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1.22 12:10최종 업데이트 21.11.22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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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이주자는 살아 숨 쉬는 자인가. 존 버거는 <제7의 인간>에서 이들을 가리켜 "불사의 존재, 끊임없이 대체 가능하므로 죽음이란 없는 존재"라 했다. 오직 노동하는 몸으로 기능하기를 요구받고, 표류함이 당연시 여겨지고, 존재할 권리를 국가의 허락에 구해야 하는 것이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와 난민의 현주소이다. 체류권을 '허가'받은 이주민들조차 한국 사회의 성원권을 제대로 획득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국가는 잔혹하고, 사회는 무심하다. 그럼에도 사람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은 언제나 계속되는 일. 한국사회에서 살아 숨 쉬는 이주민들의 삶을 르포르타주로 담고자 한다.[편집자말]
<오징어 게임> 199번 참가자 알리는 나이든 한국인 남성들을 죄다 '사장님'이라 부른다. 우리나라 자영업자 비율이 25%에 근접한다니 사장님이 많은 사회이기는 하지만, 알리의 사장님 호칭은 그와는 다른 맥락으로 보인다. 실제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사장님, 사모님'이라는 호칭에 익숙하다.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인과 고용·피고용 이외에 다른 관계를 맺는 경험이 매우 적기 때문이기도 할 테고, 다른 호칭을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속 알리. ⓒ 넷플릭스

 
알리의 인사법

한데 더욱 씁쓸한 점은 알리의 '사장님' 소리에 한국인들 다수가 무감하다는 것이다. 주변에 물어봐도, 뭐 그런 거까지, 하며 얼버무리기 일쑤다. 어쩌면 태생적 한국인들은 이런 미디어의 설정을 수용하고 그것을 더욱 내면화하며 자신도 모르게 '사장님 마인드'를 숙성시켜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징후는 곳곳에서 보인다. 이주노동자에게 '최저임금법'을 동등하게 적용하는 바람에 인건비 주기 고통스러우니 외국인에게 적용하는 최저임금액은 더 낮게 책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우리 정부가 운영하고 있는 외국인력제도 '외국인근로자 고용허가제(이하 고용허가제)'는 국내 필요한 노동력을 확보하되 내국인의 일자리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외국인근로자'의 권리를 너무 쉽게 제한한다. '외국인근로자'에게 권리를 인정하면 그만큼 내국인의 이익이 줄어든다는 논리다.

어차피 일하러 온 사람들이니 장시간 고강도 노동은 운명인 듯 견디라 하고, 비용을 아끼기 위해 사람이 살지 못할 곳을 생활공간이라 내주고 기숙사비까지 챙겨 받는 일도 흔하다. 일부 주장이나 행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제도가 그렇게 뒷받침하고 있다. 이렇듯 한국은 이주노동자의 몫을 챙겨 부를 쌓는 것에 부끄러움이 없다. 한국인 다수는 이를 덤덤하게 목격하고, 덕분에 낮아지는 소비재 가격으로 조용히 이익을 배분받는다. '사장님 마인드'는 그렇게 기능한다.

한편 이주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에 '사장님'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 노력은 번번이 실패한다.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 시인 람 꾸마르 라이는 말한다.

라이의 '실패한 노력'
 
사장 아버지/나는 내 젊음과 목숨을 바쳐/할 수 있는 만큼 몸과 마음을 다해/당신의 얼굴에서/만족한 행복을 찾으려 했습니다/하지만 이제 알게 되었어요/그것은 단지 부질없는 노력이었음을/단지 실패한 노력이었다는 것을요. ('실패한 노력' 중에서)

시인은 사장 아버지 마음에 들기 위해 날마다 밤마다 자신을 혹사하며 일하지만, 너무 힘들어 허리를 펴는 순간 하필 사장이 들어와 책망하는 눈빛으로 쏘아본다. 화장실 갈 때만 들어와 시인이 마냥 기계를 세우는 것이 아닌지 의심한다. 거듭되는 실패 끝에 노동자는 결국 알아버린다. 사장 아버지는 끝내 만족하지 않을 것임을. 자신이 허리를 펴지 않고 화장실을 가지 않아도 결코 인정받지 못할 것임을.
 

이주노동자 ⓒ 이재성

 
우리 사회는 이주자가 어떤 과정을 거쳐 여기 일하러 왔는지 관심 두지 않는다. 어떤 미래를 꿈꾸는지 알고자 하지 않는다. 알 필요도 없다. 소용이 다하면 국경 밖으로 내치고 새로운 노동자를 들여오면 그만이다. 가까이서 태어나고 늙어가고 죽는 것을 바라볼 필요가 없다.¹

이런 표현은 전혀 과하지 않다. 실제 고용허가제는 18~39살 사이의 노동자를 3년 단위로 교체하는 제도이다. 원칙적으로 사업장 이동을 허용하지 않고, 가족동반을 허용하지 않으며, 정주 또한 허용하지 않는다. 차별 없이 적용해야 할 근로기준법의 일부 조항은 망설임 없이 유예한다. 짧은 시간 일 시키고 내보낼 것이므로 사회통합정책에서도 배제한다. 성원권을 인정할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무엇하나 온당치 않다.

