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22 06:23최종 업데이트 21.10.22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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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전투의 주역 홍범도 장군이 8월 15일 광복절에 귀향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방현석 소설가의 '홍범도 실명소설 <저격>'을 주 2회(화요일, 금요일) 연재합니다.[편집자말]

   

 
13

김천의 민란을 진압하고, 다음으로 간 곳은 울산이었다. 김천에서도 그랬지만 울산 민란의 진압현장은 처참했다. 진압할 상대조차 되지 않는 농민들이었다. 그들이 든 것이라곤 고작 낫과 괭이, 허술한 창이 전부였다.


"항거하는 자는 모두 베어라."
정태신 파총의 명령은 단호했고, 격술을 구경한 적도 없는 오합지졸들을 제압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이런 오합지졸들에게 감영을 내준 지방 감영의 군사들이 그저 한심스럽게 여겨질 뿐이었다. 도망이라도 가면 목숨을 구할 텐데 지방 감영의 군사들을 상대해본 경험으로 우리 앞을 가로막았던 농군들은 친군영의 총칼 앞에 추풍낙엽이었다. 나는 김천에서부터 칼을 쓰지 않았다. 오른손에 칼을 들고 있었지만 왼 주먹과 두 발만으로도 농군들을 한동안 일어서지 못하게 주저앉히기 충분했다. 한 걸음 앞서 돌파해가고 있는 백무현을 쳐다봤다. 백무현이 휘두르는 쌍칼에 농군들이 나가떨어지고 있었다. 백무현의 양손에 들린 칼 놀림은 오늘도 현란했다. 하지만 백무현의 칼에는 피가 묻어나지 않았다. 서로 얘기한 적이 없었는데 백무현도 칼날을 쓰지 않았다. 뒤집어 잡은 칼로 상대의 뒷목을 쳐서 졸도시키며 백무현은 한 걸음 한걸음 치고 나갔다. 날로 베는 것보다 등으로 치는 것이 더 까다롭고, 죽이는 것보다 졸도시키는 것이 훨씬 위험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려고 했다. 그동안 속으로 백무현을 무시하고 미워한 것도 미안했다.

"친군영에 대항하는 자는 임금에게 대항하는 역도다. 가차 없이 베어라!"

나는 언월도를 치켜들고 호령하는 정태신 파총을 바라보았다. 처음으로 그가 작고 못나 보였다. 죽이지 않고도 농민들을 진압할 수 있다는 것을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 파총이었다. 슬프고 화가 났다. 조금만 선무공작을 펼쳐도 낫을 내려놓고 손을 들 농군들이었다. 싸울 필요조차 없는 싸움이었다. 덤빈다 해도 정예병 1개 초만 풀면 죽이지 않고도 능히 제압할 수 있는 상대였다. 이게 뭐하는 건가. 내 눈에는 파총이 개화파에게 당하고, 청나라 군대에 밀린 분풀이를 지리멸렬한 농민들에게 하는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한 식경도 되지 않아서 농민들을 진압했다. 피가 흥건하고 시체가 즐비했다. 내가 죽인 시체가 없다는 사실로 위안이 되지 않았다. 손을 들고 항복한 자들을 옥에 가두었다. 시체를 앞에 두고 옥을 등진 채 저녁을 먹었다. 저녁으로 나온 건 까만 보리밥이었다. 고기는 보이지 않았지만 고기 기름이 뜬 국이 나왔다.

"고래가 헤엄을 치고 갔네."
남창일이 건더기 없는 국을 휘저으며 투덜거렸다.
"고래?"
"촌놈, 바닷고기 고래 몰라?"
백무현이 국에 말은 보리밥을 숟가락 가득 퍼 들면서 내게 퉁바리를 줬다.
"울산 오면 고래고기는 구경할 줄 알았는데 고래 기름만 본다, 젠장."
"다른 부대는 난을 일으킨 고을의 가축들은 죄다 잡아서 고기 잔치를 한다는데 우린 피를 본 날도 꽁보리밥에 맨 국이네."
투덜거리는 남창일을 나도 모르게 막고 나섰다.

