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1.02 11:18최종 업데이트 21.11.02 11:18
  • 본문듣기
봉오동전투의 주역 홍범도 장군이 8월 15일 광복절에 귀향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방현석 소설가의 '홍범도 실명소설 <저격>'을 주 2회(화요일, 금요일) 연재합니다. [편집자말]

   


17

보통문 근처를 세 번이나 오가며 살폈지만 야수교당도, 여학당도 없었다. 달음이가 말한 자리에는 기생집이 있을 뿐이었다. 그 기생집은 장진사도 드나들곤 하던 제법 유명한 집으로 내가 몇 번 돈 심부름을 간 적도 있었다. 술값인지 색시 값인지, 노름 판돈인지는 모르지만 돈을 들고 가면 장진사는 내게 동전 한 닢을 던져주었다. 그럴 때마다 장진사의 옆에 붙어 서 있던 기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내 뇌리를 스쳤다. 기생이라고 말하기 곤란하니까 달음이 녀석이 내게 야수교당 여학생이라고 둘러댄 것은 아닐까. 기생집이나 야수교당이나 요상스럽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기생집의 기생은 기생이고 야수교당의 여학생은 학생이다.


네 번째 되돌아온 기생집 앞에서 서성거리는데 여자 하나가 나왔다. 나는 한눈에 그녀가 백무현의 여동생임을 직감했다. 가만히 있어도 상대를 위축시키는 눈빛, 그런 눈빛을 백무현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처음 보았다. 나는 그녀의 차림새를 살폈다. 허름한 회색 명주 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었는데 옷고름은 까만색이었다. 기생의 차림은 아니었다. 나는 안도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백무아를 찾아왔습니다."

백무아. 나는 그렇게 그녀의 이름을 처음 불렀다. 그녀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무관심과 무시, 그 사이 어디쯤에 있는 듯한 눈빛도 백무현과 같았다.

"왜요?"
"백무아, 맞지요?"
나는 그렇게 그녀의 이름을 두 번째로 불렀다.

"왜냐고 물었단 말입니다."
말입니다, 백무현을 빼다 박은 그 말투에 나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간신히 표정을 바로잡는 나를 꿰뚫어보듯 쳐다보던 그녀가 느슨히 매고 있던 허리춤의 끈을 풀었다. 가슴에서 조여맨 치마단을 끌어올려 끈으로 허리를 단단히 조여맸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눈빛은 나를 놓치지 않았다.

"이달음이 여길 알려줬습니다."
나는 대답하면서 그녀의 손끝에 눈길을 박았다. 신포수를 떠나온 지 4년이 지났지만 상대의 손을 관찰하는 것은 내게 습관이 되어 있었다. 끌어올린 치마를 젖가슴 아래로 조여매는 그녀의 손끝이 야무졌다. 품이 넓은 저고리의 등솔에서 길게 내려온 화장도 소매끝을 돌돌 말아올려 손가락은 물론이고 손목 근육의 움직임까지 보였다. 내 눈길이 그녀의 손이 아닌 위, 아래로 조여 매면서 도드라진 가슴을 더듬는 것으로 여겼다는 얘기를 내가 백무아, 그녀로부터 들은 것은 오래 뒤였다.

"왜냐고 다시 물었단 말입니다."
억양까지 백무현을 빼다 박은 그녀의 말투에도 이번에는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뜸을 들이지 않기로 했다. 선 자리에서 백무현의 최후를 알렸다. 서늘한 가을 저녁의 바람이 불어오는데도 길지 않은 얘기를 하는 내 이마에서는 땀이 배어 나왔다.

"정말이에요?"
백무아는 백무현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니죠? 거짓말이죠?"
내 눈을 말갛게 쳐다보는 그녀의 눈빛을 견디지 못하고 나는 고개를 돌렸다.

"오빠가 시킨 거짓말이죠?"
나는 고개를 들어 백무현을 묻고 온 울산을 향해 멀리 하늘을 쳐다보았다. 보통문 너머로 해는 기울고, 기러기 떼는 각진을 이루어 남쪽으로 날아갔다. 저 기러기들이 내일 이 시간이면 지나가게 될 울산의 하늘 아래 잠든 백무현이 떠올랐다. 내가 죽인, 백무현을 죽인 자와 농군들의 피도 함께 떠올랐다.

