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1.05 13:15최종 업데이트 21.11.05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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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전투의 주역 홍범도 장군이 8월 15일 광복절에 귀향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방현석 소설가의 '홍범도 실명소설 <저격>'을 주 2회(화요일, 금요일) 연재합니다.[편집자말]

   


18

썩을 대로 썩은 평양군영의 하루는 지루하고 나른했다.


평양군영의 부패는 내가 군병시험을 볼 때보다 더 심했다. 그나마 군영을 군영 비슷하게 만들었던 드문 무관들조차 이제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내 마음에서 지우려고 애써도 정태신 파총의 모습이 자꾸 떠오르는 것은 그래도 그가 있는 곳은 군대 같았기 때문이었다. 될 리 없겠지만, 내가 무관이 된다면 닮고 싶었던 박한 초관. 그의 옆에 있으면 내가 군인이라는 사실에 긍지가 생기고 어깨가 으쓱했다. 군대의 사명감은 모란봉 자락에 묻은 지 오래고, 군율은 대동강을 따라 까마득히 흘려보내 버린 평양군영은 차라리 적막했다.

개인적인 불만은 없었다. 편하기로 따지면 군영에서 나보다 더 편한 군병도 드물었다. 나는 포수 조교관이었다. 교관이 있었지만 허울뿐이었다. 허구한 날 기생집에 들락이느라 바쁜 포수 교관 박민규는 얼굴 보기도 어려웠다. 무관들과 포수들에게 사격술을 가르치고, 사격장의 탄환을 관리하는 일은 모두 내 몫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일은 아니었다. 훈련을 제대로 하는 부대가 없으니 거미줄을 치우는 것이 사격장의 가장 큰 일이었다.

박민규 교관도 한동안 내게 사격술을 배워보려고 제법 열심을 냈다. 민란진압 작전에서 세운 공적으로 고종의 은사를 받고 초관으로 진급을 한 박민규는 안하무인이었다. 범이 없으면 여우가 왕 노릇을 한다고 평양으로 귀환한 다음에는 더욱 기고만장했다.

왕실에서 은사품으로 내려준 제주 밀감 세 알을 먹지 않고 평양까지 들고 와 자랑에 열을 올렸다. 난생처음 구경하는 밀감을 평양군영의 군병들은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봤지만 민란진압에 참전했던 군병들은 경멸을 보냈다. 총을 가지지 않은 농민들을 쏘아 죽이는 작전을 가장 많이 벌인 것이 박민규였다. 민란진압의 공적을 인정받아 고종으로부터 왕실의 용포와 서빙고의 얼음, 원산의 북어포, 제주도의 밀감 따위를 은사로 받은 자들의 대부분은 죽이지 않아도 될 농민들을 죽이는데 앞장선 학살자들에 불과했다. 농민들을 죽이지 않고 민란을 진압하려다 죽은 백무현에게는 백미 한 됫박의 은사도 없었다.

총도 없는 농민들을 쏘아 죽이는, 세상에서 제일 안전하고 비열한 전투의 공적으로 은사를 받고 진급을 한 박민규였지만 정작 그는 제대로 농민 한 명도 저격하지도 못했다. 저격 실력이 전무한 박민규는 휘하의 포수들 뒤에 몸을 숨기고 '일제 사격'을 외쳤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농민들을 죽이지 않은 건 아니었다. 부상한 농민들을 눈앞에서 쏘아 죽인 건 부대에서 박민규밖에 없었다.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었던 박민규를 민란진압 작전의 유공자로 만들어준 것이 총기와 포수들이었다. 박민규 자신이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평양군영으로 귀환한 박민규는 별 돈벌이가 되지 않아 무관들에게 인기가 없는 포수교관을 자원했고, 스스로 명사수가 되어 보려는 욕심에 넘쳐 나를 조교관에 앉혔다. 그의 눈에는 사격이 아주 쉽게 여겨진 모양이었다. 검술과 창술은 땀과 피를 흘리지 않고는 익힐 수 없었고, 기마술은 허리가 부러지는 낙상의 위험이 따랐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실력이 느는 것도 아니었다. 땀과 피를 뿌리고, 뼈를 부러뜨려가며 익혀야 하는 다른 무술과 달리 손가락 하나로 방아쇠만 당기면 되는 것이 사격술인 줄 아는 박민규였다.

