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1.18 07:26최종 업데이트 21.11.18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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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지자체 고가네이시(小金井市)는 도쿄도 관할이지만 '구'가 아닌 '시'다. 광역지자체에 해당하는 도쿄라 한다면 23개 특별구를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도쿄에는 23구 외에도 26개의 시가 존재하며 한국으로 따지면 읍면에 해당하는 정과 촌도 있다. 시는 주로 서쪽에 위치한다.

도쿄 지도를 펼쳐보면 도쿄 자체가 넓고 길게 펼쳐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도의 서쪽 날개 부분에 이십여 개의 시(市)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 지역은 땅은 넓지만 인구는 상대적으로 적어 학교 캠퍼스가 들어서는 경우도 많고, 때로는 타마타운 같은 대규모 베드타운 개발이 진행되기도 한다.


특히 교통이 편리한 주오센 연선 지역은 자연스레 교육, 문화의 도시로 자리 잡았고, 그래서인지 몰라도 전통적으로 야권이 강한 지역(도쿄18구)으로 분류된다. 선거철이 되면 여당의 거물 정치인들이 우리 지역으로 지원유세를 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번 중의원 총선거에서도 스가 전 총리가 자민당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직접 발품을 팔았지만, 언제나처럼 입헌민주당의 간 나오토 전직 총리가 의원직을 유지했다.

실제 투표성향을 보더라도 야권선호는 물론 투표율도 60%를 넘어(60.93%) 전국 평균 투표율 55.9%보다 5%p가량 높다. 정당투표도 자민당 1만 9477표, 입헌민주당 1만 5483표로 비등하게 싸웠고, 공산당 표가 6489표로 나와 정당 투표에서 4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3위는 일본유신회의 7043표). 생활자네트워크연합 등 지역의 시민단체들은 물론 공산당 소속 의원들이 시의회에 진출해 있는 경우도 많다. 이런 현상은 도쿄18구에 속해있는 고가네이시, 무사시노시(武蔵野市), 후추시(府中市) 모두에 적용된다.

뜬금없이 내가 살고 있는 동네 이야기를 왜 하냐면, 지난 11일 <산케이신문>에 요즘 일본사회의 우경화 분위기와는 전혀 딴판인 놀랄 만한 뉴스가 실렸기 때문이다.
 

무사시노시의 마쓰시타 레이코 시장이 19일 시의회에 외국인참정권(주민투표권)을 일본인과 같은 조건으로 허용하는 조례안을 상정할 것이라고 발표했다는 내용을 다룬 <산케이신문>. ⓒ 산케이신문

 
놀랄 만한 뉴스

무사시노시의 마쓰시타 레이코 시장은 19일 시의회에 외국인참정권(주민투표권)을 일본인과 같은 조건으로 허용하는 조례안을 상정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사실 이것만 보면 별로 놀랄 만한 뉴스는 아니다. 이미 일본에는 외국인의 주민투표권을 인정하는 43군데 지자체가 있기 때문이다.

보통 '시정촌'이라 불리는 일본의 기초자치단체는 시 792개, 특별구(도쿄) 23개, 정 743개, 촌 183개 등 총 1741개로 분류되어 있다. 이 중 41개는 특별영주권자 및 일반영주권자, 정주권자 등 투표권을 부여받는 재류자격 자체가 매우 엄격하다. 오사카부 도요나카시와 가나가와현 이즈시가 폭넓게 외국인의 주민투표를 허용하고 있는데(일반취업비자, 같은 지역 재류자격 1년 이상 등등) 이번 무사시노의 조례안은 이들 두 지자체보다 한걸음 더 나아갈 전망이다. 왜냐면 실제 발의될 조례안에 다음과 같이 적혀있기 때문이다.
 
18세 이상에 3개월 이상 무사시노시에 거주했다면 외국인이라도 주민투표권을 인정한다. 투표권을 가진 주민 총수의 4분의 1이상 서명이 있다면 주민투표 실시를 청구할 수 있다. 주민투표의 결과에 대해서, 시장 및 시의회는 그 결과를 존중해 시정운영에 반영시킨다.

문맥대로 해석한다면 특별영주권자, 일반영주권자, 정주권자 등 재류자격 제한이 필요 없어진다. 즉 유학생이든 기능실습생이든 아무튼 3개월 이상 거주하며, 주민세를 납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주민투표권 청구 및 주민투표를 행사할 수 있는 그야말로 획기적인 조례안이 된다.
 

10월 31일 있었던 중의원 총선거 도쿄18구 지역에 출마한 간 나오토 후보를 응원하기 위해 나온 마쓰시타 레이코(사진 오른쪽) 무사시노시 시장. ⓒ 마쓰시타 레이코 페이스북

 
난리가 났다

이 기사가 나자마자 난리가 났다. 무려 일본 트위터의 종합 실시간 트렌드 랭킹에 무사시노시와 마쓰시타 레이코의 이름이 떠 맹렬한 갑론을박이 시작됐고, 15일에는 도쿄18구 비례대표 당선자인 자민당 나가시마 아키히사 중의원이 조례안 반대 가두 연설회를 개최했다.

