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1.09 07:05최종 업데이트 21.11.09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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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선거를 1년여 앞둔 지난 2일 미국에서 여러 단위의 선거가 열렸다.

미국은 4년 주기의 대선(presidential election)이 열리는 해에 상원의 3분의 1, 하원 전체 그리고 일정 수의 주지사 선거(2020년 경우 11곳)가 함께 열린다. 그리고 대선 2년차 중간선거(midterm election)라 불리는 선거에서 상원의 다른 3분의 1, 하원 전체, 그리고 역시 일정 수의 주지사 선거(2022년 경우 36곳)를 치른다. 2년 후 대선에서 역시 같은 형식이 반복된다.


이 리듬으로 선거를 치르면 대통령 임기는 4년, 상원의원 임기는 6년, 하원의원 임기는 2년, 대부분의 주지사 임기는 4년이 된다. 뉴햄프셔와 버몬트에서는 2년마다 주지사 선거가 열리며 따라서 두 곳 주지사의 임기는 2년이다. 연방 상하원 선거와 달리 주지사 선거는 양대 선거 해에 열리지 않는 곳도 있다.

그래서 홀수의 해에도 일부 주지사 선거(off-year election)가 열리는데 올해는 뉴저지, 버지니아 두 곳이 해당되며 2023년에는 켄터키,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세 곳에서 주지사 선거가 예정돼 있다. 올해 두 곳의 주지사 선거가 열렸던 2일에는 일부 보궐선거와 지방 주민투표도 함께 실시됐다.

홀수 해 선거, 버지니아 뺏긴 민주당

큰 선거가 없는 홀수의 해에는 따라서 해당 주의 주지사 선거가 미국 정치의 흐름을 가늠할 중요한 기회로 제공된다. 뉴저지, 버지니아 모두 민주당 출신 주지사가 버티던 곳인 만큼 이번 선거는 민주당의 수성이냐, 공화당의 탈환이냐가 관건이었다.

알려진 대로 뉴저지에서는 민주당이, 버지니아에서는 공화당이 승리하면서 1대1 승부였지만 민주당이 가지고 있던 두 곳 가운데 하나를 빼앗긴 만큼 사실상 민주당의 패배였다. 조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뼈아픈 결과이며 의회 권력을 좌우할 내년 중간 선거를 앞둔 민주당에는 경고등이 켜진 셈이다.

이번 선거에서 특히 관심을 끌었던 곳은 버지니아다. 양당이 온 힘을 다한 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했기 때문이다. 4년 전 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했고 지난해 대선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의 손을 들어준 버지니아였기 때문에 민주당의 충격은 클 수밖에 없다.

버지니아는 몇 달 전 여론조사에서도 민주당 우위가 점쳐졌던 곳이다. 선거가 가까워지면서 격차가 좁혀지더니 초접전 양상으로 변했다. 위험을 감지한 민주당 수뇌부가 총력 지원을 했고 바이든 대통령, 오바마 전 대통령까지 지원 유세를 했지만 민심을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다.
 

버지니아 주지사에 당선한 글렌 영킨이 버지니아주 샹틸리에서 열린 당선 축하장에 도착했다. 2021.11.3 ⓒ 연합뉴스

 
공화당 후보로 나선 글렌 영킨(Glenn Youngkin)은 1966년 생으로 사모펀드 회사를 운영해 큰 재벌이 됐지만 정치 경험은 전무했다. 반면 민주당 후보 테리 매콜리프는 이미 한 차례 버지니아 주지사를 역임한 인물이다. 인지도에서도 민주당 후보가 앞선 선거였다.