"은가락지 사준다는 약속을 못 지킨 오빠가 시킨 거짓말이죠?"
그렁그렁한 백무아의 눈망울이 노을빛을 받아 출렁거렸고, 내 마음도 다시 슬픔과 비참으로 출렁거렸다. 백무현이 그녀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제독검법 쟁투에 나갔다는 사실을 나는 비로소 알았다. 나는 내 손가락에 끼고 있던 은반지 두 개를 뽑았다. 그것이 그녀에게 남긴 백무현의 마지막 선물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내가 내민 반지를 내치며 끝내 눈물을 터뜨렸다. 흙바닥에 구르는 반지를 주워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내 손은 백 번을 내쳐도 일 없습니다. 그러나 이건 아니에요."
나는 하지 않으려던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차, 하는 순간에 목이 달아나는 제독검법 경연에 백무현이 왜 출전했는지를. 누구를 위해 무엇 때문에 시퍼렇게 날이 선 진검을 들고 전, 후, 좌, 우군영의 최고 살수들이 겨루는 제독검법 쟁투에 나갔는지를. 백무현이 실전보다 더 위험한 제독검법 쟁투에서 마지막 상대의 마지막 48합의 장검을 받아치며 따낸 은 두 돈의 상금으로 만든 반지가 내 손안에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백무현이 동료들에게 빌붙어 얻어먹으면서도,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도 상금으로 받은 은 두 돈에서 단 한 푼도 들어내지 않고 만든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행여나 공인이 은을 빼돌릴까, 백무현이 한나절 내내 측간마저 가지 않고 지켜서서 만든 반지란 말도 끝내 하지 않았다.

"이건 정말일 수가 없단 말입니다. 모두, 오빠가 시킨 장난이라고 말하란 말입니다."
기생집 앞에서 눈물을 쏟으며 어깨를 들썩이는 여자와 그 앞에서 두 손을 모아쥐고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는 군졸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말아 올린 소매로 눈물을 훔친 그녀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반지를 감아쥔 내 손바닥은 어느새 땀으로 미끈거렸다. 손아귀에서 미끄러져 나갈 것만 같아 나는 반지를 다시 내 새끼손가락과 약지에 다시 끼었다. 나는 앞서가는 그녀의 뒤를 말없이, 죄인처럼, 아니 죄인이 되어 끌려가듯 따라갔다. 그녀가 다다른 곳은 보통강가였다.

보통강가에는 서늘한 날씨에도 하루 일을 마치고 등목을 하려는 사람들로 발길이 분주했다. 낚싯대를 드리우고 반찬거리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드문드문 눈에 뜨였다.

"오빠는 어떤 사람이었어요?"
그녀가 일렁이며 흘러가는 강물에 눈길을 던진 채 물었다. 강물에게 묻는지 나에게 묻는지 알 수 없었다.

"오빠가 군영에서 어떤 사람이었는지 물었단 말입니다."
"아, 네..."
어느새 그녀 앞에 꼼짝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을 깨달았다.

"군영에서 내가 막내인데, 내가 형이라고 부른 딱 한 사람이었습니다."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해 쩔쩔매던 내 입에서 튀어나온 대답이 그랬다.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내가 태어나서 형이라고 부른 유일한 사람이었다.

"오빠는 나한테 이 세상에서 하나뿐인 사람이었어요. 나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는, 내 말이면 무엇이든 들어주는... 이제 내게는 아무도 남은 사람이 없네요."

백무아, 그녀에게 나는 이 세상에 아무도 남은 사람이 없는 자가 여기 또 하나 있다고 말하지 못했다. 보통강 갈대숲을 따라 말없이 걸어가는 그녀의 갈래머리가 갈대가 쓸리는 방향을 따라 왼쪽으로 날렸다. 칠패 시장에서 몇 번이나 망설이고 망설이며 백무현이 고른 댕기가 두갈래로 땋은 그녀의 머리끝에서 나풀거렸다.

