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1.06 19:36최종 업데이트 21.11.07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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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맹방해수욕장에서 자전거를 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 권우성

 
동해안 자전거 여행자들이 그렇듯이, 나도 쪽빛 바다를 배경으로 한 풍경만을 상상했다. 하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니었다. 하늘이 잿빛으로 변하자 바다는 푸른빛을 잃었다. 성난 파도는 먼 바다에서도 하얀 이를 드러내면서 이죽거렸다. 큰 파도가 해변을 덮칠 때마다 모래와 뒤섞인 바닷물은 황토 빛으로 뒹굴었다.

묵호항에서 추암 촛대바위로 가는 길. 바다는 험상궂었지만, 바람이 등 뒤에서 불었고 길도 평탄했다. 쪽빛 낭만을 잃은 대신 실속은 챙겼다. 동해안 철길 옆의 해안로를 타고 15km를 달려 추암역 아래쪽 굴다리를 지나니 촛대바위 해변이 나왔다.

[추암 촛대바위] 파도 위를 가볍게 걷는 미인의 걸음걸이
 

강원도 동해시 추암촛대바위. ⓒ 권우성


거대한 화석 전시장, '한국의 석림'으로 불릴만했다. 물속에서 불쑥 솟은 바위 숲이 나왔다. 하나같이 몸통에 금이 쩍쩍 가 있다. 수천 년 동안 파도와 싸운 흔적이다. 거센 파도가 연거푸 몸통을 치자 물기둥이 치솟고 물보라가 일었다. 석회암이 파도에 깎여 만들어진 암석기둥이 산재한 이곳은 국내 유일의 해안 라피에(lapies)다.

애국가 영상의 첫 소절 배경 화면으로 쓰이기도 했다. 250여 년 전, 단원 김홍도는 금강사군첩(金剛四郡帖)에 이 비경을 먹으로 새겼다. 그 앞에 서니 짧은 문장력으로는 뭐라 헤아릴 길이 없었다. 하지만 조선 전기에 30여 년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한명회는 도체찰사(都體察使)로 있을 때 이곳에 와서 이렇게 읊었다.


"혹은 불끈 솟아오르고 혹은 구렁이 나고 절벽을 이룬 것이 바다 가운데 있다. 그 위는 넓어서 수십 명의 사람이 앉을 수 있고 기암괴석이 좌우로 늘어서서 흡사 사람이 눕기도 하고 비스듬히 서 있기도 하는 것같이 또는 호랑이가 꿇어앉은 것 같기도 하고 용이 꿈틀거리는 것 같이 천태만상을 이루었으며 소나무가 우거져서 그 사이로 비치니 참으로 조물주의 작품이라 하겠다."(한명회의 凌波臺記)

이곳의 명칭은 '추암'(湫岩), 송곳 바위를 의미한다. 촛대바위를 보고 지은 이름이다. 한명회는 이게 속되고 촌스럽다면서 물결 위를 가볍게 걸어 다니는 미인의 걸음걸이를 뜻하는 '능파대'(凌波臺)'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이날 높은 파도 앞에 우뚝 서 있는 기암괴석들은 마냥 아름답지 않았다. 기괴하면서 웅장했고, 아름다웠다.

강원도 동해시 추암해변과 기암괴석 사이로 보이는 '북평 해암정'(海岩亭). ⓒ 권우성

추암 촛대바위 해변의 기암괴석을 병풍 삼아 세워진 ‘북평 해암정’. ⓒ 김병기

 
안내소 옆에 자전거를 세워둔 채 석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담한 정자가 눈에 띠었다. 바로 뒤쪽에선 거센 파도가 기암괴석을 때리면서 요란스런 물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위태로운 풍경을 병풍처럼 두른 채 태평하게 앉아 있는 '북평 해암정'(海岩亭). 자연 담장 너머엔 바다 정원이 펼쳐졌다. 누가 이런 절묘한 발상을 했을까?

삼척 심씨의 시조 심동로(沈東老)가 고려 공민왕 10년(1361) 관직을 그만두고 추암으로 내려와 건립한 곳이다. 후학 양성과 풍월의 공간이었다. 해암정 문을 열고 들어서니 바로 코앞에서 몰아치던 파도 소리가 잦아들었다. 정자 안쪽에도 시인묵객들이 새긴 현판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우암 송시열이 덕원으로 유배되어 가는 도중에 들러서 남긴 글도 보였다.