"민폐를 용납하지 않는 파총님인 거 몰라?"
한양에서 화성, 김천을 거쳐 울산으로 내려오는 동안에도 정태신 파총의 민폐금지 원칙은 엄격했다.
"이건 민폐 아닐 거 같아?"
숟가락에 뜬 보리밥을 들어보이며 남창일이 입을 삐쭉 내밀었다.
"기름만 남기고 사라진 고래는 어부들한테 뺏어 왔을 거고, 이 보리쌀도 결국 다 저 무지렁이들 독을 털어서 채울 게 뻔한데."
남창일은 손에 든 숟가락으로 앞에 놓인 시체와 산발을 하고 옥에 갇힌 농군들을 가리키며 맞받았다.

"그만해. 밥맛 떨어진다."
백무현이 남창일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나는 정말 밥맛이 떨어져서 대접을 놓고 일어섰다.
"에이, 간나. 먹어!"
나는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백무현도 대접을 내려놓고 따라 일어섰다.
"이 간나 새끼들이... 밥도 못 처먹게 하네."
나는 백무현의 앞을 막아섰다.
"형, 형은 그래도 먹어."
백무현은 자기 귀가 의심스러운지 귓불을 만지며 물었다.
"너 지금 뭐 잘못 먹었냐. 고래 국물에 약 들었어?"
"형이라고 하는 게 싫어?"
"안 하던 짓 하니까 그렇지."
"오늘에야 알았는데, 형 맞는 거 같애. 무현 형."
내가 왜 자기를 갑자기 형이라고 부르는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백무현의 입꼬리는 귀에 가 걸렸다.

"칼등으로 상대하려면 힘들잖아. 많이 먹어둬야지."
"어... 봤냐?"
"매의 눈은 속여도 내 눈은 못 속이는 거 몰라? 형."
"칼 씻기 귀찮아서 그런 거야."
그러면서 역시 피가 묻지 않은 내 칼을 내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그러는 너는?"
"나는 뭐 안 귀찮은가."

우리 둘의 칼을 바라보던 남창일이 자신의 단창으로 눈길을 돌렸다. 피가 잔뜩 말라붙은 자신의 단창을 바라보는 남창일의 표정이 굳었다.
지치고 힘든 밤이었다. 멍석에 등을 붙이고 눕자 모든 것이 귀찮았다. 왜 휘둘러야 하는지 모를 칼을 언제까지 휘둘러야 하나, 생각하는 것조차 싫어졌다. 빈 배보다 가슴이 더 텅 빈 것 같았다. 배와 가슴, 어느 쪽이 더 허전한지 알 수 없었지만 배고픔보다 잠이 더 센 것은 분명했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 누군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이대로 내내 눈을 감은 채 세상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가늘게 눈을 떴다. 흐릿한 시야에 들어온 것은 남창일이었다.
같은 자시 야초인 남창일은 자신의 단창을 슬며시 뒤로 감추었다.
"저 뒤에서 봐."
내 턱짓을 따라 남창일이 등 뒤의 옥사를 돌아보았다. 돌아선 그의 등 뒤로 보이는 단창이 깨끗하게 씻겨 있었다. 달빛을 받아 빛나는 녀석의 창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쓸쓸하고 애잔했다.

"다 자는데 누가 본다고 그래."
"다 씻었네."
"우이, 씨..."
녀석은 뒤로 감추었던 창을 앞으로 돌려 들었다.
"창은 칼처럼 등이 없는 걸 어떻게 해."
"누가 뭐래?"
"나도 찌르고 싶지 않았다구. 그런데 난 손발을 쓰는 결련택견도 잘 못하고, 창 아니면 상대가 안 되는 걸 어떻게 해."

녀석이 울먹였다. 녀석이라고 자신의 창이 농군의 가슴을 파고들어갈 때 손바닥으로 전해져오는 그 더러운 기분을 느끼지 않았을 리 없었다. 입으로 피를 뿜으며 쓰러지는 상대의 가슴에서 창을 뽑아내면서 고향에 두고 온 부모와 형제들이 눈앞을 가리지 않았을 리 없었다.
"정말 죽이고 싶지 않아?"
무심한 척 물었는데도 녀석의 눈에서 물기가 흘러나왔다.
"말이라고 해..."
"그럼 뒤로 빠져."
"비겁하게 어떻게 그래?"
"여기서 용감해서 뭐하려고. 왜놈이라도 잡아? 오랑캐라도 물리치냐구?"
"..."

