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26 07:21최종 업데이트 21.10.26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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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은 2019년 "지금의 민주당은 통과시킬 수 없지만, 2021년에는 준비되어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2021년에 기회를 잡을 수도 있는 것, 바로 '그린 뉴딜'(Green New Deal)이다. 예측대로 그린 뉴딜은 2019년 미국 의회에서 부결되었지만, 현재 바이든 대통령이 'B3'(더 나은 재건, Build Back Better)라는 이름으로 다시 추진하고 있다.

바이든은 기후 변화, 산업, 교육, 복지까지 아우르는 이 플랜에 향후 10년간 약 3조 5천억 달러(약 4천조 원)의 예산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공화당의 반대는 물론이고 민주당 내부 갈등으로 발목 잡혀 있다. 수정안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젊은 세대는 백악관 앞으로 집결해 물러서지 말라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기후 비상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이 최대한의 연방 법안을 통과시킬 것을 촉구하며 5명의 젊은이들이 백악관 밖에서 단식 투쟁을 하고 있다. 2021.10.20 ⓒ sunrise movement

 
'그린 뉴딜'이란 무엇일까. 그린은 친환경, 뉴딜은 1930년대 대공황기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경제 정책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노동 및 자본 금융 시장에 깊이 개입해 시장 경제를 통제, 고전 자유주의 시대를 끝냈다. "자기가 속한 계급의 배신자(Traitor to his class)"라고 표현될 정도지만, 전후 미국 중산층의 형성은 대공황기와 2차 대전까지 이어지는 루스벨트 시기의 산물이다.  

'그린 뉴딜'은 탄소 중립을 이루기 위해 국가가 경제 전 영역에 개입, 경제 구조를 전환시키는 과정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창조하고 경제적 불평등까지 해소시킨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시장에 대한 믿음으로 작은 정부와 성장을 위주로 하는 현 신자유주의 질서와는 대척점에 있다.


'그린 뉴딜'은 2010년대에 대한 반동이기도 하다. 2010년대는 2007-2008년 세계 금융위기 영향 하에 시작해서 2020년 팬데믹 발 경제 위기로 끝났다. 두 번의 위기 사이에 세 가지 흐름이 있었다. 초반은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운동(2011-2012)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경제 불평등에 대한 비판이다. 하지만 운동은 실패했고 극우 포퓰리즘이 대신했다. 가짜뉴스 및 탈 진실 조류와 결합한 혐오·테러·범죄가 2010년대 중반 난민 위기로 절정에 달했다. 그리고 2010년대의 마지막엔 전 세계 젊은 세대를 단결시켰던 기후 파업이 있었다.

'그린 뉴딜'은 첫 번째와 마지막 흐름의 접점이다. 여기에는 "경제 정의와 기후 정의"를 동시에 실현하는 시대, 새로운 시대를 향한 바람이 담겨 있다.

'그린 뉴딜'의 탄생    

그린(녹색)이란 말은 반세기동안 주변부를 맴돌았다. 선명한 상징성으로 광범위한 사회적 공감도 얻었지만 중심으로 진출하지 못했다. 게다가 뉴딜은 무려 90년 전의 아이디어로, 역사책에나 등장하는 개념이다.

주변부와 옛 것을 불러들여 조합한 이는 학부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영국 <가디언> 경제부 편집장인 래리 엘리엇(Larry Elliot)이다. 2007년 런던의 한 술집에서 지인과 금융 위기와 환경 이야기를 나누다 '그린 뉴딜'이라는 표현을 생각해 냈다고 한다.

이 막연한 아이디어는 술자리 농으로 날아가지 않고, 그린 뉴딜 그룹(Green New Deal Group)으로 나타났다. 창립 멤버는 총 9명으로, 언론계 래리 엘리엇, 훗날 영국 녹색당 대표가 되는 캐롤라인 루카스(Caroline Lucas), 2008년 금융 위기를 정확히 예측한 앤 페티포(Ann Pettifor) 등의 경제학자들과 환경운동가들로 구성되었다. 앤 페티포가 소유한 런던 베이커가의 작은 아파트에서 약 1년간 지속된 격론 끝에 이들은 2008년 7월 "그린 뉴딜: 신용 위기, 기후 변화, 고유가 3중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을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는 재생 에너지와 친환경 산업에 대한 대규모 정부 투자를 주장하는 내용이 담겼다. 1933년 루스벨트가 뉴딜의 준비 작업으로 미 전역의 금을 압수하고 국유화함으로써 월스트리트를 통제했던 것에 주목, 이 그룹도 그린 뉴딜을 위한 준비로 금융계의 "왜곡된 권력"을 통제해야 한다면서 거대 은행의 분할까지 거론했다. 저탄소 산업 분야에 대한 집중 투자로 새로운 일자리를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 과정에서 환경론자, 산업, 농업, 각종 조합이 유기적인 연합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30대·여성·유색인종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Alexandria Ocasio-Cortez, 사진) 미국 하원의원 ⓒ Alexandria Ocasio-Cortez

