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6.02 12:17최종 업데이트 21.06.02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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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맑아 좋은날, 살아있기에 지금 이 순간 좋으면 됐습니다. ⓒ 송성영

 
지난 기사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위통이 죽을 만치 엄습한 것은 틀니를 고정시키고 있던 어금니 발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틀니 교정 때문에 20여 일 동안 죽으로 연명하면서 몸의 균형이 깨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죽이라 해도 씹어 삼켜야 소화를 돕는 프티알린이 생기는데 그마저 없으니 그렇잖아도 암세포로 시원찮은 위에 크나 큰 부담을 주었던 것입니다. 급기야 위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몸의 균형이 깨지면서 찾아온 위출혈

이틀 동안 혈변을 보았는데 이번이 네 번째였습니다. 첫 번째는 2018년 11월. 화장실 입구에서 쓰러져 병원에 입원, 다섯 봉지의 수혈을 했고, 두 번째는 2019년 봄. 병원에 입원해 두 봉지의 수혈을 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2020년 봄. 출혈량이 이전에 비해 많지 않아 병원에 가지 않고 잘 견뎌냈습니다. 그리고 이번, 네 번째 위출혈은 세 번째 보다는 많았고 두 번째와 비슷했습니다.


두 번째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암 선고를 받고 7개월쯤 지날 무렵이었습니다. 매년 이곳 산막에서 가난하지만 영혼이 맑은 싱어송라이터들과 함께 하는 잔치, '배부른 잔치'를 마치고 쓰러졌습니다.

단 한 푼의 지원금이나 관객 입장료 없이 노래하는 친구들 또한 돈 한 푼 받지 않고(관객들의 자발적 후원금이 들어오면 교통비를 똑같이 나눕니다.) 참여하는 '배부른 잔치'는 나눔과 배품의 잔치입니다. (모든 것이 무료, '배부른 잔치'에 초대합니다, http://omn.kr/1iofo)

노래하는 친구들은 노래로 베풀고 관객들은 빵과 고기, 술 등의 갖가지 먹을거리들을 푸짐하게 싸들고 와서 서로 배부르게 나눠 먹는 잔치인데, 두 행자와 함께 기획자인 나는 암환자임을 까마득히 잊고 두 행자의 불안한 눈총을 피해가며 그 열흘 전부터 비닐하우스로 '오페라 하우스'처럼 무대를 만들었습니다. 산막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기분 좋은 표정을 상상해가며 이런 저런 잔치 준비 참견에 부산을 떨었습니다.

무리수를 두면 탈나는 암환자임을 까마득히 잊고 잔치가 열리던 날 또한 새벽까지 젊은 친구들과 어울렸습니다. 거기다가 그 많은 먹을거리를 놔두고 하루 종일 두 행자 몰래 '금지된 빵' 몇 개로 배 채운 것이 전부, 제대로 먹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먹지 않아도 배부른 '배부른 잔치'가 끝나고 하나 둘 산막을 떠나던 다음 날 아침, 갑자기 뚝 떨어진 체력을 추스르겠노라 홀로 마루에 앉아 있다가 깨어나 보니 두 행자가 가슴팍을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왜 그려 이눔들아!"
"아이고 아빠, 일어나보셔 큰 일 날 뻔했어!"
"왜 그러는데?"
"아빠가 숨을 제대로 쉬지 않고 있었어."


까딱하면 좌탈할 뻔했구먼

녀석들이 마루에 결가부좌를 틀고 하염없이 앉아 있는 아버지가 이상해 흔들어 보니 미동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감긴 눈을 까뒤집어 보니 눈동자에 흰자위만 보이고, 굳게 닫힌 입을 열어 보니 혀는 입천장에 말려 있더라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콧구멍으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것 같아 혀를 끄집어내고 가슴팍을 짓눌러가며 인공호흡을 시도했던 것입니다.

"아이고 자식들아! 그냥 내비두지.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편했는디, 그냥 그렇게 편하게 가게 내비두지, 폼도 나고 좋잖아. 까딱했으면 좌탈(좌선한 채로 죽음) 할 뻔했구먼. 그게 내가 바라는 최상의 죽음인디..."
 

