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6.10 07:23최종 업데이트 21.06.10 11:00
  • 본문듣기

동네 고양이를 지키는 활동가이며 최근 고양이 이야기를 담은 매거진 ‘탁’ 창간을 준비하고 있는 김포도 디자이너는 “고양이와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예쁜 잡지를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 유성호


'낯선 동네가 어떤 동네인지 알려면 그 동네의 길고양이들을 보라'는 말이 있다. 은은한 햇살이 머무는 고즈넉한 자리에서 길고양이들이 낮잠을 자고 있거나 여유롭게 털을 고르고 있다면, 그 동네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짐작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명제는 '경제적으로 풍요롭다'는 기준을 넘어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생명들을 돌볼 마음의 여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도시 속에서 재개발 재건축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경제적 이익을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삶의 터전에서 내쫓기는 사람들도 생기기 마련이다. 내쫓기는 것은 사람들뿐만이 아니다. 그곳에서 살고 있는 길고양이, 강아지도 마찬가지다. 어디 동물뿐인가. 오래된 나무, 풀 또한 파헤쳐지고 건축 폐기물과 함께 어딘가로 버려진다.


아파트 재건축이 시작된 대단위 단지를 바라보면서 '저기 집주인들은 집값 올라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기 살던 고양이들은 이제 어떻게 살지?'라는 질문을 던지며 폐허가 돼버린 아파트 단지의 고양이들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기, 전자보다는 후자의 질문을 던지는 예술가가 한 명 있다. 김포도(활동명) 디자이너다. 

도시에서 동물이 잘 살 수 있다면

쓸쓸한 도시 풍경을 그리던 예술가는 언제부턴가 집 안과 집 밖 고양이들의 집사가 되었고,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동네 고양이를 지키는 활동가가 되었다. 고양이가 그의 삶에 들어온 후, 그는 본격적으로 동물 용품 쇼핑몰 CEO가 되어 수익금으로 길고양이 개인 활동가들을 지원했고, 지금은 동물과 동물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매거진 '탁' 농장장(발행인)으로서의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

지난 5월 18일, 동인천의 김포도 디자이너 작업실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 고양이를 만나기 전에는 미술작가로서 어떤 작업들을 했나?

"소위 현대미술이라고 불리는 작업들을 해왔다. 생각해보면 우울한 작업들이었다. 현대 사회에 도시 속 인간들, 또는 도시 속의 고독과 외로움을 드러내는 작업들을 해왔다. 도시 속에서 부유하는 인간, 좌절된 인간에 대한 페인팅 작업을 했다."

- 도시와 도시 속을 부유하는 인간상을 그리는 미술작가가 왜 고양이에게 시선을 돌리게 되었나? 

"도시를 보고 사람들을 바라보니, 고양이들도 사람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고양이들이 도시 속에서 어떻게 사는지를 보면 자연스럽게 도시 속의 재개발, 재건축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더라. 그래서 고양이들을 통해 도시사회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정확하게는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해, 그러니까 2014년부터 길고양이를 돌보는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엔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인 강동구 '길고양이 급식소' 봉사활동으로 시작했다. 원래 집에서 고양이 세 마리를 키우는 애묘인이었다. 지역에서 캣맘 모임 활동을 하게 되었고, 기본적인 길고양이 급식부터 구조, 입양 활동까지 하게 되었다."

김포도 디자이너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둔촌냥이'라는 시민모임에서 재건축을 앞둔 서울시 강동구 둔촌 주공아파트의 고양이들의 이주를 돕는 활동을 해왔다. 그는 단순히 고양이 이주뿐만 아니라 아파트 단지 안의 고양이 실태 사전 조사, 개체 수 파악, 사진 기록, 고양이 수첩 디자인 및 출판, 밥자리 조사, 기관별 모임, 세미나, 펀딩, 고양이 TNR(중성화수술), 고양이 이주, 치료, 관리, 입양, 임시보호 등 수많은 갈래의 일들을 담당했다. 그러면서 서서히 그의 작업도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고양이를 향한 이유있는 거리두기  
  

김포도 디자이너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둔촌냥이’라는 시민모임에서 재건축을 앞둔 서울시 강동구 둔촌 주공아파트의 고양이들의 이주를 돕는 활동을 해왔다. ⓒ 유성호

 

재건축 현장에서 길고양이들을 돌보고 있는 김포도 디자이너 ⓒ 김포도


- 길고양이를 돌보는 활동이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어렵지 않나?

"고양이들을 마음에 많이 묻었다. 길고양이들에게는 항상 정해진 곳에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으로 밥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둔촌 주공아파트가 철거되는 시점인 2019년에는 고양이 로드킬을 염려해 새벽에 계속 고양이 밥을 들고 나갔었다. 새벽에는 사람들과 차량이 없기 때문에 비교적 고양이들에게 안정적으로 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고양이 사료를 들고 나가면 고양이들이 알아보고 하나둘씩 내게로 모여들곤 했다.