이주자는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이주민, 이주노동자, 결혼이주자, 귀환 동포, 난민, 그리고 그 자녀들. 결혼이주자에 대해서는 다른 대접을 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그것은 한국인과 혼인관계가 유지되는 한에서 그럴 뿐이다. 혼인관계가 파탄나면 여지없이 내몰린다. 이주자들은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나 이 사회는 호락호락 허용하지 않는다. 노동력을 뿌리까지 뽑아 쓰는 동시에 꼼짝달싹 못하는 피압박 계급으로 묶어 놓고, 함부로 동정의 대상으로 삼는다. 때론 가차 없이 민폐 덩어리로 취급한다. 시인의 말을 다시 들어보자.
 
결코 패배하지 않았음에도/당신의 눈에는 한참 부족한/당신의 마음에는 언제나 패자인/불행한 사람/그것이 바로 '나'입니다 ('실패한 노력' 중에서)

이주자는 따뜻한 숨을 쉬고, 웃고, 사랑하며,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주체이고자 하지만, 그것은 이 사회가 알 바 아니다.

불편할 수도 있는 이야기

우리사회에 이주자가 들어온 지 30년이 훌쩍 넘었다. 그 수가 꾸준히 늘어 지금은 인구의 약 4%에 해당한다. 앞으로는 더 가팔라질 인구 구조 변화와 인구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많은 이주자를 받아들이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처럼 이주자를 잠깐 쓰고 버려도 되는 일회용으로 여기는 것은, 이제는 정말 곤란하다.

어떤 자세로 이주자를 초대할 것인가에 대한 원칙을 이제라도 세워야 한다. 그 원칙에는 이주자가 안고 오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 그의 일생에 대한 환대가 담겨야 할 것이다.² 이주자의 존엄에 대한 인정, 평등한 분배와 인권과 다양성 존중이 녹아 있어야 할 것이다. 이주자와 더불어 사회적 동질성을 찾아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함께 미래를 구상해 가야 할 것이다.
 

귀환이주노동자 워크숍 링크업 ⓒ 아시아인권문화연대

 
이런 현실과 바람을 담아 우리는 지금 여기 '이주자의 삶'을 기록하고자 한다. 살아남으려 열성을 다하고 자존하려 애쓰는 이주자의 삶, 발 걸려 넘어질 때마다 재게 일어나 묵묵히 살아내는 이주자의 삶을 오롯이 드러내고자 한다. 한동안 이어질 이 기획이 어쩌면 불편할 수도 있다. 차별당하는 삶이 자주 드러날 것이고, 고단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다. 굴곡진 생애사가 짜증날 수도 있고, 뭐라도 해줘야 할 것 같아 마음에 부담이 생길 수도 있다. 혹은 이주자의 존재 자체가 두려워질 수도 있다.

설사 그렇더라도 접어두지 말고 계속 함께 하기를 청한다. 이주자는 저어한다고 지워질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기록이 제대로 역할을 한다면, 그동안 무심코 지우려 했던 이주자가 분명한 온기를 가진 사람으로 새로이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함께 할 당신을 환대한다!

¹ 이주노동자들은 불사(不死)의 존재, 끊임없이 대체 가능하므로 죽음이란 없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태어나지도 않으며, 양육되지도 않으며, 나이 먹지도 않으며, 지치지도 않으며, 죽지도 않는다. 그들은 단 하나의 기능-일하는 것-을 가질 뿐이다. 그들의 삶의 다른 모든 기능들은 그들의 출신국가의 책임이다. 존 버거 <제7의인간>
² 정현종 <방문객>

* 필자 소개 : 이란주는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다. 저서로 <말해요, 찬드라> <로지나 노, 지나> 등이 있다.  


*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 사람들 _ 이주자의 삶을 기록하다> 연재는 사회적 소통과 대화의 문화를 만들어가려는 익천문화재단 길동무가 주관하고, 12명의 이주인권활동가와 작가들이 함께한다. 필진은 다음과 같다. 고기복(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 대표), 김종필(시인), 반수연(소설가), 부희령(소설가), 우삼열(아산이주노동자센터 소장), 이경란(소설가), 이란주(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 이소연(지구별살롱 대표), 이수경(소설가), 정은주(지구인의 정류장 활동가), 홍주민(한국디아코니아 대표), 희정(기록노동자). (이상 가나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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