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08 12:36최종 업데이트 21.10.08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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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전투의 주역 홍범도 장군이 8월 15일 광복절에 귀향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방현석 소설가의 '홍범도 실명소설 <저격>'을 주 2회(화요일, 금요일) 연재합니다[편집자말]

   

 
7


평양 군영에서만 한양 친군영으로 병력을 파견하는 것은 아니었다. 함경남도 북청군영에서 한양 친군영으로 가는 병력은 우리와 비교도 할 수 없이 많았다. 개성군영에서 하루를 같이 묵게 된 북청군영은 규모만 우리와 다른 것이 아니었다. 군복도 달랐고, 군령도 달랐고, 제식 방법까지 다 달랐다.
서양식 군복을 입고 우리의 제식방식과는 다른 이상한 걸음걸이로 행진하는 북청군대를 사뭇 의아하게 쳐다보던 우리는 그들을 멈춰 세우는 군령에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
"소대에 서엇!"
뭐, 소대가리 셋이라고? 제1초 립! 이래야지. 옷은 왜놈들같이 입고, 군령은 또 왜 저 모양이야. 요란한 평양군영 병사들의 웃음소리에 북청군영 무관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북청군영 병사들도 주먹을 치켜들며 입모양으로 욕을 해댔다. 자칫 싸움이 붙을 상황에서 박한 초관이 우리 부대를 이동시켰다.


"제1초 행!"
같은 조선 군대인데 편제도 달랐고, 신호나발마저 달랐다.
"이 나발은 어느 나라 건가?"
쉬는 시간에 나는 북청군대의 나발수가 들고 있는 나발을 가리키며 물었다.
"일본. 이건 나발이 아니고 나팔이야."
나보다 키는 좀 작지만 어깨가 다부지게 벌어진 나발수는 우쭐했다. 내가 자기의 나발을 부러워하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조선군대면 나발신호는 같아야지."
"나발 아니고 나팔. 우리가 신식이니까 우리 걸로 통일해야지. 우리 교관은 일본 사관학교 나온 사관생도야."
녀석은 조금 더 뻐기는 표정이었다.
"우린 평양에 있어도 왕실 친군영이야. 북청군대는 지방 속군이니까 친군영 규칙에 따라야지."
"개화되려면 멀었네, 멀었어."
녀석은 자기가 입고 있는 일본식 군복과 우리의 무명의복을 번갈아 훑어보았다.
"나발 같은 건 이제 없어지고 나팔로 싹 다 바뀐다고. 그러니까 개나발 같은 소리하지 말고 개화해야 된다고."
녀석은 혀를 쯧쯧 차고 나서 턱을 치켜들며 내게 물었다.
"니들은 어디로 가?"
"친군우영."
"거 봐. 우린 친군후영으로 가."
"친군전영도 아니고 후영으로 가면서 뭘 그렇게 뻐개?"
"북영은 사대문 안 원서동에 있고, 우영은 사대문 밖에 있다는 건 알아?"

녀석의 말대로 친군우영은 흥인지문이 바라보이는 훈련도감 터에 군영을 두고 있었다. 정태신은 한양에서도 친군우영의 제1사 파총이었다. 박한 초관이 이끌고 온 평양의 파견대는 친군우영 제1사 휘하로 들어가 제5초로 편재되었다.
우리를 맞은 정태신 파총은 먼저 박한 초관의 정강이를 까는 시늉을 했다.
"내가 없어서 정강이가 심심했겠어."
박한 초관은 예의 피하는 시늉도 않고 꼿꼿이 선 채 환히 웃었다. 그렇게 밝은 그의 얼굴을 오랜만에 보는 내 얼굴에도 덩달아 미소가 피어올랐다.
"아직도 표적 전문인가?"
정파총은 초립을 쓴 내 뒤통수를 아이처럼 쓰다듬었다.
"..."
대답을 못하고 눈길을 피하는 내게 파총이 물었다.
"나발수는 그만하고 포수로 바꾸는 게 어때?"
파총의 말에 나는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뛰어오를 뻔했다.
"넵."
정파총은 내 코를 검지로 살짝 치고 나서 박한 초관에게 지시했다.
"바꿔."
"네."
"그리고 경위감에 넣어."
박한 초관이 나와 파총을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파총 경위감입니까?"
"나한테 경위가 왜 필요해. 우영사."
"그럼 민영익 영사..."

