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1.16 11:13최종 업데이트 21.11.16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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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전투의 주역 홍범도 장군이 8월 15일 광복절에 귀향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방현석 소설가의 '홍범도 실명소설 <저격>'을 주 2회(화요일, 금요일) 연재합니다. [편집자말]

   

 

3장
 
사람들은 나의 순결을 염려하고 걱정했다.
나는 그 염려와 걱정 뒤에 도사린 것이 무엇인지 아홉 살에 깨달았다.
그것이 조선에서 태어난 여자들의 운명이었다.
나는 내 남자라고 해서 다를 것이라고 믿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을 떠났다.
조선에서 내가 지켜야 할 것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 백무아 <비망록>


1

언진산맥에 다시 가을이 왔다. 총령에서 맞는 세 번째 가을이었다.
째쟁 째쟁.
쉴 참을 알리는 쇠북소리가 총령에 메아리쳤다. 비스듬히 능선을 따라 내려가며 닥나무를 잡아나가던 고공과 일꾼들이 일제히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3조장을 맡은 나도 낫질을 멈추고 허리를 폈다. 나무 그늘을 찾아들려는데 직공장 유해생의 쇳소리가 뒷덜미를 잡았다.


"돼지처럼 자빠져 쉴 생각말고 낫부터 제대로 별러! 시퍼렇게."
닥나무 언덕에 뜬집으로 높이 지어 올린 경비막에 버티고 선 유해생이 인부들을 굽어보았다. 직공장 유해생은 경비막에 비스듬히 드러누워 낮술을 마시고, 궐련을 태우거나 낮잠을 자는 것이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인부들의 손이 느려지는 순간은 기가 막히게 알았다. 인부들의 허리가 굳고 팔에 힘이 빠지기 시작하면 어느새 일어나 소리를 지르며 일을 다잡았다. 쉴 참에는 인부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닥나무 무더기가 얕은 조의 인부들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이렇게 일하고도 아가리에 들어갈 밥이 생기겠어!"
그의 욕을 듣지 않으려는 고공과 일꾼들이 숫돌을 찾아들고 낫을 갈았다. 직공장의 같잖은 꼬락서니를 보지 않으려고 돌아서던 나는 금희네와 눈길이 마주쳤다.
"올해는 닥나무가 아주 잘 됐네요."
한 짐 맞춤하게 더미더미 쌓인 닥나무가 한결같이 미끈했다.
"무철씨도 이제 여기 사람 다 됐네. 닥도 볼 줄 알고."

3조에 묶인 금희네가 나를 바라보며 말을 받았다. 총령 조지소에서 내 이름은 백무철이었다. 나를 총령으로 보내면서 오누이로 소개하라고 한 것은 백무아였고, 백무철이란 이름을 지은 것은 나였다. 오누이가 되려면 성과 돌림자가 같은 것이 당연했다. 백무현, 백무아, 백무철. 그렇게 이름을 불러보니 우리가 정말 형제인 것 같았다.
"말으 제대로 해야지비. 기래가지고서리 무시기 총령 사람이간."
금희네의 말에 어깃장을 놓은 것은 장진댁이었다. 함경도 장진 출신인 장진댁은 조지소에서 손끝이 가장 매운 고참 고공이었다.

"왜요?"
나는 장난스럽게 눈을 껌뻑이며 장진댁에게 물었다.
"닥나무에 살이 붙었는지 아인지르, 으째 나무르 잡아봐야 알간?"
장진댁은 이마의 땀을 훔치며 내게 되물었다. 나는 닥나무 더미와, 닥나무를 쪄낸 자리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닥나무의 외피는 윤기가 났고 내피는 두툼했다.
"피륙이 아니면, 뭘 보고 알아요?"
장진댁은 태백준령에서 갈라져 나온 언진산맥의 정상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언진산맥의 등줄기를 타고 내려가는 장진댁의 눈길을 쫓아갔다. 언진산의 꼭대기에서 시작된 단풍은 어느새 가덕산과 요동산을 빨강, 노랑으로 물들였다. 총령의 단풍도 밤새 7부 능선까지 내려와 있었다. 장진댁은 유난히 주홍색이 짙은 총령의 단풍을 턱으로 가리켰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녀는 다시 턱으로 언진산의 정상을 가리켰다.
"저기서 드는 단풍 때깔만 보고도 닥살 두께 정도는 알으야지비. 기래야 총령 사람 아이겠슴."
비가 나무의 뿌리를 적시는 봄, 바람이 나무의 줄기를 키우는 여름, 태양이 나뭇잎의 색깔을 바꾸는 가을, 눈이 나뭇가지를 꽃으로 만드는 겨울. 사철을 나무에서 벗겨낸 피륙으로 백지를 만드는 고공으로 서른두 해를 살아온 장진댁을 사람들은 '총령 귀신'이라고 불렀다. 총령의 지막에서 그녀가 모르는 일은 없었다.
"그건 총령 귀신이 되어야 알겠지요."
"아이지비. 구신이 무시기 때문에 단풍으르 보겠슴. 봄비 소리만 들어도 올해 단풍 때깔으 알고, 겨울 눈포레만 보고도 내년 닥낭구의 피륙으 다 알잖겠슴."