"넌, 아무것도 할 필요 없어. 나를 명사수로만 만들어주면 넌 군대 생활 펴는 거야. 모든 것에서 열외다."
내가 조교관으로 배치받은 첫날, 박민규는 탄환 한 상자를 앞에 놓고 내게 호기롭게 큰소리를 쳤다.

"네. 쏘아보십시오."
나는 그가 사격에 자질이 없다는 것을 첫눈에 알아보았다. 생긴 것이나 하는 짓이나 딱 기생오라비였다. 떠벌이가 명사수가 되는 일은 없었다. 예상한 대로 그는 열 발을 쏴서 겨우 두 발을 맞췄다. 그것도 중앙이 아니었다. 더구나 탄착지점이 하나는 왼쪽 세 치 위였고 하나는 오른쪽 두 치 오 푼 아래였다. 최악이었다. 그는 총을 탓했다.

"이 총의 영점을 어떤 놈이 건드린 거야?"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영점을 바로잡는 데는 첫 두 발이면 충분했다. 셋째 발부터는 포수의 몫이었다.

"제가 봐드릴까요?"
"그래. 영점 좀 제대로 맞춰봐."

그는 자신의 총을 내게 내밀었다. 나는 가늠자와 가늠쇠를 확인하고 초점을 표적에 맞추었다. 표적에 맞추었던 눈의 초점을 총구 끝의 가늠쇠로 끌어당겼다. 가늠쇠가 선명해지면서 표적은 흐릿하게 멀어져 갔다. 격발은 선명함과 흐릿함, 그 중간 지점에 표적이 놓이는 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흐릿해지면서 커진 표적이 선명한 가늠쇠 위에 얹히는 순간 나는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탄환은 표적 정중앙에서 총알 하나 정도 위에 박혔다. 영점이 두 푼 위로 잡혀 있었다. 나는 두 번째 탄환을 장전하고 다시 총을 가볍게 견착했다. 표적 정중앙의 두 푼 아래를 조준했다. 가늠쇠 위에 표적이 얹힌 순간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탄환은 정확히 표적의 정중앙을 파고들었다. 지켜보던 병사들이 탄성을 터뜨렸다. 세 번째 탄환은 탄착점을 따로 남기지 않았다. 두 번째 탄환이 뚫고 나간 정중앙을 다시 파고들었기 때문이었다. 병사들이 다시 탄성을 터뜨렸다. 박민규만 믿기지 않는지 나와 표적을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표적 밖으로 나간 거 아냐?"
"표적이 흔들리는 걸 못 보셨습니까?"
"봤지."
"무엇이 흔들었겠습니까."

네 번째 탄환도 정확하게 표적의 정중앙에 박아넣었다. 여섯 발째부터는 병사들이 탄성조차 터뜨리지 않았다. 마지막 한 발을 쏠 때는 숨소리조차 내는 병사들이 없었다. 나는 떼어온 표적지를 박민규에게 내밀었다. 두 발째 이후로는 표적지의 구멍만 커졌을 뿐 탄착점은 단 하나도 더 생기지 않았다.

"정말, 만발이네."
백발을 모두 표적에 맞추는 명사수를 백발이라 불렀다. 백발백중. 그러나 만발은 만발만중이 아니었다. 백발을 모두 표정의 정중앙에 가득 채워 넣는 명사수가 만발이었다. 그날부터 박민규는 내게 사격비법을 알려달라고 매달렸다.

닷새를 연습한 박민규는 열 발 중에서 여덟 발 정도를 표적에 집어넣었지만, 정중앙 명중은 여전히 단 한 발도 없었다. 사흘을 더 연습했지만 더는 나아지지 않았다. 자세 교정과 힘 조절을 통해 나아질 수 있는 한계치였다. 호흡은 가르쳐서 되는 단계가 아니었다. 조준과 격발의 순발력은 집중력으로부터 나왔다. 그러나 박민규는 집중이란 걸 워낙에 모르는 종류의 인간이었다. 최대의 집중력이 필요한 단계에서 그는 한량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사격장에 나오는 시간보다 기생집에 가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그렇게 연습해서 실력이 나아질 리 없는데도 박민규는 나아지길 바라며 내게 매달렸다.