이처럼 정치적 파장이 큰 만큼 이번 버지니아 선거는 세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더욱이 그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도 결코 낮지 않다. 민주당 연방정부 입장에서는 아프가니스탄 철수 이후 수세적 국면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다 내부의 균열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의 공화당 승리를 일부 언론에서는 '트럼프의 귀환'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피상적이고 섣부른 해석이다. 공화당의 글렌 영킨 후보는 선거 기간 동안 철저히 트럼프 전 대통령과 거리를 유지하는 전략을 택했다. 심지어 유세 중 그의 입에서 '트럼프'라는 이름은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공화당 승리가 트럼프 덕? 그 반대다

2016년 이후 공화당의 주요 행사에 등장하던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표어도 이번 선거에서 보이지 않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 역시 영킨 후보에 대한 지지 의사와 메시지를 공개했지만 그와 같은 시간 또는 같은 공간에 함께 하는 일은 피했다.

버지니아 공화당 선거 캠프는 이처럼 '트럼프의 귀환'은커녕 트럼프와의 차별화, 트럼프를 배제한 공화당을 띄우는 데 주력했고 그 전략은 주효했다. 선동적 구호보다 민주당 정부의 실정을 부각시키면서 정책적 승부를 택한 공화당은 그렇게 이번 선거를 승리했다.

공화당 입장에서는 이 결과가 상당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지난해 대선 패배 이후 민주당에 이길 수 있는 효과적인 승리 공식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그림자 걷어내기와 정책 대결로의 전환이 그것이다. 경제, 외교 분야에서 분명하지 않은 양당의 노선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사회와 문화 분야 정책 차별화를 확인한 것은 공화당으로서는 큰 수확이다.

앞서 지난 7월 텍사스의 공화당 주정부는 임신 여성의 낙태를 사실상 금지시키는 '심장 박동법'을 발효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이를 저지할 마땅한 법적 근거를 아직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위헌 소지가 있는 이 법을 무력화하기 위해 민주당은 연방 정부 차원에서 소송을 예고했지만 쉽게 끝나지 않을 싸움인 것은 분명하다.

이번 선거에서도 공화당은 유사한 전략을 택했다. 주민들의 삶에 더 가까운 영역에서 이념 논쟁에 불을 지피는 것이다. 이런 전략은 공화당의 주요 지지층을 트럼프 대통령 당시의 '저학력 백인 남성'에서 '중산층 보통 가정'으로 돌려놓을 수 있는 성과를 얻게 했다.

민주당으로서는 싸움의 장을 쉽지 않은 곳으로 유인 당한 셈이 됐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와 같은 피상적 구호가 아닌 삶의 구체적 영역에서의 대결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미국 정치권은 바야흐로 '문화 전쟁'의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공화당의 승리 공식... 문화전쟁, 이념적 반격

글렌 영킨 공화당 후보가 중점을 둔 이번 선거 주요 전략은 교육의 현장에 있었다. 소위 비판적 인종 이론(Critical Race Theory, CRT)라 불리는 교육철학에 대한 이념적 반격이 그것이다. '비판적 인종 이론'은 원래 1970년대부터 미국 사회의 불평등에 대한 원인을 놓고 법학계에서 시작된 이론이다.

멀리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 이론은 사회의 불평등이 단지 개인의 일탈이나 잘못된 판단에서가 아닌 사회의 구조적, 제도적 모순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미국 사회는 건국 초기부터 백인 중심의 정복주의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인종적 불평등 가능성을 안고 있다.

건국 당시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약탈과 정복의 역사를 신의 명령으로 합리화한 것이나 흑인 노예 운용을 제도화해 경제 성장의 근간으로 삼은 것 등도 역사 속의 제도적 인종 차별에 해당한다. 그렇게 일상화된 백인우월주의가 미국 사회에 구조적으로 뿌리 내리고, 그것이 개인의 모든 무의식적 행동반경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시민들이 CRT(Critical Race Theory)에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 알라미토스 통합 교육구 건물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2021.5.11 ⓒ 연합뉴스

 
이 이론의 지지자들은 2020년 발생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역시 플로이드를 무릎으로 찍어 누른 데릭 쇼빈 경찰관 개인의 문제에 국한시켜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말처럼 이 사건은 편협한 믿음과 차별에서 비롯됐으며 보통이 되는 상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측은 이러한 사고와 교육은 특정 사건과 관계없는 일반인들을 죄인 취급하며, 미국 역사의 정통성마저 부인하게 만든다고 비판한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의 경우 이 사건을 사회문제화 함으로써 오히려 불필요한 인종 갈등을 더 야기한다고 주장한다.

