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8.21 20:11최종 업데이트 21.08.2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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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 있는 미쓰비시중공업. 2019.7.23 ⓒ 연합뉴스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강제노역 피해자들이 부분적으로나마 피해 보전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와 피해자 유족 3인이 지난 12일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으로부터 미쓰비시 물품 대금 채권에 대한 압류 및 추심 명령을 받은 사실이 19일 국내 언론들을 통해 알려졌다.

양금덕 할머니 등이 광주광역시에서 소송을 제기한 것은 2012년 10월 24일이다. 제1차 아베 신조 내각(2006~2007년)에 이어 제2차 아베 내각이 출범하고 현 총리인 스가 요시히데가 내각관방장관이 된 2012년 12월 26일로부터 2개월 전이었다. 이날 만 83세가 된 양금덕 할머니는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광주지법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명박 정권이 사법농단 주역인 양승태를 대법원장에 임명한 2011년 9월 26일로부터 13개월 뒤에 제기된 양금덕 할머니 등의 소송 투쟁은 이명박 정권은 물론이고 박근혜 정권 때도 해결되지 않다가 촛불혁명 뒤인 2018년 11월 29일에야 비로소 일단락됐다. 이날 대법원은 피해자 1인당 1억에서 1억 5천만 원씩 배상할 것을 미쓰비시중공업에 명령했다. 한 달 전인 10월 30일 신일철주금(일본제철)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선고한 데 이어 일본 굴지의 미쓰비시에도 같은 선고를 내린 것이다.

하지만 미쓰비시중공업은 재판 결과에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미쓰비시그룹의 경제력과 더불어 아베 신조 내각과 스가 요시히데 내각의 응원을 등에 업고 판결을 불이행하고 있다. 미쓰비시그룹처럼 한국 경제와 긴밀히 연계된 다른 나라 기업이 이런 판결을 받았다면, 아마도 신속하게 판결이 이행됐을 것이다. 

기다리다 못한 피해자들은 미쓰비시의 물품 대금 채권에 대한 압류 및 추심을 안양지원에 신청했고, 안양지원은 안양에 소재한 LS그룹 산하 LS엠트론이 미쓰비시에 지급해야 할 트랙터 엔진 부품 대금 8억 5310만 원에 대해 압류 및 추심을 명령했다. 이 금액은 손해배상금에 더해 지연손해금과 집행비용 등을 합한 것이다.

생사 넘나들며 일했는데 무임금
 

한국의 강제노역 피해자들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 30일 기자회견을 열어 '미쓰비시 불매운동' 계획을 발표했다. 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가 기자회견 도중 답답한 듯 눈을 감으며 발언하고 있다. 2015.7.30 ⓒ 소중한

 
언론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1929년 전라도 나주에서 출생한 양금덕은 공부와 운동에 소질이 많았다. 급장(반장)을 도맡다시피 했다고 한다. 공부에 대한 열의가 컸던 그는 15세 때인 1944년 5월 '중학교에 진학시켜주겠다'는 일본인 교장의 유인에 넘어가 조선여자근로정신대에 지원했다.

아버지가 노발대발하는 바람에 다음날 취소 의사를 밝힌 소녀 양금덕은 '취소하면 부모님을 체포하겠다'는 말에 겁이 나서 아버지 도장을 훔쳐 담임에게 넘겼다. 그런 뒤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로 가게 됐다. 본인은 예상치 못했을 강제노역, 노예노동이 그때부터 시작했다.

부산과 도쿄를 잇는 직선의 3분의 2쯤 되는 곳에서 강제노역을 하게 된 그는 거기서 중노동에 더해 대지진까지 경험했다. 1944년 12월 7일 발생한 도난카이(東南海) 대지진이 그가 일하는 현장을 덮쳤다.

