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7.29 13:31최종 업데이트 21.07.29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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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은 연극 연출가가 6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코로나19 시대 공연예술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유성호

 
검은 공간. 불빛 하나 덩그러니 있는 연극 무대 위에 세트 하나, 소품 하나 없다. 배우가 등장하고 허공에 대고 문을 여는 몸짓을 한다. 실제로 무대 위에 있는 것이라고는 배우뿐이지만 배우는 식탁에 음식을 차리고 밥을 먹는다. 없는데 있고, 있는데 없는 이상한 아이러니의 세계. 가짜인데 진짜인 연극의 세계에 매료된 20대 초반의 한 사람은 그 후 연극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름은 이래은. 연극연출가다. 지금까지 약 20여 편 정도의 연극 연출을 해왔다. 그중 반 이상이 10대 여성들의 삶을 담는 공연이었다. 자신이 10대 때 겪었던 세계의 감각을 놓치지 않고, 지금도 10대 여성들의 삶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이래은 연출가는 연극이 '허구와 실재가 중첩되어 있는 이상한 세계'라고 표현했다. '허구와 실재, 그 모든 것이 뭉뚱그려져 있는 연극의 세계'를 확대하고 쪼개서, 꼼꼼히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를 지난 6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 공연모습 ⓒ 박태양

 
미투에서부터 코로나까지

- 2018년 '연극계의 미투'와 2021년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연극의 '세계'도 많이 달라졌다. 블랙리스트와 미투 그리고 코로나까지 연극은 다른 예술 장르에 비해 사회 문제에 앞장서서 연대하고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해온 것 같다. '연극'이 보여주는 어떤 사회적 무브먼트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연극을 해온 사람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연극계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이른바 '형(님)' 문화가 짙다. 혹은 소위 '말 잘하는 오빠'들이 주도하기도 했다. 그런데 연극계 미투 이후 이전과는 분명 다른 흐름이 생겼다. 서로의 이야기를 차근히 기다리고 귀 기울여 듣는 시간의 경험이 그것이었다.

한번은 (미투 관련한 모임에서) 이야기가 길어지자 누군가 논의를 빠르게 정리하려 했었는데,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모인 사람들의 흐름을 찬찬히 따라가 보자는 의견들을 서로 나누게 됐다. 미투 상황에선 논의의 추진력보다는 함께 있는 사람들이 시간을 충분히 갖고 서로 이야기를 기다리고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날 '성폭력 반대 연극인 행동'이라는 모임이 생겼다.

연극은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의 소통 방식을 알아가고 의견 나누고 조율하고 협력하고 협업하는 것이기에 연극 작업을 통해 훈련된 것이 힘을 발휘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미투 운동에서 추진력과 효율성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었고 그에 대한 감각도 바꿔주었다.

신중하게 그런 과정을 지나온 존경스러운 동료들이 많이 있었다. 미투 이후, 끈끈하게 단결하는 '우리'가 아니라, 느슨하게 연대하고 서로에게 적당한 거리의 긴장을 유지하는 '동료'로서 서로의 곁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 서로 거리를 두는 태도라든지, 아니면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해야 하는 과정이 쉽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저항하는 대상이 나와 또는 나의 주변 인간관계와 밀접하게 연결된 사람이라면 더더욱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투 때 온몸이 세포 단위로 쪼개지고 재조합되는 과정이 있었다. 물리적인 통증과 함께 내가 찢어지고 해체되는 듯하다고 이야기했을 때 그 감각을 공감하는 동료들이 많았다. 아팠지만 함께 있음을 누렸다.

나는 배우로 연극계에 진입하자마자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 이후 (소위) '오빠', '언니', '선배님'이 있는 세계에 들어가지 않았다. 인맥으로 연결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거의 없었고 이후엔 학교에서 만난 또래의 동료들과 연극 작업을 했다.

그래서였는지 미투 당시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동력이 있었다. 많은 이들이 수많은 층위의 피해와 가해의 교차 속에서 고통스러워했다. 고통은 깊었지만, 그 인식은 지금의 크고 작은 변화들을 만들어내는 동력이라고 생각한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2005년 연출로 다시 대학로에 데뷔했는데 연출을 하면서 새삼스레 내가 폭력으로 인지하지 못했던 가해 행위들, 소위 '연출의 카리스마'라고 곡해된 폭력 행위들을 다시 인식하게 됐다. 내가 나를 피해자로만 인식해왔던 오랜 시간 위에 가해자로서의 인식이 두껍게 겹쳐졌다."