갈대숲이 끝나갈 무렵 걸음을 멈춘 그녀가 내게 물었다.

"오빠가 묻힌 곳이 정확히 어디에요?"
"그 먼 곳에 묻혔는데 알면 뭐해요."
"어디면 내가 못 갈 것 같아요? 당신은 오빠가 내게 어떤 사람인지 모를 거예요."

백무아, 그녀가 내게 당신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녀는 백무현이 어떤 사람으로 어떻게 살았는지 제법 길게 얘기했다. 하지만 나는 한심하게도 그녀의 말을 다 놓치고 '당신'이라는 그 한마디에 머리가 하얗게 변해 있었다. 당신, 그녀의 그 한마디가 얼마나 오랫동안 내 귓가에 남아 있었는지 그녀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가 보통강가에서 열아홉 살의 나에게 한 그 한 마디, '당신'을 50년 뒤 하바롭스크의 아무르강가에서 떠올리며 몸을 떨게 될 줄 나인들 어떻게 알았겠는가.

"여자 혼자서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에요."
"내가 여자로 보여요?"
그 순간이었다. 그녀의 오른손이 내 머리 위를 지나갔다. 섬뜩함을 느꼈을 때는 이미 늦은 다음이었다.

"이건 내 오빠를 잃고 온 벌이에요."
그녀는 왼손에 든 상투를 내 눈앞에 내밀었다. 나처럼 장가를 들지 않은 군병들이 틀어 올린 가상투는 작고 보잘껏 없었다.

"오빠를 형으로 불렀다니 목을 베지 않은 거예요."
"..."
그녀가 날린 내 머리칼이 저녁 바람을 타고 흩어지는 것을 나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목을 베이기 전에, 정확히, 오빠가 묻힌 곳을 말해요."
나는 울산 병영성의 위치와 백무현을 묻고 표시로 올려둔 돌덩이의 모양에 대해 그녀에게 설명했다. 헤어지기 전에 나는 내 손가락의 반지를 다시 뽑아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녀는 그제서야 오른손에 든 단도를 왼쪽 소매 속으로 집어넣었다.

반지 두 개를 받아들고 만지작거리던 그녀가 눈을 들어 길게 느껴질 만큼 내 눈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이건 당신이 가져요."
난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이건 형이 당신 결혼 때 쓰라고 준비한, 당신 신랑에게 줄 반지예요..."
말꼬리를 흐리는 나를 그녀가 말간 눈빛으로 다시 쳐다보며 말했다.

"왜? 내가 혼인이라도 하자고 할까봐 무서워요?"
그녀가 처음으로 웃었고, 나는 귓불이 저녁놀보다 더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걱정하지 말아요. 이거 가지고 온 품이니까."
얼떨결에 반지 하나를 받아들고 우물쭈물하는 내게 그녀가 덧붙였다.

"품이 너무 많나요? 그럼 오빠 대신 이거나 끼워줘요."

그녀는 나머지 반지 하나까지 내 손에 쥐어주고 자신의 왼손을 펼쳐, 내밀었다. 나는 그렇게 백무아, 그녀의 손을 처음 잡았다. 덜덜 떨며 그녀의 새끼손가락에 반지를 끼우는 나를 보고 그녀는 언제 울었던 사람이냐는 듯이 호호 웃었다. 그러나 곧 웃음은 잦아들었고, 자신의 손에 끼워진 반지를 내려다보던 그녀는 입술을 사려물며 복받치는 울음을 삼켰다. 양볼에는 다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고, 어깨는 사정없이 들썩거렸다.

"미안해요. 형을 지켰어야 하는데."
그녀가 눈물을 그칠 때까지 나는 바보처럼 그저 지켜보고 서 있기만 했다.

"미안해 하지 않아도 돼요. 오빠는 당신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에 죽었단 말입니다."
나는 고개를 들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깡패 오빠 싫다고, 술 먹고 싸움하는 깡패 동생은 하지 않는다고 맹세한 게 나니까요. 그래서 술 끊고, 싸움하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오빠가 들어간 게 군영이란 말입니다."