파총이 고개를 끄덕였다. 민씨라는 성을 듣는 순간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민비를 등에 업고 세도를 부리는 민씨들에 대한 파다한 소문도 소문이었지만 하이에나 같은 평양 친군영의 민충환 파총이 먼저 눈앞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싫은가?"
모래 씹은 표정을 한 내게 파총이 물었다.
"아닙니다. 좋습니다."
나는 민영익이 누구인지 전혀 모른 채 우영사 경위의 소임을 맡았다. 경위감은 제5초에서도 사격술이 가장 뛰어난 포수 셋과 격술이 가장 뛰어난 살수 넷으로 구성되었다. 필요할 때만 영사 경위에 동원되는 비정규 편제였다. 동원지시는 파총이 내렸고, 지휘는 박한 초관이 했다. 정파총 직할의 우영사 경위대인 셈이었다.

첫 번째 소임은 우영사의 죽동궁에서 열리는 야간행사 경위였다. 군영을 출발하기 전에 박한 초관이 목적지와 주의사항을 간단하게 전달하고, 우리를 둘러보며 보며 물었다.
"질문 있나?"
평양 장거리의 왈패 출신인 백무현이 손을 들었다.
"우영사가 고종 왕비의 하나뿐인 친정 조카라고 들었단 말입니다."
한양을 오가는 보부상들과 어울리며 주워들은 게 많은 백무현이 아는 체를 했다. 민영익이 누군지 알 턱이 없는 나는 백무현과 박한 초관을 번갈아 쳐다봤다. 민영익이 누군지 모르기는 나머지 포수와 살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또 아는 건 없어?"
박한 초관이 빙긋이 웃으며 백무현에게 물었다.
"재작년 임오군란 때 죽을 뻔했다 살았다고 한단 말입니다."
박한 초관은 여전히 입가에 웃음을 베어 물고 물었다.
"그리고?"
"실세 중의 실세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개화파다, 어떤 사람들은 완고파다, 그러는데 어느 쪽이 맞는지 모르겠단 말입니다."
박한 초관의 입가에서 미소가 걷혔다.
"다야?"
"네..."
박한 초관의 못마땅한 눈빛을 알아차린 백무현이 입을 다물었다.
"누가 개화파고 누가 완고파냐, 그런 건 우리가 알 필요가 없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의 영사가 왕명을 받들어 일하는 분이고, 우리는 왕명을 받드는 친군영의 군병이란 사실이다. 친군영 중에서도 우영의 최정예 군병인 우리에게 주어진 소임은 왕명을 받들어 일하는 영사를 안전하게 경위하는 것이다. 우영사는 열일곱 약관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해 이조참의와 경리통리기무아문의 군무사 당상을 지내셨고, 군무변정기연사 당상, 협판통리기무아문 사무를 지내신 분이다. 별기군의 당상도 지내셨다. 임오군란의 화를 당한 것은 별기군의 총대장인 당상이셨기 때문이다. 혜상공국의 총판을 지내시고, 청나라의 천진에서 해관사무를 주관했으며 왕실사절단 대표로 일본국에 다녀오신 다음, 지난해에는 왕명을 받든 특사단 보빙사를 이끌고 미국에 가서 국서를 전달하고 미국 대통령과 두 번이나 회담을 한 분이다. 미국 전역과 구라파 여러 나라를 둘러보고 외교 관계를 개설한 것도 영사께서 근년에 하신 일들이다. 우영사께서 해오신 모든 일은 왕명에 따른 것이다. 우리의 기준은 단 하나다. 개화파건 완고파건 왕명을 받드는 자는 충신이고, 왕명을 거역하는 자는 역도다. 우리 친군영 경위감의 소임은 충신을 지키고 역도를 제압하는 것이다. 알겠나?"
"네!"

나도 힘차게 대답은 했지만 우영사 민영익이 대단한 사람이란 것 이외에는 알 수 없었다. 그가 맡았던 직책 대부분은 이름조차 낯설었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더욱 알 수 없었다. 민충환 파총 따위와 비교할 인물이 아님은 분명했다.
"그럼, 죽동궁으로 가자!"
우리는 박한 초관을 따라 죽동궁으로 갔다. 가면서 나는 백무현에게 물었다.
"영사는 왕도 아닌데 궁에 살아?"
"왕을 모시고 사니까... 같이 궁에 사는 거겠지."
"임금님 사시는 데는 창덕궁이잖아. 궁 안에 또 궁이 있어?"
"가보면 알겠지, 뭐..."
백무현이 말끝을 흐렸다.
우영사 민영익이 사는 죽동궁은 창덕궁 밖에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가 본 으리으리한 한 저택이었지만 상상했던 궁궐만큼 드넓지는 않았다. 먼저 와 있던 정태신 파총은 한지에 적은 명단을 박한 초관에게 넘겨주고 일렬횡대로 도열한 우리의 등을 차례로 두드려주었다. 마지막으로 맨 왼쪽에 선 내 등을 두드린 파총이 물었다.
"할 만 해?"
"..."
뭘 묻는지 몰라 머뭇거리는 내 코를 파총이 장난스럽게 손가락으로 쳤다. 나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파총은 옆에서 지켜보고 서 있던 박한 초관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농담처럼 덧붙였다.
"정신 바짝 차려. 눈 깜빡하면 코 베어 가는 곳이 한양이야."