전직 방위성 부대신을 역임한 바 있는 나가시마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다음과 같이 조례안을 반박했다.
 
이런 조례안이 통과되기 시작하면 다른 지역들, 특히 미군기지가 존재하는 다른 지자체에서 '미군기지 반대'를 주장하는 (외국인을 포함한) 일부 주민들에게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또한 일본에 비판적인 제외국이 이 조례안을 활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가의 근간이 무너질지도 모른다. 외국인의 의견을 듣고 싶다면 앙케트 같은 걸 받으면 되지 않는가. 왜 일부러 법적 지위를 안기는 주민투표제도를 만들어 투표권을 인정하는지 모르겠다. 이걸 돌파구로 삼아 국정에도 '외국인참정권'을 넣어보겠다는 수작 아니겠느냐.

사실 조례안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법적 지위는 없다. 일본 총무성은 각 지자체의 조례에 기반을 둔 주민투표의 결과에 법적 구속력은 없다고 못 박았다. 하지만 이번 조례안 마지막 부분에는 '결과를 존중한다'는 문장이 들어가 있다. 나가시마 의원 역시 이 부분을 들면서 "실질적인 법적구속력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반론한 것이다.

하지만 나가시마 의원의 발언은, 실상을 따져보면 거짓말에 가깝다. 국정선거에 외국인이 관여하는 것은 헌법상 위헌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현행 헌법 제15조는 "공무원을 선정하고 이를 파면할 수 있는 것은 국민고유의 권리"라고 명시돼 있다. 중의원, 참의원도 선출직 공무원에 포함되기 때문에 외국인은 헌법이 개정되지 않은 한 국정참여는 영원히 불가능하다. 현재 개헌이 가능한 이른바 '개헌세력'은 자민당, 공명당, 일본유신회 등인데, 이들이 정말 헌법을 개정한다고 한들 이 조항을 없앨 리가 없다. 즉 나가시마의 비난은 그만큼 자민당을 위시로 한 우익 우파 세력들이 이번 조례안을 껄끄럽게 생각한다는 의미다.
 

10월 31일 중의원 총선거 자민당 후보로 나온 나가시마 후보(사진 왼쪽). 그는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의 지원 유세까지 받았지만 지역구에서 낙선하고 비례대표로 부활당선했다. ⓒ 박철현

 
역사적 순간

그 이유는 마쓰시타 레이코의 개인이력에 기인한다. 2기 연임해 5년째 시장을 맡고 있는 그는, 현재는 무소속이지만 민주당-민진당 당적을 가진 바 있고 도쿄18구의 맹주로 불리는 간 나오토 전직 총리의 든든한 후원을 받고 있다. 앞에서 말했듯 도쿄18구에 소속된 고가네이, 후추, 무사시노는 야당세가 강한 지역이다. 2020년 시장선거 땐 입헌민주당, 사회민주당, 공산당, 레이와신센구미가 그를 지지했다.

무사시노뿐만 아니다. 고가네이 시장 니시오카 신이치로 역시 민주당 출신이며, 후추 시장 다카노 노리오는 정치는 자유민주당에서 출발했지만 최근 두 차례 시장 선거에서 자민당, 공명당, 민주당, 사회민주당의 공식지지선언을 받아 선거에서 승리했다. 여야가 합심해 다카노 후보를 지지한 이유는 공산당 후보를 이기기 위해서다. 공산당도 야권으로 분류되니 어찌되었건 도쿄18구 지역은 야권세력의 영향력이 다른 지역들에 비해 월등히 세다고 볼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번 주민투표 조례안은 시의회에 상정만 되면 통과될 가능성이 지배적이다. 무사시노 시의회 26명 중 반대할 것으로 예상되는 자민당 계열 의원은 8명에 불과하다.

반대파 의원들은 도쿄신문, 석간 후지 등 지역언론 인터뷰에서 "마쓰시타 시장의 2020년 재선 당시 선거공약에 외국인 주민투표권은 단 한 줄도 없었다"며 반발하고 있으며, 찬성파 의원들은 "외국인들의 투표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최종권한은 시의회에 있다"면서 "안전장치가 움직이고 있으니 이번 조례안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아무튼 이 조례안이 통과된다면 요즈음 일본사회의 배외주의 분위기에 제동을 걸지도 모르는 역사적 순간을 목도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트위터의 숱한 갑론을박 중 핵심을 찌르는 문장이 있어 소개한다.
 
뭔가 무사시노시의 주민투표 조례안 건으로 다들 한 마디씩 하고 있는 분위긴가 본데, 투표도 안 가는 일본인 녀석(시장선거 투표율 47.46%)들보다 동네나 생활을 훨씬 더 진지하게 생각하는 외국인들에게 자치를 맡기는 게 맞지 않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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