지역 고양이 이야기는 없다. 동물원에 갇혀 사는 원숭이와 사슴, 도살장에서 만났던 돼지, 소, 닭, 오리의 이야기는 없다. 겨울철 패딩 속 동물, 매일 피부에 바르는 화장품 실험에 희생되는 동물, 세 끼마다 마주하는 동물만큼 우리와 가까운 동물은 없다. 

물론 과거 대선 공약과 비교해보자면 20대 대선 후보들의 동물 공약은 '넥스트 레벨'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공약들이 구체화되었고 거론되는 동물의 종도 다양해졌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아직까지는 대다수의 동물 공약들이 동물을 위한 공약이라기보다 동물을 좋아하는 인간들을 위한 공약으로 보인다. 

반려동물을 위한 정책도 필요하지만 도살장 동물을 위한 정책, 실험실 동물을 위한 정책 또한 시급하다. 대선 후보들은 시장의 상인을 찾아가듯 연례행사처럼 동물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 동물의 현실을 똑똑히 보았으면 한다. 그곳에 동물을 위한 정책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물 공약이 진정한 '넥스트 레벨'로 가기 위해서는 목적지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 '동물'로 설정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대선 후보들의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10만인클럽후원하기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