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1.02 19:18최종 업데이트 21.11.02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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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2일 오전 국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와 면담한 뒤 배웅하고 있다. 2021.11.2 ⓒ 연합뉴스

 
만 93세인 이용수 할머니가 국제연합 고문방지협약을 문제 해결의 수단으로 제안했다. 지난달 26일 기자회견에서 그는 "위안부 역사왜곡을 막기 위해 국제사법재판소에 위안부 문제를 회부해달라고 대통령께도 요청했으나 11월이 다 되도록 청와대·외교부·여성가족부·인권위원회·국회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고 한탄했다.

그는 "우리 한국의 피해자들뿐 아니라 전 세계 피해자들을 위해서 한국 정부가 유엔 고문방지위원회에 위안부 문제를 가져가서 일본이 위안소 제도를 만들고 운영한 것은 전쟁범죄였고 반인륜 범죄였다는 명백한 판단을 받아주기를 부탁한다"고 간절히 호소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여야 정당을 상대로도 호소하고 있다. 이달 1일에는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만나 "유엔 고문방지협약에 의한 해결 절차 회부와 같은 외교적 조치에 정부가 적극적인 자세로 임해주길 바란다", "전향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진일보를 이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등등의 답변을 들었다.

이용수 할머니는 2일 오전에는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 "외교부와 잘 상의해보겠다", "잘 듣고 정부에 전달하겠다" 등등의 답변을 들었다. 우리 정부가 미국과 일본을 의식해 소극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탓에 연로한 피해자가 직접 뛰어다녀야 하는 안타까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유엔 고문방지협약이라는 명칭에 고개를 갸웃거릴 수도 있다. 위안부들이 입은 피해를 '고문'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수 있어서다.

보스니아 여성 성폭행 
 

보스니아 사라예보에서 동쪽으로 160km 떨어진 스레브레니차 인근 포토카리 추모센터에서 열린 장례식에서 한 보스니아 여성이 친척의 관에 엎드려 울고 있다. 2013.7.11 ⓒ 연합뉴스

 
위 협약에 따라 설치된 유엔 기구인 고문방지위원회(Committee against Torture)는 2019년에 '보스니아 내전 당시 세르비아 민병대가 보스니아 여성들을 성폭행한 범죄행위'를 고문으로 인정했다.

세계적 탈냉전으로 인해 이념보다 민족이 강조되던 1990년대 초반에 다민족국가인 유고슬라비아사회주의연방공화국은 일련의 해체 과정을 겪었다. 이때 발생한 내전 중 하나가 연방 소속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발생한 보스니아 내전(1992~1995년)이다.

이 보스니아 내전에서는 여성들에 대한 참혹한 전쟁범죄가 일어났다. 인종청소를 목표로 하는 집단 성폭행이 발생해 전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1996년 7월 4일 자 <경향신문> '세계(系) 인종청소, 조직적 강간 자행'은 세르비아계에 의한 범죄행위를 이렇게 보도했다.
 
헤이그에서 열린 보스니아 내전 관련 전범재판 심리에서 이르마 오스터만 조사관은 '세르비아계 병사들은 상부의 명령에 따라 보스니아 회교도 여인들에 대해 대대적인 강간을 자행했다'며 '이를 통해 회교도 여인들을 임신시켜 여인들의 인종적·문화적 주체성을 파괴하려 했다'고 말했다. 오스터만 조사관은 강간당한 회교도 여인들은 강제수용소로 옮겨져 낙태가 불가능할 때까지 수용돼 있다가 풀려났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성폭행 당한 보스니아 여성들이 세르비아인들의 피를 물려받은 아이를 출산하도록 만들고자 이 여성들을 강제수용소에 감금하고 낙태를 방해하는 일까지 있었다. 보스니아 내전 때의 이 일이 고문방지협약 상의 고문으로 인정된 것이다. 

극심한 신체적·정신적 고통  

고문방지협약이라는 것은 정식 명칭이 아니라 약칭이다. 정식 명칭은 '고문 및 그 밖의 잔혹한, 비인도적인 또는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의 방지에 관한 협약(Convention against Torture and Other Cruel, Inhuman or Degrading Treatment or Punishment)'이다.

제목상의 '비인도적인 또는 굴욕적인 대우'라는 표현만 봐도 위안부 피해가 협약의 적용 대상이 되는 데 문제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협약 제1조를 살펴보면, 위안부 피해가 '비인도적인 또는 굴욕적인 대우'라는 표현뿐 아니라 '고문'이란 표현에도 얼마든지 해당함을 알 수 있다. 법제처 홈페이지에서 제공되는 제1조 번역문은 이렇다.
 
