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1.07 11:07최종 업데이트 21.11.07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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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거 1년 전에 백범 김구는 하루에 두 번이나 대선에서 낙선한 적이 있다. 그 자신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의향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원치 않은 출마로 인해 하루에 두 번, 오전과 오후에 연거푸 낙선을 경험했던 것이다.

김구는 남북 분단을 반대하고, 하나의 한국을 추구했다. 1948년 2월 26일 국제연합 소총회에서 남한 단독선거를 결의한 뒤인 그해 4월 19일, 38선을 넘어 김구·김규식·김일성·김두봉의 남북협상회담을 가진 뒤 5월 5일 다시 38선을 넘었다.


유엔과 그 배후의 미국이 단독선거를 결의한 뒤에 그런 행보를 보인 데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그는 그해 5월 10일 국회의원 총선거에 참여할 뜻이 없었다. 대통령에 출마할 생각도 당연히 없었다. 1948년 7월 20일 자 <동아일보> 톱기사는 "소수 의원 간에는 김구 씨를 추대하려는 측도 잇스나 김구 씨는 자신이 금반(今般) 정부에는 절대 참여하지 아니한다고 언명하고 잇다"고 보도했다.

또 다른 유력 대선 주자인 서재필도 뜻이 없었다. 7월 6일 자 <동아일보> 1면에 따르면, 그는 4일 자 성명을 통해 "설혹 나에게 그 지위가 제공된다 하더라도 나는 그것을 수락하지 안흘 터"라며 "나는 미국 시민이며 또한 미국 시민으로서 머물을 생각"이라고 단호히 선을 그었다.

김구는 미국 시민이어서가 아니라 단독정부를 반대하기 때문에 불출마 의사를 표명했다. '절대 안 하겠다'고 명확히 표명했던 그가 1일 2낙선을 경험하는 다소 황당한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1919년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하는 동시에 분단정부라는 결함을 가진 대한민국정부 하의 제1대 대선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
  
기이한 대통령 선거 
 

1948년 7월 21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개표 장면. ⓒ 조선일보


1948년 7월 20일 오전 10시 18분 이승만 국회의장의 선포로 개시된 국회 간선제 대통령 선거에서 김구를 찍은 표가 13표 나왔다. 이승만을 찍은 180표보다 훨씬 적지만, 불출마 의사를 명확히 밝힌 인물에게 13표나 나왔으니 뜻밖의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날의 개표는 의원들이 지켜보는 속에서 한 표, 한 표 나올 때마다 현황판에 적어 넣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유력 주자들이 참여를 거부해 이승만 당선이 확실시되는 가운데 진행된 이날 개표 현장에서는 이따금 탄성이 흘러나왔다. 7월 21일 자 <경향신문> 1면 톱기사는 "이승만, 이승만 연호하는 의사당 내는 물을 끼언진 듯 고요하다, 이따금 김구 씨의 표가 나오면 경이(驚異)의 소리가 들려온다"고 보도했다.

김구를 찍은 13표는 엄밀히 말하면 무효표였다. 단순한 불출마도 아니고 분단정부를 반대하며 불출마를 선언했으니 대선 자체를 부정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김구를 찍은 표를 유효표로 인정하면 대선 자체는 물론이고 대한민국정부의 정당성에도 의문이 제기될 여지가 있었다.

그 열세 명의 의원은 개인적으로 김구를 존경하거나 지지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나름의 뜻이 있었을 수도 있다. 비록 분단 국회에 몸을 담기는 했지만 그 문제점을 인식하는 의원들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13표가 나왔으니 의미는 있었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해프닝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 같은 해프닝이 벌어지게 된 것은 입후보 절차를 사전에 갖춰놓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선거 사흘 전인 7월 17일 제33차 국회 회의에서 후보를 사전에 선출해두는 문제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지만, 결국 '각자가 생각해둔 인물을 투표용지에 적어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런 상태로 대선이 치러지다 보니 김구에게도 상당한 표가 나왔던 것이다.

"시방부터 개회하겠습니다"라는 신익희 부의장의 개회 선언으로 시작된 제33차 회의를 담은 국회 속기록에 따르면, 오늘날의 컷오프와 비슷한 방식으로 후보들을 추려낸 뒤 이 후보들을 놓고 대선을 치르자는 의견이 회의 중에 상당한 힘을 얻었다. 출마 희망자 자신이 입후보하는 방식이 아니라 국회가 예비선거를 통해 후보들을 선정한 뒤 이들을 대상으로 선거를 치르자는 것이었다.