공업시설들이 특히 큰 피해를 본 이 지진으로 인해, 전라도 출신 10대 소녀만 해도 6명이나 희생됐다. 무너진 담장에 소녀들이 깔린 것이다. 양금덕은 무너진 벽면의 틈에 갇혀 목숨을 구했다. 이때 생긴 왼쪽 어깨 부상은 평생을 두고 그를 괴롭혔다.

그런 재난까지 당하면서 강제노역을 감내했지만, 미쓰비시는 임금을 지불하지 않았다. 1945년 10월 미쓰비시는 양금덕과 동료들에게 "너희들의 고향집 주소를 알고 있으니 틀림없이 월급을 보내주겠다"고 확약했지만, 그의 고향집에는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일본에 끌려갔다 왔다는 이유로 이상한 눈총을 받은 양금덕은 그것 때문에 혼담이 깨지는 아픔을 겪었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했지만, 남편과 일찍 사별했다. 그 뒤 생선 장사를 하면서 6남매를 키우며 살았다. 여섯 자녀를 공부시키고 결혼시켰으니 그 삶이 얼마나 고됐을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중에도 미쓰비시에 대한 한을 풀고자 1992년부터 소송을 걸었다. 하지만 번번이 패소했다. 촛불혁명으로 분위기가 바뀌지 않았다면 계속 그 상태였을 것이다. 안양지원이 압류한 미쓰비시 물품 채권 일부가 그의 통장에 들어간다 해도, 1944년 이래 78년간 축적된 가슴 속 응어리는 극히 일부밖에 풀리지 않을 것이다.

또다시 협박

이 같은 피해자들의 한을 조금도 돌아보지 않은 채, 일본 정부 대변인인 가토 가쓰노부 내각관방장관은 도리어 적반하장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19일 정례기자회견에서 안양지원의 대금 압류에 대한 질문을 받은 그는 "구(舊)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 문제와 관련된 한국 대법원의 판결 및 관련 사법절차는 명확한 국제법 위반"이라고 한 뒤 "만일 현금화에 이르게 된다면 이는 일한관계에서 매우 심각한 상황이 된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는 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한국을 상대로 후속 조치 중단을 요구한 것이다.

일본제국주의의 대리인들은 '정신대 지원을 취소하면 부모님을 체포하겠다'고 양금덕을 협박했다. 이제는 일본 정부가 '노역 대금을 받아 가면 매우 심각한 상황이 될 것'이라며 '한국은 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 경고의 수신인 중에는 양금덕 할머니도 포함된다. 1944년의 일본과 2021년의 일본이 그에게 비슷한 협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가토 장관이 경고한 '심각한 상황'이 어떤 것일지에 관해 그동안 많은 추정이 제기됐다. 압류대금이 피해자 손에 넘어가기 이전이나 이후에 일본이 보복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그간 꾸준히 제기됐다.

예상 시나리오를 상세히 다룬 인터넷 언론사 제이캐스트(J-Cast)의 2020년 6월 4일 자 기사 "[일·한 경제전쟁] 일본 기업 '자산의 현금화'에서 진검 승부, 최종 배틀로?(日韓経済戦争: 日本企業 '資産の現金化'でガチンコ最終バトルに?)"는 "만약 자산이 매각된다면 일본 측이 강력한 보복 조치에 나서는 게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그런 뒤 예상되는 보복 카드로 주한일본대사 소환,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일본 내 한국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 강화, 한국인의 본국 송금에 대한 규제, 한국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 강화, 무역보험의 적용 제외, 한국에 대한 부품·소재 수출 중단, 한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에 대한 견제, 한국인 입국 비자의 심사 강화 등이 제시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인들의 혐한 정서는 생각 이상으로 심각하다. 재일한국인(재일코리안) 3세로서 38세 때인 2014년에 <죽고 싶지만 전화해>로 제51회 문예상을 수상한 이용덕 작가가 이번 달 11일 펴낸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에서도 섬뜩한 분위기를 알 수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재일한국인은 "재일(한국인)과 한국인에 대한 차별은 더 심각해졌어"라며 이렇게 말한다.
 
