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8.26 13:24최종 업데이트 21.08.26 13:24
  • 본문듣기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하려는 아프간인들이 23일(현지시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공항 주변에서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2021.8.23 ⓒ 연합뉴스

 
탈레반 세력이 20년 만에 아프가니스탄을 다시 장악하면서 세력 교체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탈레반 핵심 세력들이 하나둘 수도 카불로 집결하고 전 정권을 비롯한 다른 세력들도 아프가니스탄의 새 정부 구성을 위한 협상 테이블 앞으로 모이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은 다민족 국가이고 탈레반은 남부의 파슈툰 족을 기반으로 하는 세력이다. 이들이 아프가니스탄의 유일한 합법적 정부를 이루기 위해서는 공식적이든 암묵적이든 국내 다른 민족들의 승인이 필요하다.


탈레반은 모든 민족들의 협조를 얻어낼 경우 국제사회가 자신들의 합법적 권력 이양을 수용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미국을 비롯한 외부 세력이 다시 자신들을 압박할 명분을 내주게 된다. 결국 반(反)탈레반 세력이 얼마큼 세력을 규합하느냐가 향후 아프가니스탄 정국의 향방에 분수령이 될 수 있다.

반탈레반

현재 파슈툰 족(1460만)에 이어 아프가니스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인구를 차지하는 민족은 북부의 타지크 족(860만)이다. 이들의 인구수는 파슈툰 족의 절반이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견제세력이다. 탈레반의 반인륜적 폭압 정치에 반해 이들은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통치 원리를 내세워 왔기 때문이다.

탈레반이 카불을 탈환하기 이전의 아프가니스탄 정부도 타지크 족 중심으로 구성돼 있었다. 미국이 그들의 민주적 통치 가능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는 이러한 미국의 판단이 실패한 선택으로 귀결되고 있지만 상황이 완전히 종결됐다고 보기는 이르다. 탈레반의 카불 탈환 이후 아프가니스탄 북부 판지시르를 중심으로 반 탈레반 세력이 재빨리 재편되는 모습이다.
 

2011년 미 공군이 공개한 판지시르 주 축구 경기장 건설 현장. ⓒ US Air Force

 
판지시르는 수도 카불에서 북동쪽으로 최단거리 70km 가량 떨어진 주(州)다. 아프가니스탄의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옥한 토지에 기후가 온화해 1차 산업이 발달했다. 수도 카불과 거리가 가까울 뿐 아니라 군사적으로 공략하기 쉽지 않은 지리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조건들은 수도 카불을 장악한 탈레반 입장에서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판지시르가 반탈레반 세력의 거점이 된 것이 최근의 일은 아니다. 이곳은 본래 파르완 주(州) 내부의 행정구역이었으나 2004년 주(州)로 승격됐다. 판지시르가 주(州)로 승격된 이유 중 하나는 과거 1차 탈레반 정권(아프가니스탄 이슬람 에미리트 Islamic Emirate of Afghanistan 1996년~2001년) 당시 반탈레반 세력의 구심점이던 아흐마드 샤 마수드가 이곳을 거점으로 삼아 활동했기 때문이다.

흔히 '마수드 사령관'으로 불리는 아흐마드 샤 마수드는 아프가니스탄 국민, 특히 반탈레반 세력에게 영웅이자 국부로 추앙되는 인물이다. 탈레반이 다시 아프가니스탄 권력을 장악하면서 2001년 암살당한 그의 이름이 재소환 되고 있다. 추모의 대상으로서만은 아니다. 어쩌면 현재로서는 아프가니스탄을 재앙에서 건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 될 수도 있다.

격동의 아프간 현대사

1973년 쿠데타를 통해 왕정을 무너뜨린 아프가니스탄 친소(親蘇) 세력은 반이슬람 세속 국가를 지향하는 '아프가니스탄 공화국'을 수립한다. 아프가니스탄의 첫 대통령이 된 모하마드 다우드 칸은 개혁적 정책들을 하나둘 내놓지만 급격한 변화에 두려움을 느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이때부터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세속주의 또는 민주주의에 대한 이슬람 근본주의의 저항이 시작된다.

1978년 다시 쿠데타가 일어나고 역시 친소 세력의 인민민주당 정권이 권력을 장악하자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은 이제 본격적으로 반정부 투쟁에 나선다. 이렇게 친소 정권이 위험에 처하자 소련은 1979년 전격적으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기에 이른다. 그러자 이번에는 소련의 침입에 저항하는 무장 봉기가 일어나는데 이 운동의 중심이 됐던 이들이 '무자헤딘'이다.

무자헤딘의 급속한 성장은 세속주의로부터 이슬람을 지키자는 종교적 동기와 소련의 침입에 저항하려는 민족주의적 동기, 이렇게 두 가지 뿌리가 민심 속에서 시너지를 일으키면서 가능했다. 사상적 신념과 억압에 대한 저항이 시너지를 일으킬 때 핵반응과 같은 대대적 힘이 발생하는 것을 역사는 늘 보여줬다.

