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05 14:46최종 업데이트 21.10.05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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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경선을 이끄는 두 주자는 검사 출신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정치인·공직자·재벌 등을 상대하는 특수부(반부패수사부) 검사 출신이다. 홍준표 의원은 조폭·마약범·살인범 등을 상대하는 강력부 검사 출신이다. 후발주자 홍준표가 선발주자 윤석열을 뒤쫓고 있으니, 강력부 검사 출신이 특수부 검사 출신을 추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검사 출신이 하나 더 있다. 지난 9월 15일 1차 예비경선을 통과한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도 공안검사 출신이다. 검찰개혁으로 검찰 조직이 위축된 것과 달리, 보수정당 대선경쟁에서는 검사 출신들이 '호황기'를 맞고 있다.


군부 정권의 위세가 대단했던 198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검찰은 권력의 시녀로 불렸다. 그 후에도 어느 정도는 그런 면이 있었지만, 1987년 민주화(직선제 개헌) 이후의 검찰은 권력과 제휴하기도, 대결하기도 하기 때문에 지금은 그렇게 부르는 것이 '실례'다.

권력의 시녀로 불리던 시절만 해도, 검사 출신들이 보수정당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랬던 것이, 지금은 검사 출신들이 보수정당 대선 경쟁을 주도하는 상황으로 바뀌어 있다. 지난 30여 년간 검찰의 파워가 얼마나 강해졌는지를 생각게 하는 현상이다.

공안은 저물고 특수는 뜨고

그 기간에 모든 검사들이 다 똑같이 강해진 것은 물론 아니다. 공안검사들의 경우에는, 전반적인 검찰권 강화 속에서도 여타 검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축됐다.

황교안 전 대표가 정치지도자로서 더 크게 부각되기 힘든 데는 공안검사 출신이라는 족쇄도 어느 정도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공안검사들이 정상적 업무를 벗어나 각종 조작 사건에 가담한 역사는 공안검사에 관한 부정적 이미지를 조성하고도 남는다.

공안검사의 이미지 약화가 본격 감지된 것은 1990년대 전반이다. 1993년 3월 11일 자 <조선일보> 기사 '공안부 시대 가고 특수부 시대 개막'은 "간첩단, 밀입북, 대학생 시위 등 시국사건과 이데올로기 쟁투가 끊이지 않았던 5·6공 시절은 공안의 계절이었다"며 김영삼 정권이 구시대 권력층에 대한 사정 작업을 개시함에 따라 특수부 검사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공안검사가 약해지는 조짐은 미세하게나마 1987년 이전에도 감지됐다. 공안부보다 특수부가 더 활기를 띠는 풍경을 묘사한 1986년 7월 11일 자 <동아일보> "검찰, 공안부보다 특수부 활기에 '이것이 정상'"이란 기사에서도 알 수 있다.

이 기사는 "검찰청사의 수사검사실과 수사관실마다 연행 조사를 받는 피의자들로 북적대는 가운데 수사관들은 연일 철야 작업"이라고 한 뒤 "한동안 폭주하는 공안 수요의 그늘에 가려 특별수사 활동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공안보다는 특별수사가 활발한 것이 검찰 본연의 모습이 아니겠느냐"는 검찰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했다.

검사 윤석열이 대권주자 윤석열로 변신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도 공안부가 저물고 특수부가 뜨는 지난 30년간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그가 국정원 댓글 수사나 대기업 수사들을 통해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소속 부서가 강해지는 시대적 흐름에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공안부 검사와 특수부 검사의 차이점 중 하나는, 전자는 민중이나 반정부 세력 또는 반체제 세력을 주로 상대하는 반면, 후자는 사회의 주류에 있는 사람들을 주로 상대한다는 점이다.

이런 차이점이 있어서인지, 운동권 출신 검사들은 공안부보다는 특수부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한겨레>의 검찰청 출입 기자였던 이순혁의 <검사님의 속사정>은 "80년대 학번 검사 가운데는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가 뒤늦게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의 길로 들어서 나름 활약을 펼친 이들이 적지 않다"고 말한다.

이 책은 "특이한 점은, 상당수가 정치인이나 재벌 등 힘 있는 이들에 대한 수사를 주로 하는 특수부에 포진해 있다는 점"이라고 설명한다. 그런 다음, 이용호 게이트,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 신정아 학력위조 사건 등을 다룬 윤대진 검사(연수원 25기)를 포함한 몇몇 사례를 열거한다.

