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1.20 11:51최종 업데이트 21.11.20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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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바다와 백사장으로 곧장 이어지는 경북 울진군 평해읍 월송정. ⓒ 권우성

후두둑~ 후두둑~

창문을 요란스럽게 뒤흔드는 빗소리에 깼다. 경북 울진에 있는 망양정 한 민박집 앞의 왕피천 물결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거셌다. 멀리 수묵화처럼 번진 백두대간 준령들을 낮게 감싼 먹구름, 그 위로 케이블카가 지나갔다. 폭우 속을 달려야할 판이다. 적당히 내리면 좋으련만 심상치 않았다.   


'우중 라이딩'을 즐겼던 때도 있었다. 비를 기다리기도 했다. 자전거로 출근했다가 퇴근할 때 비가 내려도 페달을 돌렸다. 태풍 부는 날, 비바람에 휘청거리면서 성산대교를 넘어오기도 했다. 폭우가 쏟아지는 캄캄한 강변을 흠뻑 젖은 채 달리면서 기쁨에 겨워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50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그랬다. 

[72세 노인] "저도 자전거 좀 탔지요"
 

망양정의 한 민박집 주인인 권태도 씨는 ‘산악인’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했다. ⓒ 김병기

 
그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1시간 정도 자전거를 타면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는 집이 있었다. 내 허벅지도 자신했다. 하지만 하루 종일 젖은 몸으로 자전거를 타야 한다면? 게다가 이곳은 생면부지의 객지이다. 팔다리도 급격하게 얇아지고 있다. 뱃살과 체중은 그대로인데 근육은 줄었다. 늙고 있다는 증거였다.   

"비가 많이 와서 좀 잦아들면 출발해야 할 것 같네요."

잠깐 나갔다가 만난 민박집 주인 아주머니에게 말했더니, "아침밥이나 같이 먹자"고 잡아끌었다. 다부진 체격의 남편이 미소를 띤 채 식탁에 앉으면서 한 마디 했다. 

"저도 자전거를 좀 탔지요."

권태도(72)씨. 그는 '고수'였다. 자전거를 조금만 탄 게 아니었다. 동해안과 4대강 자전거 길을 종주했고, 제주도만 돌면 자전거 그랜드 슬럼을 달성한단다. 또 마라톤 풀코스, 하프를 합치면 100번도 넘게 뛰었다. 알프스 몽블랑,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올라운드 트래킹,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래킹... 내가 근접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산도 탔다.

지금도 유명 등산장비·의류 업체 수십만 명의 회원들의 길잡이인 셰르파로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그 앞에서 체력을 들먹이며 비가 좀 온다고 엄살을 부린 게 겸연쩍었다. 며칠 동안 '업힐 지옥' 운운했던 나에게 묻듯이 그에게 물었다. 도대체 왜?

"좋아서죠. 나이가 들면 심폐기능이 약해지는데, 자전거는 등산처럼 호흡곤란을 겪지 않아요. 넓은 시야로 수려한 경관을 조망할 수 있죠."

맞는 말이다. 잠시 '업힐' 때문에 잊었지만, 그래서 나도 동해안에 왔다. 민박집 아주머니는 "남편이 산행할 때 싸주던 떡"이라며 몇 덩이 건네주었다. 마침 빗방울이 가늘어졌다. 

[울진대게] 동국여지승람, 임원경제지... "다 나왔다"
 

해변 암석 위에 세운 ‘금호정’. ⓒ 김병기

 
5~6년 전처럼, 배낭 덮개만 씌운 채 우비도 입지 않고 달렸다. 앞바퀴를 타고 튀어 오른 물이 안경알 위에서 빗물과 마구 뒤엉켰다. 뒷바퀴를 타고 오른 물은 뒷머리를 때렸다. 온몸이 흠뻑 젖었다. 이 와중에 망양정로 옆 해안으로 돌출한 곶의 기암괴석 위에 위태롭게 내려앉은 '금호정'이 나왔다. 거기에서 폼 나게 앉아서 쉬려고 했더니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쉼 없이 페달을 돌려야 몸의 체온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비경은 자전거를 그냥 달리게 놔두지 않았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선 소나무, 기암괴석 사이에 난 길에서 나는 또 섰다.     
      