나뿐만 아니라 군영의 병사들 모두 백무현이 원래 술을 한 모금도 마실 줄 모르는 줄로만 알았다. 아무도 그렇게 거친 백무현이 동생바보인 줄 몰랐던 것이다.

헤어지기 전에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 집에서는 무슨 일을 합니까?"
"그집이라니, 뭘 묻습니까?"
그녀가 되물었다.

"아까, 나온 그 기...생집 말입니다."
갑자기 그녀가 깔깔 웃었다.

"아, 그래서 이거 끼워달라니까 무서워서 그렇게 손을 덜덜 떨었댔습니까?"
그녀가 반지를 낀 자신의 손을 들어보였다.

"그 집, 지금은 기생집이 아니란 말입니다. 선교사가 사서 교회당과 여학당으로 씁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몰래 내쉬고 나서 물었다.

"그럼, 거기서 일하며 배웁니까?"
"아니란 말입니다. 난 일하지 않고 공부하는 학생이란 말입니다."
그녀는 백무현이 모아 보내는 돈으로 회비를 내고 공부와 전도만 하는, 그 여학교에서 가장 부유한 학생이라고 말했다.

"그거 도로 줘 봐요."
자신의 왼손 새끼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들여다보던 그녀가 내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나는 또 얼떨결에 받았던 반지를 도로 내밀었다.

"이왕이면 내가 끼워주겠단 말입니다."
그녀는 늘어뜨리고 있는 내 왼손을 잡아들었다.

"기생집에서 나온 여자가 혼인하잘까봐 아직도 무섭습니까."
그녀가 왼손으로 내 손목을 감아쥐고 오른손으로 내 약지에다 은반지를 끼웠다. 반지를 낀 내 손을 잡은 채 그녀가 내 눈을 빤히 올려다보며 덧붙였다.

"걱정 마시라요. 난 결혼, 그딴 것은 하지 않습니다."
백무아, 그녀가 내 손을 처음 잡았던 그 순간 내 심장이 얼마나 떨렸는지 그녀는 끝내 몰랐을 것이다.

"내 오빠를 기억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한 사람은 더 있어야 하잖겠습니까."
나는 다시 그녀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그녀는 땅거미가 드리우는 보통강을 따라 걸어갔다. 뒤따라가는 나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혼자 좀 걷겠습니다. 가시라요."
나는 또 바보처럼 그녀가 시키는 대로 그 자리에 붙박여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한참을 걸어가던 그녀가 내게 되돌아 왔다.

"당신, 이름이 뭐라 그랬습니까?"
백무아 당신이 나를 부른 두 번째 '당신'이었다.

"홍범."
"홍범... 내 이름은 알지요?"
"백무아..."
"서로 이름은 기억해야지요. 내 오빠를 형이라고 불렀다니 홍범, 당신과 나는 오누이란 말입니다."

그렇게 백무아, 그녀는 보통강의 어스름을 밟으며 내게서 멀어져갔다. 그녀의 뒷모습이 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다음에야 나는 몸을 돌려 어둠에 잠겨가는 보통강을 바라보았다. 어둠 아래, 저 깊은 강물의 표면 아래로는 무엇이 흐르고 있을까. 유장하게 굽이치는 물굽이만이 강바닥 깊이 박힌 바위의 존재를 알려주었다. 나는 바위가 되어 박히지도, 강물이 되어 흘러가지도 못한 채 오래 흔들리며 서 있었다. 보통강 강가의 갈대가 바람의 방향을 일러주며 내 열아홉 살의 가을과 함께 흔들리는 저녁이었다.
덧붙이는 글 방현석은 소설가다. 소설집 <사파에서>, <세월>, <내일을 여는 집>, <랍스터를 먹는 시간>, <새벽 출정>과, 장편소설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 <십 년간>, <당신의 왼편>이 있다. 산문집 <아름다운 저항>, <하노이에 별이 뜨다> 와, 창작방법론 <이야기를 완성하는 서사패턴 959> 등을 썼다. 신동엽문학상(1991), 오영수문학상(2003), 황순원문학상(2003) 등을 받았다. 현재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10만인클럽후원하기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