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8.17 13:07최종 업데이트 21.08.17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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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욱 국방부 장관이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현안보고를 하기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2021.7.26 ⓒ 공동취재사진


서욱 국방부 장관이 13일 국방부 대변인을 통해 일곱 번째 대국민 사과를 전했다. 지난 12일 해군에서 성추행 피해를 입은 여군 중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까닭이다. 5월 말 성추행이 발생했고, 국방부에 따르면 사건 발생 후 상관에게 보고했으나 신고는 원치 않았다고 한다. 이 때에 피해자에 대한 회유가 있었고 이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도 벌어졌다는 의혹이 계속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피해자는 8월 9일에 신고를 결심했고,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8월 12일, 유명을 달리했다. 

2020년 9월에 취임한 장관이 1년도 지나지 않아 국민 앞에 일곱 번 고개를 숙였다. 잘못한 사람이 사과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대통령도, 장관도 언제든 사과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사과는 지나가던 사람 발을 밟고 전하는 일상의 미안함 같은 것과는 다르다. 나랏일도 사람이 하는 것이기에 국가도 잘못을 한다.


그러나 국가의 과오는 많은 이들의 삶을 누르고, 밀치고, 엎어트린다. 의도가 있었건, 실수였건,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건 매한가지다. 그리고 그 결과는 피해를 본 이들이 회복할 수 없는 지경, 때때로 죽음에까지 이른다. 이렇게 망가진 삶은 노력으로 쉽게 만회할 수 없다.

하여 정부의 사과는 피해 본 사람에게 이해 받기 위해 건네는 말이 아니다. 피치 못할 사정을 해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만회할 수 없는 피해를 깊이 사죄하고 그로 인한 날선 비판을 달게 감수하되 한편으로 다짐과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책임 있는 정부의 사과 방법이다.

대통령이나 장관의 사과에는 국가의 과오로 망가진 삶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이들을 기억하며 더 나은 정부를 꾸리겠다는 비전과 진정성이 담겨야 한다. 그런 다짐이 없다면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일 자격도 없다.

다짐은 없고 해명만 가득

그러나 서 장관의 사과에는 비전이 없고 진정성도 읽히지 않는다. 단순히 사과를 많이 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사과의 맥락에 다짐은 없고 해명만 가득하기 때문이다. 피해자와 그 가족과 국민에게 자꾸만 이해를 구한다.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하고 있으니 우리를 이해해 달라.' 지금 장관은 사과가 아닌 변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12일 피해자 여군 중사가 사망한 뒤 국방부는 같은 날 늦은 밤 출입기자단에 사건 소식을 알렸던 것으로 확인된다. 13일 오전 10시 30분에 브리핑을 진행하겠다는 일정까지 같이 통보했다. 외부에서 폭로가 된 사건도 아닌데 국방부가 직접 나서 사건을 알리고 브리핑까지 하겠다고 예고한 건 이례적이다. 공군 성추행 피해자 사망 사건으로 민감한 여론을 의식했을 터이고,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고 사건이 다른 루트로 외부에 알려지기 전에 국방부가 먼저 공개해보겠다는 계획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13일에 열린 국방부 브리핑 내용은 심히 실망스러웠다. 책임을 통감한다는 장관의 사과에 이어진 말들은 대부분 누가 언제 사건을 보고 받아서 무슨 조치를 어떻게 했는가에 방점이 찍혀있었다.

5월 말에 성추행 피해가 발생했고, 피해자가 상관에게 이를 알리되 수사기관에 신고하지 않았으며, 좁은 섬에서 피해자와 가해자 분리가 되지 않은 상태로 두 달 반이 지났다. 모종의 사정 속에 8월에 이르러 피해자가 신고를 결심했고, 이후 수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참사가 벌어졌다.

흐름 상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이유를 밝히기 위한 실마리는 상관에게 사건을 보고한 뒤 신고에 이르기까지 두 달 반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에 있다.

성폭력이나 성추행을 당하고도 신고하지 못하는 여군이 많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군대도 직장이다. 커리어와 진급의 문턱에서 피해 신고가 자칫 걸림돌이 될까 주저하는 이들이 많다. 실체 없는 걱정도 아니다. 여군들이 피해를 호소했다가 조직 내에서 갖가지 불이익을 본 전례가 이미 지천이다.

피해자는 11년 차 중사였다. 상사 진급을 준비하는 시기다. 함부로 예단할 수 없지만 무엇이 피해자로 하여금 신고를 망설이게 하였는지 꼽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도 피해자가 마음을 바꿔 신고를 하였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피해자로부터 피해 사실을 확인한 상관이 가해자에게 구두 경고만 했고, 이후 부서 상급자인 가해자가 두 달 넘게 2차 가해, 업무 배제 등을 해왔다는 증언이 유가족을 통해 전해지고 있기도 하다.

고개만 잘 숙인다고 사과인가

그런데 국방부의 브리핑은 이러한 내용보다는 사망 이후 장관, 해군참모총장, 함대사령관과 같은 군 수뇌부가 언제 어떻게 보고를 받았고, 엄정 수사를 조치했다는 식의 보고 체계와 매뉴얼에 따른 조치 경과가 주를 이뤘다.

전날 브리핑을 예고한 뒤 열심히 준비해 온 모양새였다. 아마 최근 벌어진 사건들을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5월에 공군에서 성추행 피해자가 사망했을 당시 사건 직후 국방부 보고 과정에서 의도적인 조작과 누락이 이뤄졌고 장관의 안이한 대처가 도마 위에 오른 적이 있다. 그렇다면 이번 사건에서는 그런 문제 없이 잘해나가고 있다는 것을 뽐내기라도 하는 것인가? 군 수뇌부가 절차와 매뉴얼에 따라 조치를 내리는 건 당연히 해야 했을 일이지 국민 앞에 구구절절 해명할 일이 아니다. 

국방부의 머릿속엔 여전히 피해자가 없다. 자꾸만 사람이 죽어 나가도 장관을 보위하고 조직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있다. 이런 인식으로는 절대 반복되는 죽음을 막을 수 없다. 선제적으로 사건을 알리고 브리핑까지 나선 저의가 의심받을 만하다.

공군 사건 이후로 국회 국방위원회가 열렸을 때다. 장관이 몇 번 사과했는지 아느냐는 국회의원의 일갈에, 그걸 세진 않지만 사과할 일이 있으면 몇 번이라도 할 수 있다는 서욱 장관의 답변이 있었다.

의원의 질문이 사과를 많이 한다고 탓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군의 과오로 망가진 이들의 삶을 진지하게 성찰하고 사과하는 것이 맞느냐는 것이었으리라. 고개만 잘 숙인다고 다 사과가 아니다. 마음이 뻣뻣하여 본인 구명하기에 바쁜 사람은 정부의 이름으로 사과를 할 자격이 없다. 문제가 터져도 비전이 없다면 어찌 그 자리에 계속 앉아있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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