신포수는 단풍을 따라 산짐승이 어떻게 털갈이를 하며 변색을 하고, 겨울 준비를 하는지 내게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는 것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장진댁은 신포수와 마찬가지로 사시사철을 산에서 살아왔지만 반대였다. 그녀는 움직이는 것에 대해 입에 올리지 않았다, 짐승이든 사람이든. 그녀는 나무와 풀, 종이가 아닌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자리를 피했다. 비와 바람, 태양이 나무의 피질과 단풍의 색상에 어떻게 간섭하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았지만 사람의 일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작은제미는 왜 앞길이 구만리 같은 사람을 지막 귀신으로 만들려고 그러세요?"
작은제미, 장진댁은 여자 고공 모두의 작은 엄마였다. 금희네가 벌 받는 사람처럼 눈을 껌뻑이며 장진댁의 얘기를 듣고 있는 내 등을 떠밀었다.
"그늘에 가서 좀 쉬어요."
숫돌에 낫을 문질러 날을 세운 남자 인부들은 고공이고 일꾼이고 할 것 없이 삼삼오오 그늘을 찾아 들며 궐련을 피워물었다. 목을 축이지 못한 이들은 물동이 앞에 줄을 서 있었다. 아직 뼈가 여물지 않은 어린 일꾼들은 낫을 아무렇게나 내던지고 맨바닥에 드러누웠다.
나도 물을 마시려고 줄을 서는데 조장이라고 물을 가득 담은 표주박을 억지로 손에 쥐어주었다. 나는 두 모금만 마시고 순서를 기다리는 고공에게 표주박을 넘겨주었다.
"계집들은 내려가서 물동이 채워다 놓지 않고 뭐해."
직공장 류해생이 소리를 지르며 다가왔다. 졸참나무 등걸에 기대앉아 홍갈색 단풍이 든 나뭇잎 사이로 새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던 나는 우리 조의 물동이를 돌아보았다. 줄 선 사람이 없는 걸 보니 물이 남은 모양이었다. 물이 떨어진 조의 여자 일꾼들이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계곡으로 내려갔다.

"3조 계집들은 왜 안가?"
직공장의 갈라지는 쇳소리가 귀청을 긁었다.
"우린 아직 남았어요."
"일을 안 했나? 왜 3조만 남아?" 나는 직공장이 보라고 우리가 베어놓은 닥나무 무더기를 돌아다보는 시늉을 했다. 다른 조에 뒤질 것이 없었다.
"이걸 가지고 남았다는 거야?"
류해생은 물동이에 남은 물을 쏟아버렸다.
"이 조의 계집들은 왜 이렇게 양심이 없어? 이렇게 쉴 참에 실컷 쳐놀다가, 일하다 말고 물 이러 가려는 도둑년 심보를 내가 모를 줄 아나."

직공장은 우리 조의 나머지 물동이 세 개도 왈칵 넘어뜨려 남은 물을 모두 쏟아버렸다. 피가 거꾸로 흘렀지만 나는 참아야 했다. 하극상을 일으키고 살인죄를 진 채 탈영한 도망자라는 사실을 나는 참을 인(忍)자와 함께 하루에도 몇 번씩 되씹었다.
나는 여자 일꾼들이 힘들게 이고 올라온 물을 허투루 버리지 못하게 했다. 마실 만큼만 뜨고, 마시다 남은 물은 다음 사람이 마시게 했다. 그래서 쉴 참에도 쉬지 못하고 물을 이러 내려가는 다른 조의 여자 일꾼들과 달리 우리 3조의 여자 일꾼들은 아침 점심으로 두 번만 물을 이고 오면 되었다. 날마다 되풀이되는 직공장과 사장의 행패를 외면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그런 것이었다. 물을 쏟고 넘어진 항아리가 나인 것만 같아 머리꼭지에서 김이 났지만 나는 가슴 속에 참을 인(忍)자 일곱 획을 쓰면서 피를 식혔다.

쉬려고 앉았던 여자 일꾼 셋이 풀었던 머릿수건을 집어 들고 일어섰다. 그중에 하나는 이제 열서넛 되어 보이는 애였다. 여자 일꾼들의 순서가 그렇게 되는 모양이었다. 물동이를 이기에는 여자애의 키가 너무 작았다.
"얘, 넌 쉬어라."
사스래나무 그늘에 앉았던 금희네가 일어서며 여자애를 불렀다. 금희네는 백지를 다듬고 다리는 도침공장의 고공이었다. 조지소의 각 공장에 고용되어 사철 내내 일하는 고공 여자들은 물동이를 이지 않았다. 물동이는 가을걷이를 끝내고 한철 벌이를 하려고 온 여자 일꾼들의 몫이었다.

