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2.03 06:16최종 업데이트 21.12.03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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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사람 ⓒ pixabay

 
스마트폰이 보편화된 후로 거리 풍경이 바뀌었지만, 201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기차 안은 물론이고 버스 정류장과 기차역에서 서서 책 읽는 영국인들이 많았다. 정말 많았다. 나만의 느낌이 아니다. 공공장소에서의 독서는 축구, 정원 등과 같이 영국적 특성으로 꼽힌다.

이들은 왜 장소를 가리지 않고 책을 읽는 것일까. 이유는 생각보다 근사하지 않다. 인류학자 케이트 폭스(Kate Fox)는 자국 사회를 관찰한 <영국인 발견>(Watching the English)에서 공공장소에서의 독서 습관을 무례한 정중함(rude politeness)으로 표현한다. 개인 공간을 확보하려고 굳이 타인과 시선을 맞추지 않으면서도 내가 책을 읽고 있으니 방해하지 말아 달라는 신호를 보내는 영국의 문화 행동 코드라고 설명했다. 흥미로운 해석이다.


개인성의 발로가 왜 하필 책을 읽는 행위로 표현될까. 내 경험으로 이것은 영국의 또 다른 특성 '이야기에 대한 집착'과 맞닿아 있다.   

이야기 시간

꼭 따라 해보고 싶었지만 실패한 영국식 육아법은 8시 재우기다. 아기가 밤에 깨지 않고 주욱 자기 시작할 때가 되면 영국 부모는 아이를 무조건 8시에 재운다. 8시라는 게 도무지 믿기 어려워 "자란다고 자?"를 입에 달고 묻고 묻고 또 확인했지만, 내가 만난 모든 영국 여성에게 8시는 진리였다. 아이가 몰래 불 켜고 딴짓을 할 수 있는 나이인 초등학교 5~6학년까지는 무조건 8시다.  

8시 취침. 3시 15분에 학교가 파한 후 8시까지 아이에게 남은 시간은 4시간 반이 고작이다. 이 때문에 이 시간은 쪼개 쓴다. 대부분이 5시 반에서 6시 사이를 저녁 시간으로 정해 놓았다. 여기에 맞춰 축구와 같은 방과 후 활동이나 친구랑 놀기는 보통 5시 즈음에 끝난다. 친구 집에서는 딱 비스킷 하나만 먹을 수 있고 또 자기들도 그렇게 준다. 야박하기 짝이 없지만 간식을 많이 먹으면 이른 저녁을 먹지 못한다는 까닭으로 의외로 엄격하게 지켜지는 불문율이다. 그리고 저녁 먹고 이것저것 하다 보면 7시.

8시까지 남은 한 시간, 이 금쪽같은 시간을 차지하는 것은 이야기 책이다. 씻고 잠잘 준비가 끝나는 7시 20분 전후로 이야기 책을 읽어준다. 거의 고유명사로 사용되는 베드타임 스토리(bedtime story)로 영국 부모가 가장 공을 들이는 시간이다. 

영국 아이들은 줄기차게 '이야기 시간'(story time)에 참석한다. 동네 도서관, 아동 센터, 서점은 일주일에 한두 번 영유아를 위한 이야기 시간을 운영한다. 각종 놀이 모임 (play group)의 마지막은 언제나 이야기 책 읽기다. 심지어 BBC 어린이 채널도 '베드 타임 스토리'로 끝난다.

듣기에서 읽기로

듣기에서 읽기로 전환되는 시점, 수동적인 태도에서 주체적인 자세로 전환되는 때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다. 읽기는 내가 '영국이 이것만큼은 진심이구나'라고 여긴 교육 영역이다. 초등학교 전 기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학부모까지 동원한다.

지역 차와 개인 차가 있겠지만 입학 전에 책을 읽을 수 있는 아이는 내 주위에 단 한 명도 없었다(참고로 영국은 초등교육이 만 4살에 시작하여 7년 과정이다). 읽기의 시작은 자기 이름을 시각적으로 인지하는 것부터다. 교실에 들어가면 30명의 이름이 쓰여 있는 돌이 담긴 바구니가 있다. 아이들은 그 돌 바구니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 선생님에게 건네는 것으로 출석을 표시했다.  

알파벳과 발음(phonics)의 기초를 배운 후 단어 쓰기로 들어갔다. 선생님은 쓰기에 대한 예시문을 나눠주며 학부모에게 틀린 철자를 고쳐주지 말라고 했다. '발명하는 쓰기'(inventive writing) 단계로 자기 만의 문자 세계가 형성되는 때라고 설명했다. 아이의 경우 철자 시험은 속 터지게도 3~4학년 때 봤다.
 

