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7.08 13:27최종 업데이트 21.07.08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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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가짜뉴스와 프로보커터들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들은 각종 사회 이슈부터 정치담론에 이르기까지, 왜곡과 소란을 일으키며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합니다. 세계 각국에서 맹위를 떨친 가짜뉴스와 프로보커터들의 활동을 조명하고, 이에 대한 각 나라의 고민과 대안을 소개합니다. 이와 함께 이 현상을 역사적으로 톺아봅니다.[편집자말]
미디어문화 연구자 김내훈씨가 <프로보커터>라는 이름의 책을 내놓았습니다. '프로보커터'는 도발을 위한 도발로 주목을 끌고 거기서 이득을 취하는 사람을 뜻하는데, 우리말로는 '상습 도발자' 혹은 '관종' 정도로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내훈씨는 책에서 대표적인 프로보커터로 진중권, 서민, 김어준, 그리고 '가세연'을 꼽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책 프롤로그를 국내 프로보커터 대신 싱가포르의 유튜버 '아모스 이(Amos Yee)'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채웠습니다. 사실 프로보커터의 흥망성쇠를 아모스 이보다 더 극적으로 보여준 인물도 없을 겁니다. 책에 언급되지 않은 내용까지 일부 포함해서 아모스 이에 대해 좀 더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세계적 관종, 아모스 이

2015년 3월 리콴유 전 수상이 향년 91세의 나이로 사망했을 때입니다. 그는 1959년 싱가포르 초대총리로 취임한 후 1990년까지 30년 넘게 통치를 한 인물로 지금도 싱가포르의 국부로 추앙을 받고 있습니다. 권위주의적 통치, 장기 집권, 부자 세습 등으로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재임기간 이뤄낸 경이로운 경제성장과 사회 안정에 대한 공로는 대부분 싱가포르 국민들이 동의하고 있습니다. 당시는 그런 그의 죽음에 온 나라가 슬퍼하며 추모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아모스 이의 유튜브 내용. 유튜브 채널은 삭제 되었고 화면의 일부가 알자지라 채널에 남아 있습니다. ⓒ AJ+ 유튜브 화면 갈무리

 
싱가포르 정부가 선포한 7일 간의 애도 기간 중이던 3월 27일, 당시 16세였던 유튜버 아모스 이는 자신이 운영하던 유튜브 채널에 "리콴유가 마침내 죽었습니다!(Lee Kuan Yew Is Finally Dead!)"라는 제목의 8분 정도 되는 동영상을 올렸습니다. 그는 동영상에서 끔찍한 사람(horrible person)이라고 표현하는 등 리콴유의 죽음에 대해 욕설을 섞어가며 모욕적인 발언을 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수상과 리콴유 전 수상이 성교하는 장면을 만들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고, 예수와 리콴유를 비교하며 추종자들을 비하하기도 했습니다. 아모스 이는 곧바로 체포되어 종교 모독, 외설 이미지 전송,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서방 유수의 언론들이 이 사건을 집중 취재했습니다. 싱가포르에서 표현의 자유가 어디까지 보장되는지 이 사건으로 가늠하겠다는 의도가 보입니다. ⓒ CNN 보도 화면, 뉴욕타임스 기사 검색 화면

 
하지만 아모스 이에게 기소와 재판은 별일이 아닌 듯했습니다. 아모스 이는 재판을 위해 법원에 출두할 때 바나나 하나를 들고 조금씩 먹는 모습을 연출했습니다. 카메라 기자들이 그 장면을 놓치지 않은 건 물론입니다. 그 장면 이후 노란 바나나는 아모스 이의 상징처럼 되어 버렸고, 아모스 이를 지지하는 이들은 시위할 때 바나나를 들고 나왔습니다. 아모스 이는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방법을 제대로 알았습니다.
 

법원에 출두하는 아모스 이가 바나나를 먹으며 카메라 앞을 지나가는 장면입니다. 이후 바나나는 아모스 이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 BBC

 
그의 이러한 행동에 대부분의 싱가포르 국민들은 경악과 분노를 드러냈습니다. 조사를 받으러 가는 아모스 이에게 카메라 앞에서 폭행을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싱가포르에서도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며 아모스 이를 지지하고 연대하는 움직임도 있었습니다.

아모스 이가 구속 중이던 2015년 7월 5일, 싱가포르 홍림공원에서는 500여 명의 시민들이 모여 아모스 이의 석방과 표현의 자유를 주장했습니다.

 

로이 은겅 블로그에 있는 아모스 이와 로이 은겅의 사진 ⓒ 로이 은겅 블로그

 
아모스 이의 석방을 요구하는 현장엔 싱가포르의 또 다른 프로보커터가 있었습니다. 이름은 로이 은겅(Roy Ngerng). 로이 은겅은 한국의 국민연금과 비슷한 싱가포르 CPF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다며 시위를 주도해서 야후 싱가포르가 선정한 2014년 최고의 뉴스메이커로 선정됐던 인물입니다. 이후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리셴룽 총리가 CPF 자금을 횡령하는 도둑이라고 묘사하는 글을 썼다가 명예훼손으로 고발을 당하기도 하는 등 화제를 몰고 다녔습니다. 그런 그가 새로운 프로보커터 아모스 이와 연대하는 건 (한국에서 일부 프로보커터들이 연대하고 함께 책을 내는 것처럼) 자연스러워 보였습니다

이 사건은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비비시(BBC)> <뉴욕타임스> <시엔엔(CNN)> <알자지라> 등 세계 유수의 언론이 앞 다투어 이 사건을 보도했습니다. 외신이 주목한 것은 언론자유도가 낮고 권위주의적인 통치를 이어가는 싱가포르에서 표현의 자유가 어디까지 보장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에이비시(ABC)> 보도에 따르면 국제 엠네스티에서는 "아모스 이는 아마도 가장 어린 양심수일 것이다. 이는 싱가포르의 경제 발전 성과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며 그를 치켜세웠습니다.
 

