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7.09 07:28최종 업데이트 21.07.09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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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전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유튜브 링크 화면 ⓒ 유승민 페이스북

 
2022년 대통령 선거를 향해 정치권이 분주히 움직이는 가운데, 보수정당인 국민의힘에서 여성가족부(여가부)를 폐지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를 대선 공약으로 띄우려는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유승민 전 의원이 지난 6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여성가족부가 과연 따로 필요할까요?"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는 "인구의 절반이 여성이고 정부의 모든 부처가 여성 이슈와 관계가 있습니다"라며 관련 업무를 보건복지부·고용노동부·중소기업벤처부·법무부·검찰·경찰·교육부에 나눠주면 된다고 주장한다.


사실, 그의 발언은 여가부가 꼭 필요한 이유를 증명하는 역설적 주장이 될 수도 있다. 여성에 관한 업무가 여러 관청들과 관련돼 있으므로 통합적으로 수행하려면 독립된 관청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가 나올 수 있다.

인구의 절반이 여성이므로 여성에 관한 관청을 독립시킬 필요가 있겠느냐는 발언은 여성 문제에 대한 인식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과 진배없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노동자인데도 굳이 고용노동부를 설치하는 것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노동자의 권익을 보장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점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유승민 전 의원은 그처럼 문제의 본질을 비껴가는 발언을 한 뒤 "제가 대통령이 되면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습니다"라고 선언한다. 그런 다음 "타 부처 사업과 중복되는 예산은 의무복무를 마친 청년들을 위한 한국형 G.I.Bill 도입에 쓰겠습니다"라고 공약한다. 1조가 넘는 여가부 예산을 한국형 제대군인원호법 도입에 쓰겠다는 발언은 여가부 폐지 공약을 내놓은 동기 중 하나가 젊은 남성 유권자들의 표를 얻기 위한 것임을 보여준다.

같은 날 하태경 의원도 당내 모임인 '요즘것들연구소' 시즌 2 출범식에서 "여가부가 김대중 정부에서 만들어졌을 때와 다르게 문재인 정부 들어 남녀평등이나 화합 쪽으로 가기보다 오히려 젠더 갈등을 부추겨왔다"며 여가부 폐지를 주장했다.

이준석 대표 역시 같은 날 SBS에 출연해 "여성을 절대 소수자로 몰아놓고 거기에 따라 캠페인 하는 방식은 15~20년의 시행착오면 됐다"라며 "대선 후보 되실 분은 (여가부) 폐지 공약은 되도록 제대로 냈으면 좋겠다"고 발언했다. 같은 날 함께 나온 세 사람의 발언은 '여가부는 불필요하며 역량이 부족하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오른쪽)와 유승민 전 의원이 2일 오전 서울 양천구 kt체임버홀에서 열린 ‘CBS 제30·31대 재단이사장 이·취임 감사 예식’에 참석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75년 전 데자뷔

여가부의 전신인 여성부가 발족한 것은 김대중 정부 때인 2001년이다. 이 때문에, 여가부 폐지를 외치는 목소리가 비교적 근래에 나온 현상인 것처럼 인식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목소리는 상당히 오래 전부터 지속적으로 나왔다. 역사가 깊은 발언이다.

여성 업무를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부서는 대한민국정부 수립 이전인 미군정 때도 있었다. 재조선미국육군사령부군정청(미군정청)이 1946년 9월 14일 공포한 법령 제107호가 부인국 설치령이다. 이 법령 제1조는 "보건후생부 내에 부인국을 설치함"이라고 규정했다.

부녀국이라는 이름으로 출범한 이 부서는 노동·복지·보건·공직진출·참정권과 관련된 여성 업무를 수행했을 뿐 아니라 여성의 여행 안전, '부랑 부녀' 문제, 성매매 여성 문제 등도 다루었다. 유승민은 다종다양한 여성 업무를 하나의 관청에 집중시킬 필요가 있느냐는 엉뚱한 주장을 하고 있지만, 미군정청은 그런 업무들을 하나의 관청으로 통합시키는 지극히 상식적인 조치를 취했던 것이다.

부녀국은 다양한 업무를 수행했다. 그렇기 때문에 독립된 관청이 아니었다 뿐이지 지금의 여가부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그런 부녀국을 좋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이 해방 이후와 1950년대 초반에도 있었다. '그런 부서가 필요하겠느냐'라며 부녀국 무용론을 주창한 것이다. 1955년 12월 31일 자 <동아일보> 기사 '여성운동의 중간 결산: 을미년을 보내며'는 이렇게 보도했다.
 