"이 바위는 1986년 해안도로 개설 당시 제거 대상이었지만, 사라짐이 너무나 아쉬워 보존하게 되었다. 영원히 사라질 뻔한 촛대바위는 바다와 육지 사이에 우뚝 솟아 있으며, 상부에 있는 촛불 모양의 소나무는 거센 태풍과 모진 비바람이 몰아쳐도..."(촛대바위 안내판)
 

망양정로를 타고 내려가다가 만난 촛대바위. ⓒ 김병기

 
나는 멋진 풍경을 스치듯 지나치기가 아쉬워서 기암괴석 위에 걸터앉아 쪽빛 파도를 영상에 담았다. 비는 오락가락했다. 폭우로 몰아치다가, 잦아들기를 거듭했고, 몸도 말랐다 젖었다를 반복했다. 그 담금질 덕분에 힘이 들지는 않았다.

"대게의 원조, 울진!"

해안에 세워진 거대한 대게상의 안내판. 영덕대게와의 원조 논쟁에는 옛 문헌도 동원됐다.

"동국여지승람과 임원경제지, 대동지지 등에 '자해'로 기록된 대게는 울진 주요 토산물로 명시됐다. 대게라는 이름은 몸집이 크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 아니라 몸통에서 뻗은 다리가 대나무 같아서 붙인 이름이다. 다리 마디가 여섯이라고 해서 '육촌(六寸)이라고도 한다."  
 

경북 울진군 기성면 망양리 해변에 설치된 울진대게 조형물. ⓒ 권우성

 
기성망양해수욕장을 지나니 가파른 오르막. 땀은 흘릴 새도 없이 빗물에 씻겼다. 여유도 생겼다. 백일홍 붉은 꽃잎 끝에 매달린 빗물, 그 속엔 내 모습뿐만 아니라 내가 걸어온 길과 하늘, 우주가 담겨 있었다. 붉은 꽃그늘에 앉아 잠시 쉬는데, 대게상과 함께 안도현 시인의 '삶'이라는 시가 머릿속에 스쳤다.  

"게는 이 세상이 질척질척해서
진흙 뻘에 산다
진흙 뻘이 늘 부드러워서
게는 등껍질이 딱딱하다
그게 붉은 투구처럼 보이는 것은
이 세상이 바로 싸움터이기 때문이다
뒤로 물러설 줄 모르고
게가 납작하게 엎드린 것은
살아남고 싶다는 뜻이다
끝끝내

그래도 붙잡히면?
까짓것, 집게발 하나쯤 몸에서 떼어주고 가는 것이다
언젠가는 새살이 상처 위에
자신도 모르게 몽개몽개 돋아날 테니까"


일상도 싸움터다. 걱정 짊어지지 말고 까짓것, 게처럼 살자. 게처럼 천천히 가자.  

[월송정] "그 빽빽함이 참빗과 같고 그 곧기가 먹줄과 같아" 
 

경북 울진군 평해읍 한 바닷가 빼곡한 소나무들 사이로 월송정이 보인다. ⓒ 권우성

경북 울진군 평해읍 월송정 누각 사이로 보이는 동해바다. ⓒ 권우성

   
구산항 아래 황보천을 넘으면 나오는 '관동팔경 월송정'(關東八景 月松亭) 입구의 소나무 숲길부터 설레기 시작했다. 평해황씨 시조제단원의 얕은 토담길 위로 치솟은 소나무는 하늘을 가렸다. 자전거를 정자 앞에 묶어두고 누각 중앙 기둥 사이로 들어가자 저절로 탄성이 터졌다. 천국의 문을 연 것처럼 에메랄드 빛 파도가 치는 하얀 모래사장이 펼쳐졌다. 

조선 선조 때 동인의 영수로 영의정을 지냈고 '오성과 한음'으로 알려진 한음 이덕형의 장인 이산해는 이곳에 유배를 왔을 때 이렇게 읊었다.

"푸른 덮개 흰 비늘의 솔이 우뚝우뚝 높이 치솟아 해안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몇 만 그루나 되는지 모르는데, 그 빽빽함이 참빗과 같고 그 곧기가 먹줄과 같아 고개를 젖히면 하늘의 해가 보이지 않고, 다만 보이느니 나무 아래 곱게 깔린 은 부스러기, 옥가루와 같은 모래뿐이다."
 

경북 울진군 평해읍 월송정. ⓒ 권우성

 
비늘, 참빗, 먹줄, 은 부스러기, 옥가루... 이곳 비경에 견줄만한 절창에 또 다시 감탄했다. 이 정자는 고려시대에 월송사(月松寺) 부근에 창건된 것을 조선 중기 연산군 때 관찰사 박원종이 중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뒤 한말에 일본군이 철거했는데, 1969년에 재일교포들이 정자를 신축했지만 신통치 않아서 1980년에 현재의 정자로 복원했다. 

