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1.25 10:01최종 업데이트 21.11.25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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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속초시가 영랑호 호수위에 설치한 길이 400m의 부교가 개통된 지난 12일 개통식에 참석한 시민들이 부교를 건너고 있다. ⓒ 연합뉴스

 
내가 운이 좋았던 건, 한국어교원 일을 한 덕분에 동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생활해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개중에는 인도가 없어 '걸을 수 있는 공간'이 사무치게 그리운 도시도 있었고, 길은 넓은데 공기가 나빠 고생한 곳도 있었다. 환경이 편리하고 사람들이 좋아 '계속 살아도 좋겠다' 싶으면 기후와 재해가 문제였다.

도시의 다양한 장단점을 겪으면서 '살기 좋은 도시'에 대한 궁금증이 점점 커졌다. 나는 세 가지가 있는 도시를 상상했다. 누구나 마음 놓고 걷거나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길,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크고 작은 녹지, 서로 존중하는 열린 문화. 한국에 정착한다면 어디가 제일 살기 좋을지 생각도 해보았다.


여행을 왔다가 반해 정착한 부산에도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폭주족과 불법개조 이륜차 소음으로 인한 주민 피해가 심각해 해운대구청장이 직접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렸을 정도다. 이렇다 보니 이상적인 도시에 대한 내 생각이 그저 '환상'은 아닌가 싶었다. 아니면 내가 생각하는 도시는 유럽이나 캐나다, 뉴질랜드에 가야만 만날 수 있는 걸까.

우울증 앓는 도시들
 

올해 강원도 홍천군의 벌목 현장. '최병성 리포트'에 따르면 90만평에 이르는 숲이 사라졌다. 산림청이 주장한, 5ha마다 20m의 수림대를 존치하는 친환경 벌채는 존재하지 않았다. ⓒ 최병성

 
"우리도 살기 좋은 도시를 가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차라리 천진했다. 이제 그 질문을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사람이 계속 살 수 있는 도시를 만들 수 있을까?"라고. 지금 우리는 팬데믹에 더해 미세먼지, 소음으로 밖에 나가기 겁나고 '기후 난민'이 남 일이 아닌 도시에 산다.

영랑호 개발 문제를 보면 더 걱정스럽다. 속초시는 영랑호 위에 '생태탐방로'를 만들고 관광객을 모으기 위해 호수 속에 콘크리트를 부었다. 말이 조금, 아니 많이 이상하다. 다리와 수변광장, 수많은 조명을 설치하는 일은 수달, 고니 등 다양한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종 생물, 철새들을 위협한다. 이들이 사라진 후엔 과연 어떤 '생태'를 탐방할 수 있는 걸까?

더 문제인 건 영랑호가 천연 석호 개발의 끝이 아니라 시작점이라는 거다. 동해안에는 18개 석호가 있다. 2008년 환경부는 영랑호 등 6개 석호를 '중점관리석호'로 지정했지만, 속초시는 지난해 9월 공사를 강행했고 지난 13일 부교 형태의 탐방로를 일반인들에게 개방했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7월 중점관리석호 중 하나인 고성군 송지호 개발 관련 언론 보도가 나왔다. 
  
'개발병의 본질은 우울증과 비슷하다.' 정석 교수가 도시재생을 다룬 저서 <천천히 재생>에서 본인의 경험을 들며 한 말이다. 둘다 '자기부정'이 원인이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그가 말한 '내 집과 우리 동네의 가치를 모르고, 후지고 못나다고 때려 부수고 새로 지으려고 하는' 태도가 건설토목공사가 답이라는 경제 논리를 만나니, 콘크리트처럼 한 덩어리로 굳어진 게 아닐까.

사업이 노리는 단기적 경제 효과마저 역효과가 되는 걸 볼 때마다 속이 쓰리다. <환경일보>에 따르면 영랑호 수면 개발은 1993년부터 지금까지 생태계 복원사업에 투입한 총 524억 원을 허공에 날리게 한다.

쿠리치바 같은 도시

올해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 당시 일부 후보들은 프랑스 파리의 '15분 도시' 개념을 모방했다. 파리 시정의 핵심 가치인 '생태, 연대, 건강'은 쏙 빼고, '15분'이라는 말만. 얀 이달고 파리 시장은 '베르시 샤랑통' 지역의 초고층 건물 건설 인가를 백지화하고 그 자리에 세 번째 도시 숲을 만들기로 했다. 이미 두 개의 거대한 도시 숲이 있는데도 말이다. 올해 고양시의 행보는 데칼코마니처럼 정반대다. 고양시는 다른 후보지들을 제쳐두고 안산공원의 도심 녹지를 일부 도려내 보건소를 지었다. 

