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2.15 06:19최종 업데이트 21.12.15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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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비틀스 : 겟 백' 포스터 ⓒ Walt Disney Studios

 
옛날에 좋아했던 마음, 묵혀둔 팬심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고 있다. 분석력이 돋보이는 정치 칼럼니스트 조너선 프리드랜드(Jonathan Freedland)도 이번만큼은 평정심을 잃은 듯하다. 1969년 비틀스 옥상 콘서트 모습을 구석구석 살피고 또 살피다 운동화를 신고 있는 존 레넌과 조지 해리슨에게 파격적이란 의미를 부여하고, 옥상 콘서트 프로젝트가 "리얼리티 TV의 초창기 형태"라며 현재에 내놔도 "급진적"이라 평할 정도다.     

이게 다 지난 11월 말 <반지의 제왕> 피터 잭슨 감독이 공개한 <비틀스: 돌아가(The Beatles: Get Back)> 다큐멘터리 때문이다. 잭슨 감독 또한 비틀스의 팬이다. 비틀스가 1968년에 세운 애플 회사(Apple Corps)가 회사 보관함에서 반세기 동안 묵혀 있던 56시간의 필름을 보여주며 다큐멘터리 제작을 제안했을 때 잭슨 감독은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고 당시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BBC는 피터 잭슨 감독과 비틀스의 악연(?)을 소개했다. 1968년 비틀스는 존 로널드 톨킨(J.R.R. Tolkien)에게 <반지의 제왕>을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의견을 전했다. 하지만 음악 그룹이 하기에는 부적절하다고 판단한 톨킨은 이를 거절했고 비틀스가 놓친 기회는 30년 후 피터 잭슨 감독에게 돌아갔다. BBC는 "만약 비틀스가 반지의 제왕에 프로도(Frodo)와 그의 친구들로 출연했으면 어땠을까"라는 다른 가능성을 상상했다.
 

'비틀스 : 겟 백' 공식 예고편의 한 장면. '반지의 제왕' 피터 잭슨 감독에 의해 3부작으로 제작되었다. ⓒ Walt Disney Studios

 
다큐멘터리 길이는 무려 8시간에 달한다. 볼거리도 많다. 천재의 음악 세계가 궁금하다면, 폴 매카트니가 몇 분의 흥얼거림으로 곡을 '뚝딱'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리버풀 거리를 헤맸던 영혼의 파트너, 폴 매카트니와 존 레넌이 마주보며 기타로 한 음 한 음 다듬는 협업은 음악을 전혀 모르는 내게도 경이롭고 아름답다. 굳이 비틀스 해체에 관심이 있다면 조지 해리슨 탈퇴 사건이나 존 레넌 옆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 그의 연인 오노 요코를 주목할 수도 있다.

1960년대 말 런던 풍경도 볼 만하다. 아침에는 커피 대신 차와 담백한 토스트를 먹고, 피곤할 때는 맥주 한 잔을 마시고, 담배는 기타 끝에 꽂힌 채 스스로 연기를 내며 앨범에 참여한다. 빨간 재킷의 링고 스타가 눈에 띄는 옥상 콘서트도 즐겁다. 건너편 옥상까지 올라가 콘서트를 보는 팬들의 한 편에서는 거리의 평화를 걱정하는 런던 경찰이 체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앨범 <렛 잇 비(Let it be)>(1970)의 마지막 곡 '겟 백(Get back)' 부분을 몇 번 돌려 보았다. 1969년 1월 7일 아침, 폴 매카트니는 "존 레넌이 또 늦네"라고 말하며 베이스 기타를 가지고 의자에 앉았다. "우우우…" 흥얼거리는 매카트니를 앞에 두고 조지 해리슨은 하품을 하고 링고 스타는 심드렁하다. 그러더니 곧 리듬이 생기고 링고 스타의 드럼과 조지 해리슨의 기타가 얹히더니 폴 매카트니 입에서 "get back"이란 말이 튀어 나왔다. 스스로에 대한 외침이기도 했고 영국 사회를 향한 일침이기도 했다.
 

<비틀스: 돌아가(The Beatles: Get Back)>의 한 장면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겟 백'의 첫 번째 의미 "되찾기"

우리는 1970년 비틀스가 해체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가 시작되는 1969년 1월 2일, 악기만 덜렁 갖다 놓은 동굴같이 휑한 트위크넘(Twickenham) 스튜디오에 비틀스가 모인 이유는 다시 한 번 동기 부여를 하기 위해서였다.


존 레넌은 "소통"의 필요성을 느꼈고 매카트니는 "(비틀스가) 수줍어졌다"며 초기의 "열정"을 되찾고 싶어 했다. 이들은 1966년에 그만 둔 라이브 공연을 다시 시작하자고 결의했다.