'草合雲深逕轉斜 풀은 구름과 어우르고 좁은 길은 비스듬히 돌아든다'

한명회처럼 유유자적하는 문체는 아니지만, 짧은 글에 추암해변의 아름다움과 권좌에서 쫓겨나 변방으로 향하는 심경까지 녹였다.

추암 촛대바위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대가는 충분했다. 시속 20km 정도로 질주하는 자전거 속도에서 잠시 이탈하지 않고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부산 을숙도까지 갈 길은 멀지만, 그 뒤에도 나는 수시로 자전거에서 내렸다.

[실직군왕릉&죽서루] 벼랑 끝으로 올라간 추암해변?

추암해변을 나와 관동팔경의 하나인 죽서루로 향했다. 증산 해수욕장을 지나 수로부인공원이 있는 와우산(34.6m)을 넘자마자 삼척 시내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죽서루로 가기 전에 다시 한 번 멈춰 서서 볼 역사가 있었다. 통일신라시대 김위옹(金渭翁)의 능인 '실직군왕릉'. 강원도 기념물 제15호이다.

감원도 삼척시 실직군왕릉(통일신라시대 김위옹의 능). ⓒ 권우성

 

감원도 삼척시 실직군왕릉(통일신라시대 김위옹의 능). ⓒ 권우성

 
삼척의 옛지명은 '실직'이었다. 삼한시대 진한지역의 12개 '소국'(작은 나라) 중의 하나인 '실직국'에서 따온 명칭이다. 김위옹은 삼척 김씨(三陟金氏)의 시조이며, 신라 경순왕의 손자였다. 실직군왕이란 고려 태조 왕건이 신라 경순왕의 복속을 받아들여 책봉하면서 붙여진 명칭이다.

왕릉 주변에서 무덤을 지키는 호석과 문인석, 석물들이 돌이끼를 뒤집어 쓴 채 삼척 시내를 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2000년 전에는 눈앞에 보이는 풍경이 하나의 고대국가였을 것이다. 당시 신흥국 신라에 의해 멸망한 잃어버린 왕국의 신하, 광대뼈가 움푹 패인 문인석의 뒤쪽 잔디에 주저앉아 올려다보니 백두대간 쪽에서 짙은 먹구름이 몰려왔다. 서둘러 자리를 떴다.

강원도 삼척시 죽서루. ⓒ 권우성

강원도 삼척시 죽서루. ⓒ 권우성

   
실직군왕릉에서 나와 600m 정도 내려오니 죽서루이다. 오십 구비 여울을 지나서 삼척시 서쪽을 흐르는 오십천이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절벽, 그 위에 세워진 누각이다. '죽서'란 이름은 누의 동쪽으로 '죽사'라는 절과 이름난 기생 '죽죽선녀'의 집이 있어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송강 정철은 관동별곡에서 죽서루를 이렇게 노래했다.

"진주관 죽서루 아래 오십천에 흐르는 물이 태백산 그림자를 동해로 담아 가니, 차라리 그 그림자를 한강의 남산에 대고 싶구나. 관원의 여행길은 유한하고 풍경은 내내 싫지 않구나. 그윽한 회포도 많고 나그네 시름도 둘 곳이 없다. 신선의 뗏목을 띄워 내여 북두칠성 견우성으로 향할까? 사선을 찾으려 단혈이라는 동굴에 머물러볼까?"

누대로 오르는 길은 추암해변 기암괴석을 절벽에 올려놓은 듯했다. 구멍이 뻥 뚫린 바위는 '용문바위'다. 죽어서 용이 된 신라 문무왕이 강변의 절벽을 아름답게 조각하고 승천할 때 이 바위를 뚫고 올라갔다는 전설이 서려 있다. 이 바위 위에 난 10여개의 구멍은 선사 시대 암각화이다. 거대한 뿌리로 바위를 움켜쥔 소나무도 있다.

강원도 삼척시 죽서루. ⓒ 권우성

 

강원도 삼척시 죽서루. ⓒ 권우성

 

강원도 삼척시 죽서루. ⓒ 권우성

 

죽서루 대나무숲 ⓒ 김병기

 
누대에서 내려다 본 옥빛의 오십천도 명품이지만, 내 눈길을 잡은 건 죽서루 기둥의 주춧돌이었다. 기둥 길이가 다 달랐다. 요즘 같으면 바위를 싹 제거한 뒤 번듯한 건축물을 올렸겠지만, 암석을 그대로 둔 채 그 위에 나무 기둥을 세웠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공존을 모색했던 정신이 엿보였다.

