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8.25 07:14최종 업데이트 21.08.25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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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이 산책하던 도심 숲이 하루 아침에 사라졌다. 왜일까? ⓒ 최병성


하루아침에 아파트 앞의 공원 숲이 사라졌다. 고양시가 보건소를 짓는다며 안산공원이라 부르는 도심 녹지를 도려냈다.
 

도심 공원 숲이 하루 아침에 사라졌다. ⓒ 안산공원 대책위

 
공사 현장 주변을 돌아보았다. 도로변을 따라 늘어선 가로수들과 도로 좌측의 '알미공원' 작은 녹지가 초록의 전부다. 콘크리트 건축물로 가득한 이곳 주민들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공간이었다.
 

공원 숲이 사라진 주변엔 가로수가 초록의 전부일뿐이다. ⓒ 최병성

 
최근 기후위기 극복의 수단 중 하나로 도심 숲이 강조된다. 도심 숲은 탄소와 미세먼지를 흡수하고, 도시 열섬현상도 완화해준다. 나무 30억 그루를 심는다는 문재인 정부도 '도심 숲 조성'을 탄소중립의 중요한 대안으로 강조한다. 특히 고양시는 정부의 탄소중립에 호응하여 나무 심기를 강조해왔다.

허울뿐인 나무권리선언

지난 6월 24일, 주민들은 안산공원 훼손을 중단해달라며 고양시에 '일산동구보건소 신축 공사중지 요청 긴급민원'을 제출했다. 민원서류에는 '심각한 자연녹지지역 훼손을 초래하는 안산공원 내 일산동구보건소 신축은 이재준 고양시장의 녹색복지정책과 나무권리선언문에 전면 위배되므로 재고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재준 고양시장이 전국 최초로 만든 나무권리선언문 ⓒ 최병성

 
'나무권리선언문'은 2019년 3월 28일 이재준 고양시장이 녹색복지정책을 편다며 전국에서 최초로 만든 것으로, 일산 호수공원에 기념비까지 세웠다. 8월 3일, 나무권리선언문을 보기 위해 일산 호수공원을 찾았다.
                                   
나무권리선언문       
생명의 소중함을 담은 나무권리선언으로 공공수목관리에 대한 기본 이념을 바로 세우고 사람과 나무가 공존하는 고양시를 만들기 위해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2019.3.28. 고양시장 이재준

제1조: 나무는 한 생명으로써 존엄성을 갖고 태어납니다.
제2조: 나무는 오랫동안 살아온 곳에 머무를 주거권이 있습니다.
제3조: 나무는 고유한 특성과 성장 방식을 존중받아야 합니다.
제4조: 숲은 나무가 모여 만든 가장 고귀한 공동체이며 생명의 모태입니다.
제5조: 나무는 인위적인 위협이나 과도한 착취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제6조: 사람과 나무는 벗이 되어 함께 살아야 합니다.
제7조: 나무의 권리는 제도로 보호받아야 합니다.
 
전국의 벌목 현장에서 잘려나간 나무들을 보아온 내게 고양시의 나무권리선언문은 문구 하나하나가 주옥같았다. 전국의 산림을 싹쓸이하는 산림청장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고양시는 보건소를 건설한다며 주민들이 애용하는 도심공원의 나무 250여 그루를 잘라 내거나 일부는 옮겨 심었다. 6월의 뜨거운 햇살 아래 옮겨 심은 큰 나무들은 대부분 잎사귀가 누렇게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초록 공간이 부족한 도심에 숲을 더 늘려야 하는 것은 기본 상식이다. 이는 탄소중립을 표방한 정부의 기본 방침이기도 하다. 그러나 전국 최초의 나무권리선언문을 발표한 고양시는 주민들이 산책하는 작은 공원의 숲마저 밀어버렸다.

