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6.22 08:15최종 업데이트 21.06.22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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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이 우리 곁을 떠난지도 어언 3년이 흘렀다. 그의 3주기에 즈음하여 노회찬 재단은 오마이뉴스와 함께 공동기획으로, 4월 16일부터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우리시대 '6411투명인간'과 '약자들의 벗 노회찬'의 정치실천: 기록으로 기억하다] 기록 연재를 시작한다.[편집자말]
(*지난 기사 [6411 투명인간과 약자들의 벗 노회찬] 도시빈민과 노회찬 ①에서 이어집니다.)

'나는 인생의 실패자' 적힌 쪽방촌에서... 쉽사리 입 열지 못한 노회찬

2004년 11월 16일 오후 9시 노회찬(민주노동당 17대 국회의원)은 서울 영등포 쪽방촌을 찾았다. CBS 특별기획팀 <오숙희 변상욱의 행복한 세상>(FM 98.1MHz)이 기획한 프로그램으로, 노회찬은 이날 한 평이 채 안 되는 좁은 곳에서 매일을 사는 '쪽방 사람들'과 함께하는 '하루 체험'을 했다.
  

2004년 11월 16일 서울 영등포 쪽방촌을 찾은 노회찬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 ⓒ 노회찬재단

 
월세와 일세를 내며 이곳 쪽방촌에 사는 500여명 사람들의 모습은 다양했다. 독거노인, 장애인, 전과자, 알콜중독자, 부랑인, 실직가장 등 우리 주변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대부분의 월세는 보증금 없이 13만원에서 18만원 정도, 일세는 4000원에서 7000원 정도였다. 터무니없이 싸다할 지 모르지만 어떤 이들에겐 그마저도 없는 경우가 많았다. 영등포역을 중심으로 쪽방조차 얻을 수 없는 200여명 정도 노숙인들이 대부분 그런 경우였다('노회찬 쪽방 체험, "겨울엔 얼어죽는 사람들도 많다"', <노컷뉴스>, 2004.11.18.).

노숙인들의 쉼터 '광야의 집' 13명의 노숙인들은 노회찬에게 자신들의 버거운 삶을 토로했다. 19년째 쪽방생활을 한다는 김수자(48)씨는 "겨울에는 자고 일어나 보면 얼어 죽어 있는 사람이 많다. 다 어렵지만 특히 나이 많은 노인들이 걱정된다"고 따뜻한 도움을 부탁했다. 17년째 '광야의 집'을 맡아 사랑을 베풀던 임명희 목사는 "처음 여기 왔을 때 '같은 하늘아래 이런 곳이 있었나'라는 생각에 울분이 터졌다.
  

2004년 11월 16일 서울 영등포 쪽방촌을 찾은 노회찬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 ⓒ 노회찬재단

 
현재 이들을 위한 최선의 방법은 몇 푼의 철거보상비가 아니라 단체로 함께 살 수 있는 '홈리스 복지센터'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한마디 한마디 놓칠세라 이들의 어려움을 메모하던 노회찬은 "과거 연탄 땔 돈이 없어 냉랭한 쪽방에 살던 내 모습이 생각난다. 한번 뿐인 여러분들의 삶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되길 간곡히 희망한다"고 격려의 말을 전했다.

평소 국회에서 재기 넘치는 말솜씨를 자랑하던 노회찬이었지만, 이어 찾아간 강재석(71)씨와 박기태(47)씨의 쪽방에서 그의 입술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이따금씩 일그러지기도 했다.


가장 작은 방 0.5평에서 10년을 거주한 강재석 할아버지. "그저 건강히 살다가 가는 것이 꿈"이라는 그에게 노회찬은 "오랜만에 감옥에 들어온 느낌"이라며 "죄를 안 짓고도 벌서고 계신다"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8년째 1.2평짜리 쪽방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장애인 박기태씨. 장애수당 등을 포함해 매달 38만 원씩 받는 정부보조금이 수입의 전부로, 그에게 희망이 있다면 일자리를 얻는 것이었다.

박기태씨) "장애인들도 떳떳하게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어요. 장애인고용촉진법이 있지만 말뿐이잖아요. 사람마다 꿈과 희망이 있는데…."

노회찬 의원) "일하고 싶은 사람에게 일을 주지 않는 것은 일종의 형벌입니다. 이제는 정부가 나서서 '죽은 법'을 살려야 할 때입니다."

