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2.29 06:05최종 업데이트 21.12.29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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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기자말]

빠른 속도로 이뤄지는 한국의 인구 변화는 기존의 보편적 생애 규범을 벗어난 영 케어러가 더 많이 생길 수 있는 조건이 된다. ⓒ 게티이미지뱅크

 
아픈 가족을 돌보는 사람을 떠올려보자. 어떤 모습이 제일 먼저 떠오를까? 대개는 중장년 여성이 노인을 돌보는 모습일 것이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이상적인 돌봄자'로 중장년 여성을 상정해왔기 때문이다. 가족 돌봄은 그렇게 성별 분업에 의해 사적 영역에 가둬지며 사회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았다. 

그런데 가정 내에서 이상적인 돌봄자가 부재하다면 어떻게 될까? 어머니가 일을 하거나, 아프거나, 이혼 후 함께 살지 않는다면 돌봄은 누가 맡게 될까? 청소년이나 청년인 자녀가 그 역할을 맡게 될 수 있다. 이제까지 이들은 사회적으로 효자, 효녀 등으로 불려왔다. 사회는 이들이 짊어진 짐을 함께 나눠지기보다 가족의 당연한 책임으로 여겨왔다. 


최근 들어 이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논의되며 영 케어러(Young Carer)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영 케어러는 만성적인 질병이나 장애, 정신적인 문제나 알코올, 약물 의존 등을 가진 가족을 돌보는 청소년 또는 청년을 가리킨다.

영 케어러는 학업이나 진로 이행을 수행하면서 가족 돌봄을 하고, 더 나아가 생계까지 책임져야 할 때도 있다. 아직 경제적 자립이 요원하지만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되는 것이다. 영 케어러가 담당하는 가정 내 돌봄은 아픈 가족의 신체적인 돌봄뿐 아니라 정서적 돌봄, 집안 일, 어린 형제 돌봄 등 누군가 아파서 생기는 가정 내 역할 공백을 메우기 위한 일들까지 포괄한다. 

누군가를 보살피기 위해 학업을 포기하거나 진로 이행을 뒤로 미룰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미래의 격차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일본에서는 아픈 가족을 돌보느라 숙제나 학습 부진에 시달리던 이들이 '등교 거부'를 하는 문제도 벌어졌다.

이런 이야기가 예외적인 청소년과 청년의 이야기로 보일 수도 있다.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규정하는 보편적 생애 규범에 청소년과 청년이 누군가 돌볼 수 있다는 전제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청소년기는 가정에서 지원을 받는 시기이고, 청년기는 원가정에서 독립을 하는 시기였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이뤄지는 한국의 인구 변화는 기존의 보편적 생애 규범을 벗어난 영 케어러가 더 많이 생길 수 있는 조건이 된다. 점점 혼인 연령이 늦어지는 만혼화 현상 때문에 그 자녀들은 돌봄 상황을 일찍 마주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고령화로 인해 돌봄과 부양의 부담이 가중되고, 저출생 때문에 돌봄과 부양을 함께 나눠질 수 있는 형제가 줄어든다. 한부모 가정의 증가로 부모가 아플 때 돌볼 사람이 아이밖에 없는 상황이 늘어난다.

영 케어러 실태조사조차 없다
 

자신이 벌 수 있는 수입보다 간병인 비용이 더 크니 학업, 일, 진로 이행을 뒷전으로 미뤄두고 직접 간병을 하는 영 케어러가 적지 않다. ⓒ 오마이뉴스 고정미

 
최근 아픈 아버지를 굶겨 죽음에 이르게 한 22세 청년 강도영(가명)의 이야기가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청년이 돌봄을 맡는 문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 하지만 지금까지 청소년, 청년의 가족 돌봄에 대한 통계는 거의 없다. 보건복지부가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만 25세 미만 기초생활 수급자를 집계해 파악한 3만~4만 명 정도가 전부다. 기초생활 수급자가 아닌 이들까지 포함한다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보건복지부는 내년 실태조사를 약속하며, 올해는 영 케어러에 대한 기초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실태가 나오지 않았고, 사회적 지원에 대한 논의도 미미한 실정이다. 이 글은 어쩔 수 없이 경험적 근거에 기댈 수밖에 없다. 나는 20살 때부터 아픈 아버지를 돌본 당사자이고, 아픈 가족을 돌보는 당사자들의 자조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청소년기, 청년기에 아픈 가족을 돌보는 이들과 나눈 이야기를 바탕으로 영 케어러 문제의 쟁점을 짚어보고, 대안을 탐색해보고자 한다. 