녀석은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기서도 북두칠성은 북쪽 하늘에 총총히 떠 있었다.
"난 그냥 평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양도 싫고, 친군영도 싫어. 개화파도 무섭고 완고파도 무섭고... 농민들만 불쌍하고."
우리가 주고받는 얘기를 들었는지 농군 하나가 손을 밖으로 뻗으며 물을 찾았다. 옥에 갖힌 자들이 모두 잠든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는 물 한 바가지를 떠다 주었다. 바가지가 커서 창살 사이로 들어가지 않아, 농군은 창살 사이로 입을 내밀어 밖에서 내가 기울여주는 물을 마셨다. 그것을 본 옥 안의 농군들이 모두 일어나 물을 마시려고 줄을 섰다.

"차말로 고맙심더."
태어나서 나라에서 받은 것이라고는 스무 가지도 넘는 세금 전표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그들은 찬물 한 모금에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조아렸다. 내가 만난, 우리가 죽여야 했던 역도들은 다 그런 백성들이었다.
내가 든 바가지가 비어가는 것을 보고 남창일이 가서 또 한 바가지를 들고 왔다. 목이 말랐던지, 배를 주렸던지 나와 남창일이 두 번을 더 다녀와서야 더 마시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이건 뭐 민란도 아니고... 머리에 뿔이 달린 것도 아니고, 정말 어이가 없네."
남창일이 농군들의 눈길을 피하며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왜 이런 짓을 했어요? 하려면 제대로 하던지."
나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창살에 기대앉은 사내에게 물었다. 자상을 입었는지 저고리에 핏자국이 밴 사내는 눈길을 허공에 둔 채 대답했다.

"생각은 무슨 생각이 있었겠능기요? 소낭구 껍데기 베끼묵으면서, 맹년에는 우예 안 되겠나 카머 보릿고개를 전디는 우들한테... 씨종자까지 빼져 가뿌는데 우야겠는기요. 곯아죽으나 맞아죽으나 죽기는 한가지 아이겠나, 그래가 차라리 우들 죽이고 씨종자 빼져 가뿌라 카머 들받고 일어난 기 우짜다가 여기꺼지 온기지요."

그렇게 몰려와 양곡 몇 자루를 털어먹은 농민들이었다. 신포수와 아버지가 가담했다던 민란도 이런 것이었을까. 내일이면 이들은 어떻게 될까. 더러는 저 앞에 샇인 시체더미로 옮겨지고 더러는 곤장에 엉덩이가 너덜너덜해져서 풀려날까.
"물 더 줄까요?"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그런데 대답은 엉뚱했다.
"말 놓으소."
언제 한번 관리로부터 나이대접을 받고 올림말을 들어봤겠는가. 새파랗게 어린 병졸에게 듣는 올림말 한마디가 황송한 그에게 나는 다시 물었다.

"물 더 줄까요?"
"고맙꾸로, 그래줄란기요?"
나보다 먼저 남창일이 바가지를 들고 우물가로 달려갔다. 멀리서 늑대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북쪽 하늘에 뜬 북극성 옆에 있던 북두칠성의 국자 끝이 아래로 기울며 축시로 넘어가고 있었다. 다음 야초와 교대를 할 시간이었다. 태백준령의 끝자락에 붙은 동대산은 밤에 깃들어 있었다. 아울이는 아직도 살아서 아득령에서 여기, 울산까지 오르내리고 있을까. 신포수는 지금도 아울을 쫓아 저 태백준령의 기슭 어딘가에 깃들어 북극성을 바라보며 잠들었을까.
개화파의 일일천하가 끝나고 대역부도죄로 잡혀들어간 이흥완과 차이경도 한양의 옥에서 저 별을 바라보고 있을까. 아니면 이미 목이 달아났을까.
덧붙이는 글 방현석은 소설가다. 소설집 <사파에서>, <세월>, <내일을 여는 집>, <랍스터를 먹는 시간>, <새벽 출정>과, 장편소설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 <십 년간>, <당신의 왼편>이 있다. 산문집 <아름다운 저항>, <하노이에 별이 뜨다> 와, 창작방법론 <이야기를 완성하는 서사패턴 959> 등을 썼다. 신동엽문학상(1991), 오영수문학상(2003), 황순원문학상(2003) 등을 받았다. 현재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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