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7.14 07:29최종 업데이트 21.07.14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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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말을 배울 때 "세상에서 제일 예쁜 건 뭘까?" 물으니 "꽃"이란다. 엄마가 불러준 노래 가사 중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으면 기차……." 이 노랫말처럼 A는 B다 라고 정의했다면 당연히 예쁜 건 꽃이라 답했을 텐데, 그 전래동요 가사에 꽃은 없다. 그렇다면 아이 눈에도 꽃이 예쁘게 보였다는 것일까?
 

꽃받침 아래에서 올려다 본 꽃의 뒷태 꽃의 정면에 익숙한 시선을 바꿔 보았다. 이리보나 저리보나 꽃의 구조와 균형이 아름답다. ⓒ 최수경

 
'예쁘다'라는 건 경험을 통해 세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젊은이에게 '예쁘다'는 한껏 치장한 모습일지 모르나, 나이 든 사람이 볼 때 젊은이들은 꾸미지 않아도 예쁘다. 건강한 모습 자체가 깜찍하고 귀엽다는 의미의 표현이다. 아마 이제 갓 말을 배우는 아이에게 엄마의 경험이 투영되었나 보다.    
 

들꽃 선물 보면 즐겁고 항상 가까이 하고픈 꽃. 비싼 값을 지불하지 않아도 흔한 들꽃으로도 마음을 전할 수 있다. ⓒ 최수경

 
나는 꽃이 참 좋다. 아름답기 때문이다. 꽃이 갖는 구조와 색의 조화와 균형, 기분 좋아지는 추상적인 의미화 과정, 오감을 통한 감성, 그리고 생태적 깨우침, 치유하는 정서적 기능들이 꽃을 아름답다 여기게 한다.
 

나누는 마음, 나누는 꽃 누가 이렇게 예쁜 마음을 가졌을까. 가는 가을을 같이 느끼자고 국화 한다발이 경비실 입구에 앉아있다. ⓒ 최수경

  

봉숭아꽃이 마지막을 향해 갈 때 재생과 소멸의 과정, 새로운 시작인 열매로 변화의 과정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꽃. ⓒ 최수경

 
또한 꽃을 보면 즐겁다. 동양에서 미의 경지에 도달한다는 것은 선에 도달함, 더 넓게는 도에 도달함을 의미한다. 꽃을 통한 심미의 경지가 이 정도인데 어찌 즐겁지 않겠나. 성인이 된 아이는 지금도 꽃을 좋아한다. 꽃이 여성적 이미지를 갖고 있음에도 아들은 꽃 한 송이를 집안 꽃병에 꽂는 것을 즐긴다.
  

우렁각시처럼 집 안에 꽃 한 송이 갖다놓는 아들 동네 팜마트에서 파 한단 사듯, 꽃 한 단 사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 최수경

 
내가 꽃을 좋아하는 이유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 또한 꽃을 아름다움의 보편적 상징이라 생각하고, 꽃의 아름다움에 매료될 것이다. 비단 꽃이 아니어도 녹색식물은 인간의 자율신경계에 안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인간의 스트레스를 감소시킨다. 귀를 통해 음악치료를 하고, 눈으로 보면서 미술치료 하듯, 꽃과 식물을 가꾸는 일은 보고, 향기 맡고, 만지고, 생각하며 모든 감각을 자극해 치료적 효과를 가져온다.
 

접시꽃 동네 어귀 호박꽃 처럼 친근한 접시꽃이 객을 반기는 듯 하다 ⓒ 최수경

 
어릴 때 여름날 흔히 보던 채송화, 봉숭아, 맨드라미 보기가 요즘은 어려워졌다. 학교 운동장을 둘러싸던 화단의 칸나와 나리꽃, 접시꽃, 가을날 신작로의 키 큰 코스모스도 사라졌다. 집 뜰 대신 아파트 중정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학교 화단은 직원들 주차장에 자리를 내주었다.
 

