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6.30 13:29최종 업데이트 21.06.30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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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9일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열린 대선 출마 기자회견에서 활짝 웃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25일 법무부의 중간 간부 인사발령 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가까운 후배 검사들에게 위로 전화를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대권 행보를 목전에 둔 전 검찰총장이 현직 검사에게 흔들리지 말고 원칙대로 하라는 당부를 뛰어넘어 '자리를 지켜라, 다음 기회에 보자'라고 언급까지 했다니 적절성 여부가 충분히 도마에 오를 만하다.

과거 압수수색 검사와 통화한 조국 전 장관을 두고 탄핵 사유라고까지 말했던 언론과 야당들. 같은 잣대라면 대선을 염두에 둔 전 검찰총장의 '자리를 지켜라'라는 현직 검사들과의 통화가 단순한 위로로 치부할 수 있는 문제인지 따져봐야 하는 게 상식이고 공정에 부합한다.
  
더구나 윤 전 총장과 관련하여 많은 사건이 재판 진행 중이거나 수사 중이다.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만 하더라도 코바나컨텐츠를 둘러싼 뇌물성 협찬 의혹,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 뇌물수수 의혹 등 세 건이며 아내와 장모, 본인까지 의심받고 있다.


누구한테 10원 한 장 피해준 적 없다는 항변(29일 기자회견에서 윤 전 총장은 이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으로 뭉갤 의혹이 아니며, 위로하려고 한 통화라고 의심을 거둘 문제도 아니다.

조국 전 장관이 압수수색 검사와 통화한 이유가 아내의 건강을 염려한 인륜의 문제라 주장했을 때 서울중앙지검은 "심히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라고 했다. 대권을 염두에 두고 있는 전직 검찰총장과 검사와의 통화. 부적절함이 조국 전 장관의 전화 사건보다 적다 할 수 없다.

이율배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9일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출마 선언을 마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29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정권이 권력을 사유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집권을 연장하여 국민을 약탈하려 하는 걸 그대로 볼 수 없다고 했다. 또 청년들과 산업화·민주화 세대, 세금을 내며 살아가는 국민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 역동과 혁신이 넘치는 따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 법치와 공정, 상식의 가치를 실현하겠다고 했다.

잘 차려진 언어의 성찬이었다. 지지자들은 환호했고 언론들은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했다. 그러나 출마선언 후 기자회견 자리에서 윤 전 총장이 말한 것처럼 "국민의 검찰이 돼야 하기 때문에 검찰의 최고 지휘자인 총장을 지낸 사람이 선출직에 나서지 않는 관행"을 깨버린 이유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대선 출마 선언문에서 경제 정책 비판은 혹독했다. "경제 상식을 무시한 소득주도성장, 시장과 싸우는 주택정책, 매표에 가까운 포퓰리즘 정책"으로 청년·자영업자·중소기업인·저임금 근로자가 고통받는다고 성토했다. 지적은 일리가 있다. 청년·자영업자·중소기업인·저임금 근로자들의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박탈감은 상상 그 이상이다.

그러나 이게 전부 문재인 탓이라고? 가장 큰 이유는 윤 전 총장과 정치철학이 일치한다는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새누리당 등 보수정권이 저임금 정책과 손쉬운 해고 노동 정책을 썼기 때문이다. 또 보수 정권이 빚 내서 집 사라는 부동산 정책을 펼쳤고 이것이 오랫동안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 과거 잘못된 정책과 결별하지 못한 우유부단함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국민의 주머니를 채워 성장을 견인하고, 임대업자와 부동산 재벌의 욕심을 억제해 집값을 안정시킬 정책이 아니라면 어떤 정책을 쓰겠다는 건가. 또다시 수출을 위해, 대기업을 위해 환율을 조작하고 은행 문턱을 낮추어 가계 부채를 더 늘리자는 건지? 출마 선언 어디에도 대권 주자로서 성장과 분배, 복지의 혜안이 보이지 않는다.

윤 전 총장은 극심한 양극화와 서민들의 빈곤을 두고 남 말하듯 할 처지도 아니다. 산업재해에 솜방망이 처벌을 주문하고, 노동자와 생계형 범죄자에게 상식 밖의 처벌을 재판부에 요구했던 사례는 윤석열 검찰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저임금과 손쉬운 해고와 불평등을 정치가 입법으로 조장했다면, 그걸 사법의 힘으로 지켜낸 건 검찰이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롭게'라는 문재인 정부의 캐치프레이즈는 빛을 바랬다. 조국 전 장관 자녀의 입시비리 혐의는 법의 심판에 앞서 공정과 정의를 의심하게 한 사건이었다. LH 직원들의 내부 정보를 이용한 땅투기는 기회의 불평등과 과정의 불공정이 불의한 결과를 낳았다는 걸 여실히 보여줬다. 문재인 정부의 평등과 공정과 정의가 손가락질 받는 건 남 탓할 바가 아니다. 그래서 야당이나 대선 주자들이 공정과 정의를 새로운 기치로 내거는 현상도 나무랄 바 못 된다.

하지만 출마선언문에 나타난 윤 전 총장의 공정과 정의는 모호하다. 이율배반적이란 생각마저 든다.

검찰개혁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는 치명상을 입었다. 그렇다고 검찰총장으로서 윤석열이 공정하고 정의로운 법의 수호자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조국 전 장관 자녀의 입시비리 혐의와 나경원 전 의원 자녀의 입시비리 혐의에 같은 잣대를 적용했다고 믿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검사들이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에게 술 접대를 받은 것에 대해서도 사과 한마디 없었던 검찰총장은 정의로운 검찰상과는 거리가 멀다.

'윤석열 X파일'을 대하는 윤 전 총장의 태도도 문제다. 야권에서 흘러나온 X파일을 두고 윤 전 총장의 이상록 대변인은 22일 "공기관과 집권당에서 개입해 작성한 것처럼 말하기도 하던데, 그렇다면 명백한 불법사찰"이라고 말했다. 판사 사찰을 두고 정당한 직무라고 강변했던 게 윤 전 총장이다. 

윤 전 총장의 공정과 정의의 모호함은 이런 데서 연유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공정과 정의를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윤석열의 공정과 정의는 실체가 무엇인가.

공포의 조장
 
이 정권은 권력을 사유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집권을 연장하여 계속 국민을 약탈하려 합니다. 우리 헌법의 근간인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내려 합니다. (중략) 도저히 이들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윤 전 총장의 출마 선언문의 일부다. 헌법의 근간인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내려 한다는 근거가 희박한 공포의 조장.

그러나 공포와 반감을 키워 정권을 창출하던 시대는 갔다. 윤 전 총장이 보여줘야 할 건 문재인 정권에 대한 반감의 크기가 아니라, 정치인 윤석열의 비전이다. "한일 관계가 죽창가 때문에 망가졌다"라는 윤 전 총장. 그런 말 할 거면 왜 하필 출마 선언 장소를 윤봉길 기념관으로 골라 뜻하지 않는 논란을 자초했는지 이해 불가다.

공정과 정의 등 온갖 언어의 성찬이 된 윤 전 총장의 대선 출마 선언. 그러나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속담이 저절로 떠올려질 만큼 뒷맛은 영 개운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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