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28 07:31최종 업데이트 21.10.28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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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지민 안무가가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 공원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국립현대무용단 프로젝트 '혼자 추는 춤’에 참여한 계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유성호

 
이번 인터뷰는 <권은비의 뉴노멀아티스트> 연재 마지막 편이다. 마지막인만큼 사심을 듬뿍 담아 오래전부터 흠모해온 예술을 하고 있는 예술가를 만나보기로 했다. 바로 춤이다. 다른 말로는 무용이라 하겠다.

한때 무용을 배우러 갔다가 거울 속에서 어처구니없이 낑낑대는 내 모습이 꼴 보기 싫어 무용 수업을 뛰쳐나왔던 적이 있다. 그런 나와는 매우 다르게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무용을 해오고 있는 손지민 안무가는 무용수, 움직임 디자이너(연극), 퍼포머(시각예술), 예술가 교사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거리공연과 연극공연, 무용공연, 영상매체 등 그의 움직임은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다양한 영역에서 발휘되고 있다.


손지민 안무가의 작업들은 묘하게 눈을 사로잡는다. 그의 안무와 움직임은 예술이라는 가면을 쓰고 허공을 뛰어다니지 않는다. 현실에 발을 딛고 있다. 즉 어려운 예술언어로 예술에 권위를 부여하기보다 특유의 솔직함으로 현실 속의 예술이 얼마나 삶을 흥미롭게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프랑스 예술가의 유명한 말처럼, '예술은 삶을 예술보다 흥미롭게 하는 것'을 보여주는 예술가가 바로 손지민 안무가다. 지난 15일, 그를 만나 이야기 나눴다.

무용을 통해 찾은 삶

- 무용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특별히 있었는지 궁금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비교적 학생 수가 적은 학교로 전학을 하게 된 후 심하게 따돌림을 당하게 되었다. 이전 학교는 학급도 많고 학생들도 많아서 오히려 활달하게 지냈는데 전학 후 왕따를 당하게 되면서 활달한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그 모습을 아버지가 보시고 춤을 권유하셨다. 그 전부터 내가 춤추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아셨기 때문이다.

어릴 때 나는 무용이라기보다 그냥 춤을 배우고 싶었는데 아버지는 무용을 하면 전통무용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마침 가족 중에 이매방 선생의 제자분이 있었다. 그때부터 경기도 용인에서부터 서울 홍대 인근까지 가서 한국무용을 배우러 다녔다.

선생님은 도제식으로 교육했다. 여름에 에어컨도 안 켜고 언니 오빠들이랑 한복을 입은 채 춘앵무를 춰야 했다. 말하기 부끄럽지만, 그때 한복 안으로 땀이 흐르는 걸 느끼면서 '춤이란 이런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데도 땀을 흘리며 뭔가에 집중해서 수련한다는 것, 수행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처음 느꼈던 것 같다."

- 한국무용에서 현대무용으로 언제 전환하게 되었나?

"생생한 장면이 하나 있다. 콩쿠르 무대에 나갔고, 무대 옆에 어머니가 서 있었다. 내가 장삼을 펼치고 옆을 보는 동작을 취했는데, 내가 동작을 음악에 못 맞췄는지, 잘못했는지 어머니가 한숨을 쉬는 게 눈에 보이더라. 그때부터 '아, 잘못됐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머릿속이 하얗게 되고 나머지 동작도 엉망으로 하고 나오게 되었다.

그 콩쿠르 이후로 어머니는 내가 한국무용에 완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아채신 것 같다. 그 뒤로 무용학원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런데 중학교 무용선생님이 고등학교 진학을 준비하며 현대무용을 하는 것을 제안하셨다. 한국무용 때와는 달리 현대무용으로 바꾼 후, 무용이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무용에 대한 뭔가 이상한 욕심이 생겼다. 무용하기 전에는 자신감이 없었는데 무용을 하면서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라고 느꼈다."

현실 위에서 춤추는 사람
 

손지민 안무가. ⓒ 유성호


- 보통 대학에서 무용학과를 다닌다고 하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환상이 있는 것 같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학생들이 무용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 생활은 어땠나?

"나는 3학년 이후에 휴학했다. 나에게 어떤 불안감이 있었고, 1년만 더 다니면 졸업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 당시 무용이라는 장르에 인생 자체를 의존하고 있었고 학교에서 무언가를 더 배워야 할 것 같은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고, 등록금을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나는 편의점에서 일했다. 처음에는 '나도 알바라는 걸 해봐야지'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아르바이트를 계속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그런데 휴학을 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니 너무 재밌더라. 복학한 후로는 기회가 닿을 때 학부생들 연극 안무도 하게 되었다. 대학 졸업 후에도 연극 안무를 할 기회들이 생겼다. 그 경험들은 대학 생활을 돌아볼 때 즐겁고 참 감사한 경험이었다.

