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1.24 07:22최종 업데이트 21.11.24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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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말! 잘해주려고 부르는 겁니다. 한번 믿고 와 보세요!"

목에 잔뜩 핏대를 세우면서 도로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외쳤다. 처음엔 꽁지머리를 한 그가 누군가와 싸우는 줄 알았다. 횟집 앞에서 호객하는 소리였다. 도로 주변에는 그와 같은 사람들이 줄지어 섰다. 한 아주머니는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나에게 말했다.


"대게 싸게 드릴게요. 대게 싸게! 진짜루!"

호객 전쟁이었다.

[강구항] 영덕대게만 파는 게 아니었다
 

식당 건물마다 대형 대게 조형물이 설치된 경북 영덕 강구항 식당가. ⓒ 권우성

 

대게를 그려 넣은 경북 영덕 강구항 방파제. ⓒ 권우성

  
거리는 질척거렸지만 강구항은 북적였다. 항구 바로 앞쪽에 파라솔과 대형 천막을 들씌운 채 생선과 건어물을 파는 장도 섰다.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부터 우비 입은 꼬맹이 손잡고 나온 아주머니, 슬리퍼 끌고 어슬렁거리는 젊은이들까지... 이들은 시멘트 바닥 위에 도마를 놓고 즉석에서 썰어주는 회를 기다리거나 흥정을 벌였다.

코로나19로 한산했던 항구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휴일이어서 그런가?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경상북도 영덕군에서 가장 큰 항구이자 대게로 유명한 강구항에는 희한한 대게도 팔았다. 영양 만점(?) '영양대게', 백조처럼 살이 흰(?) '백조대게', 박달나무처럼 살이 꽉 찬 '영덕박달대게', 등대와 독도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등대대게', '독도대게'... 횟집 간판에 적힌 글귀들이다. 영덕 대표 브랜드인 영덕대게로는 차별화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대게 거리로 불리는 식당가는 3km정도 이어졌다. 남쪽으로 내려가는 차선은 그래도 나았지만, 반대 차선은 자동차 행렬이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횟집마다 도로에 내놓은 사각의 스테인리스 찜통에선 모락모락 김을 피우며 대게가 붉게 익었다. 멍게비빔밥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시장기가 돌았다. 혹시나 해서 한 횟집에 들어갔다.

"아니, 대게철은 11월부터 4~5월까지인데 러시아 수입 '대게 라면'도 2만원이라니..."

혼잣말을 하면서 입맛만 다시다가 나왔다.

[시간 여행] 공간, 길이 아니라 시간 위를 달렸다
 

오십천을 지나 강구해변길을 달리면 바위 위에 올라탄 오래된 민박집이 나타난다. ⓒ 김병기

 
오십천을 지나 강구해변길을 달리면 바위 위에 올라탄 오래된 민박집이 나타난다. 기암괴석 위에 블록 담장을 세웠다. 마당 3~4m 아래에서 파도가 찰랑거리는 곳도 있었다. 담장 사이에 난 계단을 5~6개 내려가면 해변에 닿는 곳, 오래전 어부들은 큰 파도가 들이치면 아수라장이 될 것 같은 오막살이에서 새우잠을 자며 만선의 꿈을 꿨을 것이다.

그 꿈도, 추억도 이젠 상품이다. 민박집 앞 도로 한 차선은 숙박객의 차가 점령했다.

강구항이 영덕대게뿐만 아니라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 촬영지를 팔듯이 곳곳에서 이야기를 판다. 과거를 판다, 기억을 판다. 그 상술이 문화로 정착되고 역사가 된다. 그래서다. 간혹 내가 달리는 이 길이 공간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두 바퀴를 탄 시간 여행자인 셈이다. 일상도 그렇다. 사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을 타고 있다.

강구 삼사방파제까지 해변도로로 달리다 7번 국도로 갈아탔다. 자동차가 빗길을 질주하면서 내 옆을 스쳐지나갔다. 원척리쪽에서 다시 해변도로를 타고 부흥교를 지나니 장사천 하구에서 까마귀 떼처럼 몸에 짝 달라붙는 검은 슈트를 입고 서핑보드 위에서 파도타기를 익히는 아이들이 등장했다. 파도가 치는 방파제 위에서 청춘들은 깔깔거렸다.

이렇듯 사람 담긴 풍경이 좋았다. 동해 비경만으로도 눈요기하기에 충분했지만, 다양한 생명체와 군상들이 함께 뒹구는 자연이 더 매력적이었다. 시간과 거리만을 계산해서 7번 국도 위주로 안내하는 자전거 내비게이션에 장착되지 못하는 감성의 시공간, 그 속으로 들어가면 마음의 풍경도 엿볼 수 있다. 나는 수시로 7번 국도도 이탈해서 마을길, 해변길을 달렸다.

