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9.21 20:20최종 업데이트 21.09.2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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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민주당 김의겸 의원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 나서 조선일보사와 사주 일가의 부동산 현황을 공개하고 있다. 김 의원은 "<조선일보>와 그 사주 일가가 보유한 부동산은 총 40만여 평으로 시가 2조5000억 원 규모"라며 언론사·사주의 재산을 공개하는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 남소연

 
열린민주당 김의겸 의원이 <조선일보> 사주 일가의 부동산 규모를 16일 공개했다. 서울 여의도 면적 45%에 해당하는 40만여 평으로, 공시지가로는 4800억 정도, 시가로는 2조 5천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속초·양양·의정부·인천·서울·화성·대전·부산 등에 부동산이 산재해 있다는 것이 김 의원의 설명이다. 앞으로 언론사 및 사주의 재산을 공개하는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그는 예고했다.

<조선일보>는 초창기에도 재산 문제로 주목을 받았다. 방상훈 현 대표이사의 증조부인 방응모가 1933년 인수한 뒤에 이 신문사는 금(金) 문제로 주목을 받았다. 방응모가 평안북도 삭주군에서 금광 사업으로 큰돈을 번 뒤였을 뿐 아니라 그의 경영 방식이 언론기관보다는 일반 기업에 훨씬 가까웠기 때문이다.

방응모의 경영방식

김옥균의 갑신정변이 일어난 1884년에 평안북도 서부인 정주군에서 태어나 10대 중반까지 한학을 공부한 방응모는 국권 침탈(경술국치) 1년 뒤인 1911년(만 27세)에 잠시 교편을 잡았다가 변호사 사무소에서 대서업을 경영했다. 3년 뒤 그만둔 그는 31세 때인 1915년부터는 자택을 이용해 여관사업을 경영했다.


그가 신문 사업에 손댄 것은 38세 때인 1922년이다. 이때는 <조선일보>가 아니라 <동아일보>였다. <동아일보> 정주분국을 인수했던 것이다. 뒤이어 정주지국장이 됐고, 1924년부터는 삭주군의 교동광업소를 겸영하면서 굴지의 광산업자로 떠올랐다.

그는 식민지배에 참여할 의향도 있었다. 1927년 정주지국장에서 정주지국 고문으로 물러난 그는 46세 때인 1930년에 광역의원 선거인 도평의회(도회) 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조선일보>와의 인연은 그로부터 얼마 뒤 맺어졌다. 48세 때인 1932년에 <조선일보> 영업국장이 됐다가 1933년에 아예 인수했다.

1932년에 135만원이라는 거액을 받고 일본 중외광업주식회사에 교동광산을 넘긴 뒤였으므로 <조선일보> 인수 당시의 방응모는 자금 사정이 넉넉했다. 이런 상황은 그가 조선군사령부 애국부에 기관총 구입비를 헌납하는 데 기여했다. 그 돈은 항공기 저격에 쓰이는 고사기관총 구입에 사용됐다.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제2권은 '방응모 편'에서 이렇게 말한다.
 
"1933년 3월 <조선일보>의 경영권을 인수하여 부사장에 취임했다. 같은 달 조선군사령부 애국부에 고사기관총 구입비로 1600원을 헌납했다. 같은 해 7월 조선일보 사장에 취임해 1940년 8월 폐간 때까지 재직했다."

그는 1933년 10월에는 조선신궁 설립 10주년 기념사업을 담당하는 조선신궁봉찬회의 발기인 겸 고문이 되고, 1934년 3월에는 총독부와 군부의 지원 하에 일본 사상 전파를 담당하는 조선대아세아협회의 상담역이 됐다.

1937년 5월에는 총독부가 설립에 관여한 조선문예회의 문학위원이 되고 두 달 뒤에는 '경성 군사후원연맹' 위원이 됐다. 1938년 2월에는 총독부의 언론 통제를 돕는 조선춘추회의 발기인 겸 간사가 됨과 함께 '조선 지원병제도 제정축하회' 발기인이 됐다. 이듬해 7월에는 영국 타도 운동을 벌이는 배영동지회 상담역이 되고, 1940년 10월에는 국민총력조선연맹의 참사가 되고, 1941년 8월에는 임전대책협의회의 설립에 간여했다.
 

방응모 전 <조선일보> 사장.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그가 상당한 열의를 갖고 이런 활동들을 벌였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친일인명사전>에 따르면, 그는 1937년 2월 원산에서 시국 강연을 하던 도중에 '비국민적 행위를 배격하자'는 발언을 했다가 청중들에게 봉변을 당했다. 자신과 청중들을 일본국민으로 전제해놓고 연설을 했던 것이다.

