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6.25 07:30최종 업데이트 21.06.25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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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축구 국가대항전인 EURO 2021 독일-헝가리 전이 열린 6월 23일. 경기가 진행된 뮌헨 축구장 알리안츠 아레나는 마치 퀴어축제와 같은 분위기가 풍겼다. 뮌헨뿐 아니라 독일 곳곳에 무지개 깃발이 나부꼈다. SNS에서는 공기업·사기업·정당 등 기관의 종류를 막론하고 무지개 로고를 내걸었다. 이날 독일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UEFA, 뮌헨 구장 무지개 조명 설치 '거부'

뮌헨시는 경기 당일 축구장에 무지개 조명을 설치하기 위해 유럽축구연맹(UEFA)에 허가신청서를 냈다. 평소 차별 없는 유럽 축구를 지향하던 UEFA는 뮌헨시 신청을 거부했다. UEFA는 "UEFA는 정치적·종교적으로 중립적인 기구다. 이 특별한 요청은 헝가리 의회의 결정을 겨냥하는 메시지로 정치적 맥락이 있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헝가리 의회는 최근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잘 읽어야 한다. 차별금지법이 아니라 차별하는 법안이다.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책이나 영화에 성소수자 묘사를 금지하고, 광고 등 미디어에서 성소수자를 '정상'으로 간주하는 출연도 금지하는 내용이었다. 차별과 배제의 '합법화'다.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를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있는 헝가리 정치권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비판이 거센 상황. 독일은 마침 열리는 독일-헝가리 축구경기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연대를 표시하려고 했다. 
 

유럽축구연맹의 '무지개조명' 금지 결정이 독일 저녁 메인뉴스로 올랐다 ⓒ zdf 뉴스화면 캡쳐

 
봇물 터진 비난

UEFA의 무지개 조명 금지 결정에 비난이 쏟아졌다. 디터 라이터 뮌헨 시장은 <타게스샤우>와 한 인터뷰에서 "UEFA가 뮌헨 구장에 무지개 조명을 금지하고 개방성과 관용·존중·LGBTIQ(레즈비언·게이·바이섹슈얼·트랜스섹슈얼·인터섹슈얼·퀴어) 커뮤니티에 대한 연대 표시를 포기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요하임 뢰프(Joachim Löw)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도 "우리 대표팀은 모두 다양성을 지지하며 그 가치를 지키며 살아간다"고 말했다. 뮌헨시가 속해있는 바이에른 주지사 마르쿠스 죄더는 "UEFA는 유럽적 사고와 연결되어 있다. 이 사고는 자유와 민주주의다. 우리 가치의 기본이다. 이건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원칙과 태도의 문제"라고 비판했다.

헝가리는 유럽연합 회원국이다. 헝가리 정부의 성소수자 차별 법률에 유럽연합 차원의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UEFA가 무지개 조명을 거부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슈는 겉잡을 수 없이 커졌다. 독일 SNS는 갑자기 무지개 로고로 뒤덮였다. 이 연대의 움직임은 하나의 '트렌드'가 되어 며칠간 급속도로 퍼졌다. 
 

독일에서 '양식이 좀 있다' 하는 기업과 기관들, 혹은 그렇게 보이고 싶어하는 대부분이 로고를 무지개로 바꾸었다. ⓒ 각 기업 및 기관 SNS


독일 무지개 깃발의 '정상화'

프랑크푸르트에서 축구장 '도이체방크 파크'를 운영하는 도이체방크는 무지개 조명을 한 구장을 공개하며 "다양성과 관용을 위한 행동에 지지한다"며 "내일(6월 23일) 무지개 조명을 밝힌다. 차별과 배제를 반대하는 강한 표시"라고 밝혔다.  

베를린 올림픽경기장이 "관용과 인권에 관한 문제라면, 우리도 내일 함께한다"며 무지개 조명을 밝힐 계획을 공개하자, 베를린 대형 콘서트 및 경기장 벤츠아레나도 "좋은 아이디어다. 우리도 함께한다"고 맞장구쳤다.

베를린교통공사·독일철도·슈파카쎄·폴크스바겐, 알리안츠 등 독일 주요 기업들도 로고를 바꾸며 지지 의사를 밝혔다. 베를린시 상원과 좌파당·녹색당 등 독일 정치계와 정당들도 물론 빠지지 않았다.

자유와 민주주의, 다양성과 관용을 지지하고 시민의식이 있는 자라면 무지개 깃발을 거는 게 당연한 기대가 됐다. 발 빠른 기업의 마케팅팀도 이를 놓치지 않았다.
 

여파가 거세지자 유럽축구연맹(UEFA)도 로고를 무지개로 바꾸었다. ⓒ UEFA 페이스북 캡쳐

    

6월 23일 독일-헝가리전에서 경기 내내 무지개색 주장 밴드를 차고 나온 독일대표팀 선수 마누엘 노이어.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무지개색 밴드를 계속 차고 있다. ⓒ zdf 방송 캡쳐


여파가 거세지자 UEFA까지 '무지개를 존중한다'며 SNS 로고를 무지개색으로 바꿨다. 시민들은 "티끌만 한 로고 바꾸지 말고 경기장의 무지개 조명을 허하라"며 더 강하게 비판했다.

경기 당일 뮌헨 축구장은 퀴어축제가 열리는 것처럼 무지개 깃발이 나부꼈다. 독일 대표팀 주장인 마누엘 노이어도 경기 내내 무지개색의 주장 암밴드를 착용했다. 노이어는 지난 15일 열린 독일의 첫 경기부터 무지개색 주장 밴드를 착용해 왔다.

독일이라고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없겠는가. 매일 투쟁하고 매년 퀴어축제를 성대하게 치르는 순간순간에도 차별과 배제는 발생한다. 하지만 독일 국민의 시선이 모인 유럽 축구 경기에서 발생한 이 '사건'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연대와 지지는 더욱 표면화되고 강해졌다. 

'다른 나라'에 이토록 강한 연대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다른 나라의 일에 이렇게나 나설 일인가. 물론 독일의 요청이 거부 당한 데 대한 반동도 있었을 테다. 기본적으로는 유럽 가치를 공유하는 지역 공동체의 국가가 차별과 배제를 '합법화'한 데 대한 유럽 공동 대응의 일환이다. 헝가리는 EU 회원국으로서 EU 공동의 법과 가치를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Ursula von der Leyen) EU 집행위원장도 "헝가리법은 (유럽연합의) 수치"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폰 데어 라이엔은 "이 법안은 성적지향을 이유로 인간을 차별하며, 유럽연합의 기본 가치를 훼손한다"며 "EU는 인간존중과 평등, 인권 존중의 문제에 있어서 타협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EU는 헝가리 법안이 발효되기 전 법적 우려를 담은 서면을 보낼 예정이다. 관련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공식적인 유럽연합 계약 위반으로 보고 추가 조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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