한국에도 좋은 시도들이 늘고 있다고 생각한다. 원주시가 브라질 쿠리치바를 본따 차도를 좁힌 보행자 중심 가로를 만들고, 포천시가 폐채석장을 친환경 문화예술공간 '아트밸리'로 조성한 것처럼. 여러 도시에서 운영중인 BRT(간선급행버스체계)도 대중교통 중심 도시 문화를 추구한다. 그런데 방향을 잘못 잡은 대단위 정책들이, 어렵게 쌓아올리는 탄소절감의 효과를 하룻밤 산불처럼 초토화해 버린다.

현 정부 산림청이 그린뉴딜 정책의 하나로 시작한 '30억 그루 나무 심기'가 그렇다. 탄소 흡수 능력이 높은 어린 나무를 심는다는 명목으로, 개체로 보면 탄소 흡수 능력이 더 높은 아름드리 나무들을 싹쓸이해 산사태를 부추겼다. 쏟아지는 비판에 지난 7일 산림청은 이 계획을 철회했지만, 이미 수많은 산에 숲 생태계는 간 데 없고 붉은 흙만 남았다. 왜 이런 일이 자꾸 생길까? 나는 사업 주체와 개발자들이 실효성이 아니라 '목표 수치 달성'과 '개발 수익'에만 관심을 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도 쿠리치바 같은 '꿈의 생태도시'를 하나쯤 갖길 바란다면 욕심이 과한 걸까? 브라질 남부 쿠리치바는 원래 공해에 찌든 도시였다. 180만 명이 사는 대도시임에도 도심에 30개 이상의 생태 공원이 조성된 것은 자이메 레르네르 전 시장이 사람과 자연 중심으로 도시를 재생했기 때문이다.

그는 새로 짓는 대신 되살려 썼다.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도심 아닌 곳에 건물을 지을 때는 간선 도로로부터 5m의 공간을 확보했다. 총 100만 그루 나무를 심었고, 시민 1인당 녹지 면적은 약 100배나 늘었다. 

그리고 있는 자연을 키웠다. 쿠리치바에는 도시를 가로질러 4개의 강이 흐른다. 도로와 건물을 지으려 강길을 변형시키는 것이 아니라 강물 흐름을 그대로 살리고 오히려 주변 늪지 면적을 늘렸다. 홍수 해결을 위해 하천과 인접한 곳에 공원과 호수를 만들었다. 1~2년이 아닌 30년, 50년 후를 내다본 정책이다.   

핑계를 대기 어렵다. 우리나라에 이런 도시가 없는 것이 안정된 역사나 경제적 기반이 없어서, 국토가 좁아서, 지형이 달라서라고 말할 수 없다. 지속 가능한 도시가 되느냐를 좌우하는 것은 두 가지다. 시정 수행자들이 공동체와 생태계 가치에 대해 얼마나 깊이 고민하는가, 그리고 도시의 주체인 시민들과 어떻게 소통하는가.

'지속 가능'이라는 말은 지속 가능할까?
 

환경운동 바다위원회와 '영랑호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사람들'이 지난 12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영랑호 부교물 개장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영랑호 생태탐방로 부교는 이날 일반에 개방한다. ⓒ 연합뉴스

 
13년 전 4대강 사업 반대 여론이 들끓을 때 친구와 나는 두 주먹 불끈 쥐며 말했었다. "기어코 공사가 시작되면 가서 맨몸으로 막기라도 하자!" 당시에는 진심이었다. 그러나 20대의 우리는 사회초년생의 '존버'라는 소용돌이로 빨려들어갔고,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곧 한국 밖을 떠돌았다. 답답한 것들을 보지 않으니 편했다. 하지만 외면해도 결국은 내가 살 땅이었다.

자연을 블록놀이하듯 다루는 많은 개발 사업들은 4대강 사업의 잔해처럼 내 죄책감에 끈적하게 엉겨 붙는다. 책을 읽다가, 한 구절에서 불에 덴 듯 뜨끔했다. '도시는 전문가가 만들고 나는 살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도시의 숲에서 인간을 발견하다>, 김진애 저). 시민이 하는 일상의 행위 하나하나가 도시를 만든다고 지적한 부분이다. 좋은 도시를 찾아다니기만 했지, 그런 도시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 생각하면 부끄럽다.

그래서 매의 눈으로 지켜보려 한다. 각 단체장과 차기 대통령 후보들이 도시 개발과 재생에 '지속 가능'이라는 말을 일회적으로 이용하는지, 아니면 그의 철학 자체가 진정 지속 가능한 것인지. 자연을 착취할 도구로 보는지, 사람이 살기 위한 필수요건으로 보는지.

그리고 더 구체적으로 상상한다. 사람은 어디서나 편하게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도로에는 수소차와 전기차만이 유유히 달리고, 누구든지 나무와 풀 냄새를 맡으며 숨 쉬는 곳. 사라져가는 것들의 목소리가 잘 들리는, 그래서 내가 빚진 자연과 다음 세대에게 미안하지 않은 도시. 관심을 갖는 한 도시를 바꿀 수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니까.
덧붙이는 글 브런치에도 게재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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