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13 12:21최종 업데이트 21.10.13 12:21
  • 본문듣기
 

우부카타 유키오 의원. 우부카타 홈페이지에 실려 있는 선거 포스터. ⓒ 우부카타 유키오

 

속마음을 꺼내보였다가 곤경을 치른 일본 국회의원이 있다. 제1야당 소속의 6선 중의원 의원인 우부카타 유키오(生方幸夫)가 그 장본인이다.


우부카타 의원은 민진당과 그 뿌리인 민주당 출신들을 중심으로 2017년 10월 3일 창당된 입헌민주당 소속이다. 올해 74세인 그는 지역구인 도쿄 동쪽 지바현에서 일본 사회의 금기에 해당하는 발언을 했다가 논란을 일으켰다.

11일 자 <마이니치신문> 기사 "입헌 우부카타 중의원 의원 '요코다 메구미 씨가 살아 있지 않다'는 발언 철회·사죄(立憲·生方衆院議員 '横田めぐみさん生きていない' 発言撤回·謝罪)"는 9월 23일 그의 의정보고회(일본어로는 국정보고회)에서 나온 발언과 관련해 이렇게 보도한다.
 
질의·응답에서 우부카타 씨는 '요코다 (메구미) 씨가 살아 있다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는다', '납치 피해자는 현재는 없다는 쪽으로 인식된다. 정치가는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 등등으로 발언했다고 한다.
 
납치자 문제에 집착하는 일본

납북 일본인인 요코다 메구미와 관련해 북한 정부는 '요코다는 1994년에 사망했다'면서 2004년 11월 일본 정부에 유골을 송환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북한이 보내준 유골은 가짜'라며 살아 있는 요코다를 송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관한 일본 정부의 태도는 견고하다. 일례로 정부 대변인인 내각관방장관 시절의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는 요코다 메구미가 약물 과다로 사망했다는 <동아일보> 보도와 관련해 2014년 11월 7일 기자회견에서 "신빙성은 없다", "정부로서는 납치 피해자 전원이 생존해 있다는 전제 하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피해자 12명이 살아 있을 것이므로 이들을 송환시켜야 한다는 전제 하에 일본은 지속적으로 대북 압박을 가하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국회에서 선출된 다음날인 지난 5일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미국의 협조를 요청했고, 8일 국회 소신표명 연설 때는 이 문제를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평가했다.

일본이 이 문제에 높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피해자나 그 가족의 인권문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당 부분은 정치적 동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이 문제는 경제력과 군사력에 비해 정치적 지위가 낮은 일본의 국제적 입지를 넓히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사안이다.

일본은 위안부·강제징용 및 역사 교과서 문제 등으로 인해 동아시아 내에서 '문제적 국가'로 취급되고 있다. 이는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 진출하는 데도 장애가 되고 있다. 그런 일본이 역내 국가들을 상대로 도덕적 우위에 설 기회를 갖도록 만들어주는 소재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중국의 팽창이고 또 하나는 납치문제다.

일본은 중국 위협론을 명분으로 미국·일본·호주와 함께 쿼드라는 4개국 협의체를 구성해 자위대의 해외 군사활동을 늘리고 있다. 또 납치 문제를 앞세워 북한을 비판하는 방법으로 자국의 도덕적 위상을 높이려 하고 있다. 자민당 내 주도권이 보수 본류(일반 보수파)에서 극우파로 넘어간 21세기 들어 아베 신조나 스가 요시히데 같은 극우파가 납치 문제에 집중하는 이유 중 하나도 거기서 찾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납북자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목소리가 커지면, 자민당 정권이 난처한 처지에 처할 수밖에 없다. 북한은 피해자들이 죽었거나 일본으로 돌아갔거나 유골이 송환됐으므로 '이 문제는 이미 해결됐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일본은 이런 말이 거짓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쪽으로 결론이 내려지면, 북한이 이제껏 진실을 이야기했다는 말이 되고 일본은 거짓 공격을 했다는 말이 된다.

그런 이유 때문에라도, 요코다 메구미 등이 죽었을 수 있다는 말을 입 밖에 꺼내는 것은 일본 사회에서는 금기다. 이를 모를 리 없는 현역 중의원이 공개 석상에서 '요코다 메구미 씨가 살아 있다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발언했으니, 일본 사회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위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우부카타의 발언이 알려지자 '납치피해자가족회'와 '구출회' 같은 단체들이 행동에 나섰다. 이들은 지난 11일 성명을 통해 "이런 발언은 피해자 가족이나 피해자 자신 등에 대한 중대한 모욕이자 모독"라며 의원 본인을 상대로 발언 취소 및 사죄를 요구하는 한편, 소속 정당인 입헌민주당을 상대로도 대책을 요구했다.