집회, 시위가 흔치 않은 싱가포르에서 500여 명이 모여 아모스 리의 석방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습니다. ⓒ 스트레이츠 타임스 보도 화면

 
이 같은 여론과 국제적인 관심 때문이었는지 아모스 이는 국부 리콴유에 대한 모욕과 종교 모독이라는 싱가포르에서 가장 금기시되는 행위를 했음에도 이례적으로 4주를 선고받고 이후 보석으로 풀려났습니다. 이로 인해 아모스 이는 싱가포르 표현의 자유를 위한 투사로 추앙받게 되었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사람들의 관심이 모이게 됐습니다.

이러한 관심에 취했는지 아모스 이는 그 해 9월 또 한 번 큰 사고를 치고 말았습니다. 이번에는 이슬람에 대한 모독이었습니다. 이슬람 경전인 코란을 뜯어서 혀로 핥거나 가랑이 사이에 끼우고 성관계를 하는 영상을 올린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다시 6주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미국으로 망명, 소아성애로 다시 대형사고

그 후 유튜브를 통해 미국의 유명 유튜버들과 교류하던 아모스 이는 2016년 말 미국으로 넘어가서 다음 해 망명 허가를 받고 시카고에 살게 됩니다. 미국에서 주목받기 위해서는 새로운 소재가 필요했습니다. 미국에서 '리콴유 나빠요' 해봐야 아무도 봐 줄 사람이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 선택한 게 소아성애였습니다. 아모스 이는 소아성애를 옹호하는 내용의 동영상을 유튜브 채널에 올렸습니다. 하지만 이게 결국 아모스 이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유튜브에서 극단주의 채널이 광고를 통해 수익을 얻는다는 CNN의 보도. 소아성애 관련해서 아모스 이의 채널을 사례로 들었습니다. ⓒ CNN 보도 화면

 
2018년 4월 <시엔엔>은 유튜브가 백인 민족주의자, 나치, 소아성애, 음모 이론 및 북한을 홍보하는 채널에 수백 개의 광고를 걸어 돈을 벌게 했다는 기사를 냈습니다. 이 기사에 소개된 아디다스, 아마존, 시스코, 힐튼 같은 광고주들이 유튜브에 항의하고 광고 집행 계획을 다시 세우는 등 파장이 컸습니다.

이 기사에 소아성애의 대표적인 사례로 아모스 이의 채널이 소개가 되었습니다. 미국 장난감산업협회는 즉각 광고를 철회했고, 유튜브는 아모스 이의 채널에서 모든 광고를 제거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달 커뮤니티 가이드 위반으로 채널을 중지시켜 버렸습니다.


유튜브는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7월에는 후원 통로로 이용하던 페이트리언의 계정이, 12월에는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중지되었습니다. 유튜브를 비롯한 SNS 활동으로 주목을 받고 수익을 창출하던 아모스 이에게 자기의 주장을 드러낼 통로와 후원을 받을 통로가 모두 막혀 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잊히던 아모스 이는 2020년 8월 한 싱가포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미국 감옥에 있을 때 자기애적 인격 장애를 진단 받았다고 밝히며, 이름을 폴로클(Polocle)로 바꾸고 삶의 방식도 바꾸겠다고 했습니다. 당분간은 인터넷을 통해 주목받는 생활도 멀리 하겠다고도 했습니다.
 

지난 해 10월 아동 성착취물 소지 혐의로 체포 된 아모스 이 ⓒ Chicago Sun Times

 
하지만 그의 바람과는 달리 그 해 10월, 다시 그의 이름이 언론에 올랐습니다. 아동 성착취물을 소지하고 14세 소녀에게 전파한 혐의로 체포된 것입니다. 재판에서 유죄가 나오면 그는 망명 자격을 잃고 싱가포르로 다시 추방될 수도 있습니다.

싱가포르는 한국이나 미국과 달리 언론상황이 다양하지도 자유롭지도 않습니다. 거기에 가짜뉴스 규제법인 '온라인상 허위정보 및 조작 방지법(Pofma)'이 있어 가짜 뉴스로 사람들을 잘못 선동하다가는 최대 징역 10년의 처벌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도발적인 문제 제기로 명성과 돈을 얻고, 그걸 계속 이어가기 위해 더 큰 도발을 하고, 결국에는 극단으로 치달았던 아모스 이가 싱가포르로 돌아 가게 되면 다시 프로보커터가 되어 주목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건 그의 선택이지만 한가지 분명한 건 2015년에는 16세 소년이라 받을 수 있었던 관대한 처분을 20대 청년이 되어 버린 지금은 기대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도발을 위한 도발을 한다면 그에 합당한 처벌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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