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2.10 18:37최종 업데이트 21.12.10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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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개를 데리고 마을 가축병원에 잠깐 다녀왔는데, 우리 집 앞에 낯선 차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옆집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현관문까지 열려 있기에 당연히 옆집 아저씨가 집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원래 이 시간이라면, 시내로 출퇴근하는 이 집에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느낌이 조금 이상해 우리 집 앞에 세워진 차를 가로 막아 내 차를 세운 채, 차 운전석에 있던 사람에게 돈 아벨(옆집 아저씨)이 집에 있느냐 물었다. 가끔 돈 아벨의 집에는 그가 인근 도시에서 운영하는 정비소 직원들이 드나들었기에 당연히 그들일 것이라 생각했다.  
 

도둑 ⓒ pixabay

 
그럼에도 뭔가 찜찜해 옆집 아저씨 이름을 일부러 큰 소리로 부르며 그 집 마당으로 들어서는데, 집 안에서 사람 한 명이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뛰쳐나와 우리 집 앞에 세워둔 차로 뛰어들었다. 동시에 차는 굉음과 함께 흙먼지를 날리며 사라졌다.

대문과 현관문을 활짝 열어둔 채로 사라졌으니, 나는 그 때까지도 당연히 옆집 아저씨가 집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리 불러도 답이 없어 집 안으로 들어서는데, 헐. 집 안이 난장판이었다. 덜덜덜 떨리는 손으로 겨우 아저씨한테 전화를 걸어 어디냐고 물었고, 시내에 있다는 말을 들으면서 겁이 덜컥 났다.

도둑을 보다

바로 집 밖으로 나와 또 다른 이웃집으로 갔다. 여차저차 하여 보니 돈 아벨 집에 도둑이 든 것 같다고, 그렇게 설명하는데 옆 집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내게 도둑을 봤냐고 먼저 물었다. 당연히 봤다고 했더니 두 분 이구동성으로 내게 일단 경찰이 오기 전에 도망가라고 했다. 경찰이 오기 전에 어서 몸을 피하라는 할머니의 말이 이해되지 않을뿐더러, 설령 도망을 간다고 해도 요즘 같은 코로나 시국에 어디 갈 곳 또한 만만치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는 사이, 도둑맞은 집 주인 돈 아벨이 경찰차를 뒤에 달고 등장했다. 사위가 인근 도시 경찰이라더니, 역시 대단한 빽이란 생각이 들었다. 일단, 경찰과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간 사이 다시 옆 집 할머니가 나를 스윽 잡아끌어 당신 집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고 내게 단단히 이르길, 경찰이 묻거든 무조건 모른다고 하라고 당부했다. 우왕좌왕하는 와중에 경찰이 나를 불렀다. 돈 아벨은 당연히 나를 최초, 그리고 유일한 목격자로 지목한 상황이었다.

경찰 앞에 서니 나도 모르게 그만 침이 꼴까닥 넘어갔다. 마치 내가 도둑이 된 기분이었다. 도망을 가라는데 도망도 가지 못했고 무조건 모른다고 거짓말을 하라는데 거짓말도 못할 것이 뻔했다. 누가 봐도 내가 도둑 꼴이었을 것이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내 옆에 서서 최대한 입을 다물라는 간절한 눈신호를 보내왔다. 그 신호에 나름 힘을 입어 나도 경찰이 묻는 말에 순간순간 어떻게 하면 최대한 두루뭉술하게 답을 할까 고민했다.

그런데 정말 다행히도 경찰의 첫 질문, 그들이 타고 온 차에 대해 묻는 그 질문 하나로 끝나버렸다. 그들이 타고 온 차량의 색깔을 말하자, 경찰이 알아서 착착착 차량의 모델과 도둑들의 생김새까지 내 앞에서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내게 두 번째 질문이자 마지막 질문, "그렇죠?"라는 말로 동의를 얻었다.
 

경찰차 ⓒ pixabay

 
며칠 전부터 옆 마을과 우리 마을을 드나들며 많은 집들을 털었던 관계로 이미 마을 사람들의 신고를 통해 도둑의 신상을 특정하고 있었다. 그렇게 경찰의 질문은 간단하게 끝나버렸다. 경찰이 철수하기 전 옆집 아저씨 돈 아벨에게 신고를 하겠습니까? 라고 물었다. 돈 아벨은 단호히 No라고 답하였다. 마치 절대로 신고를 해서는 안 될 것처럼, 손사래까지 쳐가며 신고를 거부했다. 돈 아벨의 No라는 답에 경찰도 자기들이 해야 할 일 하나 줄어들어 다행이라는 표정이었다.