법학계에서 출발한 이 논쟁은 어느새 미국 정치의 최대 쟁점이 됐으며 주로 미국의 보수 진영에서 진보 이념을 공격하는 주 메뉴로 활용되고 있다. 'CRT'라는 단어의 노출 역시 폭스 뉴스와 같은 우파 성향의 매체에서 월등하게 많으며, 이번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서도 공화당 글렌 영킨 후보는 민주당을 향한 주 공격 포인트로 활용했다. 그리고 그 전략은 성공했다.

공화당과 미국 보수 세력의 문화전쟁 선전포고는 이처럼 근본적으로 낯선 대상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과 공포심에 대한 호소에 근거하고 있다. 실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국민의 다수는 인종 차별 문제가 사회적 모순에 근거한다는 입장에 동의하면서도 CRT 교육에는 반대하는 모순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미국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CRT를 공산주의 이념으로 몰고가는 모습도 관찰된다. 원론적으로는 평등과 공정한 세상에 대해 지지하고 동경하는 학부모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낯선 용어와 낯선 이론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자녀들이 학교에서 해당 교육을 받는 것에 대한 반대 의견을 갖는다는 것이다. 

공화당은 이 점을 정치적 전략으로 활용하면서 점차 대상을 확산하고 범위를 확대하려 하고 있다. 이미 공화당이 장악한 5개의 주에서는 CRT교육이 금지됐다. 이번에 주지사가 바뀌게 될 버지니아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반면 민주당 내 진보세력 입장에서는 사회변혁 실현 여부를 둘러싼 현실 정치에서의 전략적 고심이 커지면서 평등 이념을 둘러싼 경직된 껍질을 어떻게 제거하느냐가 최대 당면 과제가 되고 있다. 이를 제거하지 못하면 그들은 끝없는 비생산적 정쟁 속에 묻히게 될 것이다.

무거운 숙제

버지니아 선거는 이처럼 진보 담론의 이론적 경직성을 둘러싼 해묵은 고민을 다시 한 번 노출하게 된 계기가 됐다.

물론 이번 선거를 좀 더 단순하게 봐야 한다는 반론도 가능하다.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는 이번뿐 아니라 거의 항상 집권당에 반대하는 결과를 만들어 왔다. 일부 정치 분석가는 버지니아가 민주당의 아성이었고 이번에 그 아성이 무너졌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틀린 분석이다.

실제 버지니아에서는 1977년 이래 12번의 주지사 선거에서 2013년 단 한 차례를 제외하고 44년 동안 늘 야당이 승리해왔다. 2013년 오바마 대통령 체제에서 테리 맥콜리프(이번 선거의 민주당 후보)가 당선된 것이 유일한 여당 승리였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서 여름까지 민주당이 우세를 보였던 여론조사가 의외의 상황이었으며 공화당의 승리로 끝난 최종 결과가 오히려 버지니아의 전형적 정치 성향에 맞는 측면이 있다.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오바마 전 대통령과 함께 '버지니아의 저주'를 깰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 것이 아쉽다면 아쉬운 결과인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새벽 유럽 방문을 마치고 워싱턴DC의 백악관에 도착, 사우스론을 걸어가며 마스크를 벗고 있다. 2021.11.3 ⓒ 연합뉴스


공화당 입장에서도 이번 선거의 결과에 대해 샴페인을 터뜨리기엔 민망한 측면이 있다. 내년 중간선거, 3년 후 대선을 준비해야 하는 공화당은 승리의 축배보다 풀어야 할 고민거리에 집중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민주당은 '경직된 이론'에 대한 무조건적 거부 반응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공화당은 '트럼프주의'에 대한 무조건적 거부 반응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이것이 이번 선거를 통해 양당에 주어진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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