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8.13 18:28최종 업데이트 21.08.13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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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6일 독일 연방의회 총선과 함께 치러지는 베를린 부동산 기업 국유화 시민투표 포스터(가장 위). 연방의회 선거 포스터와 나란히 걸려있다. ⓒ 이유진

 
오는 9월 독일에서는 새로운 총리가 결정되는 총선이 열린다. 같은 날 베를린에서는 또 하나의 투표가 진행된다. 바로 부동산 기업의 국유화를 결정하는 시민투표(Volksentscheid)다. 시민투표에 성공하면 베를린의 거대 부동산 기업이 소유한 주택 20만 채가 모두 공영주택으로 전환된다.

베를리너 18만 명 서명

설마설마했던 일이 벌어졌다. 베를린 '도이체보넨 몰수(Deutsche Wohnen & Co enteignen)' 운동이 추진한 시민투표가 성사됐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처럼 시작한 캠페인이었다. 2019년 시민투표를 위한 1차 관문으로 7만여 명의 서명을 받았다. 이후 법적 검토를 거쳐 2차 서명 캠페인에 들어갔다. 지난 2월부터 4개월 동안 베를린 유권자 17만 5000명의 서명을 받아야 했다. ([관련기사] 베를린은 지금 혁명중... 부동산 몰수 시위 후 일어난 일 http://omn.kr/1tgdg)


기한인 6월 25일. '도이체보넨 몰수' 측은 35만 9063명의 서명을 제출했다. 이 중 18만 3711개가 유효 서명으로 인정됐다. 무효 서명 대부분은 독일 국적이 아니거나, 베를린 거주자가 아닌 경우다. 무효 서명을 제외하고도 시민투표 성사 요건을 넉넉히 충족했다.

이로써 베를린 유권자들은 9월 26일 '대형 부동산기업의 주택 국유화 법률안 마련을 위한 시민 결정'안에 찬반 투표를 한다. 투표자의 과반수 찬성, 베를린 유권자의 4분의 1 이상이 찬성하면 결정된다. 베를린시는 즉시 관련 입법안을 마련해야 한다.

시민투표로 결정되는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기본법 15조에 따라 베를린에 주택 3000채 이상 소유한 부동산 기업의 주택을 국유화한다. 공익적 목적으로 운영하는 주택조합 등은 국유화하지 않는다.
2. 국유화한 주택 관리는 공기업(Anstalt des öffentlichen Rechts)을 통해 이윤이 아닌 공익에 따라 운영한다.
3. 주택 관리는 직원들과 세입자, 시가 다수결에 따르는 민주적 방식을 따른다. 
4. 공기업 정관에 재민영화를 금지한다.
5. 국유화 대상 기업에는 시장가격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으로 보상한다. 

본 결정에 영향을 받는 기업은 최근 떠들석하게 합병 소식을 발표한 도이체보넨과 보노비아(Vonovia), 그 외에도 아켈리우스(Akelius), 코비비오(Covivio), 태그 이모빌리언(TAG Immobilien) 등 10곳이 넘는 부동산 기업이 포함된다. 주택 물량은 총 24만여 채다.
 

9월 26일 독일 총선과 함께 치러지는 베를린 부동산 기업 국유화 시민투표 포스터. 찬성에 투표하라는 뜻이다. ⓒ 이유진


국유화는 정말 가능한가

'토지, 천연자원 및 생산수단은 사회화를 목적으로 보상의 종류와 정도를 규정하는 법률에 의하여 공유재산 또는 공동관리 경제의 다른 형태로 전환될 수 있다.'

독일 기본법 15조에 명시된 내용이다. 시민투표가 성사된 법적 근거다. 캠페인에는 '몰수', '국영화'라는 무시무시한 단어가 쓰였지만 빼앗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보상을 해주고 공공 재산화 한다.

서명을 받기 전 법적 검토는 이미 마무리 됐다. 베를린시는 시민투표 내용이 법적으로 허용되는지, 현실성이 있는지 판단했다. 실제 시민투표에서 국유화 결정이 났을 경우 비용적, 행정적 절차도 고려한다.

베를린은 이미 국영화 결정 이후를 생각한다. '도이체보넨 몰수' 운동 측은 국유화를 위한 재정 마련 및 직원 고용 절차 등을 함께 제안하고 있다.

관건은 부동산 기업에 줘야 할 보상금액이다. 시장 가격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으로 매입한다는 조건이 있지만 시 재정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도이체보넨 몰수' 측은 주택 보상금액을 73억 유로에서 137억 유로 사이로 추산한다. 이 금액은 국유화 이후 나오는 임대료로 수십 년간 걸쳐 지불하며, 시 재정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물론 국유화 이후 임대료는 인하될 수 있다. 

반면 베를린시 당국은 주택 보상금을 약 288억 유로에서 360억 유로, 취득비용 1억 8000만 유로 등 추가 비용을 더 많이 산정하고 있다.

'도이체보넨 몰수' 측에 따르면 기존 부동산 기업 직원들은 공영주택 관리를 위해 설립될 공기업에 고용될 수 있다. 물론 지금보다 더 좋은 노동조건을 제공한다.
 

9월 26일 독일 총선과 함께 치러지는 베를린 부동산 기업 국유화 시민투표 포스터. 찬성에 투표하라는 뜻이다. ⓒ 이유진

 
베를린다운 결과

베를린 정치권은 부동산 기업 국유화 운동을 부담스럽게 여겨왔다. 당연한 일이다. 최근에 부동산 기업 두 곳의 합병을 지지하며 주택 정책을 내놓은 것도 시민운동의 바람을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합병 기자회견 이후 부동산 국유화 운동은 더 거세졌다. 두 기업 합병은 결국 좌초됐다.

시민투표 성사를 두고 '역시 독일'이라 생각하면 곤란하다. 베를린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베를린은 2018년 기준 자가주택 비율이 17.5%로 가장 낮은 도시다. 임대주택에 사는 세입자가 80% 이상이란 의미다. 인간의 기본권인 주거권을 위협하는 부동산 기업에 대한 반발이 특히 높은 곳이다. 

베를린 시민들은 도심에 있는 템펠호프 공항 부지에 고급 부동산 단지가 들어서는 일을 막은 전력이 있다. 그때도 시민투표를 통해서였다. 자본이 호시탐탐 베를린을 노리지만, 도시를 지키는 건 결국 시민들이다. 

오는 9월 26일. 독일의 새로운 총리만큼 베를린 시민투표의 결과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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