대학 졸업 후에는 무용을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했다. 다른 길을 가고 싶었다. 다만 관두기 전에 인생에서 반평생 무용을 했으니 외부에서 무용공연을 한번 하고 그만둬야 후회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또 무용에게 '기회'를 줬다.

그리고 기회가 생겼을 때 개인 안무가가 이끄는 무용단에 들어가서 3년 정도를 함께 했다. 그때 여러 차례 공연하면서 다시 춤을 추는 것이 하는 것이 즐거웠다. 그리고 '아, 나는 무용을 못 그만두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무용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이 내게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늘 갖고 있다."

멋지지 않아도 괜찮아
  

2015년 프린지페스트벌 <관성모멘트/어떤 그런 순간들>의 손지민 안무가 ⓒ 프린지페스티벌

 
- 2015년에 서울 프린지페스티벌에서 선보인 <관성모멘트/어떤 그런 순간들>은 공연장이나 무대 위에서 진행되지 않고 야외(월드컵경기장)에서 진행이 되었다. <관성모멘트/ 어떤 그런 순간들>에 대한 작업 설명을 부탁드린다.

"프린지 페스티벌에 지원한 아티스트들이 모이는 시간이 있었는데 진행하셨던 분의 말이 인상 깊어 공연을 만들 수 있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정해진 공간도 조명도 없이 아무것도 주어진 것 없는 상황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는 게 또 아티스트의 역할이지 않나 생각한다'라는 말을 하셨다. 알 수 없는 도전 의식이 생겼던 것 같다.

모든 관계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생각을 했다. 가치관, 습관, 취향 등등을 상대와 주고받으면서 교류한다고 생각했고, 안무할 때 '주고받는 행위'가 가시적으로 보였으면 했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관성모멘트/ 어떤 그런 순간들>을 만들었다.

남녀가 마치 경기를 하듯이 관계가 형성되고 여러 번 주고받은 관성으로 인해서 경기가 끝났는데도 경기의 끝을 인지하지 못 하고 있는 상태를 그리고 싶었다. 또, 상대에게 받은 여러 가지가 남아 있는 상태를 보여주고 싶었다. 후에 공연장에서 이 공연을 하고 싶었는데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거리극 축제에서 할 수밖에 없는 세팅으로 작품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부득이하게 이 작품을 2015년에 올리고 개인적 사정으로 무용을 관둬야 하는 상황이 와서 회사를 1년 정도 다녔는데, 1년 뒤에 안산국제거리극 축제에서 공식초정작으로 불러줬다. '포기하지 말라는 건가' 싶어 다시 무용을 시작할 수 있었던, 은인 같은 작품이다."
 

- 올해 국립현대무용단 프로젝트 <DANCE ON AIR> '혼자 추는 춤'에 참여하신 걸로 알고 있다. 코로나 상황에서 공연을 자유롭게 못 보는 상황에서 그 작품을 봤을 때 굉장히 공감하면서 재밌게 봤다. '난 특별한 예술가야'라고 외치는 작업이 아니었다. 누구나 그러하듯 집에서 편한 옷을 입고 움직이면서 일상을 살 듯, 화면 속 무용수도 편한 복장으로 움직임을 하는데 어딘가 유쾌하고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 작업은 어떤 작업이었는지 궁금하다.

"2020년 1월에 오디션을 통해 국립현대무용단 해외안무자(스페인 안무가 랄리아구아데) 오디션에 합격했다. 굉장히 기대가 컸다. 그런데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상반기 국공립 공연들이 줄줄이 취소되었다. 내가 참여할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2020년 상반기에 국립현대무용단에서 참가하기로 했던 프로그램이 취소된 무용수들에게 개인 안무 의뢰가 들어왔다. 그렇게 참여하게 된 프로그램이 DANCE ON AIR '혼자 추는 춤'이었다.

코로나로 인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무용수들이 집에서 또는 혼자인 시간에 무엇을 하는지 관객분들이 엿볼 수 있는 콘셉트의 기획이었고, 안무하고 영상으로 기록하여 유튜브에 공개하는 작업 형태였다. 제안을 받고 집에서 촬영했다. 영상 속 집은 내가 자취하는 집이다.