그에 앞서 외국의 영 케어러에 대한 대응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보자. 이들 국가는 영 케어러에 대한 대응이 활발하다는 점에서 참조해볼 만하다.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올해 영 케어러에 대한 전국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NHK 보도(2021. 6. 1.)에 따르면 일본 총무성, 후생노동성, 문부과학성이 공동으로 조사한 '전국 중고등학생 영 케어러 실태조사' 결과 '돌보는 가족이 있다'고 답한 청소년 비율이 중학생은 17명당 1명, 고등학생은 24명당 1명으로 집계됐다.

이들은 하루 평균 4시간 이상 가사노동을 수행한다. 7시간인 학생도 10%에 달했다. 고등학생 중 40.8%는 '공부나 숙제를 할 시간이 없다'라고 대답했고, 12.2%는 '집안 사정상 진로를 변경했다'고 밝혔다. 가족 돌봄이 학습 부진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아시아 투데이, 2021. 5. 17). 일본 정부는 기존의 복지 정책만으로 이들이 겪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파악하고 영 케어러 맞춤 정책을 내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김령희 국회도서관 해외자료조사관에 따르면 영국과 호주는 이미 각각 영 케어러를 만 18세 이하와 만 25세 이하로 규정하며 사회적 지원을 하고 있다. 영국의 영 케어러는 2011년 기준 49만1천 명에 이른다. 영국은 이들에게 용처 제한이 없는 보조금을 연간 약 48만 원 정도 지급한다. 영 케어러들이 또래가 누리는 기회를 박탈당한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호주는 올해 23만 5500명의 영 케어러들이 돌봄 상황에서도 학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연간 약 255만 원 정도의 학비보조금을 지급한다.

준비 없이 시작된 돌봄
 

영 케어러가 지고 있는 돌봄의 무게를 덜어내는 것을 넘어 미뤘던 학업이나 일, 진로 이행 등 생애 과업을 이행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 오마이뉴스 고정미

 
돌봄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누가 지병이 악화하거나 쓰러질지 예고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족 보호자'로 병원에 불려가게 된다. 

영 케어러는 대부분 준비 없이 마주한 돌봄 상황 앞에서 혼란을 느낀다. 누군가 아프면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교육을 받거나 정보를 제공받은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누군가 아플 일이 없는 것처럼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함께 의논할 어른이나 형제가 없다면 치료 방향이나 수술 동의 같은 중대한 사안을 혼자서 결정해야 한다. 누군가 아픈 상황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지만, 책임을 지고 보호자 역할을 해야 하는 압박감도 상당하다. 거기에 신청할 수 있는 복지 정보도 잘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장 빠르게 신청해볼 수 있는 긴급복지 의료지원이나 재난적 의료비 지원도 몰라서 신청 못 했다는 경우가 많다.

치료가 길어지면 어쩔 수 없이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거나, 풀타임 근무를 하는 직장을 그만 두기도 한다. 특히 간호간병 통합서비스가 시행되지 않는 병원에서 일반병실로 옮겼을 때나, 환자가 중증일 때는 간병문제를 따로 해결해야 한다. 간병인 고용 비용은 하루 10만 원 안팎에 이르고, 최근에는 13만 5천 원까지도 올라갔다. 자신이 벌 수 있는 수입보다 간병인 비용이 더 크니 학업, 일, 진로 이행을 뒷전으로 미뤄두고 직접 간병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경향신문, 2021. 11. 25).