비틀스는 미국 대중 음악계가 "영국의 침입"으로 불렀던 시대, 즉  롤링 스톤스(Rolling Stones),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후(the Who), 킨크스(the Kinks),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등으로 이어지는 1960-70년대 영국 대중음악의 전성기를 열었다.

1920-30년대 미국에서 유행한 흑인 음악 스키플(skiffle)에 심취했던 1956년 16살의 존 레넌은 학교 친구들과 '채석장 남자들(Quarrymen)'을 결성했다. 다음 해 리버풀의 한 행사 공연에서 만난 15살의 폴 매카트니가 합류했다. 매카트니는 버스에서 만나 알고 지내던 같은 학교 학생 조지 해리슨을 영입한다. 1960년에 팀명을 비틀스로 바꾼 후, 마지막으로 링고 스타가 합류했다. 리버풀 캐번(Cavern) 클럽 시절인 1961년, 시내 음반 가게 사장인 브라이언 엡스타인(Brian Epstein)이 이들의 재능을 알아보고 매니저로 합류, 이후 음악적 성공뿐 아니라 음반 출판 형식까지 바꿔버렸다.

1967년 8월 엡스타인의 갑작스런 사망 이후 균열이 생긴 비틀스는 집중력을 되찾아야 했다. 그 일환으로 1969년 1월 2일부터 3주 동안 앨범에 들어갈 14개 곡을 만들고 1월 19-20일 라이브 공연을 계획한다. 다큐멘터리는 1월의 작업 과정 일체를 보여준다. 비틀스의 마지막 두 앨범 <애비 로드(Abbey Road)> 와 <렛 잇 비(Let it be)>에 실릴 곡들이 쓰였지만, 3주 안에 앨범과 공연은 무리였다. 앨범은 지연되고 공연은 1월 30일, 런던 새빌 로(Savile Row) 가의 옥상에서 이루어진다. 열정을 되찾고자 했던 공연이었으나 결국 마지막 공연이 되었다. 그러나 이 또한 혁신적이다.
 

'비틀스 : 겟 백' 공식 예고편의 한 장면. ⓒ Walt Disney Studios

 
'겟 백'의 두 번째 의미 "돌아가"

앨범 <렛 잇 비> 속의 곡 "겟 백"에는 정치적 의미가 없다. 미국 애리조나를 떠나 캘리포니아로 떠난 가상 인물 조조(Jojo)가 노래 속 주인공으로, 비틀스는 원래 있던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권한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는 '겟 백: 안 돼, 파키스탄인' 초기 버전, 즉 파키스탄인이 영국의 모든 직업을 차지하게 놔둬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은 버전을 보여준다. 비틀스가 정치 문제를 건드리는 장면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당한 1968년의 인종 및 이민 문제는 미국뿐 아니라 영국에서도 뜨거운 사회 문제였다. 미국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문제가 제국주의를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제국의 끝에는 인구 이동이 필수적이다. 2차대전에서 패전한 일본 제국주의의 경우, 만주와 일본에 있던 한국인과 만주와 조선에 있던 일본인의 귀국으로 수백만 명의 이동이 단기간에 이루어졌다. 하지만, 승전국 영국과 프랑스의 제국주의는 2차 대전 직후 인도의 독립을 시작으로  60년대 아프리카 독립까지 서서히 이루어짐에 따라 인구 이동 역시 1960년대까지 지속되었다.

2차 대전 이후 영국은 영연방국 사람들에게 비자 없이 영국에서 거주할 권한을 인정했다. 이에 따라 아일랜드, 파키스탄, 캐리비언 국가들, 케냐, 홍콩 등에서 이민자가 유입되었고 외부인 유입에 대한 불안감이 서서히 고조되는 중에 60년대 초반 아프리카 식민지들이 독립했다. 문제는 아프리카 구식민지 내 인도인들이었다. 20세기 전반기 아프리카 식민지 개발을 위해 영국이 인도인의 대규모 이주 정책을 추진했지만, 인도인들은 케냐 및 우간다 사회와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 독립한 우간다는 인도인들에게 90일내로 나가라는 추방령을 내릴 정도였다. 쫓겨나는 인도인들에게 영국은 인도와 영국, 두 가지 선택지를 주었고, 결과적으로 이는 인도인의 급격한 유입을 초래했다.

1968년 4월 보수당 하원의원 이녹 파월(Enoch Powell)의 '피의 강' 연설은 이민자에 대한 공포감을 확산시켰다. 그는 "불길한 징조로 가득 차 있다"며 15-20년 후면 흑인이 백인에게 "채찍을 휘두르는" 날이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임대주택이 파키스탄인들로 가득 찼다는 언론 보도가 타블로이드 황색 언론 중심으로 쏟아지고 반이민 시위가 전개되었다.