혹시 안산공원 녹지 외에는 고양시에 보건소를 건축한 땅이 없기 때문이었을까?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보건소 건축 후보지는 ①안산공원 ②일산 동구청 내 주차장 부지 ③고양 일산 우체국 앞 주차장 부지 ④백석동 Y-City 내 등 4곳이었다.
 

주민 설문조사에서 가장 높은 선호도가 나온 후보지 대신 가장 적은 안산공원 녹지를 보건소 건축지로 선정했다. ⓒ 고양시


주민들은 주민공청회 등의 절차가 없었으며, 고양시의 보건소 부지 선정 과정이 잘못되었다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용역 보고서의 내용을 보자.

고양시가 2017년 4월 실시한 주민 의견조사에 따르면, 보건소 독립건물신축에 찬성하는 응답자 275명 중 1위는 고양 일산우체국 앞 주차장 부지 33.8%(93명)였고, 2위 일산 동구청 내 주차장 부지 31.6%(87명), 3위 안산공원 내 일부 24.4%(67명), 4위 '백석동 Y-City 내' 10.2%(28명)로 나타났다. 주민들은 '백석동 Y-City 내'는 애초에 보건소 예정지였으나 법적 문제로 새로운 후보지를 찾는 것이므로 비교 후보지에서 제외해야 하며, 따라서 주민 설문조사에서 꼴지에 해당하는 안산공원을 선정한 것은 잘못이라고 강조했다.
  
고양시가 주차장 등의 다른 후보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원 녹지를 훼손한 이유는 뭘까? 나무의 존엄성과 한 곳에 머무를 권리를 강조한 고양시의 대한민국 최초 나무권리선언문은 그저 허울뿐인 보여주기 행정에 불과했던 걸까.

충격의 일산호수공원

나무권리선언문을 보기 위해 호수공원을 가로지르다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다.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일산 호수공원의 느티나무들이 병들어 신음하고 있었다. 4~5년 생 묘목을 심었을 테니, 95년 12월에 준공된 호수공원의 느티나무들은 30살에 이르렀을 것이다. 30살 느티나무들은 웅장한 모습이어야 한다. 그러나 나뭇가지들이 말라 죽어 왜소증을 앓는 나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미 잘려나가 그루터기만 남은 나무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호수공원의 나무들이 대부분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 최병성

  
느티나무 기둥엔 8~10개의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영양주사를 맞은 흔적이다. 호수공원 내의 자전거도로를 따라 늘어선 느티나무들은 대부분 고사 직전이다. 심지어 가로수 보호대를 풀어줘야 할 때가 지났음에도 보호대가 나무의 목을 조르는 곳도 있었다.
  

느티나무 표피는 병들어 있고, 나무기둥마다 영양주사를 맞은 구멍이 뚫려있다. ⓒ 최병성

 
호수공원에서 도로 건너 문화광장의 나무들도 살펴보았다. 이곳의 나무들도 죽어가고 있었다. 나무마다 영양주사 구멍이 뚫려있고, 진액이 흘러내리고, 가지들은 말라 죽고 있었다.

이런 현장 바로 곁에선 덤프트럭들이 연신 흙을 실어다 산을 쌓고 있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서울역 고가도로에 나무를 심은 서울로처럼, 고양시의 랜드마크가 될 '공중 보행로'를 만든다는 것이다.
 

고양시는 호수공원과 문화광장을 연결하는 콘크리트 공중보행로를 만들고 그 위에 나무를 심을 예정이다. ⓒ 고양시. 최병성

 
사진 위의 조감도에서 보는 것처럼, 고양시는 총 공사비 143억 원을 들여 호수공원과 문화광장을 연결하는 폭 60m, 길이 152m의 대형 콘크리트 보행통로를 만들어 꽃과 나무로 가득한 녹색 산책로를 2022년 완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고양시가 건설 중인 콘크리트 공중 보행로 바로 옆엔 이미 큼직한 육교가 문화광장과 호수공원을 연결해주고 있다. 그런데 왜 바로 곁에 대형 콘크리트 공중 보행로가 필요한 것일까?
  