"이 정도 했으면 백발은 되어야지. 쏜 탄환이 얼만데."
나는 그의 눈길을 따라 빈 탄환 상자를 살펴보았다. 백발짜리 두 상자, 오늘 쏜 것만 무려 이백 발이었다. 포수 한 명당 일 년 연습량이 이십 발이었다. 포수 한 명의 십 년 치 탄환을 갈겼지만 열 발 중에 아홉 발을 표적 안에 넣지 못했다.

"이 정도 했으면 이젠 나한테 비법을 좀 알려 줘야지."
"사격에서는 특별한 비법이 없습니다."
있다고 해도, 누구를 쏠지도 모르는 그에게 비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을 것이다.

"너는 태어날 때부터 만발이었어? 누군가에게 배웠을 거 아냐."
"산에서 좀 보긴 했지만..."
신포수가 내게 총 잡는 법을 알려주던 포수막이 떠올라 나는 말끝을 흐렸다. 신포수가 내게 사격술을 가르쳐줬던가.

"알았어, 알았어. 이 자식. 맨입에는 안 된다는 거지."
내가 말끝을 흐린 이유를 박민규는 엉뚱하게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신포수에게 내가 배운 건 이미 박민규에게 다 가르쳐주었다. 박민규는 배워서 되는 것과 배워서 되지 않는 것을 분별하지 못했다.

"오늘 저녁에 나랑 같이 가자."
박민규가 그날 저녁 나를 데려간 곳은 서문 근처였다. 세 걸음 뒤에서 박민규를 따라가던 나는 남산현으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안 따라오고 뭐해?" "혼자 다녀오십시오."
서문통의 남산현에는 기생집이 몰려 있었다. 백무아가 다니는 야소교당도 남산현의 큰 기생집을 사들인 것이었다.

"왜?"
기생집을 드나드는 인간을 백무아가 사람으로 취급할 것 같지는 않았다. 기생집 주변을 얼쩡거리다 그녀를 마주친다면? 어쩌면 이번에는 정말 내 목을 베어버리려 들지도 몰랐다. 나는 손을 올려 달아나버린 내 가상투와 아직 무사히 붙어 있는 목을 차례로 확인해보았다.

"제가 드나들 동네는 아닌 것 같습니다."
"괜찮아, 괜찮아. 넌 이제부터 내 동생이야."
박민규는 내가 양반도, 무관도 아닌 병졸이어서 주저하는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가 내 팔을 강제로 잡아끌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돈 때문에? 내가 누구냐. 그런 걱정은 하지 마."
그가 다시 온 힘으로 나를 잡아끌었지만 나는 꼼짝하지 않고 버티고 서 있었다. 그의 힘으로 나를 움직일 수는 없었다.

"기녀가 있는 집에는 가지 않습니다."
자신의 말과 힘, 무엇으로도 나를 움직이지 못하는 낭패감이 박민규의 얼굴에 스쳤다. 잠시 민망스러운 침묵이 흘렀고, 박민규는 사뭇 대범한 척 눙쳤다.

"아직 애숭이네, 애숭이야. 술은 먹냐?"
"네."
"그럼 내외주가로 가면 되겠느냐?"
"네."

내외주가는 여주인이 술자리에 앉지 않고 내외를 하는 술집이었다. 대문 밖에 등불도 내걸지 않고 평범한 민가에서 운영하는 술집이 내외주가였다.

"이리 오너라!"
대문을 들어서며 박민규가 주인을 불렀다. 부엌에서 집주인 여자의 대답 소리가 들렸다.

"안방으로 들라 일러라."
안방에 들어가 자리에 앉자 부엌에서 다시 여주인이 물었다.

"무엇을 드실지 여쭈어라."
"늘 먹던 대로 한 상 잘 차리라 일러라."
내외주가는 듣던 대로 그렇게 집주인 여자와 손님이 내외를 했다.

"한 상을 차릴 동안 우선 반상이 나간다 일러라."
부엌과 안방 사이로 난 샛문으로 반상을 들여보내고 집주인 여자는 여전히 들어오지 않았다. 반상은 소박했다. 알아주는 한량인 박민규는 나를 술로 제압할 작정인지 시작부터 거침없이 잔을 비우고, 내게 내밀었다. 나도 피하지 않고 대작을 했다.

호리병 하나가 다 비자 새 술상이 들어왔다. 다리가 부러지게 차린 술상이었다. 두 병을 비우고 술이 거나하게 오른 박민규가 부엌을 향해 소리쳤다.