무자헤딘은 소련을 견제하고 이슬람을 부활한다는 명목으로 인접 이슬람 국가들은 물론이고 미국의 지원까지 손쉽게 얻을 수 있었다. 당시 사우디아라비아는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해 주변 이슬람 국가에서 차출된 수많은 인원을 무자헤딘 요원으로 보급하기도 했다. 미국의 정보력과 주변 이슬람 국가의 인적 지원으로 이들의 세력은 급속히 커지게 된다.

무자헤딘의 끈질긴 저항이 이어지자 소련은 결국 1989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완전히 철수하게 되고 이때부터 아프가니스탄은 이슬람 세력이 지배하는 땅으로 바뀌게 된다. 이렇게 성립한 새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이슬람국(Islamic State of Afghanistan)이다. 그리고 외세를 몰아낸 이슬람 세력은 급진 근본주의와 온건파로 나뉘게 되고 탈레반도 이때 자신들의 세력을 빠르게 확산하기 시작한다.
 

1988년 5월 16일 소련군 탱크와 장갑차 호송대가 카불에서 북쪽 소련을 향해 가고 있다. ⓒ 연합뉴스

 
당시 무자헤딘의 온건파를 이끌던 아흐마드 샤 마수드는 소련을 물리친 여세를 몰아 탈레반의 급성장에 저항하지만 결국 1996년 탈레반이 국가권력을 장악하게 되고 아프가니스탄에는 이들이 수립한 첫 번째 정권(아프가니스탄 이슬람 에미리트)이 탄생한다. 그리고 마수드를 중심으로 하는 반탈레반 세력은 아프가니스탄 북부를 거점으로 긴 저항운동(북부동맹)을 시작한다.

무자헤딘 운동과 마찬가지로 북부동맹 역시 민족주의와 종교라는 두 개의 키워드로 설명된다. 물론 차이점은 있다. 무자헤딘 운동에 비해 북부동맹의 경우 좀 더 세부적 저항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무자헤딘은 소련이라는 외세에 대한 아프가니스탄의 국가적 저항, 그리고 세속주의에 대한 이슬람의 종교적 저항이 결합된 운동이었다. 반면 북부동맹은 최대 종족인 파슈툰족에 대한 소수민족들의 저항, 그리고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한 온건주의의 저항이 핵심을 이룬다.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에 의해 반인권적(대표적으로 여성에 대한 탄압), 반문화적(대표적으로 불교 유산 등 인류 문화유산 파괴) 국가로 전락하면서 국제사회는 다시 북부동맹을 지지하는 양상으로 바뀐다. 반면 알카에다 등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들은 탈레반 정권을 적극 지지하게 된다.

저항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세기가 바뀌고 2001년 9월 9일 반탈레반 운동의 구심점이면서 북부동맹을 이끌었던 아흐마드 샤 마수드는 탈레반의 자살테러로 암살당하고 만다. 26년 동안 소련의 KGB, 파키스탄 정보부, 탈레반 등의 암살 표적이 되어 오면서 아프가니스탄 국민의 폭넓은 지지 속에 극단세력에 대한 저항운동을 벌인 마수드는 이렇게 생을 마감한다.

그로부터 이틀 후 미국의 심장부에서 알카에다가 배후로 지목된 9.11테러 사태가 발생한다. 사망 전 마수드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 사회에 탈레반의 국제 테러 위험을 여러 차례 설파했다. 역사적 사실에는 가정이 무의미하지만 역사적 교훈을 위한 가정은 가치가 있다. 미국이 탈레반을 적극 지지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마수드의 경고를 조금 더 경청했다면, 이후의 역사는 달라졌을 수 있다.
 

2001년 11월 19일 아프가니스탄 북부동맹 군인들이 쿤두즈 주에서 미국이 탈레반 진지를 공습하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20년이 지난 지금, 아프가니스탄은 엄청난 소용돌이를 거쳐 다시 탈레반이 장악하는 세상으로 회귀했다. 그리고 마수드에 대한 국가적 추모 속에서 2004년 주(州)로 승격된 판지시르는 다시 반탈레반 거점으로 거듭나고 있다. 현재 판지시르의 반탈레반 세력은 아프가니스탄의 '국부' 아흐마드 샤 마수드의 아들 아흐마드 마수드(아버지와 동명)가 이끌고 있다.

수도 카불에서는 정권교체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국제사회는 탈레반을 인정할지를 놓고 고심 중이지만, 아프가니스탄의 반탈레반 저항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실제 판지시르를 중심으로 국지적 전투는 계속되고 있다. 북부동맹을 계승하는 판지시르의 '아프가니스탄 국민저항전선'은 국제사회의 관심에 호소하면서 저항을 이어간다. 국제사회는 아프가니스탄 난민 수용 문제 못지않게 이들의 저항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10만인클럽후원하기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