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7.26 19:38최종 업데이트 21.07.26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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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을 비교하거나 비하하는 발언, 정치인으로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출신지인 경북 예안을 두고 안동과 비교하는 발언을 했다가 곤욕을 치른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이 17일 예안향교를 찾아 사과했다. 불과 사흘 뒤인 20일에는 대구를 찾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2월 코로나 확산이 심각한 지역의 봉쇄를 주장한 홍익표 당시 민주당 원내대변인의 발언을 상기시키며 '철없는 미친 소리'라고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여기에 다른 지역이었으면 질서 있는 처치가 안 되고 민란부터 일어났을 것이라는 주장까지 이어졌다.

윤 전 총장이 '윤석열이 듣습니다'라는 민생 행보 중 언행으로 갖가지 논란을 야기하자 언론들은 일제히 우려를 쏟아냈다. 연이은 실언이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져 여론조사 1위 자리마저 위태롭다는 것이 언론들의 한결같은 분석이었다. <한겨레>도 논란된 발언들을 실언이라 정의하고 스포츠 경기에 빗대어 <'장외 실투' 던질수록...국민의힘은 애가 탄다>라고 제목을 달았다. 그런데 윤 전 총장의 잇따른 논란 발언들을 실언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대선 출마를 선언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20일 오후 대구 중구 서문시장 상인회 사무실에서 지역 기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전 총장은 알고 있다

'실언'의 사전적 의미는 말실수다. 말실수는 바로잡고 되풀이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윤 전 총장은 논란이 불거졌을 때 이를 실언이라고 인정한 적도 사과한 적도 없다. 윤 전 총장이 '철없는 미친 소리'라고 했던 대구 봉쇄 발언의 당사자인 민주당 홍익표 의원은 사과와 해명을 할 틈도 없이 추악한 망언 정치인의 꼬리표를 달고 대변인 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지역 봉쇄가 아니라 촘촘한 방역망으로 코로나 전파를 차단하자는 대구 봉쇄 발언이 TK를 겨냥한 망언이라면, '대구가 아니면 민란부터 일어났을 것'이라는 발언을 말실수로 치부하는 건 공정하지 않다.


윤 전 총장이 대구에서 민란을 주장한 것은, '우리가 남이가'라는 지역감정을 불러내 지지율을 만회해 보려는 계산된 행위였을 가능성이 크다. 박근혜 수사와 기소에 대해 송구한 부분이 없지 않다는 대구 KBS 인터뷰 발언도 마찬가지다. 국정농단 수사를 통해 쌓은 이미지와 명성에 역행하는 모습은 자기부정을 통해서라도 보수 세력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심의 산물이지, 파생될 논란과 비난을 예상 못한 실수라 볼 수 없다.

'죽창가를 부르다 한일관계가 망가졌다'는 발언, 박근혜 평가 질문에 '존경할 만한 부분 다 있다'라는 대답, 이 발언들을 관통하는 것은 지역감정 부추김과 보수 세력에 대한 구애다. '실언' '황당 발언'이라는 비판은 타당하지 않은 단편적 지적이다. 실언보다는 해서는 안 될 궤변, 망언이라 해야 맞다. 공정과 정의, 상식을 대선 출마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윤 전 총장에게서 양두구육(겉은 번드르르 하지만 속은 변변치 않음)의 얄팍함마저 보인다.

"게임 하나 개발하려면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논란이 된 윤 전 총장의 '일주일 120시간 노동'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시간이다. 그래서 윤 전 총장의 반론처럼 120시간만 꼬투리 잡아 진의를 왜곡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반론하려면 유연근로제, 특별연장근로, 선택근로제 등 주 52시간제 예외 조항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뒀어야 한다. 이런 사실을 간과한 채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푹 쉬자고 하는 것은 '주 52시간제는 실패한 정책, 차라리 노사자율에 맡기는 게 낫다'는 보수언론·경제계의 주장을 대변한 것이나 다름없다. 근로기준을 법보다 자율로 하자는 주장은 경제계의 숙원일지는 모르지만 지금도 과로사, 사고사가 속출하는 노동현장을 생각하면 중심 잃은 행보다. 이는 단순히 말실수가 아니라 경제 철학 빈곤이다.
  

지지자들에게 손들어 인사하는 윤석열 대선 출마를 선언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0일 오후 대구 중구 서문시장을 찾은 자리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 전 총장의 그릇된 경제관은 몇 가지 사례들을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그는 지난 6월 29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을 비판했다. 소득주도 성장론, 부동산 정책, 탈원전 정책을 거론하면서 국민을 약탈하려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범야권의 대선 주자로서 현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탈원전 관련 토론회에서는 탄소중립 대신 '탄소중심'이라고 잘못 표기된 마스크를 써서 웃음거리가 됐는가 하면, 지난 11일 경실련 부동산 건설개혁 본부장을 만난 자리에서는 현 정부 부동산 정책의 문제점을 시장과 싸우는 정책 탓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19일 경제지 인터뷰에서는 기업이 잘못했을 경우 경영자 사법처리 말고 법인에 고액벌금을 물리는 형식의 형사법 개정을 주장하기도 했다.

정치철학·경제철학의 빈곤함

수출과 기업 위주 경제 정책에서 벗어나 국민의 호주머니를 채워 성장을 견인하자는 게 소득주도 성장론이다. 임기 내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이뤄내지 못한 채 좌초되는 모양새가 되었지만 경제 상식을 벗어난 성장론이라는 비난은 근거 없다. 시장과 싸우는 부동산 정책이 문제라고 하지만 투기세력을 제압하지 못한 게 집값 폭등의 원인이라는 비판이 훨씬 설득력 있다. 시장과 싸울 의지조차 없었던 과거 보수정권의 부동산 정책 후과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기업 임원의 사법 처리보다는 법인에 고액 벌금을 부과하자는 주장은 대기업 오너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하겠지만, 정의와 법치에 부합되는 발언은 아니다.

윤 전 총장의 경제관련 발언들의 공통분모는 문재인 정권과 선긋기, 낡은 경제 패러다임의 반복이다. 국민보다 기업 성장이 중요하고, 노동 시간을 늘려서라도 성과를 내야 한다는 생각. 자산가와 부동산 시장에 맞서지 않는 정책이 집값과 주거 안정을 가져온다는 발상. 기업 오너의 사법 처리에 신중해야 된다는 주장. 이 모두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수도 없이 반복되어 왔던 것이고, 성과 없이 고통만 키웠던 정책들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대선 주자의 입에서 나온 대안들이 고작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를 돌리겠다는 궤변이라니, 실망이다. 차라리 주워 담을 수 있는 실언이라면 그나마 낫겠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5일 오후 서울 광진구 건대 맛의거리에서 '치맥회동'을 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최근 윤석열 전 총장에 대한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는 것은 빈곤한 정치경제 철학에 대한 회의가 커진 탓도 있다. 25일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회동을 가진 윤 전 총장. 입당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준석 대표가 윤 전 총장에게 준다는 비단 주머니 세 개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철학의 빈곤함은 국민의힘에 입당하더라도 단시일에 극복될 것 같지는 않다. 윤석열 전 총장이 대통령감이 되는지 꼼꼼히 체크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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