 
2008년 '영국판 그린 뉴딜'은 당시 영미 양국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지 못했다. 당시는 노동당의 브라운 내각(영국)과 민주당의 오바마 행정부(미국) 시기였다. 이들은 대처와 레이건의 신자유주의 경제를 수용한 '제3의 길,' 즉 토니 블레어의 "신 노동당(New Labour)"과 빌 클린턴의 "신 민주당(New Democrats)"의 연장에 있었다. 금융시장 안정에 초점을 맞춘 대책 속에서 경제적 불평등과 기후 문제가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그린 뉴딜'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미국 민주당 상원 에드워드 마키(Ed Markey, 1946-)와 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lexandria Ocasio-Cortez, 1989-)가 '그린 뉴딜' 결의안을 의회에 상정한 것이다. 사장되는 듯했던 주장이 미국 의회에 가기까지는 젊은 세대가 이끄는 선라이즈 운동이 있었다.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과 선라이즈 운동

젊은 세대의 정치적 각성은 2016년 트럼프 당선 후 선명하게 나타난 사회 현상이다. 대학과 기후 단체에서 활동하던 20대 젊은 운동가들이 모여 2017년 4월 선라이즈 운동(Sunrise movement)을 시작했다. 바시니 프라카시(Varshini Prakash) 대표는 "트럼프의 승리는 젊은 세대와 정치 참여 사이에 있던 장애물을 날려버렸다"며, 기후 운동을 정치 운동과 병행시킬 것임을 시사했다.

트럼프의 대선 승리가 직접적 도화선이었지만, 선라이즈 운동은 2011년 가을 뉴욕 맨해튼의 "월스트리트 점령(Occupy Wall Street)" 운동의 영향을 받았다. 선라이즈 공동 창립자로 학부 3학년 때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에 참가했던 에번 웨버(Evan Weber)는 <뉴욕 매거진> 인터뷰에서 "선라이즈 기획 단계에서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의 성공과 실패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반자본주의적 성격을 가진 '점령' 운동은 "우리가 99%다"는 슬로건으로 세계 금융자본의 심장인 뉴욕 맨해튼에서 시작해 미국 전역 시위로 확산되며 악화되는 경제 불평등을 일깨웠다. 하지만 분명한 목표와 목표 달성을 위한 전략 부재로 인해 구심점을 잃고 실패로 끝났다.
  

지난 5일(현지 시간) 오후 로어 맨해튼 폴리스퀘어에 1만5000여 명의 시위대가 모여 "우리는 99%다", "매일 월스트리트를 점령하자" 등의 구호를 외친 뒤, 뉴욕증권거래소 인근 자유광장(주코티파크)까지 행진했다. 2011.10.5 ⓒ 최경준


선라이즈는 '그린 뉴딜'을 운동 목표로 삼는다. 2008년 영국판 그린 뉴딜의 논조를 유지하면서도 일자리 부분에서는 미국적 특성을 보강했다. 1930년대 뉴딜의 일부였던 시민 보존단(Civilian Conservation Corps)이 그것으로, 당시 루스벨트는 환경 보호 사업 쪽으로 젊은 세대에게 수백만의 일자리를 제공했다. 선라이즈는 시민기후단(Civilian Climate Corps)으로 이름을 변형, 정부가 기후 변화 사업 분야를 창조하고 일자리를 제공할 것을 주장했다.

선라이즈는 1900년 이후 전체 인구의 3.5%가 적극적으로 참가한 운동은 실패한 적이 없다는 사회학자 에리카 체노웨스(Ericka Chenoweth)의 연구 결과를 인용, 지역 사회 중심의 전략을 세웠다. 정치인에게 압박을 가하기 위해 새벽에 지역 정치인 집 앞에서 항의하는 방식도 도입했다. 1860년대 노예 폐지를 지지하는 젊은 세대들이 구사했던 "확 깨우기(Wide Awakes)"을 차용했다. 당시 젊은이들은 노예제를 지지하는 정치인들을 밤에 찾아가 집 앞에서 냄비를 두들겨 잠을 못 자게 했다.

