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1.04 12:45최종 업데이트 21.11.04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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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아득한 2013년, 당시 만나던 남자가 있었다. 데이트를 하며 서로를 알아가던 중이었는데, 대통령 선거가 있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라 이야기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선거로 넘어갔다. 황당함과 절망감을 토로하려던 찰나,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의 선택은 누구였는지 물었다. 박근혜였다.

'동성애자가 왜? 왜 박근혜를?'이라고 생각했으나 사실 지나고 보니 딱히 아니어야 할 이유도 없었다. 나와는 상극인 정치관을 가진 사람일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거기까진 기우였다. 그 남자가 박근혜를 찍은 이유는 다름 아닌 '기호 1번'이어서였다. 그는 아예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이었다.


예전에는 그와 같은 사람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성소수자이면서 어떻게 정치에 무관심할 수 있을까. 성소수자는 사람답게 살기 위해 사회에 요구할 것도 변화시킬 것도 많은 가장 정치적인 존재가 아닌가. 하지만 한국 국민의 정치 효능감이 정점을 찍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시기와 이어진 대선정국을 바라보며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들떠있던 그 시기, 전국에 생중계 된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주요 후보 두 사람이 사이좋게 '동성애 반대'를 이야기 했다. 새 정부가 제대로 시작되기도 전에 성소수자들은 내쳐진 셈이다. 사실 그 발언에 혐오가 담겨있었던 것과는 별개로 아직도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가 '동성애 찬반' 수준에 머물러 있고, 그게 차기 지도자들의 인식이라는 게 더 절망적이었다. 이러니 기대의 여지가 생기겠는가. 관심은 가겠는가.

세상이 변해도 여전히 '동성애 반대'
 

국민의힘 홍준표 대선 경선 후보가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선거사무소에서 관권선거 중단과 이재명 대장동 비리 특검 촉구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어쨌거나 강산이 변한다는 십년에는 못 미치지만 시간이 흘렀다. 다행인 점은 그 사이 차별금지법을 비롯해 성소수자의 권리와 관련한 법제에 관심을 보이는 정치인이 늘었다는 것이다. 임기를 몇 개월 앞두고 아직도 검토단계인가 의뭉스럽지만, 어쨌거나 현직 대통령도 차별금지법을 검토해볼 때가 되었다고 비공개 참모회의에서 발언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도 여전한 사람이 있다. 바로 2017년 대선 당시 토론회에서 '동성애 반대'의 포문을 열었던 홍준표 의원이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이기도 한 그는 지난달 28일 기자 간담회에서 한 기자가 "문재인 대통령이 차별금지법 검토한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차별금지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라고 묻자, "그냥 조용히 물러나지 물러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온갖 해코지를 다 하고 물러나려고 하는가"라고 말했다. 

이어서 홍 의원은 "헌법 '평등의 원칙' 조항을 보면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돼 있다. 헌법 원칙만 보면 될 것을 뭐하려고 또 동성애 합법화 시키려고 그런 법률을 만들려고 하는지"라고 발언했다.

이 발언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이상한 말이다. 헌법에 국가 구성의 중요한 원칙이 담겨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평등·자유·인권과 같은 원칙의 구체적인 내용과 적합한 실현 방식은 사람과 시대에 따라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합의를 통해 법률을 제정하고 개정한다. 헌법에 평등의 원칙이 있다고 이를 실현할 법률(차별금지법)이 필요가 없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또한 누차 반복하기가 민망할 지경인데, 동성애는 불법이 아님으로 '합법화'를 할 필요도 없고, 애초에 이런 말은 동성애가 마치 범죄행위처럼 보이게 한다는 점에서 아주 문제적이다.

차별을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

홍준표 의원이 이전부터 꾸준히 혐오발언을 이어왔기에 그의 말이 특별하게 다가오진 않는다. 다만 홍 의원이 평등의 원칙을 언급한 것은 눈길을 끈다. 그가 헌법 원칙만 보면 될 일이라고 한 건, 그 원칙만 잘 확인하고 이행해도 한국은 평등한 국가가 될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런데 홍 의원은 바로 다음에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인한 '동성애 합법화'를 우려한다는 말을 남겼다. 이게 무슨 말일까. 홍준표 의원의 상상처럼 동성애가 '불법'이거나 혹은 범죄시 되는 수준의 '차별'이 있다고 해도 한국은 여전히 평등한 국가일 수 있다는 주장인 걸까.

상충되는 두 이야기가 충돌하고 언뜻 모순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하지만 홍준표 의원이 무엇을 전제로 했느냐에 따라서 저 주장은 정말로 '말'이 될 수 있다. 동성애가 비정상이고 이를 행하는 건 추행이기에 동성애자들이 비인간적인 처우를 받아도 된다고 전제한다면, 동성애를 범죄 취급하는 건 딱히 불평등도 차별도 아니게 된다. 이건 부정의 한 전제임과 동시에 부정확한 인식이다. 차별의 존재 자체를 보지 못하게 만든다. 한마디로 현실 파악이 제대로 안 된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홍 의원뿐일까. 내가 그의 말에 주목한 건 부정확한 인식이 통념으로 퍼지거나 아예 제도가 되어버리고, 사람들이 이를 당연하게 여긴 나머지 차별이 차별인 줄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여기에 속하는 대표적인 예시 중 하나가 바로 '성역할'이다. 오로지 성별에 따라 역할을 나누고 이를 행하라 요구하는 건 당연히 차별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역할을 '성별에 따른 공평한 역할 분담, 자연의 섭리'라고 오랜 시간 주장해왔다. 그리고 그것이 통념이자 제도로 굳어져버렸다.

아마 반(反) 페미니스트들은 자신이 성평등에 반대한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눈에 '양성평등'은 이미 이루어져 있다. 사이좋게 각자의 일을 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페미니스트들이 성차별을 지적하며 목소리를 높이니 없던 갈등이 생겼다고 보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현실 파악이 안 되는 경우다.

소수자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정치인을 원한다
 

차별금지법제정충북연대에서 준비한 등배너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안타깝지만 아마 비슷한 일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 사람이 진공의 공간에서 성장하고 판단력을 기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개인의 인식은 공동체와 구성원들의 영향을 받으며 형성될 수밖에 없는데, 그 사회는 또한 통념과 편견으로 가득한 곳이기도 하다. 소수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드러내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통념에 균열이 생기고 붕괴가 되어야 인식도 바뀐다. 사회운동이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고위공직자 그것도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에게까지 이 정도의 이해를 보일 수는 없다. 그 사람이 가지려는 지위가 가진 영향력은 너무도 막강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쥔 마이크가 크다는 뜻만이 아니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최고결정권자이고 정책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이를 수행하기 위한 인사권을 행할 수 있는 인물이다.

이런 사람이 공정하고 평등한 비전을 제시하기는커녕 현실파악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다? 이건 꽤나 심각한 문제다. 악행을 저지른다는 인식이라도 있으면 그 사람의 양심이라도 일을 하길 기대해볼 텐데 이 경우는 그냥 신념을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소수자 권리 증진에 그나마 관심을 보이던 사회가 아주 쉽게 후퇴할 수도 있다.

소수자 또한 마찬가지로 이 공동체의 구성원이다. 정확한 인식과 여기에 기반을 둔 평등한 대우가 필요하다. 나는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면 그 정도의 능력은 당연히 갖추길 바란다. 아무런 기대도 없이 국가와 정치권을 바라보는 일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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