금희네는 머리에 인 물동이를 잡은 왼쪽 팔을 따라 올라간 저고리 아래로 불은 젖이 삐져나오는지도 모르고 언덕을 걸어내려갔다. 거칠게 유약을 칠해 막 구운 싸구려 물동이는 물을 채우지 않아도 무척 무거웠다. 한 돌이 지나지 않은 젖먹이를 두고 일을 해야 하는 금희네라고 쉬고 싶지 않을 리 없었다. 장진댁이 일어서며 뭐라고 하려다 말고 도로 주저앉았다. 돌배나무 아래 앉은 장진댁의 한숨이 입 모양만으로도 귓전을 울렸다. 오지랍 넓은 년.

금희네는 맨 마지막으로 물을 이고 올라왔다. 물동이를 잡은 두 손을 따라 올라간 저고리 아래로 불어오른 양쪽 젖가슴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번갈아 고개를 내밀었다. 직공장 유해생의 끈적한 눈길이 금희네의 몸을 훑었다. 직공장이 요즘 들어 부쩍 금희네에게 지분거린다고 고공들이 쑤군거렸다. 장진댁이 혀를 끌끌 차며 금희네의 앞을 가리고, 그녀가 이고 온 물동이를 받아 내렸다.

류해생이 손에 든 쇠북을 친 것은 금희네가 자신이 이고 온 물동이에서 막 물을 떠마시려는 순간이었다. 작업개시를 알리는 신호였다. 금희네는 결국 잠시도 쉬지 못한 채 다시 낫을 잡았다. 그늘에 아무렇게나 드러누웠던 남자들은 여자들이 이고 온 물동이의 물을 한 모금씩 서둘러 마시고 자리를 찾아갔다.

조장인 나는 조원들의 뒤를 오가며 너무 굵어서 찌지 못하고 남긴 닥나무를 잡았다. 틈이 생기는 대로 어린 여자애와 금희네 사이로 가서 일을 줄여주었다. 둘 다 애처롭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린 여자애는 품삯이 없었다.
"몇 살이냐?"
"열세 살임다."
내 열세 살은 새경 없는 꼴머슴이었다. 이 아이의 열세 살도 품삯 없는 일꾼이다. 하루 세끼 밥을 얻어먹고 고공들의 방에서 칼잠을 자는 것이 이 아이가 종일 일한 대가의 전부였다. 같은 또래의 사내애들은 한 철 일한 삯으로 장지문 하나 바를 백지나마 받았지만 여자애들은 그것조차도 없었다.

"식구들 보고싶지 않아?"
"아입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녀석의 눈은 눈물로 그렁그렁했다. 괜한 걸 물었다. 입 하나 덜려고 뼈가 여물지도 않은 어린 딸을 벌채 판에 내보낸 집안의 사정이 오죽하겠는가.
"천천히 해."

무거운 무쇠낫을 종일 들고 있기도 힘들 나이였다. 나는 녀석의 앞에 있는 닥나무들을 손이 보이지 않게 잡아나갔다. 녀석의 앞으로 세 걸음을 깨끗이 치워놓고 나는 금희네의 옆을 서둘러 비워나갔다.
금희네는 나이가 나보다 겨우 한 살 위인데도 아이가 셋이나 되었다. 셋을 먹이기 위해 젖먹이를 떼어놓고 도침공장에서 고공으로 일했다. 백지를 두드려 펴고 다리고, 포장하는 것이 그녀의 일이었다. 고공들은 조지소의 작업 공정에 따라 무지공장과 초지공장, 도침공장에 배치되어 일을 했다. 나도 원래 소속은 백지를 뜨는 초지공장이었다. 날이 밝을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종일토록 고단하게 일하는 고공들었지만 지금 하는 벌채를 가장 힘들어했다. 닥나무를 잡는 가을에는 50명 넘는 조지소의 고공 모두가 벌채작업에 동원되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한철 벌이 일꾼 30여 명을 더 썼다. 닥나무 벌채는 첫눈이 내리기 전에 끝내야 했다.

"조금이라도 굵은 놈은 남겨두고 지나가세요."
한 번에 베지 못한 닥나무를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금희네는 내 채근에도 제 몫을 쉬 남기려고 하지 않았다.
"제가 처리할 테니까, 그냥 앞으로 나가라니까요."
"밥이 어디 그저 입에 들어오나요?"
나는 일을 멈추고 땀으로 범벅이 된 채 낫질을 계속하는 열세 살 여자애와 스물네 살의 금희네를 차례로 지켜보았다. 어린 여자애의 현재는 꼴머슴이었던 내 열세 살이었다. 그러나 열세 살 여자애의 미래는 나조차도 아닌 스물네 살 고공 금희네였다. 눈앞이 흐려져서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방현석은 소설가다. 소설집 <사파에서>, <세월>, <내일을 여는 집>, <랍스터를 먹는 시간>, <새벽 출정>과, 장편소설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 <십 년간>, <당신의 왼편>이 있다. 산문집 <아름다운 저항>, <하노이에 별이 뜨다> 와, 창작방법론 <이야기를 완성하는 서사패턴 959> 등을 썼다. 신동엽문학상(1991), 오영수문학상(2003), 황순원문학상(2003) 등을 받았다. 현재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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