정파총이 집안으로 들어가자 박한 초관은 오늘 행사에 올 사람이 열두 명이라며 얼굴을 익혀두라고 지시했다.
"영감들 얼굴만이 아니라 수행한 겸종들의 얼굴도 잘 기억해둬야 해."
우리는 대문을 지키고 서서 들어오는 사람을 살폈다. 제일 먼저 온 사람은 붉은 술이 달린 전립을 쓴 무장이었다. 소매가 좁고 뒤가 터진 구군복을 입지 않아도 한눈에 무장임을 알아볼 수 있게 하는 당당한 걸음걸이가 주위를 압도했다.
"대감님 모시게."
박한 초관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곁에 서 있던 우영사의 겸종에게 일렀다. 겸종들 끼리 서로 아는지, 대감을 따라온 겸종과 눈인사를 나눈 우영사의 겸종이 대감을 안내해서 집안으로 들어갔다.
"전영사 한규직."
박한 초관은 나에게 나지막이 일러주고는 따라온 겸종을 수청방으로 데려가게 했다.
두 번째 온 사람은 이십대로 보이는 사내였다. 심부름을 온 줄 알고 막아서려는 우리를 제지하며 박한 초관이 나섰다.
"영감님 모시게."
두루마기 차림에 2단 정자관을 썼는데 문관인지 무관인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차림새로 보면 문관 같은데 짙은 눈썹과 부리부리한 눈매는 무관의 분위기를 풍겼다. 아직 새파란 나이였지만 눈매가 예사롭지 않았다.
"우정국 총판 홍영식."
따라온 겸종을 수청방에 데려다주고 돌아온 나는 박한 초관에게 물었다.
"아직 서른도 안 돼 보이는, 새파란 사람이 무슨 영감이에요?"
"새파래? 조금 있으면 더 새파란 영감들을 볼 거야."

빈말이 아니었다. 그날 행사 참가자들은 전·후·좌·우영의 무장들과 왕실의 해외 특사단이었는데 20대가 절반이 넘었다. 그나마 무장들은 나이가 좀 되었다. 제일 나이가 많은 인물이 45세인 후영사 윤태준이었다. 다음이 좌영사와 전영사였는데 좌영사 이조연은 40세, 전영사 한규직은 39세였다. 해외 특사단 출신의 문관들은 모두 이십대였다. 병조참판 겸 우정국 총판인 홍영식은 29세, 종사관 서광범은 25세, 한성판윤 박영효는 겨우 23세였다.
집안에서 어떤 행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 없었고, 우리는 죽동궁 대문 안팎과 수청방 주위를 지켰다. 명단에 있는 인물들이 다 들어가자 박한 초관은 나와 백무현을 수청방으로 '쉬러' 보냈다. 좌영사의 겸종들이 쓰는 수청방은 여느 양반집 종들의 문간방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가난한 양반집 사랑채 못지않은 수청방에는 주인을 모시고 온 겸종들이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야기를 주도하는 것은 한성판윤 박영효의 겸종 김봉균이었다.
"기차라는 물건은 한꺼번에 한 읍의 사람을 다 태우고도 끄떡없이 달리는데, 그 빠르기가 아무리 빠른 비마도 쫓아오지 못해. 내가 담배 한 대를 피우는 새 글쎄 백 리를 가더라니까."
"에이, 세상에 그런 마차는 없단 말입니다."
변죽이 좋은 백무현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끼어들자 박영효의 겸종이 혀를 끌끌 차며 방안을 둘러보았다.
"있어요."
왼쪽 이마에 손톱만한 검은 점이 있는 겸종이 김봉균의 말을 거들고 나섰다. 홍영식 참판의 겸종 이흥완이었다.
"집채만한 것을 수십 개 이어붙이고 엄청 빨리 달리는 그런 물건이 있대요."
그런다고 물러설 백무현이 아니었다.
"직접 봤수?"
"우리 영감님이 수신사로 가서 몇 번이나 타 보셨다더라구."
얼굴보다 이마의 검은 점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홍영식 참판의 겸종 이흥완이 백무현을 향해 눈알을 부라렸다.
"뻥치지 말고, 직접 보고 말하라."
백무현이 물러서지 않자 박영효의 겸종 김봉균이 백무현의 평안도 사투리를 흉내내며 되받았다.
"말해보라."
박영효의 겸종이 턱짓으로 가리킨 것은 내 옆에 앉은 어린 겸종이었다. 입술을 안으로 사려 물고 조용히 앉아 듣기만 하던 김옥균의 겸종 차이경은 머뭇거리며 나서지 않으려고 했다.
"말해보라."
"네. 저도 한 번 타보긴 타보았습니다만 담배 한 대 피우는 새 백 리까지는 아니고 한 오십 리는 갔던 것 같습니다... 제가 탄 기차가 좀 느렸고, 더 빠른 기차가 있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김옥균의 겸종 차이경은 겸종들 중에서 제일 어렸다. 내 나이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30대 중반인 박영효의 겸종과 달리 언행이 무척 신중했다.
"그렇지. 자네가 탄 기차는 좀 헐한 것이었나 보네. 그리고 말이야, 일본에서는 양반 상놈 구별 같은 건 아예 없어. 조선과 청나라 빼고 구라파 문명국에선 그런 나라가 없다는 거야."
"에이, 그런 세상은 없단 말입니다."
다시 백무현이 끼어들었다.
"어허, 참. 평양에선 속고만 사나. 말해보라."
박영효의 겸종은 다시 내 옆에 앉은 김옥균의 겸종 차이경에게 턱짓을 했다.
"일본에서 저도 어깨너머로 듣긴 했습니다만 구라파 나라는 가보질 못했습니다."

