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1.11 16:47최종 업데이트 22.01.11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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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민함일까, 아니면 뒤늦은 깨달음일까.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 이야기다. 2010년대 후반에 시작된 이 논의는 2022년 1월 현재 주의에서 경고로 격상, '설마'에서 '아차'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워싱턴 미 의회 난동 1주년인 지난 1월 6일, <뉴욕타임스>는 "지금, 매일 매일이 1월 6일이다"는 사설을 개인이 아닌 편집부 이름으로 발표했다. 기고문 기획에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숨 가쁜 속도로 민주주의의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도 현재 미국 상황을 두고 "발전된 민주주의가 부패할 가능성을 간과"했다고 솔직히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 시위대가 6일(현지시간) 워싱턴DC 연방의회 의사당 서쪽 벽을 기어오르고 있다. 상ㆍ하원은 이날 합동회의를 개최해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승리를 인증할 예정이었으나 시위대가 의사당에 난입하는 초유의 사태로 회의가 중단됐다. 2021.1.6 ⓒ 연합뉴스/AP

 
우려가 고조되는 중에 바이든 대통령은 1월 6일 의회 난동 1주년 연설을 위해 연단에 섰다. 어조는 직접적이고 강경했다. 1년 전 난동에 대한 책임을 트럼프의 "거짓말(web of lies)"로 명확히 하며, 의회 난동을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으로 정의하고 "(미국) 헌법이 가장 암울한 위기에 봉착"했음을 인정했다.  

헌법과 급이 안 맞는 한낱 "거짓말"이 어떻게 헌법을,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기로 몰고 갈 수 있을까. 논의의 중심에는 투표권을 둘러싸고 부딪치는 두 가지 대의, 공화당의 정의와 민주당의 공정이 있다.

"거짓말"

바이든 대통령이 언급한 거짓말이란,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0년 대선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별다른 근거 없이 제기한 부정 선거론를 가리킨다. 이 말에 동요한 트럼프 지지자들은 작년 1월 6일 "미국을 다시 한 번 위대하게", "자유 혹은 죽음: 나를 짓밟지 마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미 의사당에서 폭력 사태를 일으키고 권력 이양을 저지하고자 했다. 하지만,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의 승리를 공식화했고 페이스북은 트럼프의 계정 폐쇄를 결정했다.

사태가 마무리된 이후 미국은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트럼프의 부정 선거 주장은 완전히 연소되지 않았다. 2021년 12월 미국 매사추세츠 주립대(Amherst 캠퍼스) 여론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의 33%가 바이든 행정부가 합법적이지 않다고 믿고 있다. 공화당 지지자들의 경우, 71%가 바이든 정권이 비합법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텍사스 주 파에 있는 미완성 국경 지대를 방문해 연설하고 있다. 2021.6.30 ⓒ 연합뉴스

 
게다가 공화당 지지자 내부에서는 폭력 사용에 대한 용인이 약 30%에 달한다(2021년 9월 the Public Religion Research Institute 조사). 실제로 아이다호 주 공화당 공개 모임에서 한 사람은 "우리가 그들을(민주당) 죽일 때까지 그들이 얼마나 많은 선거를 훔치겠는가?"라며 "언제 총을 사용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뉴욕타임스> 2021년 11월 16일자)

제도에 대한 대중의 불신을 복구할 수 있는 것은 공화당이다. 미국 대선 선거 방식의 문제점은 이미 몇 번 노출됐다. 전체 득표수에서는 앞섰지만 선거인단 확보에서 밀렸던 2000년의 앨 고어와 2016년 힐러리 클린턴이 그 예이다. 하지만 이들은 승복하고 물러났다. 공화당도 마찬가지다. 경쟁자인 버락 오바마의 인종 문제를 극대화시켜 정치적 자산으로 이용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존 매케인은 흑인도 좋은 대통령이 될 수 있다며 대중의 불안감을 가라앉히고 대선 패배 이후 오바마 대통령의 성공을 빌었다. 


하지만 현재 공화당에는 존 매케인 같은 존재가 없다. 부정 선거론을 띄운 트럼프 대통령에 경악, 선을 넘었다며 패배를 인정하라고 비공개로 조언한 공화당 인사가 작년만 해도 꽤 있었다. 하지만, 1년 새 트럼프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사라졌다. 1월 6일 의회 난동 1주년 행사에 참가한 주요 공화당 인사는 딕 체니와 엘리자베스 체니 부녀정도다.

공화당의 정의

정치인은 대중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존재지만 대중을 설득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 현재 공화당은 설득이라는 까다로운 역할보다 영합이라는 쉬운 역할을 택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 등장 이후, 지난 1년간 공화당이 집권하는 주는 트럼프가 띄운 부정 선거를 명분으로 삼아 엄격한 선거 방식을 도입 중이다. 부재자 투표함을 줄이고 우편 투표의 조건을 강화하고 선거 과정에서 정당 관계 인사의 영향력을 늘렸다.
 

미 의사당 난입한 트럼프 지지자들 ⓒ 연합뉴스

 
가장 논쟁이 되는 것은 신분증 강화이다. 만 18세가 되면 자동으로 발급되는 주민 등록증과 비슷한 제도가 미국은 없다. 따라서 선거 등록표를 가지고 투표소에 가면 주에 따라 신분증이 아예 필요 없거나 보충 서류, 즉 공과금 고지서나 은행 등 공공 기관 문서 등으로 신분을 증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공화당은 부정 선거 차단을 목표로 사진이 있는 신분증, 즉 유효 여권이나 운전 면허증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바꾸고 있다.

