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8.10 18:28최종 업데이트 21.08.10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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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심 마친 전두환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군부의 헬기 사격 사실을 부정하며 목격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를 받는 전두환씨가 9일 오후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공판기일 출석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뉴스에 보도된 사진을 보면 지난 9일 광주에 나타난 전두환은 전과 달리 급격하게 초췌한 모습이다. 고인이 된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항소심 재판을 받고자 광주지방법원에 출석한 그는 "광주시민과 유족에게 사과할 마음이 없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묵묵부답했고, 재판 도중에는 건강 이상 증세를 보여 "피고인, 호흡이 곤란합니까?"라는 질문까지 들은 것으로 보도됐다. 이에 대해 부인 이순자씨가 "식사도 못했고 가슴이 답답하신 것 같습니다"라고 대신 대답했다고 한다. 

조비오 신부가 목격한 헬기 기총소사와 관련해 전두환은 헬기에서 빗자루로 소제하듯이 시민들을 향해 사격하는 일이 가능하겠냐며 터무니없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전두환 회고록> 제1권은 "헬리콥터의 기총소사에 의한 총격으로 부상한 사람들을 목격했다는 진술도 헬리콥터가 장착한 화기의 성능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한 뒤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일 뿐"이라며 조비오 신부를 비난했다. 


하지만 그의 강변과 관계없이 이 사회는 헬기 기총소사를 사실로 인정해 가고 있다. 2017년에 구성된 국방부 5·18 특별조사위원회는 광주 전일빌딩에서 기총소사의 탄흔을 찾아냈고, 지금 진행 중인 사건의 1심 재판부 역시 이를 사실로 인정하고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순자씨의 궤변

2019년 1월 7일 광주지법 재판을 앞두고 <뉴스타운>과 한 1월 1일 자 대담 인터뷰에서 이순자씨는 "정말 하늘이 원망스럽고 그렇습니다"라며 "왜 저분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지"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민주주의의 아버지가 누구예요?"라고 한 뒤 곧바로 "나는 우리 남편이라고 생각해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로 '직선제 개헌을 해준 것'과 더불어 '단임제 개헌을 한 것'을 들었다. "제일 중요한 거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단임을 이룬 것, 그 덕분에 지금 대통령들이 5년만 되면 착착, 더 있으려고 생각을 못하잖아요"라고 주장했다. 이승만은 12년, 박정희는 18년간 장기 집권했지만, 남편이 단임제 개헌을 해놓은 뒤로는 다들 5년만 하고 착착 자동적으로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궤변이지만, 전두환을 한국 민주주의와 연관시킨 그의 말에는 음미해볼 구석이 있다. 한국 민주주의 성장 속에 전두환의 인생이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민주화운동이 가장 격렬한 시기에 대통령을 지내다가 시민혁명을 맞이하더니 노년기를 세상의 욕을 들으며 살고 있다. 상당히 극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전두환은 1961년부터 1988년까지 27년간 정치군인과 대통령으로서 큰소리치며 살다가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세상의 비판과 단죄를 받는 데 보내고 있다.

전두환은 박정희의 군부 사조직인 하나회의 리더로서, 또 국민을 감시하는 국군보안사령관으로서 박 정권을 떠받치는 군부 엘리트 역할을 수행했다. 1961년 5·16 쿠데타 직후부터 박정희의 신임을 받으며 승승장구한 30세 이후의 전두환(1931년 생)은 의욕과 자신감이 넘치는 청년 군인이었다. 박 정권이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3선 개헌(1969년)을 관철하던 시절에 그는 활발한 30대를 보냈다.

그가 40대로 접어든 1970년대에는 보수세력이 유신체제라는 미증유의 독재 시스템을 구축했고, 이에 따라 민주세력은 숨조차 쉬기 힘들 정도로 위축됐다. 이런 유신시대에 전두환은 군인으로서 절정을 누렸다. 유신헌법이 공포되고 시행된 1972년 12월 27일로부터 닷새 뒤인 1973년 1월 1일 그는 임기제 준장으로 승진했다. 유신체제가 떠오르자 그의 어깨에 별이 달리게 된 것이다.

민주주의의 성장

그러던 그는 권력의 정점에서 내려온 1988년 이후로 다른 인생을 살게 됐다. 국회에서는 광주 청문회와 5공 청문회가 열렸고, 퇴임 뒤에 상왕으로 오르고자 했던 그는 그해 11월 23일 설악산 백담사로 올라갔다.