영국 사우스 런던의 에드먼드 월러 초등학교에서 읽기 쓰기 수업을 듣는 아이들. 2020.3.19 ⓒ 연합뉴스

 
알파벳이 끝나고 아이는 이야기 책을 받아오기 시작했다. 읽기 교육은 라일락색-핑크색으로 시작해 포도주색-검정색까지 총 17단계로 만들어진 전국 지침(Reading band)을 따른다. 한국에도 알려진 옥스퍼드 리딩 트리(Oxford Reading Tree)가 그중 하나로 이외에도 수많은 회사가 이 기준에 맞춰 초등학교 학습용 읽기 시리즈를 출판한다. 다 합치면 교실에 수백 권의 읽기용 책이 단계별로 있다. 낮은 단계의 책은 몇 개 안 되는 단어가 계속 반복된다. 놀라운 건 그 안에도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문자 해독력과 독해력이 학생마다 다르기 때문에 선생님은 매주 금요일 아이들과 1대 1 읽기 시간을 가진 후 단계를 정해 준다. 아이는 지정해 준 단계에서 책 한 권을 골라 독서 기록장(Reading Record)과 같이 가져왔다. 선생님은 아이와 책을 읽은 날짜와 범위, 아이가 느끼는 난이도 등등을 기록해 달라고 했다.

기록장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4학년 때까지 지속되었다. 이때가 되면 학생, 학부모, 교사 모두가 지쳐 기록을 하는 둥 마는 둥 한다. 그동안 단어 몇 개밖에 없던 책은 서서히 문장으로, 큰 글씨는 점점 작은 글씨로, 짧은 이야기에서 여러 개의 장으로 구성된 책으로, 99퍼센트를 차지했던 그림은 20퍼센트 이하로 줄거나 아예 없어졌다.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니

이상적인 것은 일주일에 다섯 번 이상 독서 기록장을 쓰는 것이었다. 길이는 상관없다. 1페이지를 읽든 책 한 권을 읽든 일주일에 5일 이상 이야기 책을 손에 들고 읽기가 목표다. 매주 금요일 선생님은 5번 이상이면 초록 스티커, 4번이면 노란 스티커, 3번 이하면 경고성 빨간 스티커를 붙여주었다.

초록 스티커에는 아이들에게 던지는 짧은 질문이 적혀 있었다. "이번 주에 읽은 것 중 좋아한 책은 뭐니?" "흥미로운 어휘가 있었니?" "친구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있니?" "네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누구니?" 등이었다. 그리고 내 뒤통수를 때렸던 질문 "좋아하는 작가가 있니?"가 있었다. 

초등학생들에게 작가를 묻는다, 이게 과연 현실성이 있는 질문인지 의심스러웠다. 이 질문이 가능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갖춰 있어야 한다. 아동을 위한 글을 꾸준히 발표하는 작가군이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이것은 작가들이 작가 활동을 생업으로 삼을 수 있는 출판시장과 궁극적으로 이를 소비할 독자층이 탄탄해야 가능하다. 작가에 대한 질문으로 작가군 - 어린이 독자층 - 출판시장을 잇는 선순환 구조가 영국에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줄기차게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아이들이었기에 어느 정도 읽기 시작하면 긴 책을 읽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아이와 그의 친구들은 2학년 무렵부터 <비스트 퀘스트>(Beast Quest)를 선두로 해서 각종 어린이 시리즈를 섭렵했다. 좋아하는 책을 서로 권하고 대화 속에서 작가에 대한 평도 이루어졌다.

어느 날 나는 도서관에서 <색슨 민화>(Saxon Tales)를 고르고 아이에게 의견을 물었다. 아이는 표지만 슬쩍 보더니 "괜찮을 거야"라고 했다.

"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목차 정도는 봐야 하지 않을까?"
"저자가 테리 디어리(Terry Deary)네. <끔찍한 역사>(Horrible History) 저자잖아."


역사물 작가가 설화를 다루었으니 괜찮지 않겠냐는 의견이었다.   
 

나이로비에서 비행 훈련 당시 로알드 달 ⓒ 살림프렌즈

 
작가론은 수업에도 등장했다. 5학년이 되어서는 영국 아동 문학계의 거두 로알드 달(Roald Dahl)을 읽었다. 소그룹 별로 작품을 선택해 읽었다. 아이가 속한 그룹은 <마녀를 잡아라>(The Witches, 1983년), 옆 그룹은 <내 친구 꼬마 거인>(The BFG, 1982년), 또 다른 그룹은 <찰리와 초콜릿 공장>(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 1964년)을 읽었다.