자신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연극  
 

이래은 연출가 “코로나19 시대, 비대면 공연의 공허함...” ⓒ 유성호

 
- 스스로를 가해자임과 동시에 피해자로 인식했다는 지점이 인상 깊다.

"2018년 1월 서지현 검사의 미투 선언 이후 연극인들의 미투 선언이 폭발하던 때, 나 또한 미투의 글을 쓰고 있었다. 글을 고쳐 쓰고 또 쓰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나는 피해자이기만 한가'라는 의문이. 나는 지금 연출자이고 선생이고 선배이고 기성세대인데, '이런 내가 현재 피해자이기만 한가?' 하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지금도 여전히 내게 해야 하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연극을 하면서 작업을 멈춰야만 할 때가 몇 번 있었다. 중간중간 일이 끊겨있었고 그렇게 떠나있다가 돌아올 때마다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졌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존중과 예의의 강도가 높아진 느낌이랄까. 무엇이 나에 대한 태도를 다르게 만드는 걸까 알고 싶어졌다. 어쩌면 권위라는 것은 나이나 역할 등 여러 조건에 의해 주어지는 것일 텐데, 내가 능력이 있어서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라고 착각하기 쉬운 것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지속적으로 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변화를 인지할 수 있었고, 나에 대해 스스로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더불어 미투 이후, 내가 그때까지 붙들어왔던 기준들을 다 무너트리고 동료들과 하나씩 다시 쌓는 시간을 갖게 됐는데, 세상은 변하고 있고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그 속에서 나는 지금 어떠하며 어디를 향해 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는 그 순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때 배웠다."

- 연극은 '지금', '여기'서 발화되는 예술이자, 공연을 여러 번 하더라도 애초에 반복적 재현이란 불가능한 것 같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연극 또한 현장에서 관객과 만나는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고민이 들었던 점은 무엇이 있었나?

"작년 가을에 <어디로 갈지 모르는>이라는 공연을 준비했다. 정말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고, 공연을 하지 못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공연의 결론을 떠나 지금, 공연을 '만들고 있다'라는 감각에 충실했다. 또 세월호 참사 이후에 달라진 안전에 대한 감각에 더해져 극장을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준비와 실천을 동료들과 함께했다.

미투와 코로나 사태를 지나며 극장 안전뿐만이 아니라 (극장에 물리적, 심리적 장벽을 없애기 위한 운동의) 배리어프리(barrier-free)도 공연의 기본 감각이 되었다. 공연에서 트라우마를 유발하거나 자극할 수 있는 요소에 대해 안내를 하는 트리거 워닝(Trigger warning)에 대한 인식도 이어졌고 이런 변화들로 인해 공연에 대한 다른 세계가 열렸다고 생각한다."

- 예술가들은 한 번쯤, '이 이야기만은 꼭 해야지만 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수 있다'라고 생각되는 지점들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이 형식적인 부분이든, 내용적인 부분이든 이래은 연출의 창작 활동의 여정에서 반드시 '이것만은 했어야 했다'는 작품 또는 창작 과정이 있었다면 궁금하다.

"지난해 초에 초연했던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한다>라는 공연이 나에게 그런 작품이었다. 여자고등학교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10대의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나 역시 여자고등학교라는 공간을 살아온 수많은 사람처럼 그 안에 감춰져 있는 수많은 이면을 목도했고, 이에 대한 질문들을 계속 가져왔다.

미투와 스쿨미투를 지나오며 이 이야기를 꼭 꺼내서 풀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불편하거나 나쁜 기억들을 없던 것처럼 지우려 하거나 직시하지 않았던 내 태도가 미투라는 현실의 배경과 기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냥 지나치려 했지만 마음 속에 응어리져있는 기억, 오래도록 머리 속에 엉켜있는 이미지들을 해체해서 다시 보고 싶었다. 그런 사건들이 가장 많고 강렬했던 내 10대의 시간을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이런 이야기들을 동료들과 나누자 많은 이들이 깊이 공감해주어서 힘을 얻었다.

연극의 언어를 통해 여자고등학교라는 공간 속에서 성(性)을 둘러싸고 뭉뚱그려져 뒤엉켜 있는 호기심, 죄책감, 사랑, 성폭력, 피해와 가해 등을 하나하나 해체하고 다시 바라보고자 했다. 올해 9월에 재공연을 할 예정이다. 재공연에서는 팬데믹 이후 달라진 감각들을 공연 뿐만 아니라 관객과 연극을 둘러싼 환경에 담아내보려 시도하고 있다."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공연모습 ⓒ 빅태양

 
돌봄 노동과 예술

- 결혼, 임신, 출산을 하면서 직접 쓴 작품 <서른, 엄마>라는 연극 작품(2009년작)을 봤던 기억이 난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여성주의적 관점이 사회적으로 공론화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공연은 여성으로서 처음 겪는 '현실'의 임신과 출산, 돌봄에 대해 과감하게 이야기했던 것 같다.