'겟 백: 안 돼, 파키스탄인' 버전에서 폴 매카트니는 이녹 파월의 감정과 논리를 그대로 따라간다. 이 노래로만 보면 정치 풍자인지 그가 인종주의자인지 헷갈릴 소지가 다분하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는 며칠 후 폴 매카트니와 존 레넌이 만든 비공개곡 '영연방(commonwealth)'도 보여준다. 폴 매카트니가 여기서 "더러운 이녹 파월"이라고 말하고 존 레넌은 이민자들을 "환영한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풍자임이 분명하다. 그뿐 아니다. 비틀스는 1964년 미국 공연 시 관객의 객석이 백인과 흑인으로 분리된다는 것을 알고 공연을 거부, 분리되지 않은 객석을 요구해 이를 관철시키기도 했다.

2020년대에도 위력을 떨치는 인종 문제, 그리고 이민자에 대한 '공포'로부터 비틀스는 어떻게 자유로웠던 것일까. 의식적으로 리버풀 억양을 고수한다고 할 만큼 비틀스가 강한 애착을 보였던 리버풀의 특색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틀스 : 겟 백' 공식 예고편의 한 장면. ⓒ Walt Disney Studios

 
리버풀 : 노예, 노동자, 이민자의 도시

리버풀. 1892년에 창단되어 2021년 12월 둘째 주 프리미어 리그 2위를 달리는 축구팀이 있는 곳이다. 전용구장 안필드(Anfield)의 함성만큼 거칠고 뒷골목의 쓸쓸함이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18세기 산업 혁명 이후, 영국 자본주의 발전을 견인했지만 그 이면에 깔린 어두움도 간직하고 있다.

해상 무역의 중심이었던 리버풀은 18세기 노예무역 중심지이기도 했다. 그 규모가 런던을 능가했고 최고의 노예 수송선 건조 기술도 가지고 있었다. 리버풀은 노예 폐지론과 옹호론으로 반세기 동안 격렬하게 대립한 하원의 축소판이었다. 노예 상인들은 노예제 폐지가 가지고 올 경제적 피해를 근거로 노예제를 옹호했고, 폐지론자들은 노예 수송선 내부를 그림으로 그려서 비인간성과 잔혹함을 공개했다. 당시 대표적인 폐지론자인 토머스 클락슨(Thomas Clarkson)이 1787년 거의 죽음에 이르는 테러를 당했던 곳도 리버풀이었다.

리버풀은 19세기 노동자들이 최악의 삶을 경험한 곳이기도 했다. 1842년 영국에서 가장 비위생적인 곳이었고, 평균 수명은 불과 15세였다. 22세인 런던보다 7년이나 낮은 수치다. (수치가 과장되게 들릴 수 있지만 19세기 영유아 사망률은 대단히 높았다.) 리버풀은 아동 노동으로 악명 높았다. 12시간 노동을 하던 어린이들은 과로, 영양실조, 오염된 공기 속에서 시달렸다.   

열악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농촌에 비해 높은 일자리 가능성으로 이민자들이 리버풀로 몰려들었다. 1840년대 아일랜드 대기근 때는 아일랜드인이 대거 유입되었고 1차 대전 이후에는 영국군으로 참전했던 인도와 아프리카인들이 리버풀에 정착, 이민 사회를 형성했다. 2차 대전 이후에는 인도, 캐리비언, 아프리카 등 영연방국에서 오는 이민자들이 리버풀에 정착했다.

노동자 계층 출신인 비틀스는 다양한 인종과 여러 이민 사회를 접하며 자랐다. 폴 매카트니는 2021년 11월 출간한 <가사집: 1956년부터 지금까지>에서 자신의 곡 1968년 '검은새 (Blackbird)'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검은 새'는 흑인 소녀를 가리키는 속어다. 리버풀은 노예 항구였고 최초의 캐리비언 이민 사회가 만들어진 곳이다. 그래서 우리는 많은 흑인들을 특히 음악계에서 만났다. … 내가 '검은 새'를 쓴 1968년, 미국은 끔찍한 인종 갈등을 겪고 있었다. 1967년도 나빴지만, 1968년은 더 악화되었다. 이 노래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암살 몇 주 후에 쓰였다. (검은 새의) 부러진 날개, 퀭한 눈, 자유에 대한 갈망의 이미지는 그 순간을 담고 있다."

인종, 난민, 이민, 외국인 노동자 등의 형태로 외부인에 대한 경계가 올라가는 2020년대, 비틀스가 통하는 이유이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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