[영일만] 바닷가에 오두막집은 없었다
 

경북 포항 이가리닻전망대. ⓒ 권우성

 

경북 포항 이가리닻전망대. ⓒ 권우성

 
7번 국도를 탈 수밖에 없는 구간이 나왔지만, 포항시 송라면 화진리 해변마을부터는 해안에 딱 붙은 해안로 2308번과 20번 국도를 달렸다. 월포해수욕장을 지나 양지고개를 넘자 오르막길 해송 숲 안쪽으로 전망대가 보였다. 포항 '이가리닻 전망대'였다. 이 전망대는 여느 전망대처럼 수직이 아닌 수평으로 뱀처럼 길쭉하게 바다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바다쪽으로 좀 더 깊숙하게 걸어 들어가고 싶다는 욕망을 만족시킬 이런 전망대가 동해안 곳곳에 설치돼 있는데 그 중 하나였다. 이걸 보고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수직적 문화가 수평적 문화로 바뀌는 추세가 반영된 것인지도 모른다는 과장된 생각도 했다. 길이 100m 정도 되는 전망대로 걸어 들어갔더니, 난간 10m 아래에서 파도가 일렁였다. 아찔했다.

왜 '닻 전망대'라는 이름이 붙은지 궁금했는데, 안내판을 보고서야 알았다. 이 전망대를 위에서 내려다보면 포항과 이가리항에 정박시키는 선박들이 내린 닻을 형상화했단다. 독도까지의 직선거리는 251km. 전망대 끝의 화살표처럼 생긴 닻은 독도를 향하고 있다는 친절한 설명을 덧붙였다.

영덕에서는 대게라는 특산물을 팔았지만, 이곳은 포항의 닻과 독도에 대한 이야기를 팔았다. 어떻게든 스토리를 엮어서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지자체의 의지가 엿보였다.

비는 계속 오락가락했다. 20번 국도를 타고 해변을 달리면서 크고 작은 오르막내리막이 이어졌지만 이전 구간에 비해 잦아들었고 고개도 낮아졌다. 이 때문인지 힘은 들지 않았다. 해오름 전망대를 오르고 칠포해수욕장을 지나 곡강천을 건너니, 영일만항 이정표가 나왔다. 그걸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노래가 튀어나왔다. 1979년 발표된 곡이다.

"바닷가에서 오두막집을 짓고~ 사는 어릴 적 내 친구~ 푸른 파도 마시며 넓은 바다의 아침을 맞는다~ 누가 뭐래도 나의 친구는~ 바다가 고향이란다~"(가수 최백호. 영일만친구 1절 중)
 

영일만 용한1리 해수욕장에서는 20여명의 아이들이 물속에서 서핑을 즐겼다. ⓒ 김병기

 
하지만 바닷가 오두막을 싹 밀어버리고 산업단지가 들어섰다. 갈매기는 보이지 않고 영일만항 옆 용한1리 해수욕장에서는 20여명의 아이들이 까마귀 같은 검은 슈트를 입고 물속에서 서핑을 즐겼다. 5~6명의 아이들은 모래사장의 보드 위에서 강사의 구령에 맞춰 일어섰다 앉았다를 반복했다.

모래해변 앞을 가로막은 거대한 공장, 기괴한 섬 같았다. 영일대 앞 포항송도해수욕장에 왔더니 수평선만 보이는 게 아니었다. 우측으로 자리 잡은 거대한 공단이 해안선을 치고 들어섰다. 하늘로 치솟은 포스코 공장의 굴뚝이 보였다. 흰색 연기를 내뿜는 곳도 있었다. 쪽빛 바다와 하얀 백사장의 부조화. 문득, 해수욕장의 수질이 걱정됐다.

포항여객선터미널을 지나 동빈내항쪽으로 가니 죽도시장이다.

[죽도시장] "오늘도 완판 하이소"
 

경북 포항 죽도시장. ⓒ 권우성

경북 포항 죽도시장. ⓒ 권우성

 
"해삼 1kg에 5만원합니다. 몇 개 더 얹어드릴게."
"뭐 찾아요? 포장하시게? 오징어도 있고, 많이 담아드릴게."
"이거 구만팔천원에 들어 왔거든요, 만이천원은 남아야 할 거 아니가. 그냥 십일만 원에 드릴게."


죽도시장 안으로 자전거를 끌고 들어갔더니, 강구항과 비슷한 풍경이 연출됐다. 하지만 여긴 규모가 달랐다. 즉석에서 회를 썰어주는 좌판을 지나니, 대게와 온갖 물고기들이 휘젓고 다니는 큰 어항을 거리에 내놓은 횟집들이 즐비했다. 자전거를 끌고 한참을 걸었다. 시장은 그 규모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끝 간 데 없이 이어졌다.

활어, 건어물만 파는 게 아니었다. 농산물과 식품, 청과, 방앗간과 떡집, 의류 등 다양한 품목의 가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1950년대에 칠성천 복개 주차장을 따라 하나둘 좌판을 벌였던 노점상으로부터 시작된 죽도시장은 동해안 최대 규모의 재래시장으로 꼽힌다.