존재감 입증

2018년 11월 13일은 선라이즈와 그린 뉴딜에 변곡점이 된 날이다. 이 날 약 250명이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 집무실을 점거, 그린 뉴딜을 외쳤다. 스스로를 민주 사회주의자 (Democratic socialist)로 규정하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이 이들 행동에 가세했다. 이후 그녀는 에드워드 마키와 '그린 뉴딜'을 법적 구속력이 없는 결의안 형태로 2019년 2월 의회에 상정했다. 미국이 유럽에 뒤처진 복지 부분, 보편적 의료 보험과 공공 주택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그린 뉴딜'은 환영받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낮은 점수를 받은 고등학생의 학기말 보고서"로 폄하했고, 공화당은 "괴짜" 혹은 "사회주의자들의 희망 목록"이라고 비난했다. 헤리티지 재단은 "그것은 트로이의 목마다. 마르크스주의를 등에 업은 기후 입법이다"고 평했다. 민주당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조차 "초록 꿈(green dream)"이라며 주저했다.
  

선라이즈 무브먼트를 포함한 여러 환경 단체의 젊은이들이 뉴욕시청 근처에서 기후 파업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19.12.6 ⓒ 연합뉴스

 
반면, 지지자들은 그린 뉴딜이 지구 파괴를 막는 길이라고 맞섰다.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자본주의 대 기후>의 저자 나오미 클라인(Naomi Klein)은 끊임없이 소비를 조장하는 신자유주의의 시장근본주의 하에서 기후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E. Stiglitz)는 "그린 뉴딜 비판자들은 우리가 지불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하지만, 우리는 지불 안 할 수 없다. 인류 문명이 걸린 문제다"며 그린 뉴딜을 지지했다.  

결과는 부결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선라이즈는 미국 전역에 존재를 알렸다. 2018년 말 의장실 점거 당시 11개에 불과했던 지부가 1년 후인 2019년 말까지 310여 개로 증가, 미국 내 가장 영향력 있는 사회운동 단체 중 하나로 성장했다.

바이든과 그린 뉴딜

의회 문턱을 넘지 못했지만, 민주당 대통령 후보 대부분이 '그린 뉴딜'을 받아들이면서 그린 뉴딜은 대선 무대로 옮겨갔다. 평생 중도 노선이었던 바이든조차 환경 문제와 경제적 불평등을 같이 해결하는 게 중요한 프레임이라고 밝혔다.   

2020년 1월 9일 선라이즈는 미국 민주당 후보 중 버니 샌더스 지지를 선언한다. 회원 75% 이상의 압도적 지지였다. 이들뿐 아니라 '밀레니얼 사회주의(millennial socialism)' 즉 미국 밀레니얼 세대가 자본주의보다 사회주의를 선호하는 흐름 속에 버니 샌더스는 젊은 세대의 확실한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최종 승리는 바이든이었다. 이후 선라이즈는 바이든의 대선 승리에 유의미한 역할을 했다.

팬데믹을 거치며 바이든은 중도에서 개혁 및 시대 전환으로 방향을 틀었다. 2021년 3월 바이든은 역사학자들을 백악관으로 초청, "전환이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주제로 뉴딜과 미국사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크게 생각하라, 과감하게 가라(think big, big-go)"는 조언을 들었다고 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미 현지시각)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6차 유엔총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2021.9.21 ⓒ 연합뉴스=AP


3조 5천억 달러(4천조 원) 예산안은 바이든의 최종적 결심을 보여준다. 현재 공화당과 민주당 비율이 막상 막하인 상황에서 바이든 예산안이 통과하기 위해서는 민주당 상원 의원 100%가 동의해야 한다. 하지만 두 명의 반대로 표결에 부치지 못하고 있다. 

의회 내 교착 상태에 실망한 젊은 세대는 백악관으로 향하는 한편, 보다 공세적인 정치 운동을 계획하고 있다. 선라이즈는 "우리는 민주당을 차지해야 한다"라고 선언, 2022년 중간 선거에 입후보할 사람을 직접 모집하고 있다.

"현상 유지적인 현 상황에 도전만 하지 마라. 무너뜨려라. ...(중략)... 시와 주의회에 출마해라. 그리고 이겨라."

'그린 뉴딜'을 발의했던 70대의 매사추세츠 상원의원, 에드워드 마키가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하는 선라이즈에게 보내는 응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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