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06 19:03최종 업데이트 21.10.06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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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독일 총선에서 승리한 사민당 올라프 숄츠 대표. 연정 협상에 성공하면 차기 독일 총리가 된다. ⓒ SPD

 
[장면 1] 절대 승리자 없는 독일 정치

독일 선거가 끝났다. 승리한 정당은 있지만 절대적인 '승리자'가 없다. 지난 9월 26일 열린 독일 총선에서 예상대로 사민당(SPD)이 기민·기사당(CDU/CSU) 연합을 밀어내고 1당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앙겔라 메르켈은 아직 총리 자리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 의석수 과반을 구성해 새 정부가 나와야 새 총리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올라프 숄츠(Olaf Scholz)가 이끈 사민당은 정당 득표율 25.7%로 16년 만에 1당 자리에 올랐다. 반면 여당이었던 기민·기사당은 정당 득표율 24.1%로 역대 최악의 성적을 받았다. 기후 의제를 주도하는 녹색당(Grüne) 14.8%, 친기업 성향의 자민당(FDP)도 11.5%를 획득해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보통 선거가 끝나면 축제가 벌어지지만, 독일에서는 바로 막전막후 협상이 벌어진다. 현재 사민당을 중심으로 녹색당과 자민당의 연정 구성을 위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2위인 기민·기사당도 발빠르게 움직여 녹색당, 자민당과 연정 협상에 성공한다면 총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두 정당이 사실상 '패배'한 정당인 기민·기사당과 연정 정부를 꾸릴 가능성은 낮다.


기민·기사당 총리 후보인 아르민 라셰트는 선거 이후 반성은커녕 '아직 가능성이 있다'고 정부 구성의 욕심을 버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위 시선이 따갑다. 아르민 라셰트는 진중하지 못하고 결단력 없는 모습으로 이번 패배의 결정적 요인으로 꼽힌다.

[장면 2] 극단화된 구동독
 

 
지역별 정당 득표율을 보면 동·서독 경계가 분명한 정당이 있다. 좌파당(Linke)과 극우당인 독일을위한대안(AfD)당이다. 양 극단을 가진 정당이 구동독 지역에서 비교적 높은 지지율을 보인다.

좌파당은 동독 공산당의 후신 정당으로 구동독 지지율을 유지하는 게 자연스럽지만, 극우당인 AfD도 이제 "구동독의 대중 정당"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다. 한 때 기성정당의 비웃음을 사며 출범한 AfD는 구동독 지역에서는 무시하지 못할 야당 세력으로 성장했다. 독일 전체로 보면 정당 지지율이 하락했지만, 구동독 지역에서만은 1위 정당이 됐다.

베를린자유대 김상국 정치학 박사는 기성 정당이 지역 정서를 대변하지 못하면서 AfD가 이득을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박사는 "기성 정당, 특히 기민당에는 동독 정책이나 인물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구동독 사람들이 사회화가 잘못됐다'며 비난하는 등 선거전에서 신뢰 기반을 스스로 잃어버렸다"면서 "기민당 총리 대표로 나선 아르민 라셰트는 카리스마가 없고 결단력 없는 모습으로 동독 지역 지지율을 떨어트린 결정적 요인이 됐다"고 말했다. 

기성 정당이 구동독을 소외시키는 사이에 AfD는 이곳에서 기반을 잡았다. 조직화되면서 지역 노출도를 높이고 고정 지지자를 형성했다. 극우파든 극좌파든 꾸준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를 대변해주는 사람을 선택한 것이다.

[장면 3] 청년들의 선택, 자민당과 녹색당
  

 
이번 선거 결과 중 눈에 띄는 점은 자민당(FDP)의 약진이다.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 기후변화 대응 행동을 촉구하는 각국 청소년들의 시위)부터 지금까지 독일의 환경 운동을 주도해 온 기후 세대가 녹색당을 지지하는 건 예상되는 결과였다. 하지만 자민당의 약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25세 이하 정당 득표율을 보면 녹색당 23%, 자민당 21%로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이번에 첫 투표를 한 18세 득표율만 따지면 녹색당과 자민당 모두 23%로 똑같은 지지율을 보였다.

이 결과에 독일도 조금 '충격'을 받은 모양새다. 친기업, 소수 부자들의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가진 자민당이 청년들의 지지를 받은 배경은 무엇일까.

<슈피겔>은 지난 1일 "젊은이들이 미쳤나"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자민당 지지자들은) 보통 호텔을 소유하거나, 적어도 약국을 소유했다"면서 "이들을 지지한 청년들에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라고 선거 결과에 의문을 표했다.

마르쿠스 펠덴키어헨 기자는 칼럼에서 자민당 당수인 크리스티안 린트너(Christian Lindner)가 자유주의의 '힙스터화'를 이끌었다고 분석했다. 자민당은 SNS 홍보 활동에 집중하고, 지지자들과 셀카를 찍으며 일찍이 청년층에 구애했다.

환경 의제의 급진적인 도덕성에 동의하지 못하는 이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는 분석도 있다. 녹색당은 탄소배출 감축을 위해 많은 것을 제한하고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단거리 비행을 금지하고, 고속도로 속도를 제한한다.

반면 자민당은 모든 종류의 금지에 반대하며 기후 문제를 혁신적 기술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후 의제는 동의하지만, 급진적인 방법론에 부담을 느낀 청년들이 자민당을 지지하는 것이다. 
 

독일 녹색당의 안나레나 배어복(가운데)과 로베르트 하벡 (왼쪽) 공동 대표가 1일(현지시간) 베를린에서 크리스티안 린트너 자민당 대표(오른쪽)와 2차 예비 연정 협상을 마친 뒤 취재진에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1.10.1 ⓒ 연합뉴스

 
이번 선거 결과에는 기성 정당에 대한 청년들의 신물도 그대로 드러난다. 양대 정당인 사민당과 기민·기사당에 투표한 청년들은 각각 15%, 10%에 불과하다. 이들은 3안을 택했다. 

헤센주 자민당 사무총장은 헤센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청년들은 '오버헤드프로젝터-팩스-독일(das Overheadprojektor-Faxgeräte-Deutschland, 필자 주: 구닥다리 독일)'에 질렸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변화를 원하고, 우리는 바로 그것을 대변한다"고 했다. 

다음 세대의 의제는 환경으로 넘어갔고, 정당의 세대교체도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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