"내 긴히 볼 일이 있으니 잠시 주인장을 들라 하라."
"남녀칠세부동석이나 긴히 볼일이 있다 하니 잠시 든다 일러라."

둘이 주고받는 말이 척척 맞아 들어갔다. 방으로 들어온 여자가 박민규 옆에 앉았다. 내외주가에서는 여자가 술시중을 들지 않는 법이었다. 기방이나 색주가와 달리 내외주가와 선술집은 본디 술만 마시는 술집이었다.

"왜, 네가 좋다고 해서 온 주점인데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느냐."
"그게..."

가본 술집이라고는 선술집밖에 없던 나는 내외주가가 방에 들어가 마시는 것만 다를 뿐 선 채로 목을 축이고 가는 선술집과 같은 줄로만 들었다. 박민규의 옆에 앉은 집주인 여자의 눈빛은 농염했다. 몸피는 눈빛보다 더 농염하고 풍만했다. 내게 잔을 치기 위해 몸을 앞으로 숙이는 사이에 하얀 동정 사이로 동정보다 더 하얀 여자의 가슴 살결이 드러났다. 당황해서 고개를 돌리는 나를 향해 그녀는 술병을 들어 보이며 내게 잔을 권했다. 나는 얼떨결에 두 손으로 받쳐 든 잔을 내밀었다. 그녀는 나를 놀리듯 술병을 머리 높이로 치켜들었는데, 치켜든 팔을 따라 끌려 올라간 짧은 저고리 아래로 풍만한 젖가슴이 반쯤이나 드러났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술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덩치는 산 같은 도련님인데,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니까 너무 귀엽네."

앞에 앉은 여주인은 저고리 아래로 젖가슴을 살짝살짝 내밀어 보이며 내 눈길을 유혹했다. 방금까지 남녀칠세부동석을 읊조리던 내외주점 여주인의 모습은 그녀의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게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았지 말고 한 잔 받으시어요."
여주인은 다시 술병을 치켜들며 내게 술을 권했다.

"옳지, 그렇지. 잘 모셔라. 나를 조선의 명사수로 만들어주실 귀인이시다."
박민규는 목이 길고 볼이 갸름한 여주인을 부추겼다.

"홍범, 지금부터는 나를 형님이라고 불러라. 넌 내 아우다. 맘껏 마셔라, 아우야. 아무 걱정 말고 취해라. 대취하지 않고는 이 집에서 나가지 못한다."

박민규는 제법 호탕하게 웃으며 여자에게 잔을 치게 했다. 술이 더 들어가자 박민규는 저항불능의 농민들을 두 걸음 앞에 두고 쏴죽인 것을 마치 조총으로 무장한 왜구들을 사살이라도 한 것인 양 떠들었다.

"그때 그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놈들을 무찌르고 살아 돌아왔는지 너는 모를 거야."
터무니없는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여주인에게 으스대던 박민규는 맞장구를 치라고 요구했다.

"너는 알지? 내가 그 혁혁한 전공으로 받은 임금님의 은사품까지 너는 보았지 않느냐."

나는 뻔뻔스러운 그의 얼굴에 술잔을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눌렀다. 하극상은 군영에서 용납되지 않는 범법행위였다. 들을수록 더 역겨워지는 무용담을 늘어놓으면서 박민규는 나를 어떻게든 쓰러뜨릴 요량으로 술잔을 권했다. 나는 이성을 잃지 않으려 애쓰며 그가 내미는 대로 대작을 했다. 그러나 정작 먼저 나가떨어진 것은 박민규였다.

그를 내외주점에 남겨두고 터덜터덜 혼자 군영으로 돌아오는 밤길이 멀고멀었다.
덧붙이는 글 방현석은 소설가다. 소설집 <사파에서>, <세월>, <내일을 여는 집>, <랍스터를 먹는 시간>, <새벽 출정>과, 장편소설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 <십 년간>, <당신의 왼편>이 있다. 산문집 <아름다운 저항>, <하노이에 별이 뜨다> 와, 창작방법론 <이야기를 완성하는 서사패턴 959> 등을 썼다. 신동엽문학상(1991), 오영수문학상(2003), 황순원문학상(2003) 등을 받았다. 현재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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