 

2004년 11월 16일 서울 영등포 쪽방촌을 찾아 대화중인 노회찬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 ⓒ 노회찬재단

 
"국회서 쪽방까지 10리도 안 돼... 쪽방세상 알아야 할 사람이 많다" 

노회찬의 이날 일정은 복층형 구조의 판잣집 2층에서 홀로 '쪽방 체험'을 해보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나는 인생의 실패자다'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가 한쪽 벽면에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얼마간의 침묵이 흐른 뒤 노회찬이 입을 연다.

"여긴 교도소 독방보다 작습니다. 이곳 주민들은 죄 짓지 않고도 벌을 받고 있는 셈이죠. 이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회성 도움이 아니라 안정적 생활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는 일일 겁니다. 아주 절규하고 있습니다. 일자리를 달라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여러분들의 말씀을 결코 흘려듣지 않겠습니다. 실질적인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고 인사한 노회찬. 그는 홀로 쪽방에 앉아 눈을 감은 채 방 한쪽에 붙어있는 글의 마지막 글귀를 곱씹었다.

"사막과 같은 황량한 세상일지라도 누군가 나에게 다가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웃어줄 수 있다면 이 아픔과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겨낼 수 있을 텐데…."

'노숙, 쪽방 체험'을 마치고 연신 "부끄럽다"며 고개를 떨구던 노회찬은 이렇게 말을 맺었다.

"국회에서 쪽방까지는 10리(약 3.9km)도 안됩니다. 반경 10리 안에 쪽방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사람이 많습니다."

"음지에서도 생명은 자랍니다. 쪽방에서도 희망은 자랍니다. 우리의 희망을 쪽방에 가두지 맙시다."
 

"당과 대중조직의 새로운 연대 모델을 만들어가자"

2004년 3월 30일 여의도 민주노동당 중앙당사. 17대 총선을 앞두고 '제17대 총선 민주노동당 공동선거운동본부'가 발족했다. 민주노동당은 기자회견문에서 "민주노총, 전농, 전국빈민연합 등 세 단체는 땀흘려 일하면서도 소외된 이 땅의 노동자, 농민, 빈민을 대표하는 조직으로서 이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유일한 정당은 민주노동당뿐이기에 오늘 공동선본에 참여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비정규직 차별문제, 노조 손배가압류, 식량주권, FTA 개방, 노점상·철거민 생존권 등 우리 민중의 이해가 걸린 수많은 사안에서 말로만이 아니라 함께 실천했던 민주노동당을 지지함으로써 민중이 주인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4년 3월 30일 여의도 민주노동당 중앙당사에서 '제17대 총선 민주노동당 공동선거운동본부'가 발족했다. ⓒ (<진보정치> 173호)

     
공동선본에 참여한 민주노총, 전농, 전여농, 전빈련 등 소속 단체들은 "노동자, 농민. 빈민 유권자들로부터 4백만에 이르는 대대적인 민주노동당 지지를 이끌어 내어 민주노동당이 최소 15석 이상을 이룰 수 있도록 앞장설 것"이라고 결의를 밝혔다(<진보정치> 173호, 2004.4.5.~4.11.). 이 단체들이 공동선본에 참여한 데에는 앞서 조돈문 재단 이사장의 말처럼 노회찬(민주노동당 사무총장, 중앙선대본부장)의 보이지 않은 노력이 있었다.

2004년 17대 총선을 이틀 앞둔 4월 13일 빈민 902명 이름으로 근본적인 빈민문제 해결을 위해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선언이 발표됐다. 민주노동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빈민 지지선언에는 김흥현(전빈련 의장), 김인수(전빈련 수석부의장), 장봉주(전빈련 부의장), 노수희(전노련 고문), 소순관(전빈련 고문), 조덕희(집행위원장) 등과 각 지역의 지역장 20여명이 참가했다. 빈민대표들은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 "해체! 용역깡패 쟁취! 생존권", "심판! 부패정치, 실현! 진보정치" 피켓을 들고 지지선언에 임해, 진보정치 실현에 함께 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김흥현 의장은 "사회적 빈곤층이 1000만 명에 달한다는 통계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님에도, 도시빈민 정책은 역대 정권을 통해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보수정당들은 선거 때면 노점상을 사진 찍기 위한 세트로 이용하고 있는데 이러한 행태를 즉각 중단해야 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빈민들이 한 주체로서 참가하고 있고, 오늘은 그것을 재확인하는 자리이다. 빈민들이 주인으로 대접받는 곳은 민주노동당 뿐"이라며 적극적인 지지 의사를 밝혔다.

