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7.13 19:30최종 업데이트 21.07.13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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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 또는 지옥섬으로 불리기도 한 하시마(端島). 미쓰비시가 운영한 이 해저탄광의 일부도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되었지만, 일본은 여기서 이루어진 강제동원과 희생을 지워버렸다. ⓒ 위키백과

 
군함도 등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당시, 일본이 했던 약속이 있다. 그런데 그 약속을 아직도 이행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가 12일 홈페이지를 통해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일본은 잔혹한 노예노동이 자행된 군함도 등을 '메이지 시대 산업혁명 유산'이란 명목으로 세계유산으로 등재해 달라고 신청했다. 유네스코는 2015년 7월 5일 등재 결정을 내리면서 '한국인 노동자의 강제노역 같은 역사적 사실을 알릴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 조건을 받아들였으므로 역사적 사실에 관한 안내판 등을 설치해야 하는데도 일본은 6년 넘게 약속을 불이행하고 있다. 그래서 유네스코가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일본은 애당초 약속을 지킬 마음이 있었던 걸까?

군함도를 대하는 일본의 태도

이 의문은 군함도 등을 대하는 일본의 태도에서 기인하다. 일본 정부를 대변하는 내각관방 홈페이지(www.cas.go.jp)에 실린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 제철·제강·조선·석탄업의 개요(세계문화유산)[明治日本の産業革命遺産製鉄・製鋼、造船、石炭産業の概要(世界文化遺産)]' 같은 문서에도 음미해볼 대목이 있다.

이 문서는 일본명 하시마탄광(端島炭坑)인 '군함도 해저탄광'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메이지시대 중기 이래로 채탄 사업이 본격적으로 개시되어 1890년부터는 미쓰비시(三菱)의 소유가 되고"라고 한 뒤 "고급 품질의 탄을 생산하고 국내외의 석탄 수요를 충당했다"고 설명한다.

그런 다음, 군함도의 건축물 구조와 관련해 "현저한 보편적 가치를 반영하는 요소는 아니지만, 문화재의 가치를 지닌다(顕著な普遍的価値を反映する要素ではないが、文化財としての価値を持つ)"고 자평한다.
  
이런 설명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일본은 군함도에서 '고품질의 석탄 생산'이 이뤄져 국내외로 수출됐으며 이곳 건축물이 '문화재적 가치'를 갖는다고 자부하고 있다. '고강도의 노예노동 착취'가 일어났으며 전쟁범죄를 증명하는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동아시아인들의 보편적 정서에 미달하는 인식이다. 군함도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일본이 거기서 일어난 범죄를 반성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전쟁범죄 사실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사과·배상에 비하면 분명히 가벼운 일이다. 무엇보다, 일본 자신이 세계유산 등재의 조건으로 그렇게 하기로 약속했다. 그래 놓고도 약속을 외면하는 것은 일본의 국격을 의심케 만드는 일이다.

일본의 재무장과 미쓰비시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동아시아인들은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나무란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과거만의 문제인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침략전쟁 당시 일본인들이 했던 일들이 정말로 과거지사인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일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위대로 명칭만 바뀌었을 뿐 군국주의 시절보다 강하면 강했지 결코 약하지 않은 군대를 앞세워 일본은 군사대국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런 모습은 그들이 또다시 전쟁범죄를 되풀이하지 않을까 우려하게 만든다.

일본 군대만 그런 것이 아니다. 군사대국화를 통해 큰돈을 버는 일본 기업도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군함도 해저탄광을 운영한 미쓰비시 역시 그때나 지금이나 일본 군수산업을 이끌고 있다.

메이지 일왕(재위 1867~1912년) 때 설립된 미쓰비시는 석탄과 동(銅)의 거래에 주력하다가 업종을 다변화한 뒤 1937년 중일전쟁 이후로는 군수산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2011년에 <경영사학> 제26집 제3호에 실린 신장철 숭실대 교수의 논문 '일본 종합상사의 생성과 발전에 관한 연구-미쓰비시상사의 전후 해체와 재편성 사례를 중심으로'는 미쓰비시가 "중일전쟁이 계기가 된 군수공업 부문을 배경으로 성장"했다고 한 뒤 이렇게 설명한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되자 국가총동원법이 시행되어 전시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가 확립되게 되었는데, 이 시기에 종합상사들은 군부의 명령에 의해 점령지에서의 군수품을 조달하고 자원 개발 등에 종사하게 되었다. 미쓰비시상사도 이 시기에 군부 또는 정부와 협조하여 어용 및 군수물자의 조달과 수송 등 전쟁 수행에 필요한 다양한 업무를 담당하여 급속도로 사업 규모가 팽창하였다.
 