'월송'이라는 이름의 내력도 여럿 전해지는데 이곡(1298~1351)의 '동유기'(東游記. 1349년) 기록이 가장 오래됐다. 동유기에는 "소나무 만 그루 가운데 월송정이 있는 데 사선(四仙)이 유람을 하다가 이곳을 들르지 않고 지나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적혀 있다.  

소나무 오솔길을 나오면서 '소를 타는 즐거움'이라는 큰 표지석 앞에서 멈췄다. '기우자의 길'이었다. 고려 말 대제학으로 충절을 지켰던 기우자 이행 선생이 달 밝은 밤에 소를 타고 거닐면서 나라를 걱정하던 유서 깊은 길이란다. 그의 절친이었던 당대 문호 권근 선생이 소를 타는 즐거움을 표현한 글을 비에 새겼다. 

"내 친구 기우자 이행은 매양 달밤이면 술을 가지고 소를 타며 산수간에서 놀았다.(중략) 무릇 주의를 기울여 만물을 볼 때 바쁘게 서두르면 소홀함이 있고 찬찬히 살피면 그 오묘함까지 다 얻을 수 있다. 말은 빠르고 소는 더딘 것이라 소를 타는 것은 더디고자 함이다."

권근 선생의 말을 빌리면 나는 말을 소처럼 탔다. 오르막에선 걷고, 비경 앞에서 수시로 멈춘 내 자전거는 소였다. 그런데 월송정 앞에서 그 소가 탈이 났다. 자갈밭을 무리하게 타고 들어간 탓인 듯했다.        

[펑크] 날카로운 돌이 박힌 튜브로 10km를 견뎠다
 

월송정을 나서자마자 자전거가 펑크가 났다. ⓒ 김병기

 
월송정 앞 슈퍼에서 가방 속 깊이 넣어두었던 펑크 패치를 꺼냈다. 앞바퀴까지 떼어냈지만, 아무래도 튜브를 꺼내 바람을 넣은 뒤 패치를 붙이는 데 많은 시간을 허비할 것 같았다. 결국, 휴대용 펌프로 바람을 가득 넣고 10km 남짓 되는 후포항의 자전거 가게까지 달렸다. 다행히 내 소는 버텼다. 황금대게 평해공원을 지나 거일2리 자전거 쉼터 해변도로를 지났다.  

"여기 빵꾸가 났네요. 날카로운 돌이 박혔어요."

자전거 가게 아저씨는 송곳과 벤치를 이용해 타이어에 박힌 돌을 빼서 보여줬다. 그는 "자전거 길이 정비된 뒤에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면서 "점프'(차를 자전거에 태우고 이동)를 하는 사람도 많고, 비용은 거리에 따라 1~2만원을 받는다"고 말했다.

"여기가 동해안에서 두 번째로 큽니다. 속초에 이어 연안항구로 승격됐어요. 매일 울릉도 가는 여객선도 이 앞에서 떠납니다. 그런데 여기부터 남쪽으로는 고개가 그리 많지 않아요. 지금까지 고생했겠지만, 고래불해수욕장까지는 평지입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경북 울진군 바닷가에서 한 시민이 비옷을 입은 채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다. ⓒ 권우성

 
그 말을 듣고 기뻤다. 비는 잦아들었다. 울진대게 간판이 즐비한 후포항은 차와 사람들로 붐볐다. 기력을 회복한 내 소를 몰고, 700년 전 권근 선생이 전혀 예상치 못했을 풍경 사이를 천천히 빠져나왔다. 

후포항에서 고래불해수욕장까지 해안에 바짝 붙은 길로 달렸다. 도로는 간혹 끊겼다. 곳곳에 쌓인 모래와 자갈은 파도가 길 위로 올라탄 흔적이다. 기암괴석을 한쪽 벽으로 삼아 지은 어부의 집을 여러 채 지났다. 칠보산 휴게소 근처의 자전거 쉼터에서 민박집 아주머니가 준 떡을 아주 달게 먹었다. 파도가 몰아치는 거친 해변 마을길을 산책하듯 페달을 돌렸다.
 

참빗같이 빽빽, 먹줄처럼 곧은 솔밭... 탄성이 터졌다 해안선 1만리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첫 행선지는 강원도 고성통일전망대부터 부산 을숙도 생태공원까지. 이 영상은 8편으로 망양정에서 영덕해맞이공원까지 두 바퀴 인문학 여정을 담았다. 이 영상과 관련한 자세한 기사를 보시려면 “참빗같이 빽빽, 먹줄처럼 곧은 솔밭... 탄성이 터졌다” 기사를 클릭하시면 된다.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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