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07 19:11최종 업데이트 21.10.07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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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 아파트 단지와 주택들. ⓒ 권우성

 
전세, 집값 폭등의 마중물

지난 9월 22일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의원이 지난해 3월부터 올해 7월까지의 서울 지역 자금조달계획서를 분석해 발표한 것에 따르면, 서울에서 집을 산 20~30대 절반 이상이 전세보증금을 낀 갭투자로 집을 샀다고 한다. 국민의힘 김상훈 의원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7월 서울시 전체 주택 거래 중 임대보증금을 낀 갭투자는 42%에 달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갭투자 전성시대이다.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을 활용한 갭투자는 현재 부동산 대세상승장의 초입인 박근혜정부 시절에는 다주택자들의 부동산투기에 주로 활용되었지만 지금은 다주택자, 무주택자 가릴 것 없이 갭투자/갭투기 방식을 쓰고 있다. 

8년 동안 집값이 내리 상승하는 것을 본 무주택 2030 세대들이 더 늦기 전에 서울에 내집마련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서울 아파트 중위 매매가격이 10억을 넘기고, 연립·다세대주택(빌라) 중위 매매가격도 4년 전 아파트 중위 매매가격을 넘긴 서울 집값 현실을 볼 때 자기자본과 대출만으로 집을 사기는 불가능하기에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을 활용한 갭투자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다주택자들이 규제를 피해 '원정쇼핑'을 다니며 지방의 공시가 1억 이하 아파트들을 갭투기로 사재기하면서 지방의 공시지가 1억 이하 아파트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부동산 경기가 살아난다 싶으면 부동산가격 상승으로 인한 시세차익을 얻기 위해 너도나도 뛰어들지만 과거에는 정부가 유동성을 줄이면 부동산가격은 오르고 싶어도 오를 수 없기에 적당히 오르다가 꺾인다. 하지만 전세보증금을 끼고 집을 산다면 은행 대출 없이 자기자본 10~20%만으로도 주택구입이 가능하기에 전세보증금과 전세대출은 부동산투기의 돈줄 역할을 하게 된다. 문재인정부가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강화하며 부동산으로 흘러가는 자금줄을 조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전세보증금과 전세대출을 막지 못하다 보니 정부의 부동산정책이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전세, 독이 든 사과

임차인들이 전세를 선호하는 이유는 월세처럼 돈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돈이 고스란히 보전되기 때문이다. 근저당 설정이 되어 있지 않은 주택이라면 담보가치가 살아 있기 때문에 은행 입장에서도 전세자금대출은 리스크가 거의 없는 안전한 대출상품이다. 아울러 전세자금대출은 주로 실수요 서민들이 사용했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는 정부재원을 거의 들이지 않고 전세대출보증을 통해 전세자금대출 금리를 낮추면서 서민들을 위한 주거복지 정책이라며 생색낼 수 있었던 좋은 방식이었다. 전세제도 및 전세자금대출 정책은 '세입자, 은행, 정부' 모두가 행복한 제도였지만 앞으로는 이들의 3자 공조가 깨질 가능성이 높다.

최근 갭투자 이슈에서 보는 것처럼 전세제도 및 전세자금대출은 정부의 부동산가격 안정정책을 무효화시키는 '치트 키'가 되고 말았다. 전세보증금을 활용한 갭투자가 만연하면서 집값이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과거에는 서민들의 주거안정에 기여했던 전세제도가 이제는 임차인들이 '미래에 구매할 집'의 가격을 더 올리는 마중물로 작용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한국에서 부동산가격 거품이 터진다면 전세보증금을 낀 갭투자가 뇌관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 매매가와 전세가격이 비슷한 주택들을 갭투기를 통해 사재기하고 있는 다주택자들, 세입자의 전세보증금과 '영혼까지 끌어모아' 최대한 대출을 받아 내집마련을 한 갭투자 1주택자들이 넘치는 상황에서 만약 외부요인의 충격으로 주택가격, 전세가격이 10% 정도 빠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다주택자들이 자기자본 10% 수준으로 산 갭투기 주택들은 매매가격이 전세보증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깡통전세'가 될 것이다. 이후 갭투기를 한 다주택자가 제때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면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깡통전세' 주택들이 대거 경매에 나와 집값 폭락의 기폭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최근 갭투기로 강서구 화곡동 일대 500채 이상의 빌라를 소유했던 '화곡동 세모녀'가 세입자들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해 강서구 화곡동에서 8월에만 100채 이상의 빌라가 경매로 나온 사례는 향후 전세보증금 하락 시 일어날 집값 폭락의 예고편이라 해도 무리가 없다.