이미 호수공원과 문화광장을 연결하는 육교가 있는데, 바로 옆에 폭 60m 콘크리트 공중보행로를 만들고 있다. ⓒ 최병성

 
일산 호수공원은 1992.12.31~1995.12.28 동안 총 사업비 255억 5300만원을 투입해 만든 공원이다. 호수 조성공사에 81억 4200만 원, 녹지 및 조경에 174억 1100만 원 등이 들었다.

호수공원과 문화광장의 나무들도 병들어 신음하고 있는데, 나무가 잘 자라지 못하는 콘크리트 위를 나무와 꽃으로 치장한다고 기후위기 대비책이 될 수 있을까. 진정 기후위기를 대비하기 위함이라면, 콘크리트 공중보행로보다 호수공원의 죽어가는 나무를 살리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나무들이 죽는 이유

호수공원 나무들이 죽어가는 정확한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1주일 후인 8월 10일 전문가들을 초대했다. 숲복원생태연구소 엄태원 소장, 가로수 전문가인 김진환 마이즈텍 대표, 김주열 산림청 도시숲경관 과장, 조재형 국립산림과학원 도시숲연구센터장, 그리고 고양시 공원녹지 담당자 등이 한자리에 모였다.
 

아직 초록 잎을 달고 있으나 가지들이 말라가며 겨우 생존하고 있을뿐이다. ⓒ 최병성

  
호수공원을 담당하는 고양시 관계자는 "나무의사가 곰팡이에 감염되었기 때문이며 곰팡이에 한번 감염되면 살기 어렵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양시의 진단은 잘못됐다. 나무가 병들었기 때문에 곰팡이균이 침투한 것이지, 곰팡이균이 나무를 병들게 하는 원인은 아니다.
   

병들어 신음하는 호수공원 나무들 ⓒ 최병성

 
전문가들은 애초에 나무를 심을 때 뿌리를 감쌌던 고무 바를 풀지 않은 게 원인일 수도 있지만, 나무들에게 가장 필요한 수분이 부족해서 병들었다고 진단했다. 주변이 보도블록이지만 대부분 불투수층으로 변해 있고, 나무 둘레의 공간이 작아 빗물이 땅 속으로 침투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느티나무 밑에 꽃을 심었다. 이는 공원을 방문하는 시민들에겐 아름답게 보일 수 있지만, 둥글게 기울어진 마운딩으로 인해 빗물이 나무 밖으로 흐르게 된다. 더구나 부족한 수분을 꽃들과 나눠야하기에 나무는 더 심각한 수분 부족 현상을 겪는다는 것이다.
  

느티나무 밑에 꽃을 심었으나, 수분 부족으로 말라 죽어가고 있다. ⓒ 최병성

 
일산 호수공원에 필요한 것은 대형콘크리트 공중보행로가 아니다. 호수공원과 문화광장에 이미 심어놓은 나무를 건강하게 살리는 것이 시급하다. 대형콘크리트 보행로 공사비 143억 원을 나무를 치유하고 나무 없는 곳에 나무를 심는 비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진짜 기후위기 대응이 될 것이다.

30억 그루 심기보다 도심 숲 보전이 먼저

고양시에서만 만날 수 있는 놀라운 나무가 있다. 650년 전 무학대사가 이성계의 명으로 새 도읍지를 정할 곳을 찾아다니다가 이곳에 나무 3그루를 심었다. 두 그루는 죽고, 남는 한그루가 바로 이 나무다. 650년의 긴 시간과 나무에 담긴 많은 이야기만큼 나무 기둥이 마치 용이 하늘로 오르는 듯한 위용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멋진 나무가 있는 산황산이 수년째 골프장 개발논란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무학대사가 심은 650년된 고양시 산황산의 느티나무. 마치 용이 승천하는 모습이다. ⓒ 최병성

  
산황산은 고양시 도심 안에 있는 작은 숲이지만, 이미 절반이 2010년부터 9홀의 골프장으로 운영 중이다. 그런데 사업자가 절반 남은 숲에 9홀의 골프장을 증설하겠다고 해 시민단체들이 숲을 보전해 달라며 눈물 어린 호소를 하고 있다. 벌써 8년 넘게 갈등 중이다.
  

