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12 11:54최종 업데이트 21.10.14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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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전투의 주역 홍범도 장군이 8월 15일 광복절에 귀향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방현석 소설가의 '홍범도 실명소설 <저격>'을 주 2회(화요일, 금요일) 연재합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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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설 편제인 경위감을 동원하는 일은 드물었다. 경위감의 병사들은 동원이 없으면 원래 편제된 제대에서 생활했다. 나 역시 친군우영 제1사 5초의 포수로 훈련을 받았다.


낙산과 남산 사이의 넓은 분지에 자리 잡은 친군우영의 일과는 평양 친군영과 별로 다를 게 없었다. 정태신 파총의 악명은 한양에서도 여전했다. 4,3,2,1. 개인무력 훈련 4일, 부대 진법훈련 3일, 장비 무장정비 2일, 휴식 1일이었다. 우리가 평양에서 이미 정파총의 훈련에 익숙해진 것을 모르는 친군우영의 다른 병사들은 안됐다는 위로를 빠뜨리지 않았지만 우리는 피식 웃고 말았다. 이번 파견대에 선발된 평양 친군영 병사들 대부분은 댈 줄도 바칠 돈도 없는 제1사 출신이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정태신 파총의 제1사 휘하로 배치를 받고 모래 씹은 표정을 한 것은 한양 물을 한 번 먹어보겠다는 헛바람이 들어 파견대에 지원한 몇 안 되는 다른 사의 병사들뿐이었다.

친군우영의 훈련은 견딜 만한 것이었고 밥도 나쁘지 않았다. 민충환 파총의 돈벌이를 위해 백성들을 괴롭히고 노역을 하러 다니던 것에 비하면 훈련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정태신 파총은 여기서도 군인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시키는 법이 없었다.

한양에는 평양에서 못 보던 구경거리도 많았다. 열흘에 하루 쉬는 날은 병사들과 같이 한양 구경을 다니느라 분주했다. 처음엔 가까운 배오개시장이나 북촌을 얼쩡거리며 하루를 보냈다. 함경도 쪽에서 들어오는 채소와 북어가 즐비한 배오개 시장의 좌판들을 기웃거리다 술 한 잔씩 나눠먹고 돌아오면 하루가 맞춤했다. 북촌은 어쩌다 내기로 돈이 생긴 날에나 떡을 사먹으러 가는 곳이었다.

오늘 5초의 병사들과 그동안 잘 가지 못하던 북촌으로 몰려간 것은 어제 열린 교열행사 덕분이었다.

전날 창경궁 안 춘당대에서 열린 교열행사에 정파총이 통솔하는 제1사가 우영의 대표로 참가했다. 전영과 후영, 좌영에서도 제1사의 병력이 대표로 참가한 교열행사는 고종이 직접 임석해 시범 훈련을 참관하고, 사열했다.

실전을 방불케 하는 격렬한 격기에서 백무현은 현란한 쌍검술로 좌중을 사로잡았다. 방패와 장검을 든 살수를 몰아치는 백무현의 쌍칼에서 임금도 눈을 떼지 못했다. 백무현이 왼손에 쥔 칼로 상대의 허리를 찌르고 들어가면 상대 살수는 방패를 내려 막으면서 오른손에 든 장검을 백무현의 목을 향해 사선으로 내려그었다. 백무현은 번개같이 오른손에 든 칼로 상대의 장검을 걷어내며 그대로 치고 들어갔다. 거둬들였던 왼손의 칼을 어느새 상대의 목으로 날리는 백무현의 기세는 무서웠다. 두 사람이 쉬지 않고 휘두르는 칼은 시퍼렇게 날이 선 진검이었다. 상대의 검을 한 합만 놓치면 목이 달아나는 제독검법 연무는 백무현 정도의 실력과 배짱이 없으면 나설 수도 없었다. 왼손에 방패를 들고 오른손에 장검을 든 상대와 정확히 36합을 주고 받으며 백무현은 8보를 물러서고 26보를 치고 들어갔다. 완승이었다. 백무현은 상금으로 은 두 돈을 차지했다.

가장 뛰어난 진법을 선보인 것도 단연 우영이었다. 우선 갈색 말을 타고 언월도를 휘두르며 대오를 자유자재로 지휘하는 정파총의 위력을 다른 지휘관들은 흉내조차 내지 못했다. 그나마 말이라도 비슷하게 타는 건 북청군영에서 파견온 친군후영의 윤웅열이었다. 친군후영은 개성에서 보았던 북청군영 파견병력이 거의 그대로 다 나온 것 같았다. 함경병마절도사 윤웅열이 마상지휘를 하였고, 나발수도 일본나발을 자랑하던 그 녀석이었다. 제법 훈련은 되어 있었지만 격기에 힘이 없었고, 진법도 동네 아이들 병정놀이같이 틀에 박힌 것이었다. 파총과 병사들이 한 몸처럼 혼연일체로 파도치듯 출렁거리며 움직이는 우리의 발뒤꿈치에도 미치지 못했다. 전영과 좌영은 볼 것이 없었다. 전영의 지휘는 젊다 못해 어리다고 해야 할 교관이 맡았다. 나는 군영마당을 벗어나 본 적이 없어 보이는 신출내기가 어떻게 전영의 지휘를 맡게 되었는지보다 갓 스무 살 남짓한 교관의 정체가 더 궁금했다.