다만 떠나기 전 나를 지목하여 한 마디 남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도둑이 잡히면 경찰서로 와서 도둑의 얼굴을 확인해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러겠노라, 그런데 도둑과 나 사이에 가림막이 있냐는 내 질문에 역시 경찰들도 '당연히'라는 말에 방점을 찍어 No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경찰이 오기 전 옆집 할머니가 어서 도망가라고 했을 때 도망을 갔어야 함이 옳았다는 생각이 드는 와중인데, 다시 옆집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나를 위로해 주셨다. 절대로 도둑이 잡힐 리 없겠지만 도둑이 잡혔다는 소문이 들릴 때 그 때 도망가도 늦지 않다는 것이었다. 경찰이 돌아가고 도둑맞은 집의 아벨 아저씨와 옆집 할머니 내외 그리고 내가 덩그러니 남았다.

도둑의 정체

대화가 이어졌다. 대화라기 보단 성토에 가까웠다. 결론은, 마을의 '쁠라사'들에게 부탁해 치안을 좀 더 강화해달라고 부탁하겠다는 것이었다. 쁠라사란, 멕시코에서 마약 카르텔이란 말을 대신하여 이르는 말이다. 일단 그들이 개입하기만 한다면 도둑 잡기는 시간문제고, 잡힌 도둑들의 목숨은 파리 목숨과 다름 아니란 사실은 나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이웃들의 성토가 놀라울 일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의견에 은근슬쩍 편승하는 내 모습은 심히 놀랄 만한 일이었다.

다행히(?) 도둑들은 쉽게 잡히지 않는 듯했다. 내가 도둑을 만난 날 이후로도 계속 마을 이 집 저 집을 드나든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염치가 좋은 것인지, 아니면 겁이 없는 것인지, 사람이 있는 집에도 물건 판매나 혹은 연장을 빌려 달라며 의도적으로 한탕 할 집들을 찜해 둔다고 했다. 그나마 신고를 한 집에는 경찰이 방문해 이것저것 물었지만, 그 뿐이었다.

그렇게 보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마을 사람들의 반응이 다소 황당한 쪽으로 흘러갔다. 도둑과 쁠라사의 상관관계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것이다. 도둑을 잡아 족칠 수 있는 이들은 오직 마을을 장악한 마약 카르텔뿐이라고 굳게 믿었는데 도둑들이 계속하여 겁 없이 마을 곳곳을 헤집고 다니자 '혹시 도둑이 카르텔 조직의 비호를 받고 있는가?' 하는 회의가 들고 일어났다. 그러지 않고서야 여전히 이집 저집 겁도 없이 털고 다니기란 불가능할 것이란 추측이었다.

도둑을 잡아 목을 자르든 손목을 자르든 쁠라사가 맘만 먹으면 진즉 도둑에 대한 응징이 이루어지고도 남을 만한 시간들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니 혹시 그 도둑들이 쁠라사의 비호를 받고 있다면 경찰이 아니라 군 병력이 들어온다 해도 해결이 쉽지 않음은 뻔한 일이었다.
 

마약과 총과 돈 ⓒ envatoelements

 
사람들이 낙담하기 시작했다. 경찰의 보호는 애당초 없는 셈 쳤지만, 믿었던 카르텔 쪽의 보호도 기대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에 이르자 온통 신경을 곤두세우고 각자 집단속에 여념이 없었다. 그 사이 도둑들은 마을에서 상당히 유명해져 있었다. 옆 마을까지 원정을 다니면서 활개를 치고 있었다. 그럴수록 이들이 카르텔의 비호를 받고 있을 것이라는 마을 사람들의 심증은 더욱 확고해졌다.

다시 또 보름 정도의 시간이 흘러가는 와중에, 마을 사람들의 낙담을 구원해 줄 만한 일이 벌어졌다. 이집 저집 터는데 재미를 붙인 도둑들이 그만, 카르텔 말단 조직원의 집에 들어가 그가 애써 벌어들인 돈으로 사 모은 운동화를 깡그리 쓸어가 버렸다는 소문이 마을 이곳저곳을 둥실둥실 떠다녔다. 소문이 사실이라면, 적어도 그들이 조직의 비호를 받는 것은 아님이 분명했다. 마을 사람들은 안도했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린 도둑들에 대한 동정이 일기 시작했다. 그 소문을 들은 옆집 아저씨 돈 아벨이 혼잣말을 뱉어내며 툴툴거렸다. "젠장, 조만간 잘라진 손모가지 네 개를 보게 생겼구먼..."

