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8.18 07:35최종 업데이트 21.08.18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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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마크 램지어 교수가 서문을 써준 아리마 데츠오 와세다대 교수의 신간 <위안부는 모두 합의계약을 했다>. ⓒ WAC문고

 
세계적 비판을 받는 존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학 교수는 세상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엉망진창이라고도 생각한다. 7월 30일 발행된 아리마 데츠오(有馬哲夫) 와세다대학 교수의 <위안부는 모두 합의계약을 했다>(慰安婦はみな合意契約をしていた)에 응원글 성격의 서문을 써준 그는, 이 글에서 자신의 주장을 되풀이했을 뿐 아니라 세상이 비정상적으로 돌아간다는 인식을 내비쳤다.

램지어보다 1년 빠른 1953년 출생하고 1977년 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아리마 데츠오 교수는 방송·광고·문화산업 등을 전공했다. 작년 7월 17일 그가 펴낸 <일본인은 어째서 자학적이 됐는가>(日本人はなぜ自虐的になったのか)는 미국이 일본인들에게 죄책감을 심어주는 방법으로 미국의 원폭 투하에 대한 일본인들의 반발심을 없애려 했다는 점을 다루는 책이다.


일본인들이 가져야 할 죄책감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다는 점에서 아리마 데츠오가 어떤 성향의 인물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이번에 펴낸 <위안부는 모두 합의계약을 했다>에서도 '위안부=희생자' 공식에 의문을 제기했다. 위안소는 전쟁에 필수적이라는 주장과 함께, 램지어를 옹호하는 주장을 개진했다. 극우 성향의 학자라고 평가할 수 있다.

편파성 노골화

법학자인 램지어가 다루는 위안부 강제동원이라는 사건에서 일본은 가해자, 한국은 피해자다. 램지어는 일본을 가해자로 인정하지 않지만, 일본이 가해자로 비판받고 있다는 점까지는 모르지 않는다. 법정으로 치면 일본은 피고석, 한국은 원고석에 앉아 있다는 점을 그가 모를 리 없다.

세계적 비판을 받은 '태평양전쟁에서의 성매매 계약'이란 논문에서 램지어는 스스로를 일본 변호인으로 규정하지는 않았다. 중립적인 심판자의 입장에서 위안부 문제를 판단하는 듯한 모양새를 취했다.

이렇게 심판자를 자처한 램지어가 피고와 같은 편인 일본 극우세력의 책에 응원 글을 써주는 것은 모순이다. 이는 자신이 위안부 논문을 쓸 당시에도 중립성에 개의치 않았음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일본 극우가 램지어를 응원하는 것은 그가 어린 시절을 일본에서 보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그가 미국인이기 때문이다.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가 일본을 옹호해준다는 것이 극우세력에게는 커다란 힘이 되고 있다. 그런 기대를 받는 램지어가 겉으로라도 중립성을 지키지 못하고 극우 학자의 글에 응원 글을 써줬다. 편파성을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게 된다.

<위안부는 모두 합의계약 했다>의 서문을 읽어보면, 그가 금년 상반기에 벌어진 사태로부터 별다른 교훈을 얻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중립성을 상실한 램지어 자신이 아니라 세상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그의 시각이 이 글에 여실히 드러난다.

'일본 독자에게(日本の讀者へ)'라는 제목이 붙은 서문을, 램지어는 "이상한 1년이었습니다"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뒤이어 "저는 보통의 대학 교수입니다"라고 말한 뒤, 자기는 독자에게 읽힐 목적으로 논문이나 책을 쓰는 교수가 아니라 누구도 읽지 않는 글을 몇 번이고 쓰는 교수라고 소개한다. 논문 심사위원과 토론자를 포함해 전공자 몇 사람밖에 읽지 않는 학술 논문만 쓰던 자신한테는 금년 상반기의 세계적 관심이 완전히 낯선 경험이었다는 것이다.

위안부 논문으로 인해 빚어진 이 사태를 두고 그는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경험한 적 없는 이상한 일뿐이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첫 문장에 나온 '이상하다'는 표현을 여기서도 되풀이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가해지는 세계적 비판을 그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램지어의 서문. ⓒ WAC문고

 
보통의 학자와는 다른 '보통의 대학교수'

세계인들은 램지어가 위안부 피해자들의 처지를 올바로 직시하지 않는 것에도 분노했지만, 그가 최소한의 학자적 태도를 견지하지 않는 것에도 분노했다. 위안부 문제 같은 민감하고도 중대한 사안에 관해 글을 쓰면서 기본적으로 참고해야 할 것마저 살피지 않은 채 성급히 결론을 내는 그의 모습을 보고 세계인들은 당혹하고 당황했다.

위안부 피해 같은 유형의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조사 대상은 피해자의 증언이다. 램지어는 이것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피해자들의 증언이 세계 각국 언론에 보도돼 간단한 검색만으로도 얼마든 확인할 수 있는데도, 그것마저 하지 않고 일본 극우세력의 주장에 부합하는 논문을 썼다. 가해자를 두둔하는 사람들의 구미에 맞게 글을 쓴 것이다.

학문과 글쓰기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 그런 잘못을 범했기 때문에, 세계인들은 그에게 윤리적 비판을 가했다. 설령 이런 비판이 과도하거나 잘못된 것이라고 느껴졌다 해도, 학문과 글쓰기를 전업으로 하는 그로서는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게 당연하다.