"일본 사관학교 출신 서재필."
백무현이 박한 초관의 말투를 흉내내며 내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한양에서 시커먼 옷만 입고 다니는 서재창이라는 이상한 놈이 있는데, 그놈 형이야."
서재필이 지휘하는 전영의 병사들도 후영처럼 복장은 왜식으로 뽑아 입었는데 기율이 없었다. 전영의 지휘관과는 반대로 좌영의 지휘관은 노쇠했고, 병사들은 느렸다.

고종은 우리 우영을 조금 더 치하했지만 다른 세 군영도 두루 격려했다. 고종이 더 치하해주지 않더라도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전투력과 기강의 차이는 확실했다. 왕이라면 군대의 기본을 갖추지 못한 전영과 좌영에 따끔하게 한마디 해야 마땅했다. 그러나 더 이상한 것은 한 나라 군대가 두 개로 나뉘어 있는데 아무 말도 않는 임금이었다.

네 군영의 차이는 실력만이 아니었다. 군복도 다르고 제식 방법도 달랐다. 군령도 달랐고 편제마저 달랐다. 좌·우영은 무명 제복에 초와 사로 편제되어 있었는데 전·후영은 왜식 제복에 중대 대대로 편제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좌·우영이 서로 응원하고, 전·후영이 서로 응원했다. 좌·우영의 군사고문은 청군이고 전·후영의 교관은 일본 사관학교 출신이라는 것을 이제는 나도 알았지만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나 역시 어느새 제일 형편없는 좌영에 응원을 보내고, 전·후영에 야유를 보내고 있었다.

군영에 돌아온 나는 박한 초관에게 물었다.
"우리 파총님은 청나라 편이에요, 일본 편이에요?"
완고파인지 개화파인지를 묻는 것이기도 했다. 박한 초관은 고개를 저었다.
"파총님이야 임금님 편이지."
"그럼 임금님은 청나라편이에요, 일본 편이에요?"
박한 초관은 나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네가 보기에는 누구 편 같으냐?"
"정말 모르겠어서요."
박한 초관은 씁쓸하게 웃었다.
"임금님은 임금님 편이겠지."

사단은 고종이 내린 하사금에서 비롯되었다. 정파총은 어제 저녁 제1사 병사 전원에게 고깃국을 먹이고 오늘 하루 특별 휴가를 허락했다. 정파총이 손을 대지 않은 하사금이 박한 초관을 거쳐 병사들에게까지 내려왔다. 하급 무관들은 단군 이래 한 번도 없던 일이라고 했다.

하사금에 특별휴가까지 받은 나는 함께 어울리던 병사들과 북촌으로 갔다. 문제는 평소에 같이 다니지 않던 백무현이까지도 한 패가 되어 몰려간 것이었다.

한 집 건너 떡집인 북촌에는 찐 떡과 친 떡, 지진 떡, 삶은 떡, 없는 떡이 없었다. 콩고물, 팥고물, 수수고물 색깔도 형형색색이고, 꽃과 잎으로 낸 모양도 가지가지였다. 찐 떡을 파는 집에서는 콩고물과 팥고물을 입힌 시루떡, 백설기, 각색, 증편, 송편, 두텁떡, 약식을 내놓았는데 허연 김과 함께 떡시루에서 피어오르는 구수한 냄새가 깡패였다. 지진 떡을 파는 집에서는 화전, 주악, 부꾸미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친 떡을 파는 집에서는 절편, 인절미, 단자류로 군침을 꿀꺽 삼키게 만들었다. 삶은 떡을 파는 집에서는 경단, 잡과, 단자가 먹음직스러웠지만 너무 비싸고 양이 적어서 한 번도 먹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우리 같은 평양내기 사병들에게는 입안에 찰지게 감기면서도 쫀득쫀득한 인절미가 제일이었지만 가진 돈이 없는 우리는 시루떡 하나를 사서 나눠먹는 것으로 족해야 했다.

오늘도 우리는 이집 저집 떡집을 기웃거리다 결국 찐 떡집에 들어갔다. 김이 오르는 떡 시루 앞에 섰던 아가씨가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어서 오세요."
떡집 딸의 가늘고 매끈한 한양 말 한 마디에 평양 총각들은 벌써 녹아내렸다. 거기다 웃을 때마다 파이는 볼우물에 빠지면 헤어나질 못했다.

"우리 동생, 오늘도 시루떡 먹을 거예요?"