군수산업 참여를 통한 미쓰비시의 전쟁범죄 가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 중 하나가 1941년 12월 8일에 있었다. 태평양전쟁의 발발을 알리는 진주만 기습이 감행된 이날, 가미카제 특공대를 하와이 진주만까지 실어다준 것은 제로센(零戰, 레이센) 전투기였다. 자살 공격에 이용된 이 전투기를 생산한 주체가 바로 미쓰비시중공업이다.

전범기업이라는 이유로 1947년 해체됐던 미쓰비시그룹은 미국의 대일정책 변화 덕분에 1952년부터 되살아나 예전의 명성과 위상을 회복한 뒤 일본 군사대국화에 적극 가담했다. 이들은 세계적 탈냉전으로 긴장이 완화되던 1980년대 후반에도 군사대국화에 크게 기여했다.

1991년 1월 7일 발행된 <시사저널> '일본 군수산업 욱일승천'은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또 하나의 주역'으로 지목되어 패전 후 미국에 의해 공중분해 되었던 일본의 군수산업이 자위대의 전력 증강에 따라 급성장을 거듭하고 있다"며 이렇게 보도했다.
 
최근 <아사히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일본 최대의 방위산업체는 미쓰비시중공업으로, 89년 방위청과의 병기조달 계약액은 약 1조 9천억 원이었다. <아사히신문>은 또 이 회사의 군수산업 부문인 항공기·특수차량 사업본부의 89년 매출액은 88년보다 25.5% 증가한 2조원으로, 89년까지 군수산업 매출 최고액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10년 전에 비해 2.8배 늘어난 것이며, 군수 부문이 미쓰비시중공업 전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9.7%에서 17.4%로 늘어났다.
 
기사 속의 '1조 9천억'은 1989년 당시의 액수다. 서울 시내에서 비숙련 노동자의 초임이 10만원대 초반이었던 시절의 '1조 9천억'이다. 군수무기를 통해 미쓰비시가 큰돈을 벌었음을 알 수 있다. 1945년 이전에나 이후에나 미쓰비시가 돈을 버는 방법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인근 해상에서 군함도를 바라본 모습. 2016.7.3 ⓒ 연합뉴스

 
전쟁범죄는 과거완료형인가

일본 재무장에 대한 미쓰비시의 기여도를 보여주는 기사는 이 외에도 많다. 2017년 6월에는 항공자위대에 배치될 최신예 F-35 스텔스 전투기가 미쓰비시중공업 공장에서 최초 공개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금년 6월 20일에는 말레이시아가 중국을 견제할 목적으로 진행하는 방공 레이더 입찰에 미쓰비시전기가 참여한다는 <산케이신문> 보도가 있었다. 1921년에 미쓰비시그룹 계열사로 출범한 미쓰비시전기가 남중국해의 대중국 견제에 의욕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남중국해는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한 인도·태평양전략을 앞세워 중국과 패권경쟁을 벌이는 무대다. 그런 남중국해가 자위대는 물론이고 미쓰비시와도 관련된다는 것은 지금이 1945년 이전과 무엇이 다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군수산업 자체를 문제 삼기는 힘들다. 하지만 미쓰비시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한국과 동아시아에 시련과 상처를 준 미쓰비시가 침략전쟁 때 했던 일을 지금도 여전히 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섬뜩하게 하고도 남을 만하다.

미쓰비시는 조금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 그럴 생각이 있었다면, 그런 반성의 마음을 군함도 세계유산 현장에 어떻게든 남기려 했을 것이다. 또 2018년 11월 29일 한국 대법원이 선고한 미쓰비시 여자근로정신대 배상 판결 역시 죄스러운 마음으로 승복했을 것이다. 미쓰비시의 이런 모습은 일본의 전쟁범죄가 과거완료형으로 끝난 게 맞는지를 자꾸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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