돈 없으면 복지도 없는 아이러니
 

영 케어러는 자신이 겪는 일을 문제로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힘든 와중에도 도움을 청하거나 복지를 신청하기보다 혼자 묵묵히 감내하려는 이들이 많다. ⓒ 셔터스톡

 
긴급 치료가 끝난 이후에는 정기적인 치료와 장기적인 돌봄이 필요한 단계에 진입하기도 한다. 정기적으로 병원에 동행하거나 돌발상황에 대비해 대기하기도 한다. 돌봄과 생계를 병행하려니 학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풀타임 근무도 할 수 없다. 현재 내가 진행하는 영 케어러 자조 모임에 참여하는 이들 모두가 아르바이트, 파트타임, 프리랜서 등 불안정 노동을 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속되는 돌봄 과정에서 영 케어러들은 기초생활 수급이나 노인 장기요양보험 요양등급 등을 신청해본다. 무엇보다 아픈 이가 부모라면 '아직' 65세 미만이라는 점에서 몇 가지 절차를 더 거쳐야 한다.

기초생활 수급을 신청하려면 '근로능력 평가'를 통해 근로 능력이 없다는 진단을 받아야 하고, 노인 장기요양보험 요양등급은 노인성 질환에 대한 진단을 받아야 한다. 당장에 돈이 없어서 찾아간 공공기관이지만 구체적인 진단명을 받기 위해 여러 검사를 진행해야 한다. 복지 신청을 하려고 해도 돈이 필요해진다. 간병을 하다가 아버지를 굶겨 죽음에 이르게 한 강도영 또한 2심 공판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주민센터에) 전화로 한 번 물어봤습니다. 도움 받으려면 장애진단서 있어야 한다고 해서, 병원에 문의했더니... 장애진단서 받을 때도 돈이 든다는 걸 알았습니다. 돈이 없어서... 그것도 포기했습니다. (셜록, 2021. 12. 1)

노인 장기요양보험의 요양등급을 받는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집에 요양보호사가 방문하는 방문요양은 신체적 의존도가 가장 높은 요양등급 1, 2등급일 경우 하루 최대 4시간 이용이 가능하다. 서비스 일수는 1등급 27일, 2등급 24일로 서비스의 공백이 생긴다. 3, 4등급은 하루 최대 3시간에 각각 월 최대 26.9일, 24.7일이며, 5등급은 2~3시간, 월 최대 21.2일이다. 그 아래 등급인 인지지원 등급은 주야간보호센터만 이용 가능하다. 

주야간보호센터 이용 또한 하루 8시간, 월 15회 가능하기에 여전히 서비스 공백이 존재한다.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의 목적이 "가족의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데 있는 만큼, 이는 서비스 외 나머지 시간을 가족이 담당할 것이라는 통념에 바탕을 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돌봄 서비스 양으로는 가족 돌봄자나 영 케어러가 아무런 걱정 없이 8시간 근무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출·퇴근하거나 여가를 즐길 시간도 허락되지 않는다.

정부는 2019년부터 '지역사회 통합돌봄' 선도사업을 시작했지만, 집에서 받을 수 있는 돌봄 서비스의 양이 적기에 돌봄자 입장에서는 시설 입소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가족과 함께 사는 노인이 혼자 사는 노인보다 요양시설에 가는 비율이 최대 32배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한국일보 2018. 1. 16). 이는 가족이 돌봄 당사자의 의사를 배제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한편, 돌봄 서비스의 양 부족 때문에 가족들이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지금 바로 논의해야 하는 대안

영 케어러가 처한 이런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논의해야 할까.

첫째는 복지 정책의 접근성 문제다. 영 케어러는 위기 상황에서 협력할 가족이 없고, 또래 관계 안에서도 정보를 얻을 수 없다. 앞으로 가족 규모가 축소되면 영 케어러 뿐 아니라 더 많은 이들이 혼자서 돌봄 위기를 겪어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돌봄으로 인한 위기 상황에서 구체적인 논의를 할 수 있는 상시적인 상담 창구가 필요하다. 상담 창구는 다른 복지 정책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먼저 논의해야 할 부분이다.