생긋 웃으며 묻는 그녀의 눈길을 나는 수줍게 피했다. 그녀의 두 뺨에 패인 볼우물은 유난히 볼우물이 깊었던 옥희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겨우 두 달 먼저 태어났으면서도 자기가 누나라고 기어코 우기던 옥희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옥희 생각하면 언제나 가슴이 텅 비고 눈앞이 아득하게 흐려졌다. 그걸 알 리 없는 아가씨는 재미있는 듯 내게 눈을 찡긋해 보이고, 뒤에 선 녀석들을 차례로 쳐다보며 물었다.

"콩고물? 팥고물? 수수고물?"
시시껄렁하게 떠들던 녀석들도 막상 그녀와 눈이 마주치면 말을 하지 못하고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만 끄덕거렸다. 떡집 딸은 그 뒤에 선 녀석들에게도 차례로 눈을 맞추며 물었다.

"백설기? 송편? 약식?"
"우리 동생들. 콩고물시루떡, 팥고물시루떡, 수수고물시루떡에 백설기, 송편, 약식까지 다 먹겠다는 걸 보니 오늘은 주머니가 두둑한가봐."
"아니에요, 콩고물로 세 장 주세요."
내가 손을 내저었다. 그녀는 다시 내게 생긋 웃음을 날렸다. 두 뺨의 볼우물이 고른 옥희와 달리 그녀는 왼쪽 볼우물이 조금 얕았다.
"알았어요, 알았어. 콩고물, 팥고물, 수수고물, 한 장씩."

그때 떡집 안에 앉아 있던 낯선 놈 하나가 끼어들었다.
"야, 평양놈들. 사람이 몇인데 세 장이냐?"

놈과 함께 앉아 있는 네 놈 모두 왜식 군복을 입고 있는 걸 보아 친군전영 아니면 후영 소속이었다. 우영에서 왜식 군복입고 으스대는 전·후영 놈들을 아니꼽게 여기지 않는 병사들이 없었다.

"너, 방금 뭐라고 그랬네?"
아니나 다를까, 알아주는 쌈꾼인 백무현이었다.
"왜놈같이 생긴 간나가, 우리가 한 장을 먹건 세 장을 먹건 무슨 상관이네?"
바로 싸움이 붙었다.
"동생들, 여기서 싸우는 거 아냐."
양쪽 다 주인 집 딸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지 마주잡았던 멱살을 놓았다. 백무현이 먼저 가게 밖으로 나가며 놈들에게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따라 나오라."
말릴 틈도 없이 백무현이 선방을 날렸다. 놈들도 완력이 제법이었지만 백무현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거기다 숫자도 우리가 두 배는 되었다. 떡집 딸 앞에서 위세를 부려보려다 상대를 영 잘못 고른 놈들은 망신을 톡톡히 당하고 꽁무니를 빼며 씩씩거렸다.
"평양 촌놈들, 도망가지 말고 여기 가만 기다려."
"뜨거운 맛을 보여 주겠어."

우리는 놈들을 가소롭게 여기며 시루떡 세 장을 나눠먹고 유유자적하게 북촌을 뒤로 하고 칠패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려고 남대문으로 향했다. 그런데 도망간 줄 알았던 놈들이 남대문까지 쫓아왔다. 숫자도 우리는 일곱인데 놈들은 열 셋이나 되는데다 왜놈들까지 섞여 있었다. 군대에 들어오기 전부터 장거리에서 놀던 놈들인 모양이었다. 왜놈들도 왜놈 장사치들의 뒤를 봐주는, 만만찮아 보이는 깡패들이었다.

싸움이 커졌고 나도 팔짱을 끼고 있을 수가 없었다. 칼까지 들고 덤벼드는 녀석들을 나와 백무현이 한 놈씩 제압해나갔다. 광화문 삼군부 쪽에서 전영의 병사들이 떼로 몰려온 것은 열세 놈 모두 주저앉힌 다음이었다. 많아도 너무 많았다. 우리는 동대문을 향해 달렸다. 중간에 쫓아오는 놈들을 몇이나 주저앉혔는데도 놈들은 우영까지 악착같이 따라왔다. 남대문에서 동대문까지 격투를 벌이며 뛰어온 우리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군영 안으로 들어갔다. 정문 밖에서 닭 쫓던 개처럼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놈들을 향해 나는 혀를 내밀었다.
덧붙이는 글 방현석은 소설가다. 소설집 <사파에서>, <세월>, <내일을 여는 집>, <랍스터를 먹는 시간>, <새벽 출정>과, 장편소설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 <십 년간>, <당신의 왼편>이 있다. 산문집 <아름다운 저항>, <하노이에 별이 뜨다> 와, 창작방법론 <이야기를 완성하는 서사패턴 959> 등을 썼다. 신동엽문학상(1991), 오영수문학상(2003), 황순원문학상(2003) 등을 받았다. 현재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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