더 큰 문제는 갭투자 1주택자들이다. 갭투자 1주택자들은 자신도 세입자이면서 본인 소유의 주택은 다른 누군가에게 전세를 주고 있다. 이들은 집값 하락이 아니라 전세가격이 10~20%만 빠져도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세입자의 전세보증금, 자기자본, 영끌 대출을 쏟아부어 집을 샀는데 전세보증금이 떨어진다면 본인이 추가대출을 받아 기존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어야 한다. 그런데 '영끌 대출'로 추가 대출여력이 없다면 기존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방도가 없다. 이럴 경우 자신이 전세로 살던 집을 내놓고 전세보증금이 더 낮은 주택으로 옮겨 여분의 자금을 만들어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을 돌려주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갭투자가 연쇄적으로 이어진 상황에서는 전세가격이 떨어질 때 필연적으로 돈의 흐름이 막히는 병목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 와중에 전세보증금을 제때 돌려주지 못한 주택들이 경매에 상당수 나온다면 집값에 끼어 있던 거품은 순식간에 붕괴할 수 있다.

부동산 거품붕괴 뇌관을 조심스레 해체해야 할 때
 

세종특별자치시 아파트 단지. ⓒ 권우성

 
대한민국 산업화 초기, 금융제도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했던 시기에 전세는 국민들의 사금융으로서 가계자산 형성 및 내집마련에 큰 기여를 했던 제도이다. 하지만 저금리·저성장 시대, 부동산가격 안정기에는 월세에 점차 자리를 내어줄 수밖에 없는 제도이다.

박근혜정부의 부동산경기부양책에 힘입어 2014년 이후 갭투자라는 이름으로 화려하게 부활했지만 문재인정부를 보내면서 전세보증금이 부동산투기의 자금줄이 되어 부동산가격을 폭등시키는 기폭제가 되는 것을 확인했다. 앞으로는 갭투자가 부동산가격 급락의 뇌관이 되는 것을 볼지도 모른다.

이제는 부동산 거품붕괴의 뇌관을 조심스레 해체해야 할 때이다. 자가-전세-월세의 주거계급체계를 자가-월세 체계로 전환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정부는 전세보증금까지 공식적인 가계부채 통계에 넣어 가계대출을 관리하는 한편 전세대출 금리 지원 및 전세보증금 100% 보증 등과 같은 전세제도에 주는 인센티브를 줄여야 한다. 

전세로 사는 무주택 서민들이 많은 현실 속에서 갑작스레 전세를 없애기는 어렵기에 공공임대주택 및 사회주택 공급 확대를 통해 전세 수요를 흡수하는 한편, 동시에 주거보조비 지원, 월세자금 대출, 월세 세액공제 확대, 임대료 규제 및 표준임대료 기준 마련 등 월세에 대한 인센티브를 대폭 강화하여 전세 수요를 월세 수요로 이동시키며 전세제도의 연착륙을 준비해야 한다. 

전세제도가 부동산 거품붕괴의 뇌관으로 작동하기 전에 뇌관 해체작업을 준비해야 한다. 전세제도가 언발에 오줌누기 식 주거대안임을 인정하고 과거의 고마운 제도였던 전세제도와의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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