수청방의 갑론을박을 멈춰 세운 건 갑작스러운 포성이었다. 난데없는 대포 소리에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겸종들도 뒤따라 방에서 뛰어나왔다. 대포소리에 이어 요란한 총소리가 뒤따랐다. 맨 뒤에 서서 겸종들의 움직임을 감시하던 백무현이 눈짓으로 무슨 일인지 물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나도 알 수 없었다. 야간 사격훈련은 사전 허가 없이 할 수 없었다. 더구나 4영사와 삼군부 무장들이 다 이 집에 모여 있었다. 나는 박한 초관에게 가보라고 백무현에게 눈짓을 했다. 박한 초관은 쉬라고 우리를 수청방으로 보낸 게 아니었다. 겸종들을 감시하고, 만약의 상황이 벌어지면 겸종들을 제압하는 것이 우리의 소임이었다.

박한 초관의 지시를 받은 나와 백무현은 외부 겸종들을 모두 대문 밖으로 내보냈다.
제일 먼저 죽동궁을 떠난 것은 정태신 파총이었다. 정파총은 말에 뛰어오르기 무섭게 채찍을 휘두르며 군영으로 달려갔다.
행사가 중단되었는지 곧 무장과 문관들도 대문으로 나왔다. 무장들이 먼저 떠나고, 문관들도 차례로 죽동궁을 떠났다. 나는 대문 밖에서 기다리던 겸종을 앞세우고 멀어져가는 대감과 영감들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전송하는 박한 초관보다 겨우 몇 살 위인 '영감'들이었다.
도성의 밤의 깨운 총포소리의 진원지는 일본군영이었다. 일본군은 우리 삼군부에 사전 통보도 없이 한밤중에 사격훈련을 벌인 것이었다.

"이런 무엄하고 방자한 놈들!"
삼군부 총무당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우영사 민영익은 격노했다. 그러나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한밤중에 포성을 울리며 불질을 한 일본군도 우영사의 격노도 아니었다. 한양에서 모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우영사의 나이였다. 우영사 민영익의 대단한 이력을 들으며 나는 흰머리 성성한 노대감을 떠올리고 있었는데 아니었다.
"대체 이 나라를 무엇으로 알기에 이토록 오만방자하단 말이냐!"
대청마루에 높이 서서 죽동궁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호통치는 우영사 민영익은 겨우 24세였다.
 
덧붙이는 글 방현석은 소설가다. 소설집 <사파에서>, <세월>, <내일을 여는 집>, <랍스터를 먹는 시간>, <새벽 출정>과, 장편소설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 <십 년간>, <당신의 왼편>이 있다. 산문집 <아름다운 저항>, <하노이에 별이 뜨다> 와, 창작방법론 <이야기를 완성하는 서사패턴 959> 등을 썼다. 신동엽문학상(1991), 오영수문학상(2003), 황순원문학상(2003) 등을 받았다. 현재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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