고양시의 허파라고 불리는 도심 숲 작은 숲 산황산이 골프장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 문성준

 
지역주민들과 시민단체는 이미 9홀만으로도 주택의 골프공 타격, 조명과 농약 피해, 지하수 고갈로 인한 농업 피해 등을 입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사업자가 9홀 증설 계획 이후 토지매입 등 사업비 미확보로 사업시행이 어려운 상황으로 실시계획 인가 신청 서류조차 미제출 된 상황이며, 담당 건축과장이 사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아 지난 2018년 1월 11일 징역8개월 벌금 3500만원이 선고될 만큼 사업이 공정치 못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골프장은 2016년 부도가 났고, 사업자는 2019년 5월 청산절차를 밟아 현재는 골프장의 운영주체도 불투명한 상태다.
  
고양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범대위는 지난 2018년 12월 3일 산황동 골프장 증설반대 및 고양시의 도시관리계획(변경) 결정 사항 직권취소를 요구하며 고양시의회 앞에 천막을 설치했다. 추운 겨울과 여름을 텐트에서 보내기를 벌써 몇 번이다. (관련기사 : 목사들은 왜 매주 목요일 고양시청에 모였을까 http://omn.kr/1m89g)

지난 2019년 5월 국토교통부는 3기 신도시 교통대책으로 일산 백석동~서울·문산고속도로 자동차전용도로 신설 노선이 골프장 증설 예정 부지를 관통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상태에서도 골프장 증설에 관한 고양시의 도시계획시설 취하가 이뤄지지 않아 산황산을 지키기 위한 시민들의 텐트 농성은 2021년 8월 현재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고양시의회 입구에서 산황산 보존을 요구하며 수년째 농성중이다. ⓒ 최병성

  
지난 2012년, 송영길 인천시장은 안상수 전 시장의 계양산 골프장 건설 허가를 직권취소했다. 송영길 시장은 나무 위의 고공농성과 단식 등으로 골프장을 반대해온 시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골프장 대신 시민들을 위한 공원으로 결정한 것이다. 롯데는 재량권 남용이라며 계양산 골프장 '도시관리계획 폐지처분 취소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2018년 10월 대법원은 인천시의 손을 들어줬다.

산황산은 비록 크지 않은 산이지만 도심 한 가운데 위치해 있어 '고양시의 허파'로 불린다. 생태계 조사 결과 보전 가치가 높고, 골프장보다는 도시민들을 위한 도심 속 숲으로 보전함이 타당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그러나 고양시는 녹색복지도시를 표방하면서도 텐트 철거만을 종용할 뿐이다.

고양시는 2021년 1월 '환경은 비용이 아닌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투자로 보고 행정력을 집중하겠다'며 메타세쿼이아 등 12만 5000주를 식재하고 쉼터와 휴게시설을 설치해 시민 누구나 거닐 수 있는 숲길을 만드는 등 환경에 적극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호수공원을 비롯하여 고양시 곳곳의 나무들은 병들어 죽어가고 있고, 고양시 허파라고 불리는 산황산은 8년 넘게 골프장으로 훼손될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30억 그루심기나 지자체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도심 가로수 심기가 중요한 게 아니다. 나무를 심는다는 그린워싱으로 예산 낭비하지 말고, 이미 심어놓은 가로수들을 건강하게 살리고 도심 숲을 지키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진짜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이다.
 

무참하게 잘려나간 고양시의 가로수 ⓒ 최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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