3당 합당으로 보수진영의 국회 지배력이 강화한 뒤인 1990년 12월 30일 백담사에서 내려왔지만, 세상은 여전히 호의적이지 않았다. 5·18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한 국민의 열기는 갈수록 뜨거워졌고, 1993년 출범한 김영삼 정권은 이런 흐름을 거역할 수 없었다. 결국 1995년 12월 3일 고향인 경남 합천에서 잠옷 바람으로 체포돼 안양교도소로 끌려가고 재판을 받게 됐다.

5·18에서 12·3으로 이어지는 이 같은 과정은 전두환 개인에 대한 응징의 과정이라기보다는 반민주세력에 대한 민주세력의 승리의 과정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5·18 직후에는 전두환 집단이 광주시민들을 법정에 세우고 처벌했다. 그랬던 것이 15년 뒤에는 광주시민과 국민들이 전두환과 그 일당을 법정에 세우는 양상으로 뒤바뀌었다. 

전두환이 주재자가 되는 '5·18 법정'은 부정되고 전두환이 피고가 되는 '5·18 법정'이 열렸다. 이런 역전이 가능했던 것은 민주주의가 그만큼 성장했기 때문이다.

5·18 직후에 광주시민들을 재판한 과오에 대해 참회의 마음을 표한 김이수 전 헌법재판관은 올해 4월 <법학평론> 제11권에 '5·18광주항쟁과 5·18의 두 법정'이라는 논문을 기고했다. 그는 이 논문에서 피고가 각각 다른 '5·18 법정'이 시차를 두고 열리는 과정을 두고 "5·18의 첫 번째 법정에서 두 번째 법정으로 가는 과정은 한국 사회가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과정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1988년 이후로 국민들은 전두환을 감옥에 넣고자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백담사로 도피하는 전두환을 붙들 수 없었다. 이는 국민들이 6월항쟁이라는 성과를 거두고도 완전한 승리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두환을 지켜줘야 함은 물론이고 그 자신도 함께 지켜야 하는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지 못한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그랬던 것이, 국민들이 공소시효를 연장하는 '5·18 특별법' 및 '헌정질서 파괴범죄 공소시효법'의 제정까지 추동하면서 전두환을 법정에 세우는 상황으로 변모했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국민들이 끊임없이 민주화 투쟁을 했기 때문이다. 전두환도 미처 예견하지 못했을 공소시효 연장이라는 '마술'을 국민들이 펼친 것이다.
  
안양교도소에 수감되고 법정에 선 그는 "왜 나만 갖고 그래?"라는 명언을 남겼다. 국민들이 전두환만 갖고 그런 이유 중 하나는 그가 감옥에 가지 않으려고 산으로 올라가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등의 잔꾀를 많이 부린 점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전두환이 수감되고 유죄 판결을 받는 1995년 하반기부터 1997년 중반까지는 보수진영이 분열을 일으켜 김종필이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을 만들고 민주진영과 김대중이 자민련을 끌어들여 1997년 12월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향해 나아가는 시기와 대체로 일치한다.

하지만 구세력인 김종필과 연대해야 했던 데서도 알 수 있듯이 1997년의 대선 승리는 완전한 것이 아니었고, 세상의 무게는 여전히 구세력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이런 구도는 1997년 대선 직후에 전두환이 사면을 받은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전두환을 확실히 처벌할 수 있을 정도의 역량이 축적되지 않았기에 그를 도로 풀어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역사는 진보를 향해 흘러간다

그처럼 불안정한 구도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진일보시킨 것이 2016년 촛불혁명이다. 보수 진영은 훨씬 더 약해졌고 민주세력은 더욱 강해졌다. 이런 변화는 전두환이 또다시 법정으로 불려나오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사자명예훼손 혐의라는, 이전보다 훨씬 가벼운 혐의로도 그가 광주까지 재판 받으러 가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민주주의의 힘이 그만큼 강력해진 것이다.

하지만 전두환은 아직까지 참회하지 않고 있다. 이는 성격적 특질에도 어느 정도 연유하지만, 그를 지탱해주는 정치적 배경과도 관련이 있다.

촛불혁명의 충격을 받고도 보수세력은 여전히 힘을 보유하고 있다. '공정성'을 화두로 도리어 뻔뻔하게 호통을 치기까지 한다. 이 장면은 전두환의 뻔뻔함과도 연관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구세력이 아직 완전히 힘을 잃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민주주의를 향해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장면이다.

9일 전두환은 이전보다 약해진 모습으로 법정에 출석했다. 그가 아무리 뻔뻔하고 허세를 부릴지라도 역사는 진보를 향해 흘러가고 있다. 갈수록 고립되고 약해지는 전두환의 모습은 세월의 무상함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앞을 향해 진보하는 시대적 대세를 어쩌지 못하는 한국 보수의 현실을 떠올리게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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