2019년 5월 두 번째 위출혈로 병원에 입원하여 이런저런 주사 바늘을 주렁주렁 매달고 두 봉지의 수혈을 받았습니다. ⓒ 송성영

 
마루에서 일어나 대변을 보러 가려는데 현기증으로 쉽게 걷지 못했습니다. 겨우 화장실에서 볼일을 봤는데 혈변이 나왔습니다. 그때도 위출혈이 있었던 것입니다. 두 행자가 급히 119에 연락, 난생처음 앰뷸런스를 타고 서산의 어느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의사는 내 여린 팔목에 이런저런 주사바늘을 주렁주렁 꽂아놓고 '이러다가 진짜로 죽는다'며 '왜 여태 수술을 하지 않았냐'고 야단을 쳤습니다. 하지만 나는 두 번째 입원이라서 크게 놀랄 일도 아니었습니다. 두 봉지의 수혈을 하고 나서 담당의가 내시경을 권했습니다.

"더 이상 위출혈이 없으니 그냥 퇴원 할랍니다."
"예? 퇴원한다고요? 거참, 맘대로 하세요!"


그동안 고맙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는데 의사는 몹시 불쾌한 어조로 휑하니 병실을 나가 버렸습니다. 담당의가 애초에 입원 당시 의료보험 적용이 안 된다는 출처불명의 지혈제를 투입하겠다고 했는데 아마 그 지혈제에 대한 임상 결과를 내시경을 통해 점검하고자 했던 모양입니다.

위출혈의 양은 혈변으로 짐작할 수 있는데 이번 네 번째에는 그 양이 두 번째와 비슷했지만 병원에 가질 않았습니다. 두 번째 입원의 경우처럼 혈변이 멈출 때까지 위를 비우면 될 것이었습니다. 평소 알고 지내는 내과의 말로는 위출혈을 멈추게 하는 제대로 검증된 지혈제가 없다고 합니다. 하여 이번에는 지난번처럼 병원에서 출처 불명의 지혈제를 복용하는 대신 집에서 출혈이 있는 날로부터 사나흘정도 간헐 단식을 했던 것입니다.

그 알고 지내는 내과의 말로는 위출혈이 지속될 경우 맥박이 분당 100회 이상으로 빨리 뛰고 정상으로 돌아오게 되면 80회 이하로 떨어진다고 하는데, 위출혈이 있던 날로부터 이틀 정도 지나자 맥박수가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결과적으로 볼 때 병원에 입원하여 지혈제를 투여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위출혈은 멈췄으나 피를 쏟은 만큼 기력이 이전에 비해 뚝 떨어졌습니다. 평소 1킬로미터 정도의 산길을 거의 매일 산책하듯 걸었는데 기력이 형편없을 때는 십 미터도 채 걷지 못했습니다. 이전처럼 병원에서 비운 속에 영양제라도 투여할까 싶었지만 그마저 접었습니다.

모르핀처럼 영양제에 의지하기 시작하면 결국 위통이 심할 때 마다 병원에 의지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수술을 하지 않을 것이기에 병원에 의지하면 할수록 스스로 지켜 나가야 할 자연치유력, 몸에 대한 자생력이 그만큼 떨어질 것입니다. 몸의 자생력이 떨어지면 위에 자리 잡고 있는 암세포가 몸 전체로 퍼져나갈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것입니다. 이쯤 되면 자연치유고 뭐고 온몸의 기력이 떨어져 죽는 날만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하여 주사 바늘을 통해 강제적으로 투입하여 일시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영양제보다는 위에 부담이 덜한 가벼운 음식으로 기운을 보충하기로 했습니다. 암에 걸리면 돌팔이 의사가 다 된다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나름 돌팔이 판단이 적중했습니다. 위출혈이 멈추고 보름쯤 지나자 바싹 마른 대지에 단비 내리듯 위장에서 음식물을 큰 무리 없이 받아주기 시작했고 바닥을 쳤던 기운도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병 주고 약 주는 대자연

자연요법은 말 그대로 병원보다는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치유법입니다. 꽃피는 봄이 오면 겨우내 추위에 얼었던 축대가 무너지듯 부실한 내 몸이 무너져 내렸지만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듯이 자연은 죽음과 생명, 병 주고 약을 줍니다.
 

