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1.20 11:51최종 업데이트 21.11.20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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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덕군 해맞이공원과 대게 집게발 모양의 등대. ⓒ 권우성

 
"고래가 하얀 물을 뿜으며 놀고 있었다."

고려 말의 대학자인 목은 이색 선생이 상대산에 올랐다가 목격한 이 풍경은 고래불해수욕장의 유래가 됐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경정(鯨汀)'으로 적혀 있는데, 고래불은 이를 순 우리말로 풀이한 명칭이다. 경북 영덕군 병곡면의 6개 해안 마을을 배경으로 20리에 달하는 모래사장이 펼쳐진 곳이다.

경북 영덕군 고래불해수욕장. ⓒ 권우성

 

고래불 캠핑을 하면서 만든 가족신문 표지와 내지 사진. ⓒ 김병기

 
오래 전 가족여행 때 텐트를 치고 캠핑했던 소나무밭 앞쪽으로 난 나무 데크 길을 달렸다. 당시 만든 가족신문의 표지가 떠올랐다. 작은 딸의 그림이다. 행복했었다. 코로나19로 사람들이 모두 코를 막고 다녔지만, 마스크를 뚫고 들어오는 솔향기는 그대로였다. 이 때문인지, 사회적 거리두기 3~4단계를 오르내릴 때인데도 행복한 캠핑족은 많았다.

이곳의 모래도 다른 해수욕장과는 달랐다. 바다에서 올라온 모래가 아니라 해안 남쪽에 있는 송천에서 유입된 모래다. 육지에서 운반된 암석 조각들이 파도에 의해 오랜 세월 깎이면서 형성된 모래사장이다. 석영·장석 등의 광물이 많이 섞여 있어서 다른 해수욕장의 모래보다 밝은 빛을 띤다.

[도해단&영해장터거리] 도떼기시장이 거대한 문화재
 

을미사변 후 경북 동북부지역에서 유격활동 등 항일의병활동을 벌인 의병장 벽산 김도현 선생을 기리기 위해 그가 순국한 자리인 경북 영덕군 영해면 대진리 바닷가에 세워진 도해단. ⓒ 권우성

 

을미사변 후 경북 동북부지역에서 유격활동 등 항일의병활동을 벌인 의병장 벽산 김도현 선생을 기리기 위해 그가 순국한 자리인 경북 영덕군 영해면 대진리 바닷가에 세워진 도해단. ⓒ 권우성

 
송천을 지나니 대진해수욕장 끝에 세운 '도해단'(蹈海壇)이 나왔다. 구한말 항일 의병활동을 전개한 벽산 김도현 선생의 충의를 기리기 위해 그가 순절한 자리에 세운 단(壇)과 비(碑)였다. 사재를 털어 병기를 구입하고 검산성을 쌓아 영양, 안동, 함창, 선성과 강원도 일대에서 결사항전 했던 김도현 선생은 이 글을 남긴 채 '도해(蹈海)', 걸어서 바다 속으로 들어가 순국했다.

"오백년 선말(鮮末)에 태어나(我生五百末)/ 붉은 피 전신에 어리어(赤血滿空腸) / 중년의 항일 19년에(中間十九載) / 터럭은 추상처럼 변했구나(鬢髮老秋霜) / 국망에 눈물은 마르지 않고(國亡淚未已)/ 친상에 마음은 더욱 상한다(親沒心更傷) / 홀로 서 있는 옛 산은 푸른데(獨立故山碧) / 아무런 방도가 없으니(百計無一方)/ 만 리 먼 바다가 보고파라(萬里欲觀海)/ 7일이 양을 회복하는 동지이니(七日當復陽) / 희고 흰 천 장 물결이(白白千丈水)/ 족히 내 한 몸 간직하겠구나(足吾一身藏)"

대진항에서 영해면사무소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영해장터거리는 1919년 3월 18일 3천여 명이 참여한 만세운동 등이 일어난 역사적 장소였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근대역사문화공간이 제대로 조성된 건 아니었다. 60~70년대에 건설된 것으로 보이는 쇠락한 건물들 사이에 영덕 구 영해금융조합, 영덕 영해양조장 및 사택 등 10곳만 문화재로 등록된 상태였다.
 

1935년 만들어진 모더니즘 양식의 옛 영해금융조합 건물. 경북 영덕군 영해면. ⓒ 권우성

 

1935년 만들어진 모더니즘 양식의 옛 영해금융조합 건물. 경북 영덕군 영해면. ⓒ 권우성

 
당시 유행했던 모더니즘 양식의 건축물인 구 영해금융조합 건물 등은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었지만, 다른 등록문화재를 찾지는 못했다. 오는 2024년까지 예정된 '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활성화 사업'이 본격 시행되지 않은 탓이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었나? 썰렁한 골목을 한참동안 헤매다가 들어선 영해만세 시장은 붐볐다. 시장 바닥에 각종 해산물과 건어물, 고추와 옷가지, 튀김 요리, 뻥튀기 등 번잡한 시골 장터의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온갖 생필품과 잡동사니, 먹거리가 전시된 도떼기시장이 바로 거대한 문화재였다.

[신돌석 생가] 전봇대 뽑아 일본군 6명 해치운 '태백산 호랑이'
 

평민 출신 의병장 신돌석 장군 생가와 마당에 전시된 전봇대와 무거운 돌덩이들. 경북 영덕군 축산면. ⓒ 권우성

 
내친김에 만세시장에서 4km정도 떨어진 신돌석 생가 쪽으로 향했다. 신돌석 장군 유적지를 지나, 신돌석장군길로 계속 오르니 도곡2리 마을회관 앞쪽에 덩그러이 서 있는 초가집 두 채가 나왔다. 평민 출신 의병장인 신돌석 장군이 태어난 곳이다. 일본 관헌들이 불에 태워 없앴는데, 1995년 복원했다.