돌담 아래 채송화 채송화를 자세히 보기위해서는 엉거주춤 앉아 자세를 낮춰야 한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그런 여유가 있을까. ⓒ 최수경

 
나는 어릴 적, 채송화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이 꽃 저 꽃을 오가는 꿀벌의 날개를 잠자리 날개 잡듯 잡다가 벌에 쏘여봤다. 단맛이 고플 땐 붉은 깨꽃 단맛이 나는 긴 통 모양의 꽃부리를 죄다 잡아 빼내 빨아먹고 놀았다.
 

울 밑에 선 봉숭아 첫 눈이 올 때까지 손톱 끝 봉숭아 물이 남아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질거라는 봉숭아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재미있다 ⓒ 최수경

 
봉숭아꽃을 따서 명반 넣고 돌멩이로 찧어 손톱을 물들이는 것은 일년지대사였고, 가을이면 씨 받아오라는 선생님의 숙제를 하느라 맨드라미, 코스모스, 채송화 씨앗 등을 열심히 비벼댔다. 어쩌면 그 과정이 식물의 생애사를 경험하며 생태적 감수성을 갖게 된 자발적 자연체험이 아니었나 싶다.   
 

아산 외암마을 골목길 민속마을에 가야 맛볼 수 있는 정겨운 풍경들 ⓒ 최수경

 
울 엄마는 봄이면 산에서 진달래를 꺾어와 정종 병에 꽂아놓으셨다. 여름이면 응당 화단과 대문 옆에 채송화 봉숭아 나리꽃이 있었다. 울긋불긋한 조화가 담긴 꽃병은 흑백텔레비전 위 맨 한가운데 사시사철 자리하고 있었다.
 

친정엄마가 물려주신 50년 된 화병 엄마 말씀으로는 시집와 먹고살기 어려울 때, 장에 나가 장만한 첫 사치품이라고 하셨다. 흑백테레비전 위에 있던 꽃병은 딸인 내가 물려받아 이 꽃 저 꽃 꽂으며 사랑을 주는 보물이다. ⓒ 최수경

    
나중 안 일이지만, 그것은 일종의 붉은 색으로 잡귀를 막는다는 액막이 행위였다. 어릴 땐 1년 내내 꽃을 보았다. 막새지붕과 담장에 그려진 꽃까지 합해, 사람은 으레 꽃에 둘러싸여 사는 줄 알았다.
 

진달래가 피면 엄마네 집에 또 진달래 한 가지 꺾여 있겠지? 진달래의 붉은 색이 일년 액운을 쫓아내는 것이었음을 다 커서 알았다. ⓒ 최수경

   
지금도 시골길 마을 어귀, 골목길 담장 아래, 콘크리트로 발라져 빗물 하나 들 틈 없는 골목에서 스티로폼 박스나 화분 가득히 꽃을 심고 가꾸는 모습을 본다. 한 뼘도 놀리지 않을 만큼 빽빽하게 작물을 심은 밭둑이라도 가장자리엔 과꽃을 심어 꽃을 보도록 한 어르신들의 심성을 엿볼 수 있다. 삶이 바쁘고 치열하더라도 미적 욕구를 충족하고 자연과 함께 하려는 여유를 느낄 수 있다.
 

골목길을 장식하는 화분들 콘크리트로 메워진 골목길에 활력을 주는 듯한 화분들 ⓒ 최수경

  

마을 집 화단 콘크리트 마당일지라도 한뼘 꽃화단을 가꾼 농심 ⓒ 최수경

 
코로나시대, 꽃이 주는 위로

실제 우리민족은 삼국시대부터 꽃을 가꾸며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 신라 문무왕 14년(674)에는 궁 안에 연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고 진기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하는 등 왕실을 중심으로 하는 화훼문화가 존재했다. 조선시대 신진사대부는 유교에서 지향하는 이상적 인간상인 군자의 모습을 꽃 가꾸기에서 찾고 자기 수양의 대상으로 삼고자 했다. 그들의 문집에 군자의 모습을 닮은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화분에 심고 완상한 기록이 있다.
 

꽃과 채소가 있는 시골 어르신의 마당 먹을거리 거둘 땅 한평도 중한데, 꽃 볼 땅 한평도 중하다. ⓒ 최수경

   
동양적 자연관에서 꽃을 보고 마음의 수양을 쌓는다는 것에는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된다는 사유가 깔려 있다. 아름다운 곡을 통해 마음의 평정을 이루고 올바른 성정을 회복하듯, 꽃을 가꾸는 것도 자연과 삶의 이치를 연관시켜 사유하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한다.
 