현재 보건복지부는 보건복지 상담센터 129를 통해 보건복지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상담사들의 열악한 처우와 과도한 업무량으로 단시간에 단순 정보를 제공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아예 가정폭력이나 학교폭력 신고 및 상담전화와 같은 형태로 돌봄 위기 맞춤형 핫라인도 고민해볼 수 있다. 이런 핫라인을 응급실, 중환자실, 병원 로비, 학교 게시판 등에 홍보한다면 가족 돌봄자 및 영 케어러에게 효과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영 케어러가 가족 보호자로 병원에 불려간 시점부터 상담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병원마다 의료사회복지사를 의무적으로 배치하는 방안도 모색해볼 수 있다. 학교는 매일매일 학생의 상태를 체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영 케어러를 찾아내 상담을 논의하는 데 빼놓아선 안 되는 곳이다. 

영 케어러 실태조사를 실시한 일본은 비슷한 문제의식을 정책에 담았다. 영 케어러 조기 파악을 위해 교육·의료·돌봄·복지 관계자에게 교육을 실시하는 정책을 계획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학교에 준비물을 가져오지 못하거나, 숙제를 하지 않는 등의 문제 행동이 있으면 가족을 돌보는 상황일 수 있으니 확인을 하는 식이다.

일본 정부는 영 케어러 가운데 60% 이상이 상담한 적이 없다는 실태조사 결과를 관련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2022년부터 대면 상담뿐 아니라 온라인 상담도 진행할 예정이다. 핵심은 주민센터뿐 아니라, 곳곳에 다양한 상담 채널이 있어야 복지를 신청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를 보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더 이상 개인에게 닥친 위기 상황과 공공의 안전망 간의 연결을 공백으로 두어선 안 된다.

영 케어러는 스스로 자신이 겪는 일을 문제로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힘든 와중에도 도움을 청하거나 복지를 신청하기보다 혼자 묵묵히 감내하려는 이들이 많다. 또래 중 비슷한 경험을 가진 이들이 드물기에 자신이 겪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기가 어렵다. 

스스로 자신이 문제 상황에 놓여 있음을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복지 신청을 할 수 있도록 이들을 사회적으로 호명하는 캠페인이 필요하다. 구태여 영 케어러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가족 돌봄 청년', '부양 청년' 등으로 불러 스스로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알아챌 수 있도록 사회가 이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두 번째 문제는 돌봄 서비스 양이다. 현재 지역사회 통합돌봄으로 돌봄 서비스가 시설이나 병원을 벗어나 지역사회로 재편되고 있다. 하지만 가족 돌봄자 입장에서는 아픈 가족을 집에서 돌보며 일, 더 나아가 자신의 일상을 병행하기에는 실질적인 시간이 보장되지 않는다.

2019년 장기요양 실태조사에 따르면, 집에서 돌보는 이들이 가장 불만족스러운 것은 '불충분한 이용시간'(47.4%)이고, 그다음은 '필요한 시간에 이용 어려움'(18.7%)이다. 가족 돌봄자가 일, 일상, 돌봄을 병행할 수 있도록 노인 장기요양보험의 방문요양 시간과 주간보호센터의 이용 시간을 늘려야 한다. 무엇보다 돌봄 서비스 외 시간을 담당하는 가족이 있다는 전제가 아니라, 한 개인에게 충분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적절한 서비스 시간에 대해서는 논의를 하더라도 월 최대 서비스 일수는 하루도 빠짐없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픈 가족에게 돌봄 서비스를 충분하게 보장한다는 것은 영 케어러가 학업이나 일, 진로 이행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돌봄 상황에 함께 고민하고 협력해줄 '케어 매니저' 도입도 적극적으로 고려해봐야 한다. 

병원비·간병비 해결 없이 변화 없다 

세 번째는 경제적 부담이 큰 병원비와 간병비 문제다. 영 케어러들이 학업이나 일, 진로 이행을 포기하게 되는 요인으로 병원비와 간병비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병원비 걱정 없는 든든한 나라'를 만들겠다며 2022년까지 건강보험 보장률 70% 달성을 공약했지만, 간병비 부담은 여전하다. 