그해 7월에는 <조선일보> 편집국장과 영업국장의 반대를 물리치고 '일본군을 아군으로 표기하는 방안'을 관철시켰다. "이후 <조선일보>의 지면은 '국민적 입장'으로 변했다는 조선총독부의 평가를 받았"다고 <친일인명사전>은 말한다. '그의 나라'가 어디인지 쉽게 느끼도록 만드는 대목들이다.

하지만 그가 일본을 위해서만 열심히 일한 것은 당연히 아니다. 자신과 가족의 치부를 위해서도 열심히 뛰었다. 그런 그의 모습은 가히 혁신적이었다. 신문 구독자 숫자를 늘리기 위해 경품 제공 방식을 도입하는 것은 물론이고 헬리콥터까지 띄워 대중의 주목을 끌었다.

2015년에 <지역사회연구> 제23권 제1호에 실린 강영걸 대구대 교수의 논문 '식민지 시기 조선일보 사주 방응모의 경영전략에 관한 연구'는 "조선일보를 인수하여 혁신호를 발행한 것은 1933년 4월 26일"이라며 그의 경영 방식을 이렇게 소개한다.
 
"방응모는 전 12면으로 구성된 혁신 기념호를 식민지 신문 발행 사상 최고 부수인 백만 부를 발행, 전국에 무료 배포한다. 연이어 어린이날을 기념하여 본사 헬리콥터를 띄워 에어쇼를 하는가 하면, 태평로에 당시로서는 최고층의 신사옥을 짓는 등 일반 대중에게 위용을 공격적으로 과시해나간다."
 
노골적 친일로 성장

이 외에, 비행기를 이용해 취재한다든가 스타기자를 영입한다든가 하는 등의 아이디어도 그는 선보였다. 그 같은 공격 경영에 힘입어 인수 3년 뒤인 1936년부터 <조선일보>는 <동아일보>를 추월하게 된다. 인수 당시 <동아일보> 부수의 절반밖에 발행하지 못했던 <조선일보>가 역전을 이뤄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비정한 면모도 연출했다. 일장기 말소 사건 때 특히 그랬다.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의 운동복에 새겨진 일장기를 삭제한 채 손기정 사진을 내보낸 일로 인해 <조선중앙일보>와 <동아일보>가 제재를 받자, 그는 이를 <조선일보> 도약의 계기로 자축하는 행사를 열기까지 했다.

<친일인명사전>은 "1936년 8월 <동아일보>와 <조선중앙일보>가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정간과 강제휴간을 당하자, 경쟁관계에 있던 <조선일보>는 전국적으로 발전 자축회를 개최하는 등 이를 사세 확장의 기회로 이용했다"고 설명한다.
 

조선일보 창간 100주년을 맞아 5일 오전 서울 광화문네거리 조선일보사 부근 원표공원에서 '조선동아 거짓과 배신의 100년청산 시민행동'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과 함께 오종선 작가의 '조선일보 백년전'이 열렸다. 오종선 작가는 일제강점기 때 1월 1일이 되면 1면에 일왕 부처의 사진을 싣고, 제호위에 일장기를 올려 놓은 조선일보를 '두루마리 휴지'로 만들어 전시했다. 2020.3.5 ⓒ 권우성

 
공격적인 경영과 과감한 친일을 통해 방응모가 이룩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방응모 왕국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는 <조선일보>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잡지 출판에도 손을 댄다. 성인용 종합 대중지인 <조광>과 더불어 <소년>과 <여성>도 창간하게 된다. <조선일보> 창간 3년 뒤인 1936년에 그는 언론재벌이라 할 수 있는 이 같은 상태를 이루게 된다. 강영걸 논문은 이렇게 평가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재산의 절반 정도를 투자하여 <조선일보>를 인수한 이후 방응모는 <조광>, <여성>, <소년> 등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일련의 잡지를 발간하면서 남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언론 왕국을 꿈꾸었다."  

방응모의 사업적 성과는 노골적 친일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혁신 경영은 빛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공격적이고 참신한 경영 기법에 토대를 뒀다 해도, 일본과의 노골적인 제휴 속에서 이뤄진 수익 창출이 정당성을 갖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반민족성과 반역사성을 태생적 운명처럼 타고난 <조선일보>는 오늘날에도 반시대적이고 부조리한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런 토대 위에서 <조선일보> 사주 일가는 여의도 면적의 45% 정도 되는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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