생가에서는 딱히 볼만한 것은 없었지만 소박했고 정갈했다. 백일홍 세 그루에 핀 꽃잎이 빗물에 젖어 더욱 붉었다. 초가집 처마 마루에 앉아 추적추적 내리는 빗물을 쳐다보다가 마당 구석에 누워 있는 전봇대에 눈길이 갔다. 그 앞쪽으로 바위돌이 불규칙하게 놓여 있었다. 공사하다가 건축자재를 남겨놓은 것일까? 안내판에 적힌 내역을 보면서 혼자서 웃었다.


"1903년 청도를 지나다가 전신주를 뽑아 일본 공병 5~6명을 무찔렀다."

"송정마을 앞마을인 지당의 참물덩게에 돌다리를 놓을 때 장정 몇 명이 달라붙어 돌을 들어놓으려 애를 쓰고 있었는데, 마침 신장군이 지나다가 보고서 이를 혼자 번쩍 들어 올려 다리를 놓았다."


강원도 일대에서 신출귀몰하면서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태백산 호랑이' 신돌석 장군의 힘을 보여주기 위한 전시물이었다. 좀 생뚱맞았지만, 역사 기록의 한 문장을 실체적으로 보여주려 했던 고심의 흔적은 읽을 수 있었다. 신돌석 생가에서 나와 축산천을 타고 다시 동해쪽으로 나왔다.

"산은 강을 건너지 못하고, 강은 산을 넘지 못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어딘가에서 들어본 듯한 말들을 떠올리며 골짜기 사이로 흐르는 천변길을 달렸다. 하지만 경정항을 지나면서 풍류는 끝났다. 영덕대게로를 타고 게처럼 걸어서 고개를 올랐다. 도로 아래쪽은 깎아지른 절벽, 풍경이 좋은 곳에는 어김없이 캠핑카가 주차돼 있었다. 고개를 내려가면 해수욕장과 항구가 나타났다.

[영덕 해맞이공원] 깎아지른 절벽에 '대게 품은 오뎅'이 산다
 

경북 영덕군 해맞이공원과 대게 집게발 모양의 등대. ⓒ 권우성

경북 영덕군 해맞이공원. ⓒ 권우성

   
간간이 내리는 비도 소용이 없었다. 허벅지 근육이 팍팍해졌다.

"아니, 대체! 해를 맞이하는 게 이렇게도 힘든 겨?"

혼잣말을 하면서 지저리골을 내려가자마자 견농골이 나왔다. 행골을 걸어서 올랐고, 내려가자마자 메농골이 나왔다. 해맞이공원으로 올라가는 마지막 고갯길인 높은재골에 오르기 시작하면서부터 정상에서 풍력발전기의 날개가 힘차게 돌아가는 게 보였다.

"뭐야 이게? 대단한 해맞이 타운이 조성된 줄 알았는데..."

고생스레 오른 해맞이공원, 그 대가치고 외양은 볼품이 없었다. '대게 품은 오뎅'이라는 간판을 건 구멍가게 옆에 '영덕 해맞이공원'이라고 적힌 표지석이 덩그러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표지석 뒤로 돌아가니 깎아지른 절벽 아래 동해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절벽 아래쪽으로 내려갈 수 있는 해파랑길 앞 현판에 적힌 시가 있었다.

"그려내지 못한 그리움이/가슴으로 쏟아지는/오늘밤//별빛 드는 뜨락의 채송화/빨강 노랑 파랑으로/물들어가는 꿈길//찾아오실 때/그리움은 내려놓고 오소서/내리지 못한 그리움에/보내기조차 힘들기에"(별빛 내리면. 박승렬)

해맞이가 아니라 달맞이공원인가? 대게를 품은 오뎅국물이라도 먹고 출발하려고 했지만, 현찰이 없었다. 마침 창포말등대를 지나니 멍게비빔밥을 파는 횟집이 나왔다. 한 입 떴더니 입 안 가득 멍게향이 퍼졌다. 바로 옆 커피 가게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 커피로 비에 젖은 몸을 데우며 비바람 부는 벼랑에 한동안 앉아 있었다.
 

참빗같이 빽빽, 먹줄처럼 곧은 솔밭... 탄성이 터졌다 해안선 1만리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첫 행선지는 강원도 고성통일전망대부터 부산 을숙도 생태공원까지. 이 영상은 8편으로 망양정에서 영덕해맞이공원까지 두 바퀴 인문학 여정을 담았다. 이 영상과 관련한 자세한 기사를 보시려면 “참빗같이 빽빽, 먹줄처럼 곧은 솔밭... 탄성이 터졌다” 기사를 클릭하시면 된다. ⓒ 김병기

 

[내가 간 길]
망양정-월송정-후포항-도해단-영해장터거리-신돌석생가-영덕 해맞이공원

[인문·경관 길]
월송정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에 있는 고려시대 정자. 관동팔경의 하나이다.

도해단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대진해수욕장 남쪽 끝에 있는 의병장 김도현의 유적지. 국가보훈처 현충시설이다.

영해장터거리 : 경북 영덕군 영해장터거리는 문화재청의 '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활성화사업'에 지정돼 문화재 복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신돌석 생가 : 경북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에 있는 평민 출신 의병장 신돌석의 생가. 경북 기념물 제87호이다.

[사진 한 장]
영덕 해맞이공원에서 찍은 동해바다

[추천, 두 바퀴 길]
망양정로 촛대바위 주변 해안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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