자연은 병 주고 약을 줍니다.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형편없이 망가뜨리더니 봄비를 내려 주면서 두릅을 비롯한 싱싱한 먹을거리들을 풍성하게 내주었습니다. ⓒ 송성영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형편없이 망가뜨리더니 봄비를 내려 주면서 싱싱한 먹을거리들을 풍성하게 내주었습니다. 산막 주변에 널려 있는 머위며 엄나무 순, 두릅, 취나물 등의 싱싱한 먹을거리들로 부실한 몸을 다스려 주었습니다.

먹을거리들을 채취하기 위해 잔뜩 굳어있던 몸을 움직여 막힌 기혈을 조금씩 열어주었습니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 암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나를 죽이려 했던 자연의 혹독한 기운이 이번에는 부드러운 기운으로 싱싱한 먹을거리를 내주며 죽어가는 나를 조금씩 살려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식이요법을 기력이 빠져나간 몸 상태에 맞게 조절했습니다. 현미 위주로 꾸려오던 식단을 흰쌀밥으로 늘려나갔습니다. 흰쌀밥은 그동안 탄수화물 때문에 거부해 왔지만 현미보다 위에 부담을 덜 주기 때문입니다. 또한 평소 경제적으로 부담이 커서 엄두를 못 냈던 민물 장어로 기력을 끌어올렸고 매일 아침 유기농 두유와 갑자기 입맛이 당겨온 부드러운 과일, 아보카도로 위를 다스려 나갔습니다.

거기다가 큰 행자가 멀리 고흥 앞바다에서 바닷물이 가장 많이 빠지는 날에 맞춰 힘겹게 채취해온 돌미역과 텃밭 상추며 케일 등의 채소로 식이요법을 조절해 나갔습니다. 특히 4월말부터 단비가 내리기 시작해 미세먼지도 눈에 띄게 줄어들고 몸도 점점 기력을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비가 내리면 깊은 숨쉬기를 어렵게 하는 미세 먼지가 확연히 줄어들고 맑은 공기가 찾아옵니다. 이전보다 한결 가벼운 맨발로 숲을 거닐며 기혈운동과 명상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속쓰림이 거짓말처럼 사라졌습니다. 기력 또한 산막 주변의 푸른 봄기운처럼 어느 정도 회복됐습니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으리라

이번에 감당하기 힘든 통증을 견뎌내며 사람 목숨 참 질기다는 말이 실감났습니다. 그 질긴 목숨 줄로 죽을 만큼 아팠던 통증을 견뎌낸 것은 암세포와의 싸움이 아니라 내 자신과의 싸움이었습니다. 밤이 되면 극심한 통증에 졸도하듯 잠들면서 이대로 잠들어 세상 떠났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지만, 아침이 되면 멀쩡하게 살아있는 나를 만지게 됩니다. 죽거나 살거나 확률은 반반이었습니다. 냉혹하면서도 자비로운 자연의 순리처럼 죽지 않으면 살아날 것이었습니다.
 

겨울잠에서 막 깨어난 북방산 개구리. 겨우내 죽은 듯 잠들어 있다가 깨어나면서 극심한 통증과 함께 사지의 감각이 되살아나고 그 간극 어디쯤에 생명의 환희심이 깃들어오지 않을까요? 통증의 극점에서 내가 그랬듯이 말입니다. ⓒ 송성영

 
보름 가까이 온갖 통증을 지켜보면서 나름 통증에서 벗어나는 무지막지한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통증이 나를 죽이지 못하면 결국 나는 그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통증에서 벗어나려 할수록 통증은 좀 더 나를 옥죄어 옵니다. 하여 통증을 피하지 않고 마주보았습니다.