그러다 중학교 입학을 전후로 수준이 놀랄 정도로 올라갔다. 중학교 영어 수업은  교과서 없이 학기마다 한 작품을 집중적으로 읽는다. 커리큘럼에는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존 보인턴 프리스틀리(J.B. Priestley)의 <밤의 방문객>(An Inspector calls), 셰익스피어의 <맥베스>(Macbeth), 하퍼 리(Harper Lee)의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 bird) 등이 있었다. 셰익스피어를 제외하고는 정치적 함의가 대단히 강한 작품들이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J.B. 프리스틀리는 20세기 중반 영국의 유명한 사회주의자다. <밤의 방문객>은 영국 계급 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희곡이라 영국보다 소련에서 초연되었다. 길이가 70페이지 정도밖에 되지 않아 한 학기 사용하기에 분량이 적지 않냐고 했더니 아이는 대사 한 줄을 두고도 선생님의 해석은 끝이 없다고 했다.

이 책이 왜 좋아

초등교육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아이가 책을 좀 읽을 수 있는 단계에 이른 1학년 후반 아이가 커다란 곰 인형을 안고 나왔다. 자기 반 곰 인형이라고 했다. 선생님께 물으니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을 이 곰 인형한테 읽어 주면 된다고 했다. 곰 인형과 책과 같이 사진을 찍은 후 그 책을 좋아하는 이유를 '때문에(because)'를 사용해서 쓰라고 했다. 

책가방에는 공책이 한 권 들어 있었다. 첫 장은 선생님이 시범을 보였다. 어렸을 때 좋아해서 여태껏 소장하고 있는 낡은 책과 곰 인형을 같이 찍은 사진을 붙이고 밑에 이유를 썼다. 다음에는 미리 곰 인형을 받은 아이들의 글이 여섯 일곱 개 정도 있었다. 손에 힘이 없어 알파벳 크기도 다르고 띄어쓰기도 안 되고 철자는 말할 것도 없이 엉망인 아이들이 뭔가 쓰고 있었다. 알파벳 7자를 연달아 붙여 써야 하는 b·e·c·a·u·s·e에서는 아이들이 겪는 버거움이 생생히 전달될 정도였다.

"나는… 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흥미로운 것은 이유가 이유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아이들 문장은 초점을 약간씩 빗나가 있었다. 내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날 고른 책은 <타임 러너스>(Time Runners)라는 책이었다. 과거와 현재를 오고 가는 내용이라 이해가 안 될 것 같았지만 아이는 그 책을 좋아했다. 왜 좋냐고 물었더니 검은 괴물이 좋다고 했다. 질문을 바꿔가며 물었더니 시간 이동 때 쓰는 잽 트랩(zap trap)이 좋다고 했다.

아이는 '왜'가 아니라 '무엇'이 좋다로 대답하고 있었다. 한 단계 더 들어가야 했지만 무리였다. 내일 다시 읽고 생각해 보자고 했지만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무엇'과 '왜'의 간격을 좁히지 못한 채 결국 "잽 트랩(zap trap)때문에 그 책이 좋다"는 문장을 써서 학교에 갔다.
  

ⓒ pixabay

 
'무엇'과 '왜' 사이에서 헤매는 아이들. 곰 인형 책 읽어 주기의 목표가 단순히 읽고 쓰기에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글을 읽는 주체로서 읽은 후 자신의 내면을 살피고 본인의 생각을 곰에게 표현하기가 선생님의 의도였다. 주어진 지문을 읽고 작가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는 국어 교육을 받았던 내게는 낯선 방향이었다.

'나는 이것이 왜 좋은가?' '이것이 내게 왜 중요한가?'는 쉽고 가벼울 수 있지만 대단히 어려웠고 끝이 없었다. 초등학교 내내 학교는 '재미있다', '멋지다,' '싫다'와  같은 두루뭉술한 형용사 대신 끊임없이 명사와 다양한 동사를 사용하여 느낌을 구체화하도록 연습시켰다. 문장에서 출발해 문장과 문장을 잇는 단락으로, 초점을 잃지 않고 단락과 단락을 구성해 생각을 확장하고 완성해 나가는 연습은 초등학교 전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생각을 명확하게 다듬고 발전시키는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수준 여하를 떠나 자기만의 해석을 만들어냈다. 큰 범주에서 비슷할 수는 있지만, 세부로 들어가면 그 누구와도 동일하지 않는 개인의 내면이 자리 잡는 과정이었다. 영국에서 읽기란,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다는 근대 철학의 대전제, 즉 주체적 개인, 개인성을 구현하는 수단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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