현재 취약계층 의료보장을 위해 기초생활보장 의료급여, 차상위 본인부담 경감, 긴급의료지원, 재난적 의료비 지원, 본인부담 상한제 등이 시행 중이지만,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과 간병비에는 이들 정책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다만 경기도만이 긴급복지 의료비 지원제도에 간병비를 포함하고 있다. 현재 보호자 없는 병동을 표방했던 간호간병 통합서비스가 시행되고 있지만, 이마저도 모든 병원에서 시행되지 않을 뿐더러, 경중증 환자 중심으로 서비스가 제공되기에 중증 환자는 이용할 수 없다.

최근 대선 후보들은 강도영 사건을 두고 병원비와 간병비를 줄이는 공약을 내놓고 있다.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실시 의료기관을 확대하고 서비스 대상에 중증 환자를 포함시키는 방안 ▲현재 3천만 원인 재난적 의료비 지원을 5천만 원까지 증액하고 간병비를 포함시키는 방안 ▲일정 금액 이상 병원비를 쓰면 다음 해에 되돌려주는 현행 본인부담 상한제를 바꿔 퇴원 전에 정산하는 방안 ▲본인부담 상한제를 100만 원으로 제한하고 비급여와 간병비를 포함하는 방안 ▲병원비를 국가가 대납해주고 장기 분할상환하도록 하는 방안 등이 공약으로 제시됐다. 

네 번째는 청년기 생애 과업에 대한 문제다. 얼마 전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는 '영 케어러 케어링'이라는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19세 이상에서 39세 이하의 서울에 사는 청년을 대상으로 위기지원금을 약 130만 원까지 지급한다. 이는 생계비, 의료비, 교육비, 심리정서 지원비, 문화 지원비 등으로 사용 가능하다. 생활 안정뿐 아니라 진로 이행, 여가 등 다양한 용처의 현금 지원이 어떤 효과를 낼지 향후 지켜볼 만하다. 내년에는 현금 지원뿐 아니라 더 구체적인 프로그램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영 케어러가 지고 있는 돌봄의 무게를 덜어내는 것을 넘어 미뤘던 생애 과업을 이행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영 케어러가 학업이나 일, 진로 이행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하는 돌봄에 대해 시야를 넓히고 스스로 긍정적인 가치 평가를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지자체 청년센터 등에서 영 케어러 모임을 운영하며 돌봄에 대해 말하고 듣는 기회를 만들어볼 수 있겠다. 그 외에도 심리정서 지원, 진로탐색 지원, 취업 지원 등을 통해 돌봄으로 인해 떨어진 의욕을 끌어올리고, 다시 무언가 해볼 수 있도록 독려하고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이런 지원책들은 가족이기에 당연하게 돌봄을 해야 한다는 전제가 아니라, 돌봄이 시민의 역할임을 인정하는 전제로 구성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19를 겪으며 돌봄의 사회화와 돌봄의 재가족화를 오가고 있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관점은 가족과 사회라는 이분법이 아니라, 시민과 사회가 협력해서 돌봄 안전망을 어떻게 구축하느냐이다. 

돌봄자에 대한 지원이 가족에게 돌봄을 떠맡기는 양상이 되지 않으려면 '돌봄을 선택할 자유' 또한 함께 고민해야 한다. 돌봄을 선택할 자유를 위한 충분한 돌봄 서비스와 돌봄자에 대한 지원을 함께 논의할 때, 우리는 돌봄을 짐이나 불행으로 느끼지 않을 수 있다. 돌봄을 삶의 예외가 아니라 삶 그 자체로 받아들이며 살아갈 수 있다. 영 케어러에 대한 논의가 우리 모두가 '돌봄 시민'이라는 논의까지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조기현은 책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썼고, 영화 <1포 10kg 100개의 생애>를 찍었습니다. 무언가 읽고 보고, 누군가 돌보는 시간이 삶의 동력이 됐습니다. 아픈 가족을 돌보는 청(소)년 모임 'N인분'을 운영하며 세대와 성별을 넘어 모두가 잘 돌보고 돌봄 받는 시민 될 수 있는 조건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조기현 작가 ⓒ 조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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