이런 일을 스스로를 점검할 계기로 삼는 태도는 일반적인 학자들에게서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보통의 대학교수'로 소개해놓고도 자신에 대한 학문 윤리적 비판에 대해서는 보통의 학자들과 달리 행동한다. 그저 '이상하다'는 반응을 보일 뿐이다.

뒤이어 그는 한국 언론으로부터 시작된 자신에 대한 일대 비판을 대소동(大騒ぎ)으로 표현한다. 그런 다음, '사과하라', '논문 게재를 취소하라', '하버드대학은 램지어를 해고하라' 같은 항의들을 열거한 뒤 "엉망진창(めちゃくちゃ)의 학회춘투(學會春鬪)로밖에 생각되지 않는 2개월간"이었다고 회고한다.

자신에게 가해지는 세계적 비판을 '이상하다'라는 말로 표현한 것을 보면, 그가 말하는 '엉망진창'의 의미도 짐작할 수 있다. 자신의 처지가 엉망진창이 됐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을 공격하는 세상의 모습이 엉망진창이라는 뜻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에 대한 세상의 시선을 그가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한 은근한 조롱을 밑바닥에 깔고 있는 이 같은 글을 극우 인사의 책에 써준 것은 그가 어떤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어 하는지를 보여준다. 중립자의 입장에서 위안부 문제를 다뤄보겠다며 무대에 올라선 그가 일본 극우세력에 대한 애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법 이론 무시하는 법학자
 

'위안부는 매춘부'라는 주장으로 파문을 일으킨 존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 ⓒ 유튜브캡처


그런 뒤 그는 학문적 문제점을 또다시 노출했다. 서문 후반부를 위안부 문제에 대한 자신의 지론으로 채운 것이다. 그는 "전쟁터의 매춘 관련 직업은 국내 직업보다 확실히 위험"하다며 "수입도 그만큼 높았"다고 말한다. 위안부 활동은 고소득 매춘업이라는 극우적 주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그런 뒤 한·일 양국의 "가난한" 여성들이 돈 때문에 참여했다고 말한다.

그는 위안부의 자발성을 재차 강조한다. "일본군은 매춘부를 강제적으로 모집할 필요도 없었고, 그럴 여유도 없었다"고 말한다. "당시의 공문서에서도 위안부 사냥의 흔적을 보여주는 것은 전혀 없습니다"며 일본을 두둔한다.

일본 정부는 1991년 12월 이후의 조사 작업을 근거로 1993년 8월 4일 고노담화를 발표했다. 이 담화에서 일본 정부는 '일본군에 의한 강압적인 위안부 동원'을 사실로 인정했다. 램지어는 이런 고노담화마저 감안하지 않은 채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다.

일본 작가 모리카와 마치코가 3년간의 인터뷰를 토대로 집필한 <버마전선 일본군 위안부 문옥주>에 따르면, 문옥주는 만 16세 된 1940년 가을에 하루코라는 친구의 집에서 놀다가 저녁에 귀가하던 도중에 강제연행을 당했다. "너, 여기로 잠깐 와" 하는 소리에 문옥주는 놀라 멈췄다. 남자들이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나를 불러 세운 사람들은 일본인 헌병과 조선인 헌병, 조선인 형사였다"고 그는 회고했다. 너무나 잘 알려진 이런 자료에 대한 검토 작업도 하지 않은 채로 램지어는 합의계약을 운운하고 있다.

램지어의 태도는 어떤 경위로 작성됐건 간에 계약서만 존재하면 계약이 유효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자유의사가 억압된 강박 상태 하의 의사표시인지 아닌지를 따지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평생 공부한 법학 이론으로부터 자유롭게 사고하고 있는 것이다.

램지어는 위안부들의 계약기간이 2년이었다는 점도 언급한다. 2년이 지나면 자유로워질 수 있었음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성노예 상태가 실제로 2년 만에 끝난 것은 아니다. 이화여대 이화사학연구소 연구원인 역사학자 강정숙의 논문 '램지어 교수 논문을 매개로 일본 정부의 책임 다시 보기'에 이런 대목이 있다.
 
내무성 등 군관 측 문헌 속에서 계약기간 2년이라는 기록이 발견되기는 한다. 램지어는 이를 보고 바로 일반화하였다. 그런데 피해자 구술을 통해서는 계약기간 2년 만에 자의로 귀환한 사례는 찾아볼 수 없었다.

증언을 하기 시작한 것이 문제 발생 50년 이후라는 점을 고려하면 기억에 다소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1945년 가까운 시기에 동원된 이들을 제외하고, 증언한 이들은 2년을 넘어 수년간 있었다. 종전되기 전에 귀환한 경우는 예외적이었고, 대부분은 종전까지 현지에 있었다. 일본이 패전하지 않았다면 그들의 위안부 생활은 더 길어졌을 것이다.

- 2021년 4월 <페미니즘 연구> 제21권 제1호에 수록.
 
가해자 측 증언을 들으면 일본이 위안부들을 2년 만에 돌려보낸 것 같지만, 피해자들의 증언까지 들어보면 그런 합의가 지켜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램지어는 가해자 쪽에 유리한 자료만 보고 피해자 진술은 듣지도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런 태도를 이번 책 서문에서도 보여줬다.

분명히, 이상한 쪽은 램지어이고 엉망진창인 쪽도 램지어이지만, 램지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램지어가 보기에는 세상이 이상하고 세상이 엉망진창이다. 램지어와 그의 동지들인 일본 극우세력의 세상 인식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를 이번 서문에서도 잘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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