문제는 미국 유권자 중 유효 여권과 운전 면허증, 둘 다 없는 사람이 수백만으로 추정될 만큼 많다는 데 있다. 그리고 이들은 대부분 빈민층, 장애인, 노인들, 소수 인종이다. 이 문제의 궁극적 해소 방안은 국가가 비용을 부담하는 ID 발급이지만, '통제'라는 이유로 반대 여론이 높다. 민주당 역시 코로나 백신 패스 관철도 어려운 상황에서 국가 ID 발급은 현실적으로 너무 앞서간 생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ID 강화안이 실시되는 주에서는 투표권이 일정 정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의 공정

지난 대선의 잡음을 없애기 위해 민주당은 연방 차원의 선거 개혁안을 내놓았다. 법안의 골자는 두 가지로, 하나는 연방 차원의 선거법 관리다. 현재 선거법은 각 주의 권한인데, 앞으로 선거 관련법 개정이 있을 경우 연방 정부의 허가를 받는 내용을 담고 있다. 두 번째는 '투표권 행사를 보다 쉽게' 하기다. 여기에는 선거일을 공휴일로 하기, 사전 투표 쉽게 하기, 우편 투표를 모든 유권자에게 허락하기 등이 포함되어 있다.

2021년 1년 동안 공화당은 민주당의 선거 개혁 법안을 필리버스터(filibuster)로 막아 왔다. 이유는 연방 정부가 주의 자치권을 지나치게 침범한다는 것이다. 선거 개혁 법안이 백악관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필리버스터로 민주당안을 막는 동안 공화당은 19개 주에서 투표를 엄격하게 하는 방향으로 선거법을 개정했다.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들이 11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공식 발의한 가운데 워싱턴DC 연방의회 의사당에 '의회 난입 폭동'으로 순직한 경찰관을 추모하는 조기가 내걸려 있다. 2021.1.11 ⓒ 워싱턴 로이터=연합뉴스


현재 법률상 민주당이 필리버스터를 중지시키려면 상원 100명중 60명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민주당과 공화당이 상원을 반반 점유한 상태에서 60명 확보는 불가능하다. 결국, 민주당은 필리버스터에 예외 조항을 두는 안을 상정하려는 초강수를 띄웠다. 민주당 상원 대표 척 슈머(찰스 E. 슈머)는 미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상징성이 강한 1월 17일 마틴 루터 킹 데이 직전에 발의하겠다고 했다.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 3B) 사회 개혁안과 더불어 선거법 개혁은 바이든의 핵심 의제이다.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절실하다. 법안 통과가 불투명해지고 그 실망이 중간 선거 패배로 이어질 경우 바이든 행정부는 사실상 마비될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해리스 부통령과 11일 조지아 애틀랜타로 향할 예정이다. 지난 대선에서 조지아는 1992년 대선 이후 30여년 만에 민주당을 택했다. 지금도 공화당 정치인들이 부정 선거론을 띄우는 곳이다. 상징적 의미를 내포한 조지아에서 바이든은 다시 한 번 선거법 개혁을 호소할 예정이다. 

민주주의의 취약성

민주-공화당이 내세우고 있는 공정과 정의는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대의다. 동시에 상대방을 비판하는 근거, 투표권의 제한과 자치권의 침해 역시 민주주의적이다. 현 상황에서 어느 쪽이 발톱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을까. 발톱을 구별해낼 수 있는 혜안의 유무는 결국 시민 사회다. 그런 의미에서 1월 6일 부대통령 카멀라 해리스가 지적한 민주주의의 취약성, "모두가 주의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지키고자 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흔들리고 무너진다"는 지적은 의미심장하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2021년 12월 9일 목요일 워싱턴D.C. 사우스법원 대강당에서 열린 '민주주의를 위한 화상정상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그러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숨 가쁜 속도로 민주주의의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고 말할 정도로 미국의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했다. ⓒ 연합뉴스=DPA

 
민주주의의 취약성, 이 말이 추상적이라면 1930년대 독일을 보면 된다. 히틀러의 나치당은 철저히 민주주의 제도에서 성장했다. 1928년 불과 12석이었지만 이들은 대공황 이후 처음 실시된 1930년 선거에서 107석을 얻으며 제2당으로 급속히 성장했고 1932년 선거에서 196석의 제1당이 되었다.

당시 총 의석은 608석으로, 나치는 과반에 한참 미달이었다. 때문에 121석의 제2당인 사회 민주당, 100석을 차지한 제3당 독일 공산당이 나머지 정당들과 연합하면 견제가 가능했다. 또한 총리 임명권이 당시 독일 대통령 파울 폰 힌덴부르크(Paul Von Hindenburg)에 있었기 때문에 히틀러가 정권을 잡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독일 민주주의를 무너뜨린 것은 단 한 번의 판단 착오였다. 히틀러에 불안감을 가졌지만 힌덴부르크 대통령은 부총리와 정부 내 반-나치 인사들이 충분히 히틀러를 견제할 수 있다는 주위 의견에 동의, 1933년 1월 30일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했다.

'설마'가 '아차'로 바뀌기까지는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았다. 히틀러는 1933년 2월 발생한 독일 의회 방화 사건의 배후로 독일 공산당을 지목, 노조와 공산당을 폭력적으로 공격하고 그 대상을 사회 민주당으로 확산시켰다. 결국 그 해 11월 야당 없이 나치당만으로 다시 선거, 히틀러는 의회를 100% 차지했다. 독일 민주주의가 완전히 붕괴될 때까지 소요된 시간은 고작 10개월, 그 대가로 독일은 1945년까지 광기의 시대를 겪었다.  

<독재에 대해>(2017)의 저자 티머시 스나이더(Timothy Snyder)의 경고, 21세기 인류가 1930년대 독일보다 현명할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라는 지적이 어느 때보다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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