노회찬은 환영사에서 "노점상, 철거민 등 빈민들의 지지선언을 고맙고 소중하게 생각한다. 민주노동당의 뿌리를 재확인하는 자리이며, 앞으로 당의 활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당으로서는 서약식의 자리이다. 철거민이 없는 사회, 빈민이 존재하기 힘든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2004년 4월 14일, 권영길 대표 등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부패한 야당, 무능 야당을 교체하는 진보야당이 되겠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천영세 선대위원장, 노회찬 선대본부장, 이문옥·단병호·심상정·송경아·최순영 비례대표 후보와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 문경식 전국농민회 총연맹의장, 윤금순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의장, 김흥현 전국빈민연합 의장 등이 참석했다. ⓒ 이종호

  
이날 지지선언에서는 민주노동당의 빈민문제 해결을 담은 17대 총선 빈민정책과 공약도 함께 발표됐다. 황이민 선대부본부장은 빈곤층 정책공약 발표를 통해 ▲빈곤층의 기초생활 보장 ▲무상교육·무상의료 우선 보장 ▲공공임대주택 확대 ▲노점상 생존권 보호 ▲노점상 단체의 자율규제를 통한 폭력적인 노점상 단속 중지 등을 밝혔다.

2007년 6월 13일 대학로에서 '제20차 전국노점상연합대회'가 개최됐다. 서울시가 "홍콩 등지에서 볼 수 있는 깔끔한 노점상 거리를 조성해 관광명소를 만들겠다"며 노점관리대책으로 내놓은 시범구역과 일부 노점상 합법화 발표가 기만적인 노점 정책이라며 분노한 노점상들이 시위에 나선 것이었다.

전국에서 모인 노점상들과 연대단체(전빈련, 빈민해방철거민연합, 빈곤사회연대, 사회진보연대, 범민련, 전국학생행진, 전국농민회, 전국공무원노조, 민주노동당, 국제비공식여성노동자연합, 홍콩노점상연합회, 네팔노점상연맹) 등 1만2천여 명의 참가자들이 모여 "빈곤 철폐, 노점말살대책 분쇄, 한미FTA 전면무효, 6.13정신 계승"의 목소리를 높였다.  
 

2007년 6월 13일 서울 대학로 '20차 전국노점상연합대회'에 참여한 노회찬(앞줄 왼쪽) ⓒ 노회찬재단

  
전국노점상총연합(전노련) 이필두 의장은 "20억짜리 아파트에 사는 오세훈(시장)이 노점상들의 사정을 알 리 없다"며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를 기준으로 노점을 관리한다는 서울시의 노점 정책은 기만적 정책으로 1백만 노점상들은 속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국제노점상연합의장 겸 전국빈민연합(전빈련) 김흥현 상임의장은 서울시에서 노점관리대책으로 내놓은 "이른바 '유도구역' 혹은 '시범구역'이란 노점 정책은 이미 70년대 홍콩에서 실패한 정책"으로 "얼마 전 홍콩에 가봤더니 골목가나 아파트 입구마다 노점상이 넘치고 있다"고 소개한 뒤 "오세훈(시장)은 대체 어느 시대 사람인가"라고 질타했다.

전국노점상대회에는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 의원 등 민주노동당 대선 예비후보들과 문성현 당대표가 총출동했다. 권영길은 "노무현 정권이 서민의 눈물을 닦아 준다더니 노점 탄압을 외면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심상정은 "노점상을 경제주체로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노회찬은 "노점상을 전면 합법화 하던지 아니면 제대로 된 일자리를 보장하던지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2007년 6월 13일 서울 대학로 '20차 전국노점상연합대회'에 참여한 노회찬. ⓒ 노회찬재단

 
전노련은 ▲생계형 노점상 인정 ▲서울시의 노점특별관리대책 철회 ▲과태료 부과 및 재산가압류 철폐 ▲동대문 풍물벼룩시장 철거계획 철회 및 생존권 보장 ▲재래시장 개발 전면 재검토 ▲노점상 도시빈민 기본생활권 보장 등의 10대 요구안을 발표했다. 이날 행사는 대학로 집회 후 시위대오가 종로와 을지로를 거쳐 서울시청까지 두 시간여 시가행진하면서 거리 선전전을 진행했으며,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의 정리 집회로 마감했다.

2007년 17대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을 조직적으로 지지했던 전빈련이 선거 후 지지 방침을 사실상 철회했다. 2008년 2월 29일 김흥현(전빈련 상임의장)을 비롯한 의장단은 민주노동당을 탈당하고 3월 2일 노회찬이 상임공동대표로 참가한 진보신당에 발기인으로 합류했다. 민주노동당 분당이 지지 대중단체들의 분열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민주노동당 지지 철회를 공식적으로 선언한 단체는 전빈련이 처음이었다.