극단적인 통증이 시작되면 누워 있어도 앉아 있어도 서 있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거의 기절할 만큼 통증의 극단 점까지 끊임없이 지켜보다보면 어느 순간 몸과 마음이 가장 안정적인 상태가 됩니다. 그 순간은 아무런 고통 없이 몸이 가장 편하다고 느낄 때와 견딜 수 없을 만큼 극단적인 통증이 몰려드는 그 중간 지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통증을 있는 그대로 지켜볼 때 통증은 또 다른 내가 되고 결국은 나도 그 무엇도 아닌 그 무엇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 무엇도 아닌 상태를 말로 표현하자면 몸과 마음이 명료하게 깨어 있는 지점, 그마저 사라져 버린 상태, 난생처음 경험해 보는 그 어떤 편안한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지점은 아프거나 아프지 않거나, 그 모두를 껴안고 동시에 그 두 가지 상태마저 사라진 순간, 마치 부처님이 말씀하신 중도와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잠시의 경험이었지만 통증 없이 어찌 이 양극단을 만날 수 있겠는가 싶습니다. 어찌 부처님의 중도를 머리가 아닌 몸으로 가늠할 수 있었겠습니까. 나처럼 어리석은 자들은 고행 없이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없듯이 통증은 나를 일깨워주는 더없이 좋은 스승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통증의 극점을 지켜보며 마치 죽음이라는 큰 스승 앞에서 온갖 시험을 통과한 행자처럼 비로소 진정한 도가 어떤 맛인지를, '아침에 도를 들으면(朝聞道), 저녁에 죽어도 좋다(夕死 可矣)'라는 말이 진정으로 뭔 의미인지 조금은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도라 말하면 도가 아니듯, 통증의 극점에서 희열감을 맛볼 수 있기에 통증이 있는 것이고 통증이 있기에 희열감이 있는 것이겠죠. 하여 언제든 감당하기 힘든 통증이 밀려올 것입니다. 그 둘 다 없는 상태, 통증도 희열감도 느낄 수 없는 그 상태는 어떤 상태일까요. 수행자의 길을 가고자 하는 자로서 앞으로 그 상태를 경험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아부지 힘든디 원고는 나중에 쓰시지..."
"글 쓰는 게 내 업인디 어쩌겠냐."
"그래도 기운을 좀 더 챙기시고..."

"기운을 끌어올리려면 한도 끝도 없다. 죽을 때 죽더라도 뭔가 하다가 죽고 싶다."
"뭘 하고 싶으신데?"
"글쓰기 아니면 가부좌 틀고 앉아 명상하다가 그도 아니면 밭일을 하다가 죽고 싶다. 맥없이 누워 있다가 세상 뜨고 싶지 않다. 이 세 가지가 내가 평생 지어온 업인 걸 어쩌겠냐. 내려놓을 수 없다면 그 업대로 살다가야지."


내가 살아온 길이 악습이든 선한 습이든 그 길대로 가는 것은 '살아있음'이었습니다. 살아있기에 살아온 길대로 가는 것입니다. 가부좌 틀고 명상하는 것은 마음을 위한 것이고 농약 한 방울 화학비료 없이 청정한 밭일을 통해 나오는 건강한 먹을거리는 몸을 위한 것입니다.

하여 그 힘겨운 와중에도 모종 포트에 케일, 오이, 브로콜리, 오크라 등등의 온갖 씨앗을 넣고 씨감자를 심고 상추씨를 뿌려가며 틈틈이 텃밭을 가꿔 왔습니다. 맥없이 손 놓고 주저앉아 죽을 날만을 기다릴 수는 없었으니까. 설령 가꿔 놓은 밭작물들을 먹지 못하고 세상을 뜬다 하여도 누군가는 저 싱싱한 먹을거리를 통해 건강을 챙겨 또 다른 누군가의 건강을 챙기게 될 것이라 믿고 있으니까요.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면 누군가를 건강하게 사랑할 수 있는 길을 갈 수 있다고 봅니다. 내게 있어서 그 사랑으로 가는 길 중에 하나가 글쓰기라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길은 바로 내 자신을 위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하여 내 글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그 누군가를 위해 죽음을 앞두고 부질없어 보이는 글을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마치고 내일 또다시 속 쓰림으로 배를 움켜쥐게 될지 알 수 없으나, 내일은 그냥 내일로 내버려 두기로 합니다. 바람 맑아 좋은날, 살아있기에 지금 이 순간 좋으면 됐습니다.
 

그 힘겨운 와중에도 큰 행자와 함께 틈틈이 종지에 씨앗을 넣고 텃밭을 가꿔 왔습니다. 맥없이 손 놓고 주저앉아 죽을 날만을 기다릴 수는 없었으니까. 설령 가꿔 놓은 밭작물들을 먹지 못하고 세상을 뜬 다 하여도 누군가는 저 싱싱한 먹거리를 통해 건강을 챙겨 또 다른 누군가의 건강을 챙기게 될 것이라 믿고 있으니까요.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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