이곳은 죽도교가 세워지기 전에 형산강 입구에 있었던 대도, 상도 등과 함께 5개 섬의 하나였다. 칠성천과 양학천 등 주변 하천이 복개되면서 육지가 된 곳에 위치한 시장이다. 죽도는 늪지대로 갈대가 우거져 갈대섬이라고 부르다가 줄여서 대섬이 되었고, 한자로 표기하면서 죽도가 되었다.

"죽도시장, 오늘도 완판 하이소!"

북적거리는 시장 한쪽 벽에 붙은 현수막 글귀를 보면서 시장을 걸어 나왔다. 수많은 상인들의 유혹을 물리친 나는 허름한 식당에서 9000원짜리 '알곤탕'을 먹었다. 대파와 무, 싱싱한 홍합과 함께 생선의 알과 곤이 들어간 시원한 국물이 뱃속에 들어오자 온몸이 따뜻해졌다.

[일월사당] 고대 한국인의 일본 개척 설화
 

경북 포항 일월사당. ⓒ 권우성

 
형산강 포항운하변에 조성된 체육공원을 따라 가다가 큰 도로로 올라섰다. 31번 국도였다.

형산강을 가로지른 포스코 대교를 건너면서 공기가 달라졌다. 갯비린내는 사라지고 화학약품 냄새가 코를 찔렀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공단길로 접어들자, 줄지어 달리는 대형 트럭들의 진동이 느껴졌다. 먼지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뜰 수조차 없었다. 여행을 시작한 뒤 마스크를 쓴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칙칙한 도로를 빨리 탈출하고 싶었다.

공항삼거리에서 해안길로 빠지지 않고 우측길로 접어들어 동해면행정복지센터쪽으로 자전거를 몰았다. 호미곶으로 가기 전에 들러야 할 곳이 있었다. 삼국유사에 "하늘에 제사를 지낸 곳"이라고 기록된 일월사당이다. 이 사당을 통해 전해 내려오는 연오랑과 세오녀 설화는 고대 한국인의 일본 이주 혹은 개척 역사를 유추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연오랑과 세오녀라는 부부가 살았는데, 연오랑이 해초를 따다가 바위가 밀려와 그 위에 올랐더니 바위가 움직여 동쪽 섬나라(일본)로 갔다. 섬사람들은 연오랑을 왕으로 섬겼고, 세오녀는 남편의 신발을 발견하고, 그 바위에 올라서 섬나라에 있던 연오랑을 만나 왕비가 되었다. 하지만 연오랑과 세오녀가 떠나고 난 뒤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사라졌다.
 

경북 포항 일월사당. ⓒ 권우성

 

경북 포항 일월사당. ⓒ 권우성

 
당시 신라 제 8대 아달라왕 4년(157년)에 점을 쳐보니 해와 달의 정기가 일본으로 건너갔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연오랑에게 돌아오라고 했지만 이를 거절하고 비단을 주며 하늘에 제사를 지내라고 했다. 그 뒤 다시 해와 달이 나타났다. 제사를 지낸 곳이 일월사당이다. 우리 민족이 오래전에 일본 땅을 개척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는 설화다.

지형이 동쪽으로 돌출해서 해가 가장 빨리 떠오르는 곳이기도 한 포항, 이곳이 해와 달의 고장이라는 별칭을 가진 것도 이 같은 설화가 배경이 됐다. 거대한 공단이 들어선 포항에서 설화에 담긴 풍경을 상상할 수 없지만 '영일(迎日)만'은 해를 맞는 곳이라는 뜻이다. 지금도 매년 10월에는 일월사당에서는 일월신제를 지낸다.

사당을 둘러본 뒤 호랑이의 꼬리를 잡기 위해 대한민국 본토의 동쪽 끝에 자리 잡은 호미곶으로 향했다.

강구항은 영덕대게? 드라와와 어부의 꿈도 판다 해안선 1만리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첫 행선지는 동해안 고성부터 부산까지. 이 영상은 9편으로 영덕해맞이공원부터 포항 일월사당까지 두 바퀴 인문학 여정을 담았다. ⓒ 김병기

[내가 간 길]
영덕해맞이공원-강구항-월포해수욕장-이가리닻 전망대-영일만-포항송도해수욕장-죽도시장-일월사당

[인문·경관 길]
강구항 : 경상북도 영덕군에서 가장 큰 항구이자 대게로 유명한 곳이다. 11월부터 이듬해 4~5월까지의 대게 철에는 수많은 대게잡이 어선들이 이곳에 집결한다.

이가리닻 전망대 : 포항 북구 청하면 이가리에 있는 이가리닻전망대는 높이 10m, 길이 102m 규모이며, 푸른 해송과 포항의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죽도시장 : 포항죽도시장은 동해안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재래시장이다. 어시장과 곡물시장이 함께 있어 수산물과 농산물 등 다양한 물건을 판매하고 있다.

일월사당 : 포항시 남구 오천읍에 있는 일월사당에서는 고대 한국인의 일본 개척 역사를 유추할 수 있는 연오랑과 세오녀 설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사진 한 장]
하늘에서 찍은 이가리닻전망대

[추천, 두 바퀴 길]
강구해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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