김흥현 의장은 "대선 시기 민주노동당이 빈곤 문제 해결을 뒷전이고 통일 공약인 '코리아연방공화국' 논쟁에만 소진하는 것을 보며 조직 내부에서 지지 방침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를 불러온 가장 큰 원인은 패권주의였다. 지금 불거지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불거질 문제였다"며 "이렇게 된 마당에 단단해지자는 얘기다. 민주노동당의 불안한 동거는 깨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2월 26일 전빈련 산하 조직인 전국노점상총연합(전노련)은 민주노동당 배타적 지지 철회와 다양한 진보정당 운동과의 결합을 결정한 바 있다.

2008년 7월 9일 노회찬(진보신당 상임공동대표)은 강원도 원주 전노련 중앙연수원에서 열린 서울 북서부지부 회원교육을 갔다. "마지막 일정은 밤 10시 천안이다. 천안에서 서울로 돌아오면 오늘의 승용차 주행거리가 1000km를 돌파한다고 한다. 비행기로 약 400km 날아왔으니 모두 1400km다. 이러다간 중앙당 당사 앞에서 '수면권을 보장하라'며 일인시위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며 <노회찬의 난중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김포공항에서 바로 원주로 향했다. 부론면 단강초등학교. 단강은 충주댐에서 흘러나온 남한강의 일부이다. 이 경치 좋은 곳에 위치한 단강초등학교를 전국노점상연합이 임대해서 중앙연수원으로 쓰고 있다. 교정에는 6백년 된 느티나무가 버티고 서있다. 강원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되었다는 이 나무 아래에서 단종이 영월 땅으로 유배가면서 쉬어갔다고 표지판이 설명해준다. 이필두 의장이 반갑게 맞이하면서 학교식당에서 밥부터 먹인다.

바깥은 섭씨 35도의 폭염인데 교실 안에는 전노련 서울 북서부지부 회원들이 책상 하나씩 차지하고 강의를 기다리고 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게도 오세훈 현 서울시장에게도 이들 20대 청년에서 60대 노년까지인 노점상 아저씨, 아주머니들은 '철거대상', '단속대상'일 뿐이다. 그러나 대통령도, 서울시장도 모르는 것이 하나 있다. 그들에게는 '철거대상', '단속대상'밖에 되지 않는 노점상들이 이 무더위 속에 더운 바람 나오는 선풍기 틀어놓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토론하고 더 낳은 세상을 위한 공부를 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2008년 9월 29일 진보신당 공동대표단은 전빈련 대표단과 만나 제2창당 참여와 관련해 간담회를 가졌다.

진보신당과 마주앉은 전빈련은 진보신당 창당 당시 당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던 노점상 및 철거민들의 대중조직으로, 김흥현(상임의장)과 심호섭(공동의장), 배행국(수석부의장), 유의선(정책위원장), 김상열(대외협력국장)이 참석했고, 진보신당에서는 노회찬, 박김영희, 심상정, 이덕우 공동대표와 정종권 집행위원장 등이 참여했다. 양 측은 전빈련의 현 상황을 공유하는 한편 진보신당 제2창당 과정에 참여하기 위한 조직화 방안 등을 논의했다.

"오늘 만남을 계기로 싸움을 크게 벌여보자"고 한 김흥현 상임의장에 이어, 배행국 수석부의장은 "진보신당이 대안정당으로서 빈민 등 소외계층을 대변할 수 있는 힘 있는 정당이 되길 바란다"며 "창당 이후 만나는 사람마다 진보신당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회찬은 "창당 과정이 가장 힘든 과정이었는데 진보신당이 가장 어려울 때 뜻을 함께해주셔서 고마움을 넘어 동지애를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진보신당의 4대 가치 중 '연대'의 새 모델을 전빈련과의 협력 관계 속에 만들어 나가길 기대하며, 이명박 정부가 두 조직의 협력을 도와줄 것으로 보인다. 당과 대중조직의 새로운 연대 모델을 만들어가자"고 화답했다. 신장식(진보신당 대변인)은 간담회와 관련해 "진보신당이 제2창당을 위한 외부세력과의 첫 번째 간담회로 전국빈민연합 대표단 간담회를 개최한 것은, 대중 생활 속에서 호흡하는 진보정당, 대중 속 든든한 토대를 가진 진보정당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밝혔다.

기록연재 | 조현연 노회찬재단 특임이사

(*[6411 투명인간과 약자들의 벗 노회찬] 도시빈민과 노회찬 ③, ④편은 6월 25일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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