무용하는 사람에 대해 비 전공자분들은 여러 가지 환상이나 편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내심 '멋진 춤'을 추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다. 무용에 대해 어렵게 느끼거나 막연히 '뭔가 대단한 것'처럼 인식하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다.

그리고 원래 내가 그렇게 부지런한 편이 아니다. 집에서는 베란다에 나가서 넋 놓거나 침대에서 누워서 한참 있기도 한다. 그런 일상의 모습을 움직임으로 표현하면서 여기 멋지지 않은 춤을 추는, 무용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영상 속에 후반부에 등장하는 테니스공이 등장하는데 첫 안무작인 <관성모멘트> 나왔던 테니스공을 등장시켰다. 내게 테니스공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에 상당수 등장하는 '레드 애플' 같은 역할이다. 내 나름의 위트였고 내가 만드는 작품의 세계관을 연결시키고 싶었던 것 같다."
   

무용 영상작품 <물류센터에서 춤을 추다> 영상 스틸컷 https://youtu.be/yuHVg9jg2qc 안무: 김은경 ⓒ DANCE IN A WAREHOUSE

 
- 다른 무용 영상작품 <물류센터에서 춤을 추다>도 굉장히 인상 깊게 봤다. 무용수들이 노동자들이 입는 작업복과 작업화를 입고 실제 공장에서 움직임을 하는 모습이 새롭게 감각되었다.

"<물류센터에서 춤을 추다>는 김은경 안무가의 작품이다. 나는 공동창작으로 참여했다. 김은경 안무가가 실제로 물류창고에서 일한 경험이 있었다. 그 경험을 토대로 특정일을 하는 사람들을 초대하는 공연을 하고 싶어 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영상촬영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나는 그 작업에서 무용수 3명 중 한 명이다. 상자를 반복해서 옮기는 행위라든지, 종이 의상을 입고 움직임을 한다든지, 상자를 손가락으로 세는 움직임 등 실제 노동의 움직임에 집중한 프로젝트였다. 그때 무용수들이 타이즈를 입고 작업 현장에서 움직임을 하기도 했는데 실제 그곳에서 일하는 분들이 신기하게 보시더라. 개인적으로도 재밌는 경험이었다.

무용을 배우면서 여러 감각을 수행한다. 내 몸의 어떤 부위를 사용하는지 집중한다. 김은경 안무가가 말하길, 물류창고에서 일하면서 무용할 때 집중하고 사용하는 감각을 똑같이 느꼈다고 하더라. 그 말이 많이 인상 깊었다.

나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런 경험을 했던 것 같다. 무용으로 배운 집중력과 에너지를 쓰면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그런지 일을 잘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고도의 집중력과 여러 감각을 곤두세우고 아르바이트를 하니까. 농담으로 말한다. 우리는 집중력 좋은 고급 인력이라고.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날씬하고 예쁘고 멋있는' 무용도 있지만, 다양한 사람, 다양한 몸 자체를 보여주는 무용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많은 안무가 무용수들이 다양한 시각들의 작업을 하고 있다. 다만 노출이 안 되고 있을 뿐이다.

연극이나 영화처럼 제작비가 많고 초호와 캐스팅으로 화려한 작품을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어떤 장르를 처음 접하고 꾸준히 보다 보면 어느 순간 영화처럼 마니아가 되어 있고 다른 장르, 다른 작품을 보고 싶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손지민 안무가는 솔직했다. 어딘가 그의 작업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솔직한 예술가가 많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의 솔직한 이야기와 솔직한 작업이 더욱 빛나 보였다. 손지민표 춤, 손지민표 퍼포먼스를 오래도록 객석 맨 앞줄에서 보고 싶어졌다.

예술가들은 언제나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시인 찰스 부코스키의 시구를 인용하였다) 부단히도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야 한다.

지금까지 나는 <권은비의 뉴노멀아티스트> 연재를 핑계로 여러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유례없는 역병이 창궐한 시대에 그들 덕분에 웃을 수 있었다. 때로는 그들의 이야기가 너무 공감이 가서 고개를 백 번 끄덕이다 뒷목이 아플 때도 많았다.

연재를 시작했을 때는 여름이었는데 연재가 끝나니 겨울이 왔다. 코로나는 여전하다. 예술가들도 여전할 것이다. 여전히 많은 예술가들이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허우적댈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망할 놈의 예술이, 망할 놈의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배를 곯을 때는
지옥은 닫힌 문이다.
가끔 문 열쇠 구멍으로
그 너머가 얼핏
보이는.
- 찰스 부코스키의 시 <지옥은 닫힌 문이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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