죽서루를 산책하고 나오는 길, 아기 고양이 세 마리가 오죽 사이에서 세상모르게 자고 있었다. "쏴르르~" 댓잎을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소리. 시원하게 뻗은 대나무 사이로 비친 하늘을 한번 올려다본 뒤 30년째 소머리만 삶았다는 국밥집에서 사골로만 우린 소머리국밥을 말아먹고 다시 페달을 밟았다.

[맹방 해수욕장] 명사십리에 곰솔 향기 가득하다

오십천을 타고 내려오니 또다시 '업힐'이 시작됐다. 그냥 걸었다. 기어를 최대한 낮춘 채 기를 쓰고 올라가야 한다는 마음을 내려놓으니, 오르막길이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고개를 오르다보니 바닷가의 까마득한 벼랑에 우뚝 선 펜션촌이 보였다. 시멘트 범벅이었다. 100년 뒤에는 어떤 모습일까? 죽서루와 대비됐다. 파괴와 공존도 이처럼 마음먹기에 달렸다.

한재 정상의 팔각정 ⓒ 김병기

 
한참을 걸어서 한재에 오르니 벼랑 끝에 팔각정이 보였다. 해발고도 102.6m에 있는 정자 위에 오르니 삼척항과 맹방해변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7번국도 옆으로 굽이굽이 이어진 삼척로를 따라 내리막길을 내달려 순식간에 맹방해수욕장에 도착했다. 길이 4km에 달하는 명사십리 해변인데, 코로나19로 인해 한산했다.

모래사장 위에 자전거를 눕혀두고 파도가 누그러진 해변으로 들어가 오랫동안 걸어온 발을 물속에 담가 식혔다. 맹방산림욕장으로 자전거를 끌고 들어가 해변이 보이는 정자 난간에 피곤한 발을 걸쳐둔 채 한참동안 혼자 누워 있었다. 바다는 어느새 쪽빛을 되찾았다. 명사십리는 곰솔 향기로 가득했다.

이날도 절반은 달렸고, 절반은 걸었다. 달리기만 한다면 스쳐지나갔을 풍경 속에는 켜켜이 쌓인 이야기가 있었다. 시간의 향기도 머물고 있었다.
 

강원도 삼척시 맹방해수욕장. 해수욕장 한 켠에 BTS(방탄소년단) 'Butter(버터)' 앨범 촬영 세트장을 재연해 놓았다. ⓒ 권우성

 

강원도 삼척시 맹방해수욕장. 해수욕장 한 켠에 BTS(방탄소년단) 'Butter(버터)' 앨범 촬영 세트장을 재연해 놓았다. ⓒ 권우성

 

강원도 삼척시 맹방해수욕장. ⓒ 권우성

 

기암괴석 병풍 삼은 '해암정', 절묘한 발상을 누가? 해안선 1만리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첫 행선지는 강원도 고성통일전망대부터 부산 을숙도 생태공원까지. 이 영상은 6편으로 묵호항부터 맹방해수욕장까지 두 바퀴 인문학 여정을 담았다. ⓒ 김병기

 
[내가 간 길]
허균·허난설헌 기념관-정동진-정동심곡 바다부챗길-약천 남구만 선생 시조비-논골담길-묵호등대-추암 촛대바위-실직군왕릉-죽서루-맹방해수욕장

[인문·경관 길]

약천 남구만 선생 시조비 : 망상해수욕장 인근의 약천마을에 세워졌다. '동창이 밝았느냐..."로 시작하는 시조는 교과서에도 실려 있어서 누구에게나 익숙하다. 남구만 선생이 전원생활을 하면서 지은 시조를 읊으며 당쟁이 격렬했던 조선 후기를 떠올려봄직하다.

추암 촛대바위 : 동해시 추암동에 있다. 촛대바위 주변에 솟아오른 거북바위, 두꺼비바위, 부부바위, 코끼리바위, 형제바위 등 기암괴석도 일품이지만, 그곳에 남긴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글도 명품이다.

실직군왕릉 : 강원도 삼척시 성북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김위옹(金渭翁)의 능으로 강원도 기념물 제15호이다. 삼한 시대 '소국'으로 이뤄진 고대국가의 면모를 떠올릴 수 있으며,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삼척 시내를 감상할 수 있다.

죽서루 : 강원도 삼척시 성내동에 있는 누각인데, 관동팔경 중에 유일하게 오십천이라는 강변 절벽에 세워졌다. 기암괴석과 맑은 강물, 그 위에 자연과 조화를 이룬 누각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보물 제213호이다.

[사진 한 장]
추암 촛대바위 출렁다리에서 본 능파대 풍경

[추천, 두 바퀴 길]
정동심곡 바다부챗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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