이 방식이 회의 중에 힘을 얻은 이유는 임시정부 산하 한국광복군 총사령관 출신인 이청천 의원의 발언에서 알 수 있다. 원래는 지청천이었지만 독립운동 중에 이청천으로 바뀐 그는 이날 회의에서 예비선거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속기록에 따르면 "그분들에게 (사전) 승인을 받어야 합니다"라며 "그렇지 않고 뽑아 놨다가 나오지 않으면 큰일 납니다"라고 발언했다.

당선돼도 수락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 김구 같은 인물이 선출될 가능성을 막기 위해 예비선거를 하자는 것이었다. 예선을 통해 당사자의 의사를 확인한 뒤, 대통령 취임 의향이 있는 인물들을 7월 20일 본선 후보로 올리자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이 의견은 채택되지 않았다. 정부수립 일정이 바쁘다는 것과 헌법 규정에 그런 절차가 없다는 점 등이 감안됐다. 그래서 입후보 절차도 마련하지 않은 채 7월 20일 대선을 치렀고, 그러다 보니 수락 가능성이 거의 없는 김구에게도 13표나 나오게 됐던 것이다.

수락 가능성이 거의 없는 서재필도 1표를 받았다. 김구를 찍은 표는 유효표로 인정된 반면 이 표는 무효표로 처리됐다. 그렇게 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은 서씨 성을 가진 의원이었다. 위의 <경향신문> 기사는 "서재필 박사의 표가 나오자 돌연 장내는 동요"했다면서 서우석 의원이 등단하여 "서 박사는 미국 시민이다. 그러한 분을 선거한다는 것은 우리 국회의 자기 모욕이다"라고 주장하여 결국 관철시켰다고 보도했다.

의원들이 마음에 둔 인물을 찍는 선거였기에, 아무나 찍어도 무방한 선거였다. 이날 서우석 의원은 이런 식의 선거에서는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재임 1945~1953년)을 찍어도 되는 게 아니냐는 식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만일 트르맨 대통령을 선거해도 우리 한국의 대통령이라 할 수 있겠는가?"라고 목청을 올렸다. 장내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고 위 기사는 말한다.

하지만, 의원들은 김구가 받은 표들에 대해서는 이의를 걸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면 이 역시 무효로 처리해야 마땅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똑같은 일이 그날 오후 부통령 선거에서도 재연됐다. 대통령 선거 때처럼 입후보 절차 없이 치러진 부통령 선거 제1차 투표에서 김구가 독립운동가 출신인 이시영(113표)에 이어 65표로 2위를 차지한 것이다.

이 선거에서 김구는 결선투표까지 진출했다. "재적 의원 3분지 2 이상의 출석과 출석 의원 3분지 2 이상의 찬성 투표로써 당선을 결정한다"는 1948년 헌법 제53조 제2항에 따라 132표를 받아야 부통령이 될 수 있었다. 이승만 편인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소속의 이시영이 132표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결선 투표를 치러야 했던 것이다. 결선에서 김구는 62표를 받아 낙선했고 이시영은 133표를 받아 부통령에 당선됐다. 
  

남북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에서 축사 중인 김구(1948.4.22) ⓒ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김구가 얻은 표의 의미

김구가 대통령 선거에 이어 부통령 선거에서도 2위를 차지하고 부통령 선거에서는 결선까지 진출한 것은 제대로 된 선거 절차도 없이 대선을 치른 정부수립 직후의 혼란상을 반영함과 함께 김구에 대한 높은 지지도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또 다른 측면들도 띤다는 점에 유의하지 않을 수 없다.

불출마를 선언했을 뿐 아니라 단독정부를 거부한 김구가 적지 않은 표를 받은 것은 제1대 대선 자체뿐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가 갖고 있는 근본 모순을 드러냈다고 말할 수 있다. 백범 김구에 의해 부정을 당한 제1대 대선과 대한민국정부가 김구를 일정 정도 승인하는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이런 외관이 연출된 것은 제1대 대선과 대한민국정부에 참여한 일부 국회의원들이 김구에게 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이들의 엉뚱한 투표로 인해, 통일정부로 출범하지 못한 대한민국정부의 모순이 불쑥 튀어나오고 말았다. 

김구에게 13표·65표·62표가 던져지고 그가 하루에 두 번이나 낙선한 일은 어찌 보면 황당한 해프닝일 수도 있다. 동시에 그것은 대한민국정부의 태생적 문제점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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