이 협약의 목적상 '고문'이라 함은 공무원이나 그 밖의 공무 수행자가 직접 또는 이러한 자의 교사·동의·묵인 아래, 어떤 개인이나 제3자로부터 정보나 자백을 얻어내기 위한 목적으로, 개인이나 제3자가 실행하였거나 실행한 혐의가 있는 행위에 대하여 처벌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인이나 제3자를 협박·강요할 목적으로, 또는 모든 종류의 차별에 기초한 이유로, 개인에게 고의로 극심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행위를 말한다.
 
협약에서 말하는 고문은 개인에게 극심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행위라고 했다. 전기고문·물고문 같은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 고통을 주는 것도 이 협약에서 말하는 고문에 포함되는 것이다.

위안부 피해가 이런 의미의 고문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굳이 보스니아 내전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위안부 피해가 얼마든지 조약의 적용을 받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위안부 피해'는 '위안부 고문'으로 바꿔 불러도 무방하다.

유엔, 이미 권고했지만

사실, 우리 정부는 이전부터 고문방지협약에 따라 이 문제를 해결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이용수 할머니의 제안이 나오기 전부터 국제기구로부터 그런 요청을 받았다.

지난 대통령 선거 다음날인 2017년 5월 11일, 문재인 신임 대통령은 아베 신조 총리와의 전화 통화에서 '한국 국민들은 한·일 위안부 합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발언했다. 바로 그다음 날 고문방지위원회가 한국 정부에 권고한 것이 있다. 그해 5월 13일의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논평은 고문방지위원회의 권고 사항을 이렇게 요약했다.
 
고문방지위원회는 보고서에서 일본군 성노예제로 희생된 피해자가 여전히 38명이 생존해 있음을 주목하면서, 2015년 12월 28일 한·일 외교장관의 합의는 '고문방지협약 제14조 실행에 대한 일반 논평 3'의 범위와 내용을 충분히 준수하지 않아 피해자의 보상과 배상, 명예회복과 완전한 재활을 위한 수단을 포함하여 진실과 재발 방지 보장의 권리를 제공하는 것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한국 정부에게 고문방지협약 제14조에 따라 일본군 성노예제 생존 피해자들에게 보상의 권리와 명예회복, 진실 규명, 배상과 재발 방지 약속을 포함한 구제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하여 2015년 12월 28일 한·일 간의 합의를 수정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이처럼 이전부터 유엔 고문방지위원회는 고문방지협약에 근거한 문제 해결을 우리 정부에 촉구해왔다. 우리 정부는 제대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금년 1월 18일에는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한·일 위안부 합의는 정부 간의 공식 합의'라고 발언함으로써 고문방지위원회의 2017년 권고를 정면으로 무시했다.

믿을 만한 근거, 고노 담화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위로 비가 내리고 있다. 2015.12.30 ⓒ 이희훈

 
고문방지협약 상의 촉구를 한국 정부에만 한 것은 아니다. 이 협약은 1999년에 가입한 협약 당사국인 일본을 상대로도 촉구하고 있다.

협약 제4조는 "당사국은 모든 고문행위가 자기 나라의 형법에 따라 범죄가 되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제12조는 "당사국은 자기 나라 관할 하의 영토 내에서 고문이 자행되었다고 믿을 만한 타당한 근거가 있는 경우에는 권한 있는 당국이 신속하고 공평한 조치를 진행하도록 보장한다"고 촉구했다.

위안부 피해는 일본 식민지나 일본군 점령지에서 일어났다. 또 일본 군대 안에서 일어났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은 협약 제12조에 따라 자기 관할지에서 발생한 위안부 고문 행위에 대해 신속하고 공평한 조치를 진행하지 않으면 안 될 의무를 지고 있다.

1993년 8월 4일 일본 정부는 고노 담화를 통해 "위안소는 당시의 군 당국의 요청에 따라 마련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서는 옛 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이에 관여했다", "감언·강압에 의하는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모집된 사례가 많았으며", "위안소에서의 생활은 강제적인 상황 하의 참혹한 것이었다" 등등의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고문방지협약 제12조는 자기 관할지에서 고문이 자행됐다고 믿을 만한 타당한 근거가 있으면 당사국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규정했다. 고노 담화는 '위안부 고문이 자행됐다고 믿을 만한 타당한 근거'를 일본 정부가 알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일본이 고문방지협약 상의 의무에서 빠져나갈 길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막는 것은 일본 정부만이 아니다. 한국 정부 역시 문제 해결을 가로막고 있다. 이용수 할머니가 촉구한 유엔 고문방지협약에 따른 문제 해결을 위해 한·일 두 정부는 신속히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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