울산 태화강의 대나무숲 군락을 이룰 수록 위용이 커지는 대숲. ⓒ 최수경

 
서양의 경우 전통 귀족사회에서 주목받는 그림은 역사화나 인물화였다. 꽃이나 과일처럼 금방 시들거나 상해버리는 정물화는 대우가 낮았다. 유독 네덜란드에서만 정물화를 선호했는데, 그 중에서도 꽃 정물화는 진귀한 꽃의 대용물로 수집의 대상이 되었다. 정물화(still-life)라는 용어가 네덜란드어(stilleven)에서 유래했을 정도로 정물화는 시민들에게 부를 과시하고 집안을 꾸미는 적절한 장르였다.
  

봄꽃 축제의 대명사 튤립 튤립의 나라 네덜란드를 연상케 하는 풍경 ⓒ 최수경

  
그러나 당시의 꽃 정물화는 사실적인 묘사는 뛰어났지만 계절과 꽃들의 비례가 맞지 않았다. 이후 점차 꽃의 탄생부터 절정, 마지막으로 향하는 전 과정을 담으면서, 꽃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전하기 시작했다.

꽃은 변화의 과정이 명확하다. 온갖 색깔과 형태로 재생과 소멸, 새로운 시작인 열매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꽃이 갖는 화려함, 변화무쌍함, 풍요로움, 신성함, 고귀함, 순결함 등은 인간의 갈망을 닮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삶의 의미를 표현하기에 꽃만한 것이 없다. 꽃은 종류에 따라 서로 다른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지역과 문화에 따라 의미를 달리 가지면서 예술작품의 중요한 소재가 되기도 한다.
 

이탈리아 돌로미티 초원의 꽃 유럽의 야생화 가득한 초원은 음악과 미술, 영화 등 예술작품의 배경이자 소제가 되었다. ⓒ 최수경

  

실제 꽃과 닮은 먹는 꽃 조화 뿐만 아니라 먹는 꽃 장식도 등장했다. 보고 시드는 것도 아까운데 먹기는 더 아깝다. ⓒ 최수경

  

마른 꽃으로 장식한 벽(보령 개화예술공원) 꽃이 수명을 다해도 마른 꽃으로 가치를 새롭게 해 즐거움을 준다. ⓒ 최수경

 
그러나 아파트 생활권이 된 지금은 어떤가. 화단에는 목본류를 중심으로 한 조경이 대부분이다. 철쭉과 영산홍을 시작으로 벚꽃, 라일락, 산딸나무, 조팝나무 등 흰색 꽃이 여름을 열고, 백일홍이 한여름을 지탱하다 국화류가 가을을 장식하며 겨울로 들어간다. 한번 심으면 알아서 피고지고를 반복하는 나무인 지라, 굳이 한해살이 꽃모종을 심는데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다. 한해살이 꽃을 심었다가 가뭄이라도 들면 바짝 말라버려 본전도 못 찾을 수 있다.

오히려 노란색 금계국, 붉은색 꽃양귀, 분홍색 핑크뮬리처럼 대규모 경관에 익숙해진 심미안을 만족시키기엔, 채송화 봉숭아가 낯을 들기 민망하다. 바쁜 현대인들이 애써 쭈그리고 앉아 가까이 바라볼 여유가 있겠는가 말이다.  
  

하천을 도색한 꽃양귀 공주 공산성 아래 미르섬 공원의 꽃양귀 군락 ⓒ 최수경

  

유채꽃이 부르는 금강 옥천 금강 둔치를 장식한 노란 꽃밭 ⓒ 최수경

 
일상을 향유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가를 알게 된 포스트코로나 시대, 하루하루가 생존을 위한 일상으로 바뀌고 있다. 대면과 접촉이 그리워질수록, 우리의 심리적 안정과 오감각을 만족시키는 대상이자 치유의 수단으로 일상을 대신해보자. 꽃병에 꽂힌 꽃 한 송이의 위력을, 방 안에 들인 꽃 화분 하나 가꾸기가 바꾸는 일상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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