예를 들면, 관광객 감소와 장난 방지를 이유로 전국의 전광판을 포함한 대부분의 안내판에서 한글이 사라졌어. (중략) 다른 동네의 한국 음식점에서는 '우리는 일본을 사랑합니다'라든가 '다케시마는 일본 영토'라든가 '경영자는 일본인입니다' 같은 말이 적힌 종이나 스티커를 덕지덕지 붙이게 되었지. 그렇지만 효과는 없어서 대부분이 폐업에 내몰렸어. 한국식 고깃집에서는 '야키니쿠(불고기)는 일본 음식입니다'라고 선전하고 '일본식 야키니쿠'라든가 '전통 일본식 야키니쿠'로 간판을 바꿔서 경영을 이어가는 곳도 있어. 한국어는 거의 적국의 언어가 되어서.
 
소설 속 대사이기는 하지만, 일본인들의 반한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 일본 분위기가 이처럼 험악하기 때문에, 향후 일본 정부가 보복 조치들을 내놓는다면 극우세력을 포함한 상당수의 일본인들이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 더군다나 10월 21일 중의원 임기가 만료되고 선거 국면으로 접어들기 때문에 혐한을 앞세운 포퓰리즘이 극성을 부릴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은 일본 분위기는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속담을 연상케 한다. 한국 피해자들은 1인당 1억 정도밖에 요구하고 있지 않는데, 일본은 2019년 7월 한국 경제를 겨냥한 대규모 보복 조치를 구사했다. 일본 기업이 내줘야 할 손해배상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경제적 손실을 한국에 끼쳤던 것이다. 향후 압류 채권의 현금화가 이뤄지면, 일본이 그때와 비슷한 혹은 그 이상의 보복 조치를 내놓을 가능성을 유의하지 않을 수 없다.

은근히 즐기는 일본
 

가토 가쓰노부 내각관방장관 ⓒ 연합뉴스

 
일본이 이처럼 과잉 대응을 하는 것은 은근히 이 상황을 즐기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 법원의 판결을 명분으로 국제관계를 경색시키고 이를 토대로 평화헌법 개정 및 군사대국화 추진을 정당화하려는 의도도 없지 않다.

일본 정치 전문가인 강동완 경기대 한반도전략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지난 7월 30일 발간된 <일본 신군국주의>에서 일본 정권이 강조하는 이데올로기는 "민족주의, 애국심, 도덕심, 역사의 부정 혹은 미화, 주변국과의 영토분쟁, 안보 위협 등"이라며 "상수(常數)는 주변국과의 갈등을 조장하여 안보 위협을 부추기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런 뒤 "이를 통해 국민을 민족주의에 빠져들게 하고 애국심을 고취토록 하며 도덕적 인간이 되도록 한다"고 설명한다. 한국인 피해자들의 한을 고려하기보다는 자국민을 민족주의로 무장시키는 데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강동완 연구위원은 '현금화가 현실화되면 일본이 어떤 태도를 보이리라 예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일본 입장에서는 문제가 불거지면 질수록 자신들에게 불리하지 않다고 판단할 겁니다"라며 "특히 일본 국내의 민족주의나 애국심, 보수 우경화 조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답변했다.

강제노역 판결에 불응하는 미쓰비시의 자산을 압류해 강제노역 피해자들의 한을 풀어주고 역사를 바로세우는 작업은 일본의 거친 태도에 관계없이 계속 추진돼야 한다. 그에 더해, 향후 있을지 모를 한국 국민과 기업에 대한 보복 조치에 대한 강구도 당연히 요구된다.

파국을 막는 길은 미쓰비시가 사과하고 배상하는 것뿐이다. 1945년 10월 미쓰비시는 양금덕 할머니 등에게 '고향집 주소를 알고 있으니 틀림없이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미쓰비시는 이제라도 사과와 함께 고향집에 돈을 부쳐주고 사태 악화를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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