"아이를 키우고 나니까 모성이라는 것이 사회에서 철저히 설계된 시스템이라는 생각을 했다. '모성'이라는 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겠지만 '모성'이란 이름으로 돌봄노동을 사회적으로 여성들에게 강조하는 상황은 예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오롯한 인간을 사회적 역할 안에 가두고 돌봄노동의 가치를 폄하하는 악순환이라고 생각한다. 돌봄노동을 하는 약육자가 된다는 게 개인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연극을 통해 묻고 찾고 싶었다. <서른, 엄마>가 과감하게 얘기했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초고보다는 둥글둥글하게 다듬어진 공연이었다. 초고 제목은 <죽어라 엄마>였다.

결혼-임신-출산-육아-노인돌봄 등을 경험하면서 나는 꽤나 실패하고 도망쳤다. 내 나약함 속에서 고통스러웠지만 그렇게 잠시 멀리 떨어져 나의 어떤 상황들을 다르게 감각할 수 있었고 그렇게 새로이 만난 세계를 자연스럽게 작품으로 담게 되었다."

- 많은 여성 예술가들은 결혼과 출산으로 이어지는 돌봄 생활과 창작활동 사이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만난다. 사회는 저출생 시대가 위험하다고 이야기는 하지만 실제로 돌봄노동이 필요한 많은 예술가들이 현실에서 겪는 문제는 '각자의 몫'으로 치부되기 마련이다. 이래은 연출가는 오랫동안 창작 활동을 해오면서 이런 문제를 어떻게 헤쳐왔는지 궁금하다.

"헤쳐 왔다고 말하기가 어려운 지점이 있다. 내가 뭔가 특별하게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운이 좋았다라고 밖에 말할 수가 없다. 나는 일터로 돌아왔으니까. (곰곰이 생각하다) 내 상황을 글로 쓰고 연극으로 만들려 한 것이 좀 다른 점이려나. 그래도 운이 좋아서 작품이 선정되어 활동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노인돌봄을 하고 있는데, 많은 내 나이대의 사람들, 특히 비혼여성들이 이런 상황에 놓이는 걸로 알고 있다.

얼마 전, <아빠의 아빠가 됐다>라는 책을 읽었다. 어느 날, 아버지의 보호자로서 온전히 혼자 돌봄노동을 해야 하는 이의 목소리였다. 나는 돌봄노동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다. 이 또한 개인이 운에 따라 달라지는 상황이다. 돌봄노동 자체의 의미가 사회 전체에서 바뀌어야 불행과 고통이 줄 텐데 어떻게 하면 그게 가능해질까. 질문을 나눌 수 있는 공연을 계속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좋은 운의 몫은 그런 얘기를 연극으로 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서른, 엄마> 공연 포스터 ⓒ 장호

  

이래은 연출가는 “연극이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시대에 정말 중요한 예술이다는 것을 느꼈다”며 “직접 만나서 같은 공간 안에서 몸 감각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됐다”고 말했다. ⓒ 유성호

  
- 마지막으로 앞으로 어떤 동료 또는 연출가이고 싶나?

"솔직히 모르겠다. (한참을 생각한다) 일단 경계하는 건 능력주의다. 뛰어난 능력이 주는 자원에 풍성함과 높은 효율성은 있지만 그 효율성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 하는 질문을 자꾸 하게 된다. 그리고 능력적 기준을 바탕으로 누군가를 지우거나, 일방성이나 폭력을 정당화하기 쉽지 않은가. 내가 경험하고 안다고 해서 믿지 않는 사람, 확신하지 않는 사람, 그런 동료이자 연출가이고 싶다."

누구나 생을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다른 세계를 맞이할 때가 있다. 우리는 같은 나라, 같은 도시, 같은 시간에 살고 있을지언정 같은 세계에 살고 있지 않다. 나는 사람마다 가늠할 수 없는 다른 세계가 있다고 믿는다.

이래은 연출가와 이야기하면서 나는 또 다른 세계를 마주할 수 있었다. 밤이 새도록 그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졌다. 미투와 코로나를 겪은 후에도, 앞으로 더, 계속, '연극이 하고 싶어졌다'는 그의 세계를 관객으로서 만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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