납치문제는 북한에 대한 일본 사회의 공포심이나 혐오 감정과도 연관돼 있어서 일본 대중의 감정을 한순간에 자극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이에 관한 여론을 형성하는 납치문제 단체들의 항의를 받게 되자, 우부카타 의원은 신속히 사과하는 방향으로 탈출구를 모색했다.

자신의 발언으로 인해 에다노 유키오 입헌민주당 대표가 공식 사과를 한 데다가 그 자신도 당으로부터 엄중 주의 조치를 받은 그는 11일 자 트위터에서 "9월 시민 포럼에서 부적절한 발언을 해버렸습니다"라며 "발언을 철회함과 함께 납치 피해자 가족 여러분과 관계자 여러분께 사과를 드립니다"라고 몸을 숙였다.

그는 친필 서명이 든 반성문을 전달하고 재차 사과의 뜻을 표했다. "납치 피해자 가족들과 관계자 여러분께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정말 죄송했습니다"라며 지역구 당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또 다른 트위터 글을 통해 피력했다. 트위터에 첨부된 반성문은, 자신이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발언을 했고 자신의 발언은 당과 무관하며 앞으로는 납치 피해자가 생존해 있음을 믿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부카타 유키오의 트위터에 첨부된 반성문. ⓒ 우부카타 유키오

 

납치 피해자도 인간이므로 세상을 떠났을 수도 있고 일본 정부가 북한의 주장을 확실히 부인할 수도 없는 상황이지만, 지금 일본 사회에서는 그들이 살아 있다는 주장에 대해 반론이 형성되기 힘들다. 열린 사고를 할 만한 분위기가 조성돼 있지 않은 것이다.

미국까지 따돌린 스톡홀름 합의

일본 사회가 이 사안에 대해 고도의 집착을 갖고 있다는 점은 이로 인해 미국과 마찰을 빚은 적이 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외무대신일 때 체결된 2014년 5월 29일 북·일 스톡홀름 합의가 바로 그것이다.

그전까지 일본은 납치 문제를 북한 핵·미사일 문제와 연동했다. 미국의 뜻을 반영한 조치였다. 핵·미사일은 미국이 주관하는 사안이므로, 둘을 연동하게 되면 아무래도 납치문제가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 보니, 핵·미사일이 해결되지 않으면 납치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난제가 생기게 됐다. 이 같은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아베 신조 내각이 김정은 정권과 체결한 것이 스톡홀름 합의다. 납치문제 재조사와 대북제재 해제 등을 담은 이 합의의 특징은 핵·미사일 문제와 납치 문제를 분리했다는 점이다. 납치 문제와 관련된 일본의 독자 영역을 넓혀놓았던 것이다.

그런 합의를 체결하려다 보니 박근혜 정부는 물론이고 버락 오바마 행정부도 '패스' 할 수밖에 없었다. 2014년 5월 31일 자 <동아일보> "정부, '일(日), 북핵 해결과 조화 이뤄야'"는 스톡홀름 합의와 관련해 "일본이 북한과의 교섭 과정이나 합의 내용에서 북핵 문제를 거론하지 않은 채 대북제재 해제를 약속한 것에 한국과 미국 정부 모두 불쾌해하고 있다"는 한국 정부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한 뒤 이렇게 보도했다.
 
일본은 대북제재 해제에 대해 사전에 한국·미국과 협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29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북·일 국장급 회담에서 합의가 도출됐지만, 북·일 양측 지도자의 재가를 받고 발표 직전에서야 한·미에 합의문을 통보했다는 것이다.
 
아베 내각은 사전과 미국과 협의하지 않고 그냥 통보했다. 미국의 최우선 관심사인 북핵 문제를 뒤로 한 채 납치 문제를 북일관계의 전면에 내세우는 결정을 '자주적'으로 처리했던 것이다. 스톡홀름 합의는 2016년 1월 6일의 제4차 북한 핵실험과 그 이후의 북미관계 악화로 인해 퇴색되고 말았지만, 이 합의의 체결은 일본이 납치문제에 깊이 빠지면 미일관계를 소홀히 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 정도로 납치문제를 민감해하는 일본에서 제1야당 의원이 '납치 피해자가 살아 있지 않다'며 속마음을 드러냈으니, 그에게 비판이 쏟아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10월 31일 중의원 선거가 임박한 상황에서 돌출 발언이 나왔으니, 우부가타 유키오의 당선 여부나 득표율 여하는 납치 문제에 관한 일본 유권자들의 인식을 가늠하는 자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10만인클럽후원하기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