해방 이후 국제적 추세에 의하여 행정부에 부녀국과 여자경찰 제도를 두어 뒤떨어진 여성들은 조속한 계몽을 실시하고자 하였으나, 여기(에) 대한 국가적·사회적 이해, 여성운동의 사회적 기반이 박약한 이날의 현실은 핑계가 있을 적마다 이러나는 부녀행정 무용론인 것이었다.
 
핑곗거리가 생길 때마다 고개를 들곤 했던 부녀행정 무용론, 부녀국 무용론을 배경으로 폐지 또는 축소를 추진한 것이 이승만의 자유당이다. 1954년 12월 4일 자 <동아일보> '자유당 측 시안 내용 정부기구 개혁'은 "자유당 측에서는 다음과 같은 시안을 초안"했다며 자유당의 방침을 "부녀국·원호국 병합"이라는 문장으로 요약했다.

여성계의 반발로 자유당의 시도는 무산됐다. 그렇게 부녀국은 살아남았지만, 부녀국 폐지를 향한 보수세력의 집념은 4·19 혁명으로 자유당이 붕괴된 직후에도 되살아났다. 1960년 12월 27일 자 <조선일보> '보사부 부녀국 존폐 문제에 대하여'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이때도 '불필요한 예산 낭비를 막자'는 명분으로 부녀국 폐지를 시도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독립된 관청도 아닌 일개 부서에 불과했던 부녀국을 폐지하려는 시도가 꽤 집요하고도 지속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때도 부녀국은 살아남았다.

일본제국주의가 몰락한 '해방 이후'와 이승만 정권이 몰락한 '4월혁명 이후'에 부녀국 폐지 움직임이 두드러진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민중의 역량이 급상승할 때 함께 나타나는 여성 권익 신장을 견제하는 움직임이 제1공화국 및 제2공화국 때의 부녀국 폐지 운동에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여성혐오'라는 용어 속에는 여성에 대한 증오뿐 아니라 편견과 무지도 함께 담겨 있다. 부녀국 폐지 운동에서 표출된 그 같은 정서들은 남성의 이해관계만 반영하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한반도 냉전질서를 수호하려는 기득권세력의 이해관계도 동시에 반영하는 것이었다.

냉전이 심화시킨 여성혐오

2016년에 <역사문제 연구> 제35호에 실린 허윤 이화여대 초빙교수의 논문 '냉전 아시아적 질서와 1950년대 한국의 여성혐오'는 "해방과 군정, 한국전쟁은 한반도를 미국과 소련을 위시한 냉전의 격전지로 만들었으며, 한국 사회는 내부 냉전을 겪어왔다"며 이렇게 말한다.
 
한국전쟁과 정전협정, 급속하게 진행된 미국화와 북한과의 관계에서 생겨난 반공주의 등 냉전체제가 만들어내는 질서는 사회를 통치하는 손쉬운 방법으로 여성혐오를 선택한다.
 
냉전세력이 여성혐오를 조장한 방법 중 하나는 냉전체제의 선봉에 서는 '군복 입은 남성'을 이상화하는 것이었다. '공산세력과의 대결에 나서는 남성'을 우상화하는 이런 분위기로 인해 여성의 이미지는 한층 부정적으로 왜곡될 수밖에 없었다.

위 논문은 "1950년대 국가는 군인의 초남성성을 호명한다"며 "이승만 정권이 배태한 군복의 남성성은 해방 이후부터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유지된다"고 한 뒤 <남성성과 젠더>에 수록된 여성학 학자 정희진의 글을 언급하면서 "정희진은 친미반공 군부독재 세력이 주도하는 호전적 남성성이 전후(戰後)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다고 말한다"고 소개한다.

현대 한국의 여성 혐오에는 이처럼 냉전적 이해관계도 상당 부분 깔려 있다. 공산세력과의 투쟁에 앞장서는 호전적 남성의 이미지를 국가권력이 앞장서서 확산시키다 보니, 여성의 이미지는 한층 왜소하고 부정적으로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속에서 여성운동이 전개됐으므로, 해방 이후의 여성 운동은 크게 보면 한반도 냉전에 대항하는 평화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민주화운동·노동운동·농민운동·통일운동 등과 마찬가지로 여성운동 역시 냉전을 해체하고 신질서를 수립하기 위한 운동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혐오를 극복하는 것은 여성의 권익을 신장시키는 일일 뿐 아니라 한반도 냉전을 완전히 청산하는 일이다.

여성가족부를 해체하자는 주장은 예전에도 있었다. 여성부일 때도 있었다. 부녀국일 때도 마찬가지다. 보수 냉전세력이 여성 부서의 폐지를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것은 이런 시도의 궁극적 목적이 한반도 냉전을 수호하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데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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