'들림'을 당하다

일단, 도망을 가긴 한 모양인데 그들의 안위가 경각에 달렸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아침부터 헬기가 온 동네를 헤집고 다녔다. 여차 하면 어느 집 지붕에라도 내려앉을 것처럼 낮게 날았다. 사람들은 사탕수수 밭에 약 뿌리는 헬리콥터 일 것이라고, 그렇게 애써 강조했지만, 헬기는 산자락 언저리의 사탕수수 밭 대신 마을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그날을 마지막으로, 거의 한달 가까이 종횡무진 마을을 쑤시고 다니던 도둑 두 명을 봤다는 사람이 없다. 그로부터 다시 며칠 후, '어디선가 들림을 당했다'라는 말이 돌면서 그들을 둘러싸고 마을을 돌던 소문도 잠잠해졌다. 휴거도 아니고, '들림'을 당했다니 언뜻 이해가 쉽지 않지만, 이곳 멕시코에서 납치를 대신해서 흔히 쓰는 말이다. 누군가에 들려, 사라졌다는 말이다. 일단, 어디서든 들림을 당했다면, 상황종료와 다름 아니었다.

그 즈음 그들의 출신부터 행적이 간간이 회자됐다. 알고 보니 인근 출신이 아니라 아주 먼 대서양쪽 어디쯤에서 온 사람들이더라 라고 했다. 누구를 통해 그런 정보들이 나오는지 알 수 없으나, 그들에 대한 소문은 구체적이고 자세했다. 마침 그 즈음 우리 마을이 속한 주州가 부도를 선언하면서 수개월 째 급여를 받지 못한 공무원과 교사와 경찰이 파업을 하고 있던 터였다. 도둑들에게는 호시절일 수밖에 없었고, 어쩌면 그 소문을 듣고 우리 마을까지 원정을 왔는지도 모르겠다.
 

2019년 10월 14일 멕시코 미초아칸 주 아길릴라에서 마약 조직의 매복 습격을 받아 경찰 13명이 사망했다. ⓒ 연합뉴스

 
그들이 들림을 당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일부 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동정하기도 했다. 너무 멀리서 와서 마을의 '질서'를 몰랐던 것이라고. 그래도 도둑질은 나쁜 것이니 들림을 당했더라도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하는 죗값이라고. '들림'에 대한 책임은 애당초 그들에게 있는 것이라고.

며칠 후, 마을 어귀 외진 도로변에서 두 구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누군가는 차량 두 대가 서로 쫒고 쫒기다 그 부근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고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차량 한 대가 그 곳에 시체를 유기하고 갔다고 한다. 거기까지다. 더 이상 묻지 않는다. 더 알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굳이 묻지 않아도 마을 사람들은 죽은 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죽인 자가 누구인지 안다. 다만 서로 입 밖으로 흘려내지 않을 뿐.

두 구의 시체

물론, 두 명의 도둑이 '들림'을 당한 후 발견된 두 구의 시체에 대해서는 마을에서 어떤 정보도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분명 도둑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또한 두 구의 시체에 대해 제대로 된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란 사실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작년 한 해 멕시코에서 피살된 건 수는 3만 7000건을 넘어섰다. 그 중 용의자가 검거된 경우는 10%에 불과하다. 일부 주에서는 용의자 검거율이 1%에도 이르지 못한다. 통상 피살된 자 열에 아홉은 범인을 밝히지 못한 채 유야무야 묻힌다. 마을 어귀에 버려진 두 구의 시체 역시 이 범주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지난 11월 중순 우리 마을에 도둑 두 명이 활개를 치고 다니다 들림을 당할 즈음 멕시코 어느 곳에서는 하룻밤 새 10구 이상의 시체들이 마을 한복판 고가도로에 걸렸다. 이 사건 역시 한 달 가까이 수사 중이지만 단 한 명의 용의자도 검거되거나 기소되지 않은 상태다. 시체를 시내 한복판 고가도로에 내거는 것은 멕시코 마약 카르텔이 공권력을 조롱함과 동시에 시민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하려는 전형적인 수법 중 하나다. ⓒ : Imagen 뉴스 화면 캡처

 
이번에도 공식은 여지없이 들어맞았다. 도둑이 겁 없이 활개 치며 활동하던 기간이 다소 길어져 한 때 마을 사람들이 회의에 들긴 하였지만, 결국 우리 마을 공식대로 흘러갔다. 물론, 내가 사는 마을이 멕시코의 전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멕시코의 아주 독특한 마을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수많은 층으로 다양하게 존재하는 멕시코의 여러 모습 중 하나일 것이다.

어찌 되었든, 당분간 우리 마을 사람들은 도둑 걱정 없이 살아갈 것이다. 이런 문제를 비교적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는 그 누군가를 의지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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