매일 같은 시간에 밥을 주던 고양이가 있었는데, 어느 날은 내가 어쩌다 조금 늦게 나갔었다. 근데 그 사이에 사고가 난 것이다. 그때는 주저하지 않고 죽은 고양이를 안고, 그 고양이가 길을 무사히 건넜다면 있었어야 할, 길 건너편의 공원에 묻어주었다. 정들었던 고양이었기 때문에 죽은 고양이를 안는 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가끔 개인적인 사정으로 밥을 제때 못 주는 상황이 되면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이제는 길고양이들에게 이름을 붙여주지 않는다. 고양이들에게 정을 주면 어느 순간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러 거리두기를 하려고 한다. 이름을 붙여주면 그 고양이들을 다시 못 만날까 봐 그러는 것 같다. 도시 속에 사는 고양이들은 아무래도 로드킬을 많이 당한다. 고양이들의 죽음을 직면하다 보면 그것이 트라우마로 쌓인다."
 

김포도 디자이너는 “운전자들이 시각적으로 한 눈으로 알아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천천히 문구에 손을 잡고 걸어가는 도로교통표지판을 차용해서 고양이 로드킬 주의 표지판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 유성호


- 김포도 디자이너가 작업한, 강동구와 경기도에 설치된 고양이 로드킬 주의 표지판을 보았다. 고양이가 가방을 메고 길을 건너는 모습의 심볼과 '천천히'라는 주의 표지판이 재밌다. 많은 것을 시사하는 것 같다.

"강동구에서 '둔촌냥이' 고양이 구조 활동을 하면서 강동구청에 동물복지팀과 소통을 자주 하게 되었다. 당시 강동구청의 동물복지팀 담당자가 고양이 구조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주신 덕분에 행정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중에 강동구에서 고양이 로드킬이 많은 위치에 현수막을 설치하게 되었는데, 그 때 가방을 메고 걷는 고양이 로고와 도로교통표지판을 차용해서 로드킬 주의 표지판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대개의 도로에 표지판이 그러하듯 단순하면서도 한눈에 메시지가 들어오는 인포그래픽으로 작업을 하면 운전자들에게도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강동구에서 처음 시작하게 된 고양이표지판 작업이 나중에는 '좋은냥이 좋은 사람들'이라는 단체의 제안으로 경기도에까지 확장되었다."

또 다른 예술 프로젝트 <매거진 탁>
 

김포도 디자이너가 작업한 그림. ⓒ 김포도


- 작업하신 작품 중에 직접 그리신 고양이 그림들을 보았다. 그런데 그림 속 고양이들이 마냥 예쁘고 귀엽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떤 대상을 그린다는 것은, 특히 살아있는 생명을 그리는 일은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것이 길고양이일 때는 더더욱 감정적으로 힘들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고양이를 관찰하고 기록하고 그림을 그릴 때 어떠한가?

"맞다. 고양이를 자세히 보고 특징을 드러나게 그리려면 아무래도 감정이입이 되기 마련이다. 자주 봐왔던 고양이일수록 더 그렇다. 이 일이라는 게 늘 도시 속에 '길고양이의 죽음'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주 슬프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포기할 수 없는, 멈출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거창한 신념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기억하고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어느 순간 나의 작업에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타입이라 더욱 그런 것 같다."

김포도 디자이너는 지금 동물들과 동물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담는 <매거진 탁>의 창간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미술작가' 또는 '디자이너'에서 '동물활동가'라는 정체성을 스스로 갖게 되면서 작업의 주제나 결과물에 대한 방법과 해석이 오히려 자유로워졌다고 말한다.

<매거진 탁>은 김포도 디자이너의 또 다른 예술 프로젝트이자 기록 매체 생산자로서의 실험이다. 인쇄 매체의 수요가 줄어들고 있는 요즘 같은 시대에 '동시대를 살고 있는 고양이들과 고양이 활동가에 대한 기록물로서의 잡지'를 만들고 있다.

그는 "<매거진 탁>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활동하는 고양이 활동가들과 도시 속에서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에게 기록물로서의 충분한 역할을 하길 바란다"라고 말한다.

'예술은 삶을 예술보다 흥미롭게 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예술은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다. 어떤 예술은 미술관에서 빛나기도 하지만 어떤 예술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일상 공간에서 빛날 수도 있다. 또 어떤 예술은 우리의 삶을 작게나마 변화시킨다. 김포도 디자이너의 예술작업들은 일상공간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들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만들고 있다.

잠시 도시 속의 빠른 속도를 늦추고 주변을 둘러보자.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기는 길고양이들이 보인다면 속도를 늦추고 '잠시 멈춤'의 미학을 느껴보자.
 

김포도디자이너가 디자인한 고양이 표지판 ⓒ 김포도

 
덧붙이는 글 매거진 탁 관련 계정 → instagram @magazine.tac, twitter @MagazineTac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10만인클럽후원하기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