79학번인 윤석열 역시, 운동권 학생은 아니었지만 그런 마인드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그는 대학 1학년 때 서울대 이념서클인 국제경제학회에 잠시 몸담았다. 또 그가 '전가의 보도'처럼 펼쳐 보이는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는 그가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인 1970년대만 해도 진보적인 서적에 속했다.

국가권력에 대한 경계심과 기업에 대한 무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프리드먼의 사상은 군부 정권이 중앙집권적으로 경제를 운영하던 1970년대 후반 대한민국에서는 진보적인 이념에 속했다.
 

국민의힘 윤석열(왼쪽), 홍준표 대선 경선 예비후보가 28일 서울 상암동 MBC에서 열린 대선 경선 예비 후보자 4차 방송토론회에서 방송 준비를 하고 있다. 2021.9.28 ⓒ 국회사진취재단


강력부 검사 홍준표

공안부 검사와 특수부 검사의 위상이 지난 30여 년간 정치적 영향을 많이 받은 데 비해, 강력부 검사들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덜 받은 편에 속한다. 1990년 10월 13일 노태우 정부가 선포한 '범죄와의 전쟁'이 강력부 검사들의 일거리를 늘려주기는 했지만, 이 분야 검사들의 위상은 정치적 영향을 덜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특수부 검사보다는 강력부 검사로 더 많이 알려진 홍준표 검사가 정치적 두각을 보이게 된 데는 외부적 영향에 더해 개인적 요인도 크게 작용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는 상부에 보고도 하지 않고 국가정보원 직원들을 체포한 2013년의 윤석열 검사 같은 대형 사고를 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용납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독단 행동을 많이 했고 이것이 그가 세상의 주목을 받는 데 적지 않게 기여했다.

<소신이 있으면 두려움이 없다>에서 회고한 바와 같이, 1985년 1월 청주지방검찰청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한 홍준표가 처음 수사한 사건도 그런 류의 사건이었다. 이때 그는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괴산군청 재무과장이 개입된 국유지 불법불하 사건을 고집스럽게 수사해나갔다.

괴산군청은 물론이고 충북도청에서까지 수사를 견제하고 현지 국회의원까지 재무과장을 비호하는 속에서도 그는 재무과장을 끝내 구속했다. 뒤이어 이 사건은 감사원 특별감사로 이어졌다. 그는 이런 식으로 조직폭력배들은 물론이고 권력층으로까지 수사 범위를 넓혀 1995년 SBS 드라마 <모래시계>의 모델이 되고 폭발적인 국민적 관심을 받으며 정치권에 진입했다.

홍준표의 행보는 1987년 이후에 위기감을 느낀 보수 권력층의 이해관계에 부응하는 측면도 없지 않았다. 1990년에 '범죄와의 전쟁'과 '공안정국'이 함께 조성된 것은 사회질서를 다잡기 위한 보수 정권의 의도를 반영했다. 권력층 내에 그런 위기감이 있었기에, '법대로 집행'한다는 홍준표의 단독 행동이 용인된 측면도 없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개인적 특성과 더불어 그런 시대적 상황이 지금의 홍준표를 만드는 데 기여한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성공한 검사, 실패한 검찰

검사 출신들인 세 명의 국민의힘 대권주자들은 지지율 여하에 관계없이 적어도 검사 출신으로서는 성공한 사람들에 속한다. 검사 출신들이 유력 후보군을 형성하는 것은 군부독재 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고 그 후에도 어느 정도는 그랬다. '검사들의 호황기'를 대선 국면에서 열고 있다는 점에서, 세 주자는 검사 출신으로서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의 성공을 상쇄하는 요인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이들이 몸담은 검찰 조직이 국민의 신뢰를 잃어 지금은 현저히 약해져 있다는 점이다. 검찰이 기존에 갖고 있던 권한의 상당 부분을 경찰과 공수처에 내준 뒤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이 검찰권을 대거 박탈한 것은 검찰이 과도한 권한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검찰이 그것을 올바로 행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검찰 조직에 힘입어 지금의 지위에 도달한 대선주자들은 대선 승리에 대한 목표 의식 못지않게 조직의 과오에 대한 죄의식도 갖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들의 성공을 도운 검찰 조직이 국민들에게 죄를 지어 크게 위축돼 있으므로, 참회하는 마음으로 표를 호소하는 게 마땅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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